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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개의 독립투쟁 사건예수, 빌라도 그리고 헤롯(눅 13:1-5)
조헌정 소장(그리스도교-주체사상 대화연구소) | 승인 2019.03.30 18:29

종교사학자 막스 베버는 ‘종교생활이란 카리스마와 일상성이라는 양극 사이에 존재하는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이 말은 자신의 한계를 넘어서려고 하는 창의적이고 역동적인 어떤 생명력과 규격화되어버린 일상적인 삶 사이에 종교생활이 놓여 있다는 말이다. 성숙한 신앙이란 이 둘 사이의 긴장관계 안에서 사는 것이지 이 둘 중 하나 중 어느 한쪽에 치우쳐 있는 것은 아니다.

카리스마와 일상성

많은 경우 신앙인들은 이 둘 사이의 긴장이 가져오는 불편함 때문에 이 둘 사이에 머물지 않고 어떤 한쪽을 선택하고 만다. 깊은 영적 체험을 찾기 위해 일상적 삶을 무시하거나, 아니면 반대로 종교생활이 너무 일상화되어버려 신앙의 감격을 잃어버리게 되는 것이다. 교회에 다녀오는 일과 동창회 모임에 다녀오는 일 사이에 별다른 차이를 갖지 못하는 것이다.

교회를 다닌다고 하지만, 삶의 모습에서 본다면 별다른 차이가 없는 사람들이 많다. 회사에서 함께 몇 년을 일한 후에 “아 그래 난 그 사람 교회 다니는 줄 몰랐어.” 이 경우는 익명의 신앙인과는 차이가 있다. 신앙인이라고 해서 반듯이 비신앙인과 구별이 되는 별난 행동을 해야 하는 것은 아니지만, 사랑을 베풀고 정의를 실천하는 삶의 모습에 있어 세상 사람과 차이가 없다면 그건 신앙이 너무 일상화되어 버렸기 때문이다.

이런 분들의 특징은 교회를 십 수 년을 다녀도 성서를 제대로 읽어내기 위해 별다른 노력을 하지 않는다. 간혹 성서를 읽기는 읽되 신문 기사를 읽듯이 읽고 만다. 예수님은 하느님 나라의 비밀을 찾는 기쁨을 밭에 묻힌 보화를 발견하고 이를 갖기 위해 자신의 가진 것을 다 파는 상인에 비유한다. 성서 안에 담긴 무궁무진한 보화들을 찾아내려면 지금까지의 자기의 앎과 맞바꾸려는 어떤 투쟁과 아픔이 있어야 하는 것이지 옛 자기를 그대로 유지한 채 거기에 덧붙여지는 치장이 되어서는 안 되는 것이다.

텍스트와 컨텍스트

누가복음의 저자 누가는 흔히 바울의 주치의 역할을 감당하면서 사도행전에 나오는 바울의 소아시아 선교에 동참했던 동역자 의사 누가라고 알려져 있지만, 필자는 여기에 동의하지 않는다. 누가는 자신의 복음을 기술하면서 이전까지 나온 예수에 관한 여러 글들을 다 조사한 후에 글을 쓰고 있다고 말함으로 자신의 글이 역사적으로 가장 신뢰할만한 글이라는 주장을 하고 있는데, 이 주장 또한 액면 그대로 받아들일 수는 없다. 게다가 누가는 자신의 복음서를 ‘데오빌라’라는 로마의 관료에게 헌정한다고 말하는데, ‘데오빌라’는 헬라어로 ‘하느님을 사랑하는 자’란 뜻으로 로마황제숭배를 거부하는 느낌을 주고 있어 실존 인물이라 보기가 힘들다. 누가는 여러 복음서 가운데서 역사 얘기를 가장 많이 하고 있지만, 그 역시 해석에서 자유롭지 못하고 있다.

▲ Mihály Munkácsy, “Christ before Pilate”(1881) ⓒGetty Image

신학에서는 성서 본문을 텍스트라고 말하고, 그 글을 둘러싸고 있는 역사적 정황을 컨텍스트라고 부른다. 그런데 성서 본문 곧 텍스트 안에도 역사적 사건으로서의 텍스트가 있고, 이에 부연 설명을 더한 예수나 복음서 저자 혹은 공동체의 해석인 컨텍스트가 함께 있다. 쉽게 설명하면 같은 사건이지만 복음서에 따라 그 강조하는 의미가 조금씩 다르게 기술되어 있는 이유이다. 여기서 저자가 속한 공동체의 입장이 반영이 되어 있으면 이를 양식사적 서술이라고 말하고, 저자 개인의 견해가 반영이 되었으면 이를 편집사적 서술이라고 말한다.

