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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악질경찰>, 세월호 이후에 ‘악질’도 이렇게는 하는데, 당신은?최병학 목사의 인문학으로 읽는 영화
최병학 목사(남부산용호교회) | 승인 2019.03.27 19:08

영화 <열혈남아>(2006), <아저씨>(2010), <우는 남자>(2013)를 연출한 이정범 감독의 <악질경찰>(2019)은 세월호 이후에도 어린 학생이 죽고, 또 변하지 않는 사회와 어른들을 보여주고, 어른인 우리를 부끄럽게 만드는 영화이다. 신파가 아닌, 경찰 액션 영화로 이정도 질문을 던진다는 것은 그만큼 영화를 고민하며 만들었다는 증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같은 날 개봉한 영화 <돈>보다 <악질경찰>이 흥행이 저조한 이유는 두 가지다. 제목을 <미나>로 했어야 하는 영화적 이유와, 세월호 이후에도 ‘돈’에 환장한 어른들은 여전히 변하지 않고, 탐욕적으로 살아가고 있는 영화 외적인 현실 때문이다. 영화는 세월호 이후를 다루지만, 세월호 자체를 비켜감으로 오히려 더 세월호를 잊지 못하게 한다.

영화 시작 전, 워너브라더스 로고가 나오길래, 영화를 잘못 틀었나 생각했는데, 투자하겠다는 한국회사가 없어서 워너브라더스코리아가 투자를 했다고 한다. 출연하겠다는 배우도 찾지 못했다고 하는데, 이선균이 출연 의사를 밝혀 간신히 2017년 촬영을 끝냈으나, 개봉까지 2년의 시간이 걸렸다. 강자가 약자를, 어른들이 아이들을 벼랑 끝으로 내몰고 있는 침몰하고 있는 세월호는 지금도 여전하다. 세월호 이후 상처를 안고 방황하며 살아가는 아이들과, 그럼에도 여전히 이기적이고 탐욕스럽게 살아가는 우리의 모습을 동시에 담고 있는 영화다. 그리고 지금, 당신은 무엇을 하고 있는가를 묻고 있다.

1. “법 앞에서 딱 만 명만 평등해!”

영화는 제목 그대로, 악질 경찰인 조필호(이선균 분)의 비리로부터 시작한다. 조물주보다 위에 있는 건물주를 꿈꾸는 필호는 돈을 벌기 위해 경찰 신분을 망각하고 온갖 비리를 저지른다. 범죄를 사주하는 것은 물론, 경찰서에서 대놓고 뒷돈을 받는 간 큰 짓마저 마다하지 않는다. 비록 내사과가 주시하고 있지만, 증거도 없고, 법망을 잘도 피해간다.

그러다가 한탕 하기 위해 대범하게 경찰 압수창고를 털 계획을 세운다. 하지만 범행 도중 폭발사고가 발생하고, 필호의 행동책인 기철(정가람 분)이 죽는다. 필호는 용의자로 지목되지만, 물증은 없고, 핸드폰도 없애버린다. 그러나 이 폭발 사고는 단순 화재 사고가 아니라, 태성 그룹의 비자금 7,800억의 증거가 보관된 창고가 폭발한 사건이었다. 그리고 이 사고 뒤에는 대한민국 재벌 1위 태성(한자로 ‘太星’인지는 모르겠으나, 그럴 것 같다. ‘三星’보다 크니까!) 그룹의 음모가 있었다. 이후 사건을 추적하는 필호는 폭발사건의 증거를 가진 고등학생 미나(전소니 분)와 엮이게 되고, 빙산의 일각에 불과한 태성그룹의 거대한 음모와 마주친다.

태성 그룹의 회장으로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는 정이향(송영창 분)은 태성 그룹 장학생인 남성식 검사(박병은 분)와 오른팔 권태주(박해준 분)를 앞세워 온갖 악랄한 짓을 서슴지 않는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법 앞에서 딱 만 명만 평등해” 그렇다. 세월호 때도 그렇고, 지금도 그렇고, 법 앞에 딱 만 명만 평등하다. 아니, 법을 초월한 무소불위의 권력을 지닌다. 그리고 나머지는 모두 780원짜리 인생이다.

2. “너희 같은 것들도 어른이라고...”

미나의 꿈은 ‘진격의 거인’이 되어 청와대를 짓밟아 버리는 것이다. 세월호 때 친한 친구 소은(송지원 분)을 잃어버렸으며, 그 아픔 때문에 소은의 운동복을 입고, 신발을 신고 지내지만, 잊을 수 없다. 따라서 같은 고통에 처한, 임신한 후배 소희(권한솔 분)를 돌보며 하루하루 지옥 같은 삶을 버텨낸다.

