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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앞 한국교회, 예수 믿는 집단이 아니었다감리교 박인환 목사가 세월호 사건에서 깨달은 것
권이민수 | 승인 2019.04.13 18:24

2014년 4월 16일 아침, 진도 앞바다에서 한 여객선이 침몰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아침부터 한국의 공중파 방송은 침몰은 했지만 승객 전원이 무사히 구조되었다는 소식을 내보내고 있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이 소식은 오보라는 것이 밝혀지고 있었고 그 당시 정부의 무능력한 대처에 전국민은 비탄과 분노에 휩싸이게 되었다. 이 비탄과 분노는 한국이라는 공간과 시간을 함께 공유하는 사람들에게 씻을 수 없는 트라우마로 남게 되었다.

이른바 “세월호 침몰 사건”이었다. 이제 며칠 후면 그 세월호 사건이 발생한지 5주기 된다.

그렇게 5년의 시간이 흐르는 동안, 세월호 유가족들이 외쳐온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의 길은 여전히 멀기만 하다. 또한 지난 5년의 시간은 “잊지않겠습니다. 행동하겠습니다.”라고 외쳤던 이들의 다짐을 망각으로 돌리기에 충분한 시간이었다.

그러나 그 시간동안에도 계속하여 세월호를 기억하며 세월호 유가족들과 연대하는 목회자들이 있었다. 세월호 5주기를 맞아 목회자들을 만나 그간의 이야기와 생각들을 들어보고자 한다.

먼저 기독교대한감리회(감독회장 전명구 목사) 목회자이자 세월호 희생자 유예은 양이 생전에 출석했던 안산 화정감리교회 담임목사인 박인환 목사를 찾아갔다. 박인환 목사님가 담임하고 있는 화정감리교회 교육관 1층에서 만날 수 있었다.

목사로서의 도리였다

▲ 목사님 먼저 자기소개를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저는 감리교신학대학교(총장 직무대행 오성주 교수) 75학번이고 안산 최초의 교회로써 115년된 화정교회의 담임목사 박인환입니다.

▲ 화정감리교회 박인환 목사는 세월호 사건이 발생하고 유가족들과 함께 해 왔다. 세월호 사건을 통해 한국교회의 모습을 새롭게 인식하게 되었다고 한다. ⓒ권이민수

▲ 세월호 유가족과 함께하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요?

일단은 저희 교회는 세월호 희생자인 예은이가 있는 교회입니다. 물론 예은이가 아니었어도 안산의 목사로서 도리를 다하기 위해 세월호와 함께하지 않았을까 싶지만 정직하게 돌아볼 때 예은이가 있었다는 사실이 크게 작용하지 않았나 싶습니다.

처음엔 갈피를 잡기가 어려웠습니다. 바로 며칠 전에 인사도 하고 했는데 단 며칠 만에 희생을 당했으니 너무 황망한 마음  뿐이었습니다.

그러나 가족들이 아이를 잊지 못해 상처를 안고 있고, 이 죽음이 너무 억울한 죽음이기에 진상규명에 보탬이 되어 그 억울함을 풀어줘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이게 인간적 도리, 담임 목사로서의 도리가 아닐까요?

세월호가 가르쳐 준 신앙

▲ 목사님에게 있어서 세월호 이전과 이후는 어떻게 다른가요?

그저 막연했던 것이 구체화 되었습니다. 본회퍼가 말했듯이 ‘세상을 위해 존재하는 교회’ 이런 생각을 기본적으로 가지고는 있었으나 막연하기만 했습니다. 사회 속에 터를 박고 있는 교회가 피안의 세계, 영적 세계만 이야기하면서 이원론에 빠지면 안된다고 생각해왔습니다.