오늘의 본문은 매우 독특하다. 두 개의 서로 다른 역사적 사건이 나온다. 하나는 빌라도가 갈릴리 사람들의 피를 제물에 섞은 사건이고, 다른 하나는 실로암의 망대가 무너져 열여덟 사람이 치어 죽은 사건이다. 그런데 이 두 사건은 당시의 유대 역사를 기록한 역사학자 요세푸스의 책에서도 나오지 않는 독립된 얘기이다. 다른 복음서나 문헌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이야기이다.

그런데 이 두 개의 서로 다른 사건이 오늘 본문에서는 하나의 세트가 되어 하나의 해석의 빛 안에서 같은 사건으로 분류가 되고 있다. 그건 예수께서 말씀하신바 “너희도 만일 회개하지 아니하면 다 이와 같이 망하리라.”는 회개와 심판의 경고이다. 왜 이 두 사건이 제자들을 향한 회개와 연계되는 이유는 무엇인지 그리고 그것은 정당한지를 구체적으로 살펴보자.

성전에서의 빌라도의 학살

첫 번째 사건은 빌라도에 의해 희생된 사람들의 피가 희생제물에 섞였다는 매우 독특한 배경을 말한다. 빌라도는 왜 희생 제사를 드리던 성전 안에까지 들어가서 갈릴리 사람들을 죽였을까? 지금도 그러하지만, 군인들이 성전 안에 들어가 살상을 하는 경우는 폭도들을 제압하는 최후의 방식이다. 요세푸스의 기록에 의하면 이 얘기는 없지만, 갈릴리 지방에서 열두 번도 넘게 폭동이 일어났음을 언급하고 있다. 그중 가장 유명한 사건은 예수와 동시대 인물이었던 의 드다와 갈릴리 유다의 경우이다. 사도행전 5장에 그들의 이름이 나온다.

특히 유다는 무리를 이끌고 예루살렘까지 와서 세금거부투쟁을 일으켰는데, 이 투쟁은 후에 무장투쟁으로 로마제국을 물리치는 것을 목표로 하는 젤롯당의 출발이 되었다. 오늘 누가복음에 나오는 갈릴리 사람들이 젤롯당과 어떤 관련이 있는지는 모르지만, 희생제사를 드리는 가운데 총독 빌라도에 의해 처형당한 갈릴리 사람들이란 바로 그런 그러한 독립투쟁과 관련이 있음이 분명하다. 저들은 성내에서 무장 폭동을 일으키다 로마군대에 쫓겨 성전 뜰 안으로 들어갔고, 끝내는 제사장들이 사용했던 희생제물 속으로 피를 흘리며 쓰러지고 말았던 것이다.

두 번째 사건은 실로암의 망대가 무너지면서 열여덟 사람이 죽은 사건이다. 이는 사고사가 아니다. 왜냐하면 예수께서는 첫 번째 사건과 연계해서 죽임을 당한 사람들을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예루살렘 성은 높은 지역에 위치에 있기에 두꺼운 암벽을 뚫어 성 밖에서부터 안으로 물이 흘러 들어오도록 설계가 되어 있었는데, 실로암은 바로 예루살렘 주민들의 식수 근원지였다. 그러니까 실로암 망대는 이 식수원을 지키기 위한 망대였다.

로마의 지배에 저항하여 폭동을 일으키는 사람들에게 있어 가장 중요한 일은 식량과 물을 확보하는 일이다. 따라서 실로암 망대가 무너졌다는 것은 민중 폭동으로 인한 것이라고 단정할 수 있다. 사실 두 번째 사건 또한 첫 번째 사건과 마찬가지로 예루살렘 성 안에서 일어난 폭동으로 인하여 로마군에 의해 살해당한 죽음이기에 어쩌면 첫 번째 사건과 두 번째 사건은 같은 폭동으로 인한 두 개의 죽음일수도 있다.

학살당한 자들은 누구였을까?

이를 뒷받침하는 헬라어 단어가 있다. 본문에는 모두 ‘사람’으로 번역이 되었지만, 헬라어성서에서는 각기 구별이 되어 있다. 우선 2절에 “너희는 이 갈릴리 ‘사람’들이 이같이 해 받으므로 다른 모든 갈릴리 ‘사람’보다 죄가 더 있는 줄 아느냐” 사람이 두 번 나오는데, 첫 번 갈릴리 사람은 그냥 사람들이 아닌 ‘죄인들’(hamartolo)이라는 단어이다. 정확히 번역하면 ‘갈릴리 죄인들’이다.

