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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청춘은 청춘이었다실연이 감옥에 가게도 하나?
김정택 목사 | 승인 2019.03.23 18:30

1976년 12월8일, 민주화운동진영에 충격을 주는 사건이 터졌다. 서울대 캠퍼스에서 500여명의 유신반대, 긴급조치철폐 집회와 시위가 기습적으로 벌어진 것이다. 긴급조치9호가 발령되고 형사들이 학내에 합법적으로 진을 칠 수 있는 상황에서 학생들은 학내 민주화운동은 불가능하다고 교회나 성당, 절등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한편으로는 학생운동의 한계를 느끼며 빈민, 농민, 노동자와 결합해야 한다고 준비를 할 때였다. 학내에서는 집회나 시위가 불가능하다는 분위기가 대학생들사이에 쫙 깔려 있었고. 그런데 서울대캠퍼스에서 유신반대, 긴급조치철폐 시위가 벌어진 것이다.

더군다나 주동자인 이범영, 박석운, 백계문 등이 법대 4학년이라는 것이 더욱 충격을 주었다. 12월8일이면 2학기도 다 끝나갈 때이고 4학년은 그냥 졸업장만 받을 날을 기다리기만 하면 되는 날짜였다. 그렇다고 해서 누군가가 그들에게 유약자, 비겁자라고 돌을 던질 것도 아니고.

미래가 짱짱한 서울법대 졸업을 포기하고 기꺼이 감옥을 택한 행동을 했으니 충격을 주기에 충분했다. 이 사건은 학생들에게
용기를 불어넣어 주고 있었다.

▲ 고 김병곤 열사 묘비 제막식에서의 추도사를 낭독하는 이범영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겨울이 되니 나는 더욱 바빠졌다. 의균이와 잠실 넝마촌에서 동생들과 동거하면서도 감리교전국연합회와 한국기독청년협의회 민중선교위원회 교육과 조직화 사업에 시간을 할애해야 했다. 정명기 목사가 개척한 사당동 판자촌 희망교회 전도사 역할도 수행해야 했다. 이 때가 내 나이 27세, 여성을 알만한 나이다.

의균이는 희망교회 주일학교를 맡은 감신대 후배, 윤혜경을 쫄쫄 따라다니더니 서로 눈이 맞았다. 나는 농촌학습모임에서 성균관대여학생과 눈이 맞았다. 여학생은 성남이 집이고 나는 잠실이 주거지니까 모임만 끝나면 같이 붙어다녔다. 뜨거웠다. 마냥 좋았다.

그런데 한달 반 정도 사귀었을 뿐인데 어느 후배가, “형! 그 누나가 한신대생 하고 사귀던데” 하는 것이다. 내가 숨어서, 몰래 연애할 생각도 없었지만 그렇다고 뭐 선언하고 다닐 생각도 없었는데 다들 내가 열애하는 것을 알았었던 모양이다. 나는 도대체 이해가 안 됐다.

아니 얼마나 만났다고 벌써 식다니. 안 되겠다. 직접 만나서 확인해야지 하고 약수동 다방에서 만났다. 그녀의 답변은 간단했다. 한번에 자기짝이라는 신호가 왔다는 것이다. 단 한번에 바로! 놀랍다.

여기에 감히 내가 더 추근대면 뭐하겠는가! 알았다하고 헤어졌다. 손과 발이 내몸에서 찢어져 떨어지는 그런 아품이 찾아왔다. 이게 첫사랑이고  실연인가! 내가 긴급조치9호위반으로 구속되어 서울구치소에 있을 때 이상윤이 면회를 왔다.

“형, 형이 감옥에 들어간 것이 실연 때문이라고들 얘기하는 후배들이 있어” 한다. 그냥, 웃음이 나왔다.

77년 봄, 나도 4학년이 되었다. 어느날 잠실 넝마촌 친구 장의균이 김용상이라는 요기를 데리고 감신대 캠퍼스를 찾아왔다. 용상이도 50년생 나와 동갑인데 민청학년에 얽혀 감옥생활을 하고 나왔다. 용상이는 청계천 판자촌에서 요가를 가르친 것밖에  없는데 붙들려 간 것이다.

용상이는 감옥에서 합방생활을 하던 민청학년 구속자들에게 요가를 전수해 주었다. 이때부터 요가가 민주화운동진영에 퍼지기 시작했다. 나는  감신대에 요가학회를 설치하기로 하고 1달 정도 요가학습을 받았다.

봄기운이 확연해지는 4월에 들어서자 각 대학이 꿈틀거리기 시작했다. 정문화라고 중앙고등학교 동기이면서 민청학년 출소자인 친구가 학교를 찾아와 만나게 되었다. 문화는 각 대학의 움직임들을 들려주면서 감신대는 어떻게 할 것이냐는 것이다.

문화하고는 특별한 약속없이 헤어졌다. 나는 잠시 고민을 했다. 할 일은 많고 작년의 서울대사건 주동자들이 구속된 것을 알고
있었기에 구속은 피할 수 없을 것임을 알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내가 안나서면 감신대에서 집회와 시위가 가능할까?

가능할 것같지가 않았다. 나에게는 주동은 하되 도망자가 되자는 결론이 떨어졌다.  후배들을 조직하고 계획을 수립하고 만약에 끌려가면 모든 일은 내가 주도한 것으로 하기로 말을 맞췄다. 결행하는 날이 되었다.

나는 감신대 채플실이 잘 보이는 뒷산에 올라갔다. 예배가 끝날 때가 되었고 학생들이 채플에서 나오는데 평상시와 별 다름없이 나오는 것이 아닌가! “아하, 실패했구나!” 하는 낭패감이 들었다. 이제는 도망치는 일만 남은 것이다.

자금이 필요했다. 밤이 으슥해질 때까지 빈둥대다 약수동 형제교회로 동완이 형을 만나러 갔다. 언덕을 한참 올라 형제교회에 다다랐을 때 형사들이 나를 덮쳤다.

서대문 경찰서로 끌려가서 조사를 받으면서 알았다. 내가 바로 붙잡혀가지 않고 도망을 쳤기때문에 많은 학생들이 끌려와 조사를 받고 구속자 인원도 늘었다는 것을. 학생으로는 후배들 남호, 신철호, 김성우가 구속됐고 졸업자로는 정명기 목사가 구속됐다. 정목사는 정말 아무런 관계도 없는데 서대문 경찰서에서는 왜, 엮어서 구속시켰는지 지금도 모르겠다.

김정택 목사  kjt9425@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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