그런데 세월호가 터지고 유명한 교회의 목사들과 교회들이 이에 반하는 것을 보고 너무 놀랐습니다. 이런 모습은 기독교 신앙이 아니다. 저는 그래도 한국교회가 예수 믿는 집단인줄 알았는데 한국 교회는 예수 믿는 집단이 아니었다는 걸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본인부터 돌아보게 되었습니다. ‘내가 예수의 복음을 제대로 전하고 있었나? 너무 막연하게만 사회적 복음을 이야기했었던 것은 아닌가? 적어도 한국 주류의 교회는 예수 믿는 집단이 아니었구나.’ 싶었던 거죠. 지금도 이 생각은 변함이 없습니다.

세월호 배지나 서명 등 세월호를 위해 무엇이든 해야 하는데 많은 목사들이 교회 장로들 눈치 보고, 교인들 눈치 보느라 아무것도 못하고 있습니다. 큰 교회는 대부분 접근도 못하고 그나마 작은 교회만 현장에 옵니다. 교회가 기득권화 된거죠.

가톨릭의 프란치스코 교황이 염수정 추기경에게 “고통 앞에 중립은 없다.”고 했다는데 제 생각엔 그건 절반만 맞은 겁니다. 그냥 예수님에게 중립이 없었어요. 예수님은 언제나 편파적이었습니다. 약한 자, 고난당하는 자들을 편드셨죠. 약자와 강자 사이에서 균형추 잡으려고 조차 안했습니다. 그러니 기독교는 편파적입니다. 약한 자 슬퍼하는 자에게 마음이 가야합니다.

그런데 세월호를 대하는 태도를 보니깐 자본가들과 당시 집권 여당 편만 드는 교회들뿐이고, 예수 정신과 상관없는, 거리가 있는 교회들 뿐이예요. 그래서 예수를 제대로 못 믿고 있구나 생각하게 된거죠. 어렴풋하게 문제의식을 가졌던 게 너무나 마음에 와 닿게 되면서 ‘어떻게 하나? 한국교회가, 교회의 주류집단이 예수와 상관없구나’ 하고 고민하게 되었습니다.

우리 화정교회가 큰 교회는 아니지만 우리는 제대로 믿고 예수를 제대로 고백하는 교회가 되어야겠다고 다짐하게 되었습니다.

같이 있고, 같이 울어줬어야 했는데

▲ 목사님이 활동하는데 있어서 화정교회는 어떤 반응을 보이나요? 그리고 교회 내 유가족에 대해 어떻게 반응하고 있나요?

이곳의 교회 토박이들은 오랫동안 이승만, 박정희, 전두환, 노태우로 이어지는 보수적 정치의 색이 짙었습니다. 그래서 세월호가 터진 수요일 날 팽목항에 못 내려갔습니다. 그날이 수요예배였거든요. ‘목사는 나뿐인데 어떻게 하나? 교인들이 왜 교회 안지키나?’ 할까 싶어 태평스레 생각 한거죠.

▲ 유서 깊고 오랜 전통을 가진 화정감리교회였지만 세월호 사건 앞에서 무기력함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는 박인환 목사. 그러나 지금은 세월호 가족들과 함께 할 수 있어서 다행이라고 했다. ⓒ권이민수

그에 반해 그 때 다른 목사들은 팽목항에 내려가서 같이 울고 그랬습니다. 하지만 나는 못하고 다음날 잠깐 내려갔다 왔습니다. 여기 세월호 피해 학생들이 있는 교회가 37개 교회이고 피해 학생은 76명입니다. 그 중 두 교회는 당사자니까 나머지 35개 교회가 피해 학생이 있는 교회죠.

그런데 지금까지 세월호 관련 행사에 와서 함께 하는 교회가 별로 없습니다. 초기에 장례를 치르는 것으로 임무를 다한 것이라 생각하는 것은 아닌가 싶어 속이 상합니다.

본회퍼가 히틀러를 시장 바닥에서 큰 트럭을 몰고 다니는 미치광이에 비유했었죠. “미치광이가 정신없이 차를 몰고 사람들을 치어 죽이면 목사는 뒤따라가면서 죽은 사람들 장례를 치르는 것이 목사일인가 아니면 미치광이에게 뛰어들어서 운전대에서 끌어내리는 것이 목사일인가” 이런 질문을 던지고 그는 히틀러 암살에 가담했었잖아요.