또 4절에는 실로암 망대에 깔려 죽은 ‘사람’과 예루살렘에 사는 다른 모든 ‘사람’을 비교하고 있는데, 여기서도 예루살렘에 사는 사람들은 사람의 보통명사인 ‘anthropous’로 말하는데 반해, 망대에 깔려 죽은 사람들은 ‘pheileitai’라는 단어로 이는 ‘빚진 자’를 말한다. 사실 헬라어 원문의 단어를 정확히 번역하면 성서 본문의 의미는 보다 명확해진다. 난 도대체 한글성서 번역자들이 이렇게 중요한 헬라어 단어를 왜 못보고 엉뚱하게 번역하는지 이해하지를 못한다.

빚에 몰린 사람들이 왜 실로암 망대에 깔려 죽게 되는 것인가? 앞에서 갈릴리 유다라는 사람이 세금납부를 거부하는 민중 폭동을 일으켰다고 했는데, 바로 이 경우에 딱 들어맞는다. 갈릴리에 왜 그렇게 자주 폭동이 일어났는가? 그건 대체로 세금 때문이다. 갈릴리의 대부분의 소작인들은 우선 예루살렘에 사는 땅주인에게 마름세로 30% 이상을 빼앗기고, 그리고 로마정부에 20%를 내고, 성전세로 10%를 내었다.

그러다 보면 소작인들은 일 년 내내 죽도록 고생을 해서 수확을 얻어도 30%정도만을 자기 것으로 할 수 있었다. 그러다 보면 빚이 계속 늘어날 수밖에 없었고, 결국에는 도망을 하여 떠돌이 생활을 하거나(5천명 급식기적 이야기의 배경), 아니면 최후에는 강도나 폭도로 변할 수밖에 없게 되었다. 마치 오늘날 도시 자영업자들이 높은 월세를 견디지 못해 폐업을 하거나 아니면 쫓겨나는 경우와 같고, 막다른 골목에 다다른 해고노동자들이 굴뚝 위로 올라가 농성을 하는 것과 같다고 하겠다. 예나 지금이나 감옥살이를 하는 대부분의 죄인들은 가난이 그 원인이다.

그런데 이런 빚에 관련한 갈릴리 소작인들의 폭동이 로마식민지 시대에 일어난다면 이는 단순한 경제 폭동이 아닌 정치독립투쟁의 성격을 갖게 된다. 일제강점기시대에도 소작쟁의가 많았다. 1925년 2월 22일자 동아일보의 한 기사를 보면 이런 대목이 나온다.

“지주에 대한 소작인의 불평과 불만은 가는 곳마다 없는 곳이 없다. … 이전에는 지세도 지주 측에서 부담할 뿐만 아니라 소출을 반반씩 나누어 주는 반분작을 마다하고 도조로 주기를 희망할 만큼 후했는데, 지금에 와서는 오히려 그 반분작을 바랄 수도 없다고 한다. 너야 굶어 죽든 말든 내 배만 부르면 그만이라는 셈으로, 한번 매겨 놓은 토지는 수확이 좋든 나쁘든 조금도 감해 주지 않고 그대로 받아가는데, 작년 같은 흉년에도 불벼락 같이 받아갈 것을 받아가고야 말았다. 원성의 표적이 되는 것은 대부분 일본인 지주들이다. 예전에는 비교적 후하다고 하던 조선인 지주들도 불과 몇 해 동안 돌변하여 소작인에게 가혹한 태도를 취하게 된 것도 일본인 지주가 생긴 후부터라고 한다.”

그래 결국 오늘날 상업은행에 해당하는 동양척식주식회사에 폭탄을 투여하는 것이 농민투쟁이 아닌 독립투쟁으로 인식되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폭력에 대한 다른 해석들

그런데 문제는 지금부터이다. 분명히 갈릴리 소작인 투쟁으로 시작한 일종의 독립투쟁을 예수께서는 이를 회개에 첨부하여 이를 부정적으로 평가하였는가 하는 질문이다. 이 두 사건은 모두 독립투쟁과 관련된 항쟁인데, 예수는 이들의 죽음을 언급하며 제자들 또한 회개하지 않으면 이처럼 죽임을 당하게 될 것이라고 말하는 것은 독립투쟁에 참여하지 말라는 얘기로 해석이 된다. 일제강점기 시대 독립투쟁하지 마라 잘못하면 일본군에 의해 죽임을 당한다. 이렇게 얘기하는 것이 과연 타당한가? 외국군대가 쳐들어와 가족을 죽이고 여성들을 겁탈하고 재물을 약탈하는 과정을 바라보면서 가만히 있으라는 말인가?

