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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함은 선하려 하지 않는다.”살며 묵상하며
하태혁 목사(단해감리교회) | 승인 2019.04.10 17:32

“너희가 선한 일을 하려고 할 때에 그것이 연극이 되지 않도록 특히 조심하여라. 그것이 멋진 연극이 될 수 있을지는 몰라도, 너희를 지으신 하나님은 박수를 보내지 않으실 것이다. 남을 위해 무슨 일을 할 때에는 너희 자신이 주목받지 않도록 하여라. … 사랑으로 너희를 잉태하신 너희 하나님도 무대 뒤에서 일하시고, 너희를 은밀히 도와주신다.”(마태복음 6:1~4/메시지성경)

“너희는 남에게 보이려고 의로운 일을 사람들 앞에서 하지 않도록 조심하여라. 그렇지 않으면, 너희는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에게서 상을 받지 못한다. … 너는 자선을 베풀 때에는, 오른손이 하는 일을 왼손이 모르게 하여, 네 자선 행위를 숨겨두어라. 그리하면, 남모르게 숨어서 보시는 네 아버지께서 너에게 갚아 주실 것이다.”(마태복음 6:1~4/새번역)

연극이 끝나 객석이 텅 비고 무대에 홀로 남겨진 순간을 그려봅니다. 연극이나 합창 같은 공연이 다 끝나고 무대에 혼자 남아보면 이유 모를 허전함이 차오릅니다. 처음에는 그 이유를 잘 몰랐습니다. 세월이 흐르며 비슷한 감정을 가끔 느꼈습니다.

그런 감정이 반복되던 어느 날 그 이유를 조금은 이해할 듯했습니다. 그 허무의 이유를. 뭔가를 열심히 추구해서 원하던 성취를 이뤄도 허무할 때, 이 모든 순간들의 공통점이 있습니다. 그 일 자체에 몰입하기보다 그 일을 통해 다른 무엇인가를 추구했던 것입니다.

무대에서 어떤 인생을 살아도, 그 인생 자체가 아니라 관객의 인정을 구하기 쉽습니다. 목표를 향해 달려갈 때도 그 목표 자체가 아니라 사람들의 인정과 부러움을 쫓을 수 있습니다. 그러면 인정을 얻고, 칭송과 부러움을 얻어내도, 결국 남는 것은 허무함입니다.

▲ 우리 모두는 연극 무대위의 배우일지도 모른다. ⓒGetty Image

왜일까? 인정도, 칭송도, 부러움도 바람처럼 사라지고 맙니다. 누구에게도 보여주지 못한, 있는 그대로의 자신만 홀로 남겨집니다. 인정받고 칭송받는 나는 연기이거나 역할일 뿐입니다. 타인들이 기대하고 욕망한 기준에 애써 맞춘 가면일 뿐입니다. 그래서 가면 안쪽의 자신은 여전히 외롭고 허전할 뿐입니다.

선한 일을 할 때도, 거룩하고 경건한 일을 할 때라고 다르겠습니까. 선한 일 그 자체를, 거룩하고 경건한 삶 자체를 사랑할 때, 결과와 상관없이 이미 충분합니다. 남들이 알아주느냐와 크게 상관이 없습니다. 보여주려고, 인정을 받으려고 한 일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특히나 하나님을 만나는 일, 기도하고 예배하는 일은 더욱 그렇습니다. 잘 보여서 인정받고 그것을 통해 무엇인가를 얻어내려는 관계, 그것은 늘 무겁고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습니다. 눈치를 보고 은밀히 조종해서 통제하려고 긴장합니다.

상대를 도구 삼아 무엇인가를 얻어내려 하니 힘겨울 수밖에 없습니다. 상대를 통한 그 무엇이 아니라, 상대를 원할 때, 자유로울 수 있습니다. 상대가 원하는 내 모습이 아니라 나로 충분할 때 행복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도 우리를 그렇게 만나고 싶어 하십니다.

인정받기 위해 만날 필요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대로를 인정해주시고 사랑해주셨기 때문에 만날 수 있습니다. 가면을 벗고 자신 그대로가 될 수 있습니다. 그렇게 주님을 만나면, 인정받기 위해 살아가는 삶에서 구원받습니다. 이미 인정받은 존재를 누릴 수 있습니다. 사랑 받기 위해 사랑할 때 사랑일 수 없습니다. 사람은 받은 사랑으로 사랑하게 될 뿐입니다. 단지 사랑스러워서 사랑할 뿐입니다. 

현란해도 감동이 없는 노래가 있습니다. 멋진 노래를 전시하고픈 욕망이 베어나기 때문입니다. 선하려는 사람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선한 사람은 선을 행하려 하지 않습니다. 선해지려는 게 아니라 상대의 아픔이 제 아픔이 된 것일 뿐입니다. 선행을 시전(始展)하려는 것이 아니라 다만 그 아픔을 덜어주고 싶을 뿐입니다. 선을 행하려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아파서, 혹은 자신이 기뻐서 행할 뿐입니다.

주님께서도 왜 자신을 선하다고 하냐고 반문하셨죠. 선을 행한다는 의식 자체가 없으면, 오른손이든, 왼손이던 모를 수밖에 없습니다. 물론 가면을 벗고 살아가기는 어렵습니다. 다만 자기 가면에 속지 말아야 합니다. 사람들이 인정해주는 가면에 끌려가지 말아야 합니다. 사랑해서 기꺼이 어떤 역할을 감당해야지, 사랑 받으려고 거짓 역할에 끌려 다니기엔 삶이 너무 짧습니다.

하태혁 목사(단해감리교회)  devi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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