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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옥에서 요가로 몸을 단련하다몸과 마음이 전진했던 수형생활
김정택 목사 | 승인 2019.04.06 18:47

우리 공범들은 형이 확정되기 전까지는 서울구치소에서 정치범이라서 각자 독방생활을 했다. 구치소에 처음 입소할 때부터 나는 감옥생활의 목표를 분명히 세웠다. 무엇보다 건강이 제1의 목표였다. 언젠가는 석방되어 자유의 몸이 될텐데 건강해야 다시 왕성하게 활동할 수 있을거라는 생각이었다.

2보 전진을 위한 1보 후퇴

감신대에서 요가학회를 설치해서 용상이한테 1달간 요가를 배운 것이 자연스럽게 나를 요가로 인도하였다. 작은 독방안에서는 요가가 딱 알맞는 수련법이기도 했다. 당시는 한국말로 된 요가책이 없어서 면회 오는 동생에게 용상이를 만나서 일본어 교본과 일본어 요가책을 소개받으라고 하였다. 일본어를 공부하면서 해석도 그야말로 정확하게 하지않으면 안 되었다. 조금만 틀리게 해석해도 몸에 해가 될 수 있는 포즈를 취하게 되기 때문이다.

하루는 거꾸로 물구나무서기를 하고 있는데 교도관이 보고서는 문을 두드리며 그만두라는 것이다. 나는 어차피 구치소에서 내가 할 것을 하고 지내려면 한번은 대차게 부딪쳐야 한다고 경험적으로 터득한 지혜가 있어 그냥 물구나무서기를 지속했다.

그랬더니 교도관이 문을 따고 들어왔다. 긴장되었다. 어떻게 할까? 그만 두어야 할까? 그냥 버텨야 할까? 순간적인 판단이 요구되었다.

애라, 버티자. 죽기아니면 까무러치기다. 교도관은 한참 서서 보더니 그냥 나갔다. 교도관도 순간적으로 많은 생각을 했을 것이다. 어찌됐든 이겨냈다. 이런 한번의 경험은 나에게 이후에도 자신감을 심어 주었다.

난데없이 시작된 단식투쟁

나의 독방은 2층이었는데 이동철 형이 무슨 죄목으로구속되었는지는 모르지만 1층 잡범방에 들어왔다. 형이 1층 복도를 지나다가 나와 눈이 마주쳤다. 동철이 형은 빈민파트 모임에서 허병섭 선배와 함께 만나 친한 형님, 동생하는 사이가 되어 있었다. 정말 반가웠다.

▲ 눈이 내린 목포교도소 전경 ⓒ목포교도소 페이스북

그런데 며칠인가 지났을까? 동철이 형이 대여섯명의 교도관들에게 끌려가고 있었다. 깡패였다가 병섭이 형의 인격에 반하여 동월교회 다니다가 예수를 만나 빈민지도자로 거듭난 사람이라
나름대로 성깔은 남아 있었을테고 무엇때문인지는 몰라도 교도관과 한판 대차게 부닥쳤음이 틀림없다.

동철이형이 소리를 고래고래 질렀다.

“정택아! 이 새끼들이 나를 벌방으로 끌고가고 있어. 개새끼들이!”

내가 어떤 식으로든 동조를 해야 할 것 같았다. 나는 내가 자신있는 단식을 택했다. 요가에는 식이요법도 있고 식이요법에는 단식도 있었기에 어느정도 단식에 대한 이해가 있어서 단식을 쉽게 생각했는지도 모른다.

지금은 단식에 대한 이해도가 높아져서 30일정도의 투쟁단식도 잘 통하지 않지만 그 당시는 단식을 잘 접할 수 없었던 때이고 굶는다면 죽을 수도 있다고들 생각했다. 3일 정도 지나니까 교도관이 와서 벌방에서 이동철 씨를 뺐으니 단식을 풀라고 한다.

나는 그래도 버텼다. 내가 동철이 형을 대면해서 벌방에서 풀려났으니 단식을 풀라고 하기 전까지는 풀 수 없다고 단호하게 얘기했다. 몇 시간인가 지나자 1층 복도에서 동철이 형이 내가 풀려났으니 단식을 풀어라고 한다. 그제서야 단식을 끝냈다.

술이 그리웠던 건 카라마조프 형제 때문

하루는 내가 편지쓸 차례가 되어 복도에 나가 편지를 쓰고 있었다. 창밖에는 함박눈이 내리고 있었고. 제일 가까운 독방에 있던 연세대 김영환이가 “선배님! 지금 석방되면 제일먼저 무얼 하고 싶으십니까?” 한다.

나는 “지금 나가면 술이나 진탕 마시고 싶다.”고 했다. 영환이의 얼굴 표정을 보니까 벙찐 인상이었다. 자기가 짐작하던 답변이 아닌 모양이었다. 아마 함박눈도 내리고 있고 애인과 함께 거닐고
싶다는 대답이 당연히 나올 거라고 생각했었던 것같다.

내가 술을 마시고 싶다고 대답한 것은 그냥 튀어나온 말은 아니었다. 마침 이 때 나는 도스트예프스키 작품에 심취해 있었고 특히 카라마죠프의 형제들에 빠져 있었다. 카라마죠프의 형제들에는 해방과 술을 연결시키는 대목이 있다. 바로 그런 배경속에서 석방되면, 해방되면 정말로 술을 진탕 마시고 싶었던 것이다.

어쨌든 2보 전진했다

나는 1심 재판에서는 2년 징역 선고를 받았는데 2심에서는 6개월이 깎여 1년6개월형이 확정되었다. 확정되자 곧바로 목포교도소로 이송되었다.

목포교도소에 가보니 정치범으로는 장영달 씨가 터줏대감이 되어 있었고 백계문도 와 있었다. 목포교도소 교도관들은 정치범들에 대해서 아주 친절하였다. 그들도 민주세상을 갈망하는 것같았다.

장영달은 특별한 관리대상인 요주의 인물이라서 그런지 운동까지는 같이 시켜주지 않았지만 계문이는 같이 운동을 시켜주었다. 감옥이 인연이 되어 내가 인천도시산업선교회 실무자로 있을 때 인천에서 공장생활 하러 나를 찾아왔다.

나는 하루에 2시간은 하루도 거르지 않고 요가훈련을 했다. 요가체조가 어느정도 경지에 이르자 나의 몸은 유연성과 강건성이 극치에 달했다.

1년6개월을 꼬박 살고 1978년 12월엔가 만기로 석방되었다. 교도소를 나가자 와! 소리지르는 감리교, EYC후배들이 보였다. 목포에서 서울까지 기차로 가면서 나는 술을 정말 많이 신나게 마셨다.  카라마죠프 형제들의  술과 해방을 연결시키는 대목이 현실이 되는 순간이었다.

그런데 이게 도대체 무슨 요술인가? 아무리 술을 마셔도 세포를 통해 술기운이 밖으로 배출되는 것이 느껴졌다. 취하지가 않고 정신은 더욱  맑아지는 것이다. 아! 1년6개월 동안 꼬박 하루에 2시간씩 요가를 한 내 몸이 그야말로 얼만큼 단련됐는지가 드러나고 있었다.

김정택 목사  kjt9425@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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