미나를 찾아낸 필호는 기철이 보낸 증거자료가 들어 있는 휴대폰을 가지고, 남성식 검사에게 가자고 한다. 그러나 미나는 먼저 소희의 임신중절 수술의 보호자가 되어 달라고 한다. 그리고 둘은 소은의 아버지에게, 미나가 입었던 소은의 마지막 유품인 운동복을 가져다준다. 그러나 이때 태주가 나타났다. 무자비한 폭력을 행사하고 등장과 함께 절대적인 공포를 몰고 오는 태주는 악의 화신이다(박해준은 <독전>에서도 그렇고, 계속 지켜볼 가치가 있는 배우이다). 경찰 압수 창고에서 기철을 불태워 죽였으며, 필호와 미나도 제거하려고 한다.

▲ 영화 <악질경찰>에 등장하는 “태주와 미나” ⓒGoogle Image

영화는 태주를 강한 존재로 그리기 위해, 부감 샷(위에서 내려다 본 샷)을 적극 이용한다(반대로 필호의 모습은 ‘아래에서 치켜 올려본’ 양각 샷으로 촬영하며 필호의 악질스러운 얼굴을 세밀하게 포착한다. 포스터를 보라). 아무튼 돈 때문에 사람을 죽이고, 돈 때문에 폭력을 행사하는 어른들의 모습을 보며, 미나는 공사 중인 아파트 옥상에서 태주와 필호가 보는 앞에서 떨어져 자살한다. 그리고 한마디 내 뱉는다. “너희 같은 것들도 어른이라고...”

3. 필호+미나, ‘정의기계-되기’?

스피노자는 『에티카』 ‘제1부, 정의3’에서 이렇게 말한다. “실체는 그것의 개념을 형성하기 위하여 다른 것의 개념을 필요로 하지 않는 것이다.” 이러한 실체를 찾아보기란 쉽지 않다. 가령 도로 위를 달리는 자동차 역시 실체가 아니다. 자동차 개념을 형성하기 위해서는 기계, 교통, 운전이라는 다른 개념들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스피노자의 실체는 신이며 자연이다. 무한한 속성을 지닌 자족적 존재이며, 자연물들을 존재하게 하고 그것을 지속시키는 원인인 힘, 그리고 무한한 생산력(능산적 자연)이자, 사물의 내재적 존재 원인인 것이다.

따라서 실체를 파악할 수 없기 때문에 실체의 변용(affections)인 양태(modus)를 살펴보아야 한다. 스피노자는 “양태란, 실체의 변용, 또는 다른 것 안에 있으면서 다른 것을 통하여 파악되는 것(제1부, 정의5)”이라고 이해한다. 양태의 예를 잘 보여주는 것이 영화 <터미네이터 2>(1991, 2019년 10월 재개봉)의 액체금속로봇 T-1000(로버트 패트릭 분)이다. 무기가 필요하면 팔이 칼로 변하고, 경찰로, 엄마의 모습으로 변용된다. T-1000 자체가 실체라면 칼, 경찰, 엄마 등이 양태인 것이다. 이러한 변용인 양태는 실체보다 앞설 수 없다. 따라서 스피노자는 “실체는 본성에 있어서, 그것의 변용에 앞선다(제1부, 정리1).”라고 말한다.

▲ 『터미네이터 2』의 T-1000이 변용하고 있다. ⓒGoogle Image

스피노자의 실체, 변용, 양태의 영향으로 철학자 질 들뢰즈는 자신의 생성철학의 핵심을 ‘-되기(becoming-)’ 개념으로 설명한다. 서양의 전통철학이 초월적 ‘존재(be)’를 추구하며 불변하는 본질을 찾았다면, 들뢰즈는 존재와 동일시되지 않고 끊임없이 변화하고 움직이는 ‘생성’을 사유한다. 그리고 이러한 생성에 관한 사유에는 고정된 이미지가 없다. 움직임, 운동, 변화를 사유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들뢰즈는 『의미의 논리』 (한길사, 1999)에서 루이스 캐롤의 작품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를 분석하는데, 주인공 앨리스는 이상한 나라에 들어가서, 커지기도 하고 작아지기도 한다. 여기서 ‘앨리스가 자란다’라는 말은 커지기도 하고, 작아지기도 하는 움직임을 묘사한 것이다. 곧 운동, 변화가 내재되어 있다는 말이다. 이것이 들뢰즈가 말하는 생성이다.

따라서 생성을 통해 실체를 파악하면, 실체의 변용인 양태를 볼 수 있을 뿐이다. 그리고 들뢰즈에 따르면, 모든 양태는 이행과 해체를 통해 관계를 맺는다고 본다. 따라서 개체는 오로지 운동과 정지, 느림과 빠름에 의해서만 서로 구별될 수 있다. 이렇게 개체들을 구별하게 해주는 운동과 속도, 그 자체가 ‘되기’이며 ‘생성’인 것이다. 즉, 개체는 운동과 속도의 ‘연결접속(connexion)’을 통해 다른 개체의 부분이 되는 것이다.

