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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을 여는 이고 문동환 목사 장례식 설교문
김경재 명예교수(한신대) | 승인 2019.03.14 15:50

잠든 새벽을 깨우고, 새벽을 열려고 평생 달려간 사람, 문동환 목사님의 가심을 애도하고 넘겨주신 큰 뜻 함께 다짐하려고 우리는 지금 이 자리에 모였습니다. 이스라엘 시인은 고백합니다.

“파숫군이 아침을 기다림보다도 내 영혼이 주를 더 기다리나니 참으로 파숫군이 아침을 기다림보다 더하도다.”(시 130:6)

성경 전체를 큰 눈으로 보면 새벽을 깨우고 새벽을 열어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로 가득차 있습니다. 모세, 여호수아, 사무엘, 이사야와 예레미야, 아모스와 호세아, 그리고 그 모든 새벽을 여는 사람들의 결정체로서 나사렛 예수, 그들의 본질은 새벽을 깨우고 새벽을 여는 자들이었습니다.

그 어느 때보다 어두운 새벽을 살고 있다

새벽은 밤과 낮이 교체되기 직전의 상황입니다. 동트기 전이 더 어둡다는 말이 있습니다. 호모사피엔스가 출현하여 문명을 이룬지 처음으로 지구 생명권은 과학문명이 최고수준으로 꽃피었는데, 매우 역설스럽게도 정신도덕문명은 가장 깊은 어둠이 걷히지 않는 새벽입니다.

▲ 한신대학교 신학대학원에서 진행된 문동환 목사 장례예배에서 한신대 김경재 명예교수가 설교를 진행하고 있다. ⓒ에큐메니안

밤의 본질은 사물이 또렷하게 보이질 않고 더러움과 깨끗함의 경계가 안보이는 것입니다. 그래서 밤은 옮음과 거짓이, 역사 진실과 역사왜곡 폄훼 날조가 엎치락 뒤치락 하는 시간입니다. 밤은 거짓과 겉치례문화, 사치와 낭비문화, 죽음사회요 죽임문화의 상징입니다.

낮은 아침의 여명으로부터 시작합니다. 어둠이 거치고 사물의 윤곽이 또렷이 드러납니다. 온갖 식물들은 밝은 태양을  향해 얼굴을 듭니다. 평화의 생명공동체가 삶을 노래하고 향유하며 서로 돕고 함께 울고 웃는 생명의 시간을 상징합니다.

가신 이는 새벽을 여는 삶을 평생 사셨고 그의 궁극적 관심은 ‘생명문화 창조’였습니다. 반세기 50년전, 의정부로 가는 당시 서울시 변두리 방학동에 ‘새벽의 집’ 를 시작한 모험적 실천에서 보이듯이, 새벽을 여는 이는 그렇게 늘 한세대 이상 시대를 앞서가셨습니다.

이 시대의 어둠, 자본주의라는 근본 악

새벽을 여는 이는 그 누구보다도 미국을 잘 알고, 미국으로 대표되는 자본주의 산업사회 본질을 꿰뚫어 알고 체험한 분입니다. 그리하여 우리 시대 악의 본질은 신자유주의로 분칠한 자본주의 삶의 가치관이요 그 구조라고 확신합니다. 그것은 근본 악이요, 모든 모순과 대립과 인간소외의 근원임을 분명하게 확철하기를 청년들에게 당부 했습니다.

미세먼지로 마스크를 쓰고 다닐 것이 아니라, 오늘 지구촌을 이 지경으로 만드는 근본원인을 찾아 그것과 단절하고 새문명을 열어가야 한다고 외친 분입니다. 알고 보면 그 근본 악이  한반도의 분단을 고착시키고, 평화협정 통일을 방해하며, 국민을 무한 경쟁자 분노사회로 만들고, 교육을 망가뜨리고, 교회를 맘몬 숭배 바알신앙집단으로 타락시켜가는 독초의 뿌리라고 강조했습니다.

신자유주의 산업문화는 오염된 스모그 대기처럼 우리를 둘러싸고 있어서 그것과의 단호한 단절이 쉽지않을 뿐만 아니라,  우리 속에서 내 영혼의 참빛을 가리우고 내 안에서 주인 노릇하여 우리 자신이 적과의 동침을 즐겨하도록 만들고, 그것을 개발·발전·부흥·성공이라고 착각하도록 하는 간교한 뱀같은 것임을 직시할 것을 강조하셨습니다. 우리가 살기 위해서, 우리 자녀들이 지속가능한 지구 행성에서 살아남기 위해서 끝까지 그 근본 악과 싸워 이겨내고 새로운 생명문화 창조해 내야 할 것을 강조하셨습니다.