이 이야기가 꼭 들어맞는 것은 아닐지라도 같이 울어주고 장례를 치르고 임무를 다했다고 생각한다면, 특히 희생자가 있는 교회 목사들은 그래선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희생자가 없는 다른 지역, 다른 교회 목사들이 와서 세월호와 함께하는 것을 보면서 “당신들이 정말 훌륭한 사람들이다. 나는 희생 학생 있는 교회 목사지만, 당신들은 아님에도 여기 와서 헌신하는 것을 보면 존경스럽다.” 노골적으로 이야기하곤 합니다.

세월호 앞에 한국 목회자들, 스스로 쪼개지는 참죽나무 같다

아까 말씀드렸다시피 우리 교회도 주류가 보수적이었습니다. 보수 매체를 더 신뢰하고 있었구요. 그렇지만 제가 오래 이 교회에 있었고 그동안 신뢰관계를 잘 쌓아왔었기 때문에 제가 말하는 것에 대해서 노골적으로 반대하진 않았습니다.

그러다 한 때 “세월호 이야기를 강단에서 그만했으면 좋겠다. 세월호는 예수와 관계가 없지 않으냐.” 하는 이야기가 나온적이 있었어요. 그래서 제가 막 화를 냈습니다.

“그게 무슨 소리입니까 예수 믿는 거 맞습니까, 세월호와 예수가 관계가 없다니요, 우리가 모두 형제자매인데 어떻게 그럴수 있습니까? 예수가 그렇게 가르쳤습니까? 제가 그렇게 설교했습니까? 여러분 듣기 싫어 하는 거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해야 하기 때문에 하는 겁니다.”

그러나 그 후에 오셔서 우리 교회가 세월호와 함께 하는 것이 옳다고 인정하시고 오히려 제 결정을 지지하신다고 고백하시면서 상황이 전화위복 되었습니다. 그래서 이젠 반대적인 이야기 나오지 않고 세월호에 협조적이 되었습니다.

만약 제가 그 때에 그냥 교회 눈치를 봤으면 유가족은 쫓겨났을 것입니다. 많은 교회 목사들이 교인들 줄까봐 세월호 이야기를 못합니다. 그런데 오히려 세월호로 인해 교회에 실망한 사람들이 저희 교회에 찾아 왔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오히려 늘어났어요. 그래서 저희 교회는 세월호 연극단이나 합창단도 초청하고 후원도 잘하는 교회가 되었습니다. 목사의 태도가 중요한 거 같습니다.

많은 세월호 가족들이 교회에서 쫓겨났습니다. 교회가 세월호에 대해 말하지 못하게 하니까요. 제가 이를 두고 항상 비유를 합니다. 저희 교회는 화목난로를 뗍니다. 그래서 뒷산에서 죽은 나무를 교인들이 가지고 오면 제가 쪼개곤 하지요. 소나무는 잘 안 쪼개져요. 아카시아는 잘 쪼개지죠. 그런데 하루는 성도님이 그러시길 더 잘 쪼개지는 나무가 있다는 거예요. 참죽나무인데 그 나무는 도끼를 들기만 해도 그냥 알아서 쫙 나간다는 겁니다. 그런데 정말 그렇습니다.

대부분 세월호에 대해 말 못하는 목사들이 이 참죽나무와 같습니다. 교회, 교인 눈치 보면서 알아서 기고 쪼개져 버리는 거죠. 과거에 비해 한국교인들이 많이 줄었습니다. 생각 있는 똑똑한 사람들이 나갈 수 밖에 없어요. 세월호 침몰은 한국교회의 침몰이기도 했던 겁니다. 아마 회복은 힘들지 않을까요?