요즘 여수의 고만호 목사라는 분이 광주518항쟁을 폭력집단의 소행이라고 설교 시간에 말해 사회 문제가 되었다. 자신이 거리에 서 있다가 공수부대원들이 마구 휘두르는 곤봉에 맞아 머리가 터지거나 헬기가 쏜 기관총탄에 가족이 죽었을 때에도 이렇게 주장할 것인가? 요즘 518 광주민주화투쟁에 새롭게 알려진 부분이 있는데, 많은 시신들이 화장당했다는 사실이다. 공식적인 사망자는 186명이고 신고 된 행불자는 수십 명인데 여기에는 신고되지 않는 경우는 빠져 있다.

그런데 당시 거리에서 끝까지 투쟁한 사람들 가운데는 상당수가 연고가 없는 고아 출신들과 구두닦이 신문팔이와 같이 밑바닥 생활을 하던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새로운 세상이 임할 것이라고 여겨 보다 적극적으로 항쟁에 참여를 하다 살해를 당했다. 그래서 목격자들의 얘기를 종합하면 적어도 수백 명 이상의 희생자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통계에는 잡히지를 않는 것이다.

당시 미국 언론에서는 2천명의 사망자가 있었다고 보도를 하였고, 한해가 지나 어느 광주 구청 직원은 역학 조사를 통해 광주 시민이 약 2천명이 줄었다고 얘기를 해서 언론에 보도된 적도 있다. 이후 이 직원이 해고를 당했다는 소식을 듣긴 들었는데, 어떤 어려움을 겪었는지는 모른다. 살아 있다면 요즘 공개석상에 나올 만도 한데 말이다.

폭력 행위에 대해 본회퍼 목사는 이런 얘기를 한다. 어느 미친 운전수가 버스를 몰고 인도로 뛰어들어 사람을 죽일 때에 기독교인들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이 미친 운전수를 끌어내려야 하는 일이다. 우리가 이 끌어내리는 행동을 운전수의 뜻에 반한 행동이라고 해서 폭력이라고 규정할 수는 없다. 불의한 세력이 저지르는 폭력을 저지하기 위한 행위는 폭력이 될 수 없다. 이는 일종의 정당방위(正當防衛)이며, 역사의 정의를 바로 세우는 의로운 행동이다.

역사와 해석

이제 우리는 두 개의 독립투쟁 사건이 회개와 연계된 오늘의 본문을 새롭게 해석해야 하는 과제에 봉착했다. 이를 해결하는 첫 번째 물음은 사건에 연계된 회개 촉구의 말씀이 과연 예수께서 직접 말씀하신 것인지 아니면 저자 누가의 해석인지를 분별하는 일이다. 우리는 예수께서 말씀하셨다고 하는 부분을 모두 예수 얘기로 받아들이지만, 학자들은 여기에 동의하지 않는다.

예를 들면 마태복음의 산상수훈(5:1-12)과 누가복음의 평지수훈(6:20-26)은 내용상 일치한다. 차이가 있는데, 누가복음은 마태복음의 축복 말씀의 절반만 나오고 대신 ‘화 있을진저’의 저주 말씀이 이어져 나온다. 누가 예수의 말씀에 보다 가깝게 전하고 있는 것일까? 보다 짧은 형태로 되어 있는 누가복음이다.

이런 예를 들자면 너무나 많다. 복음서에는 예수께서 말씀하시지 않았더라도 직접 말씀하신 것처럼 만든 부분이 있다는 사실이다. 이를 신학 용어로 직접 하신 말씀은 라틴어로 “ipsissima verba Jesu,” 예수 입에 옮긴 말씀은 “ipsissima vox Jesu”라고 한다. 상식적으로 판단하더라도 복음서의 말씀들은 처음에는 구전으로 전해지다가 약 4, 50년이 경과한 후에 문자로 기록이 되었다. 그 과정에서 실수든 의도적이든 어떤 변화가 있었으리라고 하는 것은 쉽게 추정할 수 있다. 처음에는 관련이 없던 말씀들이 서로 연결되는 일도 생긴다.

예수 생애와 복음서 기록 사이의 경과 시간도 문제가 되지만, 더 큰 문제는 상황이다. 복음서는 6년간에 걸친 유대인들의 독립전쟁으로 예루살렘이 완전히 초토화된 후였다. 예루살렘 성의 멸망을 보고 복음서 저자들은 모세 율법의 시대가 끝나고 새로운 복음의 시대가 임했다고 본 것이다.