죽임의 문화에서 생명문화로의 변화

새벽을 여는 이, 우리 스승은 불의와 부정을 보고서는 사자후하고 엄정하지만 가슴이 매우 따뜻한 분이셨습니다. 같은 시대 같은 사회와 지구촌을 함께 살면서 자기보다 더 가난하고 업신당하고 고달파서 맘속 깊이 분노하는 사람들을 보고도 맘이 아프지 않는 사람은 문제있다고 보았습니다. 그런 사람들은 영혼이 죽은 것과 다름없다는 것이지요. 함께 아파할 것과, 함께 울고 함께 분노하면서 죽임의 문화를 생명문화로 변화시키는 일에 전념할 것을 독려하셨습니다. 주님 예수가 그리하셨던 것처럼 말입니다.

자기는 떠돌이 목자라고 자칭하는 새벽을 여는 이는, 개인과 집단 안에 끈질긴 이기심, 탐욕, 교만, 권력욕, 지배욕, 열등의식과 우월의식을 깊이 경험하시고 맘아파했지만, 인간성을 부정하는 비관적 신학자가 아니셨습니다. 소위 말하는 기독교 원죄론을 받아들이지 않으셨습니다. 본래 하나님의 형상을 꽃피어 낼 수 있다고 믿으셨습니다.

노동자, 기지촌 여성들, 부족한 제자들을 격려하고 사랑하셨습니다. 교리적 기독교, 교권적 기독교, 경직화된 바리새적 경건주의 기독교를  싫어하시고 , 맘몬 숭배와 바알신앙이나 다름없는 기복신앙과 성장숭배 한국 교회들은 예수의 교회가 아니라고 강하게 비판 경고하셨습니다. 왜냐하면 믿는 신자라면 예수를 닮아 사는 자라야 하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사도는 빌립보 편지에서 말합니다.

“내가 이미 얻었다 함도 아니요 온전히 이루었다 함도 아니라. 오직 내가 그리스도 예수께 잡힌바된 그것을 잡으려고 달려가노라.”

새벽을 여는 이도 그랬습니다. 그리스도에게 잡힌바 된 그것은 죽음의 세력이 극복된 참 생명이요, 부활의 생명입니다. 평화협정체제, 북한 핵 완전 폐기, 남북한 국민이 자유 왕래하시는 걸 보시지 못하고 떠나신 것이 못내 아쉽습니다.

낡은 것을 청산하고 새 시대를

우리는 더 용기를 내야 합니다. 우리 한민족 운명을 미국이나 주변국가들에게 맡겨 놓을 수 없습니다. 100년전 3.1운동 때 우리 조상들이 그랬던 것처럼, 우리의 자주독립 평화통일 의지를 온 세계에 알리라고 독려하십니다. 국제정치관련에서 정치는 현실이라느니, 안보국방 튼튼론이라느니 사대주의나 낡은 냉전시대 반공주의를 깨끗이 청산하고 한겨례로서 건강한 민족적 자아를 확립하라고 가신이는 당부합니다.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기를 “유대로 가자 우리 친구 나사로가 잠들었도다. 그러나 내가 깨우러 가노라”(요11:11)고 말씀하셨습니다. 한반도 미래가 인류 미래의 평화와 직결되는 줄 모르고 그들의 영혼과 생각이 깊은 죽음의 잠에 빠져 있는 사람들을 깨우러 문동환 목사는 더 높은 차원의 생명질서에로 들어가신 것입니다. 신령한 영적 몸을 하나님의 선물로 덧입으시고, 시공개념이 우리들의 그것과 다른 질서에로 옮겨가셨습니다.

더 높은 차원은 그보다 낮은 차원을 내포할 수 있다는 생명원리 때문에, 우리맘 속에서 함께 일 하실 것입니다. 영원한 청년, 행동하는 양심인, 새벽을 여는 이를 우리들에게 보내주신 하나님께 감사합시다. 성령 안에서 주님 위로와 격려가 유가족들과 더욱 함께하시기를 기원합니다.

김경재 명예교수(한신대)  soombat1940@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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