이제라도 회개하고 바른 선택을 해야 하는데 변하지 않았습니다. 세월호 배지에 시비나 걸고… 그래서 한국교회의 미래를 어둡게 보고 있습니다.

그저 세월호 가족들 편에 있었다

▲ 목사님께서는 세월호 유가족들과 5년간 함께 해오셨는데 그동안 무슨 일을 해오셨나요?

처음엔 아무것도 못했습니다. 그저 황망하기만 해서요. 그러다 유가족들이 국회 농성할 때 장로님들과 찾아가기도 하고, 청와대 농성할 때 포도도 싸들고 가서 위문도 하고, 광화문에서 피켓팅 하기도 하고 했었죠.

예은이 아빠에게 뭘 도울까 물었더니 세월호 특조위 1기를 설치해 달라는 서명을 받아달라고 하더라구요. 그래서 1만 8백명 정도 열심히 욕먹고 싸워가면서 서명을 받은 적이 있고 세월호 배지도 열심히 보급했었습니다. 하지만 그 때까지도 그저 황망하기만 했었습니다.

그런데 어느날 예은 엄마 박은희 전도사에게 내가 세월호를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지를 물으니 교회에서 쫓겨났거나 교회를 떠나온 가족들이 주일에 분향소 유가족 대기실에 있다고 했습니다. “그러니 목사님 주일 오후 5시쯤 예배를 인도해주세요.” 하더라구요. 그래서 그러자고 했습니다.

그래서 2015년 1월 31일에 감리교 고난함께(사무총장 진광수 목사)와 함께 첫 예배를 드렸어요. 그 후에 안산의 교회들, 서울이나 인천의 신청하는 교회들이 돌아가면서 유가족과 예배도 드리고 이야기도 들고 했습니다. 이 예배는 분향소 철거하는 주간까지 계속되었어요.

그러다 세월호 가족 중에 아빠들이 있어서 뭐 좀 해보자고 했습니다. 그래서 세월호 목요기도회에 오셨던 안홍택 목사가 목수여서 그에게 목공일을 배울 수 있겠느냐고 물었더니 하겠다는 거예요. 그래서 감리교에서 지원받고 안 목사님이 가르쳐주겠다 하셔서 그렇게 목공소가 시작되었습니다. 기독교환경운동연대 사무총장 이진형 목사가 와서 엄마들을 대상으로 DIY도 가르쳐 주었어요.

위로가 세월호 가족들을 숨쉬게 했다

함께 목공일을 배우는 가족들과 작년 미국의 브루더호프 공동체도 견학했습니다. 목공일로 삶을 유지하는 제세레파 공동체입니다.

10박 11일동안의 여정이었어요. 브루더호프 공동체 사람들의 환대로 인해 큰 위로를 받았었습니다. 어떤 아버지가 여기가 천국인거 같다고 말할 정도였어요. 그전까지는 힘이 없었는데 그 후에 힘을 얻어 안산시의 도움으로 416목공협동조합을 작년 10월에 만들 수 있었습니다. 5월 25일에 개소식 예정입니다.

세월호 3주기 때는 ‘416기억독서대’를 만들었어요. 2017년 6월에 정부가 세월호 특별조사위원회(이하 특조위)를 깨부수는 것을 보고 ‘아, 이 정부가 세월호를 어서 잊게 만들려고 하는구나. 어떻게 저항할까?’ 하다가 한사람이라도 416참사를 기억해야 진상규명을 하든지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마침 그 시기가 목공방에 드나들 때여서 세월호 희생자들의 수만큼 독서대를 만들겠다고 결심하게 되었어요.

그후 10개월간 기본적인 활동 외에 모든 시간을 다 투자했습니다. 나무를 하나하나 재단하고 조립하는 등 손길이 많이 필요하더라구요. 또 304명이 모두 다른 사람이니까 만약 나무를 사서 쓰면 모두 똑같은 독서대가 나오겠더라구요. 그래서 나무를 사서 쓰지 않고 다 주워서 만들었습니다.