이진경은 들뢰즈의 연결접속을 이렇게 이해한다. “입과 식도가 접속하여 먹는 기계가 된다.” 그러나 김재인에 의하면 이것은 초월적 구도 내에서 생성을 이해한 것으로, 잘못된 이해라고 한다. 미리 존재하는 A(입)와 B(식도)의 결합이 아니라는 것이다. “입이 미리 있고, 식도가 이미 있는 것이 아니라, 무엇이 될까 망서리는 입이 있고, 그러고 나서 무언가로 생성되는 것, 곧 ‘입+식도(먹는 기계)’, ‘입+기도(호흡기계)’로 결판난다. 어디에도 초시간적 자기동일성을 지닌 입이란 없다.”(김재인, 『들뢰즈 커넥션』, 역자 후기 참조)

영화로 보면, 필호는 악질로 미리 정해질 수 없고, 미나와 만나, ‘필호+미나(정의기계?)’로 결판난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되기의 운동은 무한히 계속된다. 따라서 ‘되기’는 다른 무엇으로의 변용을 만들어 낼 수 있는 속도와 힘을 스스로 만들어낸다는 것을 의미한다. 미나와의 만남과 동행하는 속도, 그 만남의 강도(힘)가 필호를 새롭게 생성시킨다. 이때 접속을 통해 만들어진 개체는 이전의 다른 두 요소(미나, 필호)와 다른 모습이다. 중요한 것은 두 요소의 본래의 모습이 아니라, 두 요소의 연결접속이 어떤 관계인가가 중요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되기’는 모방이 아닌 관계이며 생성이자, 되기이다. 미나는 “너희 같은 것들도 어른이라고” 좌절하며 자신의 목숨을 던졌고, 필호는 그런 미나를 통해 진정한 어른-되기로 생성된 것이다.

4. 악질도 이렇게 하는데, 너는?

뒷돈은 챙기고 비리는 눈감고 범죄는 사주하는 쓰레기 같은 필호가 더 큰 악을 만나, 변했다(스피노자의 ‘변용’, 들뢰즈의 ‘되기’). 이것은 이정범 감독의 전작들과도 맞닿아 있다. <열혈남아>, <아저씨>, <우는 남자>까지 주인공의 모습은 다양하지만, 주인공 모두 밑바닥 인생을 살다가, 자신들의 삶에 튕겨 들어온 인물로 말미암아 변하게 된다. 필호가 미나와 연결접속되어 변용된 것이다. 이정범 감독은 이렇게 말한다.

“극 안에서 변화하는 인물을 담는 것이 좋고, 쓰레기 같은 삶을 살던 이가 최선의 사람으로 변하는 순간에 끝나는 영화가 좋다.”

영화의 백미는 미나가 소희의 임신중절을 위해 병원에 갔을 때, 의사가 필호를 포주(抱主, 창녀를 고용하여 영업을 하는 사람)로 보고, 미나를 범하는 댓가로 필호에게 돈을 건넨다. 변용하기 전의 필호였다면 받고 눈 감았을 것을, 새롭게 생성되는 필호는 그 의사를 개 패듯이 팬다. 미나와의 연결접속을 통해 다른 개체가 된 것이다. 그러나! 미나는 죽었다. 아니 우리가 죽였다. 세월호 이후에도 아이들은 우리 어른들 때문에 죽는다. 사랑이, 정의가 없기 때문이다.

악질 경찰 필호는 가소롭지만 ‘정의’의 이름으로, 정 회장의 머리에 총을 쏘았다. 왜 영화가 세월호 관련 권력자의 머리가 아니라, 비자금을 조성한 악질 재벌이여야만 했는지를 알아야 한다. ‘돈’ 때문인 것이다. 필호도, 정 회장도 돈에 돈 것은 마찬가지이지만, 필호는 미나를 만나 ‘정의기계-되기’가 되었으며, 정 회장은 필호를 만나 ‘시체-되기’가 되었다. 그렇다면 우리 모두가 총을 들어야 하는가? 사랑에 기반 한 정의는 어떻게 구현될 것인가? 이것은 세월호 이후 윤리의 물음, 아닌 세월호 이후‘에도’의 윤리에 대한 질문이다.

5. <악질경찰> 이후를 묻다

누가복음 6장 31절에서 예수는 ‘황금률(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을 선포한다. 폴 리쾨르는 누가복음 27~36절을 분석한다. 먼저 성경 말씀을 인용해 보자.