그런데 여기에 복음서를 기술함에 있어 매우 중요한 지침이 하나 있는데, 그건 예수를 결코 반 로마적인 사람으로 묘사를 하지 않아야 한다는 점이다. 만약 예수가 로마에 적대적인 사람으로 인식이 되면 로마 당국은 복음서를 볼온문서로 취급을 하고 예수 운동을 즉각 저지할 것이기 때문이다. 더구나 예수는 반로마 투쟁을 벌였던 게릴라들을 처형했던 십자가형을 받았다. 누가 보아도 예수는 위험인물이다.

따라서 복음서 저자들은 예수의 십자가 처형을 정치적인 이유가 아닌 예루살렘의 유대지도자들과의 마찰로 인한 종교적인 이유로 묘사를 해야 했으며 친 로마적인 발언도 많이 했다. 예수에게 종의 병 치유를 부탁한 로마 백부장의 믿음은 유대인들 가운데서는 찾아보기 힘든 믿음으로, 십자가 처형장에서 “진실로 예수는 하느님의 아들이었다”는 고백을 하는 사람 또한 로마 백부장이었다. 실제 역사에서 빌라도 총독은 매우 잔인한 인물이었지만, 복음서에서 빌라도는 예수에게서 죄를 발견하지 못한 의인으로 나아가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으로 결국은 예수 죽음과는 전연 책임이 없는 사람으로 나온다. 사도신경의 ‘예수께서는 빌라도에 의해서 죽임을 당하사’의 고백과는 전연 다르다.

네 개 복음서 중에서 가장 친 로마적인 복음서가 누가복음이다. 누가는 아예 처음부터 데오빌로라는 로마정부의 관리에게 자신의 복음서를 보고하는 형식으로 시작하고 있다. 데오빌로라는 말은 하느님을 사랑하는 사람이라는 뜻인데, 이는 황제숭배를 거부하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어 실제 인물이라 보기가 어렵다. 누가는 이방 선교를 주목적으로 하고 있었기에 로마 제국의 통치를 인정하고 이 체재 안에서 예수 복음을 전파하는데 관심을 갖고 있었던 인물이다. 어쩌면 유다의 독립을 원하지 않았을 가능성이 농후하다.

따라서 오늘 본문에서 갈릴리 민중들의 저항 투쟁 사건을 위험한 일로 여기고 회개에 연계시키는 일은 누가에게 있어서는 매우 자연스러운 일이었을 수 있다. 그런데 이후에 나오는 얘기와는 모순이 된다. 몇 명의 바리새인들이 예수께 다가와 ‘헤롯이 당신을 죽이려고 하니 이 자리를 피하라.’고 말한다.(31절 이하) 그러자 예수께서는 헤롯을 여우로 비유하면서 ‘예언자가 어찌 예루살렘 아닌 곳에서야 죽을 수 있겠느냐’고 단호하게 거절한다. 헤롯은 로마 황제가 임명한 유대 분봉왕이다. 지금 누가는 자가당착의 모순을 드러내고 있는데, 그건 예수는 로마의 통치는 반대하지 않지만, 로마의 앞잡이인 헤롯의 지배는 반대한다는 얘기이다.

결론을 맺자. 여기 갈릴리 민중들이 독립투쟁을 하다 희생을 당했다. 그러자 예수께서는 그들의 죽음을 언급하면서 너희들도 ‘회개하지 않으면 그렇게 될 것이다’라고 경고한다. 이를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첫 번째 이 첨언(添言)은 누가의 자의적인 해석(ipsissima vox Jesu)으로 이해한다. 두 번째 예수는 이 땅에 하느님 나라를 건설하기 위해 오셨고, 그 방식으로 ‘세상에 화평을 주러 온 것이 아니라 불(분쟁)을 던지러 왔다’(12장 51절)는 본문 앞 절 말씀의 빛에 따라 보다 적극적인 해석을 하는 것이다. 곧 불의에 저항하는 투쟁에 휩싸이지 말고 주어진 현실에 맞춰 살라는 해석이 아닌, 성전 내에서의 빌라도의 갈릴리사람들의 학살과 빚에 쪼들려 막다른 골목에 다다른 갈릴리 사람들의 저항에 대해 무심(無心)하였음을 회개하라는 뜻으로 말이다.

조헌정 소장(그리스도교-주체사상 대화연구소)  choshalom@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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