그 후 3주기에 광화문, 꿈의 교회, 안산분향소에서 전시했습니다. 독서대에 단원고 세월호 약전을 요약하거나 편지를 써서 하나씩 전시했구요. 제가 독서대를 다 가져갈 수 없으니 전시하면서 원하는 분들은 기부금을 내고 독서대를 가져가도록 했습니다. 그 재정은 세월호를 위해 사용했습니다.

개인적으로 독서대를 만들었던 10개월을 세월호 아이들을 위해 헌신한 것이라 생각하고 있습니다.

▲ 세월호 사건이 새롭게 깨닫게 해 준 기독교신앙에 충실하고 싶다고 하는 박인환 목사 ⓒ권이민수

문 대통령, 눈치 보지 마시고 앞장 서시길

▲ 문제인 정부가 곧 2년차가 됩니다. 목사님은 문정부를 어떻게 평가하시나요?

대통령에 대해서는 신뢰가 있습니다. 하지만 그냥 대통령만 바뀐 것이 아닌가, 무언가 변화를 기대하기에 너무 나이브 하지 않나 싶습니다. 이 눈치 저 눈치 봐서는 안 되고 어려움이 있겠지만 문 정부가 세월호를 위해 좀더 적극적으로 나서길 바랍니다. 세월호 관련 사안 사안마다 다 뒤로 밀리고 있습니다.

물론 정부가 바뀌었기 때문에 특조위가 새롭게 만들어지고 계속해서 세월호의 진실들을 밝히고는 있지만 너무 느립니다. 5.18이 진실을 알아도 제대로 못 밝히는 것처럼 세월호도 그렇게 될까봐 염려스럽습니다.

문 대통령이 좀 더 분발하고 세월호를 자기의 문제처럼 생각해서 과감하게 밝히고, 처단을 해줬으면 좋겠어요. 너무 느긋한거 같아 안타깝습니다.

한국 교회, 기본에 충실하기를

▲ 세월호 유가족과 연대인들은 앞으로의 무엇을 목표하고 준비하시나요?

유가족들의 꿈은 언제나 딱 두 가지입니다. ‘진상규명’과 ‘책임자처벌’이죠. 가족들이 바라는 것은 그거뿐입니다. 그리고 연대하는 우리도 그것뿐입니다. 모두 똑같은 마음 그 외엔 다른 이야기가 필요 없을거 같습니다.

▲ 마지막으로 더 하시고 싶은 말이 있으신가요?

물론 너무나 많지만, 그저 기본으로 돌아갔으면 좋겠습니다. 한국 교회가,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고백한다는 사람들이 자기 기본에만 잘 서 있어도 세월호 이렇게 되지 않았습니다. 시민 의식도 기본이 안 되어 있는 것 같습니다.

실제로도 ‘저 집은 좋겠다. 애들이 효도해서 큰돈을 만지게 되었다. 우리 같은 서민이 어떻게 5-6억을 만지느냐’는 이야기가 있었다고 합니다. 이게 말이 됩니까? 모든 것을 다 돈으로 생각합니다. 돈 받기 전에는 ‘시체 장사’ 한다고 하고, 돈 받고 나서는 다 받았으면 됐지 뭘 더 이야기 하냐고 하는데 일제와 군부독재를 오래 겪으면서 돼지저금통마냥 돈만 넣으면 되는 존재가 되었습니다. 시민의식의 고양이 필요해요.

제가 세월호와 함께해 왔다고 저를 특별하게 보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저는 그저 기본이고 당연하고 평범한 사람입니다. 저는 희생자가 있는 교회 목사인데 어떻게 가만히 있겠어요? 그저 전 기본적인 것을 했을 뿐입니다. 이런 인식이 너무 안타깝고 비참한 심정입니다. 기본으로 돌아가 세월호와 모두 함께 했으면 좋겠습니다.

권이민수  simin004@nat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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