“그러나 너희 듣는 자에게 내가 이르노니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미워하는 자를 선대하며 너희를 저주하는 자를 위하여 축복하며 너희를 모욕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 너의 이 뺨을 치는 자에게 저 뺨도 돌려대며 네 겉옷을 빼앗는 자에게 속옷도 거절하지 말라. 네게 구하는 자에게 주며 네 것을 가져가는 자에게 다시 달라 하지 말며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 너희가 만일 너희를 사랑하는 자만을 사랑하면 칭찬 받을 것이 무엇이냐 죄인들도 사랑하는 자는 사랑하느니라. 너희가 만일 선대하는 자만을 선대하면 칭찬 받을 것이 무엇이냐 죄인들도 이렇게 하느니라. 너희가 받기를 바라고 사람들에게 꾸어 주면 칭찬 받을 것이 무엇이냐. 죄인들도 그만큼 받고자 하여 죄인에게 꾸어 주느니라. 오직 너희는 원수를 사랑하고 선대하며 아무 것도 바라지 말고 꾸어 주라. 그리하면 너희 상이 클 것이요, 또 지극히 높으신 이의 아들이 되리니, 그는 은혜를 모르는 자와 악한 자에게도 인자하시니라. 너희 아버지의 자비로우심 같이 너희도 자비로운 자가 되라.”

리쾨르는 예수의 말씀에 주목하면서, 황금률 윤리를 넘어선 새로운 윤리를 이야기 한다. 사실 황금율은 호혜성을 바탕으로 한 ‘주고받음’의 윤리이다. 그러나 예수는 이런 호혜적인 윤리는 죄인들도 다 하는 것(33절)이라고 말하며, 그것을 넘어선 윤리를 말한다. 곧, ‘원수를 사랑하라(35절)’고 가르친다. 리쾨르가 주목한 부분이 바로 이 부분이다. 그는 일대일의 상호관계에서 오는 ‘쌍방의 정의’가 아닌, 원수까지 사랑하라는 윤리적 명령을 보았던 것이다. 그리고 여기서 ‘선물’의 개념을 부각시켜 ‘선물경제(Gift economy)’를 소환시킨다.

선물경제는 재화를 선물로 나누어줌으로써 물질적 필요를 충족하는 경제를 뜻한다. 이는 개인 또는 일정한 집단들이 재화를 물물교환하거나 시장에서 가격이라는 메커니즘에 따라 상품을 거래하는 교환경제와 대비되는 개념으로, 포틀래치 경제(Potlatch economy)라고도 한다. 포틀래치란 미국 북서해안 지역의 인디언들이 각종 의식이나 행사를 치를 때 여는 잔치를 의미한다. 이때 잔치의 주관자는 손님들에게 모피나 동판, 통나무 배 등의 재물을 선물로 나누어주고, 이 선물을 받은 이들은 답례를 하는 풍습이 있는데, 포틀래치 경제라는 명칭은 이로부터 비롯된 것이다. 그러나 분화나 분업이 이루어지지 않은 단순사회에서 종종 발견되는 포틀래치 경제는 화폐와 상품 위주의 자본주의 시장경제가 시작된 후 사라졌으나, 현대의 기부활동이나 기업들이 이익의 일부를 사회로 환원하는 움직임은 포틀래치 경제의 전통을 이어받은 것이라 할 수 있다.

아무튼 선물경제는 귀중품을 거래하거나 판매하지 않는 교환 방식이지만, 즉각적인 또는 미래의 보상에 대한 명백한 합의 없이 제공된다. ‘되돌려주는 관계’가 아닌 ‘거저 주는 관계’이다. 이것은 우리의 일상에서 강조되는 ‘등가의 논리’가 아닌 ‘넘침의 논리’이다.

따라서 리쾨르는 황금률을 넘어선 윤리를 ‘초윤리’라고 부른다. 다름 아닌 ‘사랑의 윤리’이다. 그리고 이러한 사랑의 윤리에 기반하여, 리쾨르는 황금률을 재해석한다. 황금률은 호혜성을 바탕으로 한 단순한 ‘주고받음’의 관계로 이해되어서는 안 되고, 초윤리라는 사랑의 명령을 사회 속에서 구체적으로 실천하는 하나의 형식으로 이해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여기에 정의가 나타난다. 사랑의 명령을 실천하는 정의의 형식이 구체화 되거나, 정의의 형식이 구체화되는 가운데 사랑의 명령이 녹아들어있거나!

그렇게 되면, 호혜성을 바탕으로 한 주고받음의 관계를 넘어, 사회 속에서 사랑명령을 실천함으로 사회적 호혜성의 범위 안에 들어올 수 없는 사람들에게도 정의가 확대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늦었다. 미나는 죽었다! 따라서 영화 <악질경찰>은 우리에게 또 한 가지를 더 묻고 있다. 그것은 다음과 같이 요약된다.

“자, 총이 아닌 무엇으로, 세월호 이후를 기억해야 하는가?

최병학 목사(남부산용호교회)  hak-99@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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