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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의 빈 자리 경험허무주의 시대 신(神)의 자리-베른하르트 벨테의 종교경험에 대하여(5)
이기상 명예교수(한국외대) | 승인 2019.04.14 19:28

신이 떠나 버린 시대에 신을 만날 수 있는 방식은 신의 빈 자리를 경험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경험은, 사람들이 대개 “무의 경험”으로부터 등을 돌리기 때문에, 위대한 사상가들이나 시인들에 의해서만 이루어져 언어적으로 표현될 수 있다. 벨테가 말하는 무의 경험은, 그 경험이 너무나 섬뜩한 것이기 때문에, 우리를 “전율케 하는 것”이다.

“없음” 경험이 주는 전율

파스칼(B. Pascal)을 전율케 한 것은 두 가지이다. 하나는 무한한 것이고, 다른 하나는 무이다. “끝이 없는 것”은 “끝이 있는 것”, 그래서 그 “끝”을 “끝매김할 수 있는 것”, 달리 말해, “유한한 것”에 대한 부정이다. 즉 “아니게 함”을 통해서만 이해될 수 있다.

▲ 없음의 경험을 하고 살고 있는 현대인이지만 그것을 인식하고 있는 현대인은 과연 몇 명이나 될까. ⓒGetty Image

그러나 이 세계에서 우리가 붙잡아 파악할 수 있는 것은 “끝이 있는 것들”뿐이다. 파악 불가능한 것은 “무”다. 이때 “무”는 “아무것도 아닌 것” 또는 “없는 것”을 뜻한다.

그런데 이러한 “무”가 경험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유한한 것이 아니기에 파악할 수 없고, 파악할 수 없기에 없는 것이라고 파악된 무한한 것은 그것의 “파악 불가능성”이다. 즉 그것의 “없음” 속에서 경험된다.

그리고 이러한 “없음”은 “끝이 있는 모든 것”에 대한 “부정”, 즉 “끝이 있는 것의 아님” 속에서 언제나 경험될 수 있다. 그러므로 “끝없는 것”과 그것의 “없음”은 이 세계와 인간 모두를 삼킨다. 즉 우리를 전율케 하는 것으로서 경험된다.(1)

니체는 모든 것들의 창조자로서의 ‘신의 죽음’을 선포했다. 신의 죽음은 모든 것이 그 의미를 잃어 버렸음을 뜻한다. 신이 죽음으로써 신에 의해 세워진 모든 것은 아무 의미도 갖지 못하게 되었다. 의미 있는 것이라고는 “아무것도 없다.”

이것이 바로 허무주의이다. 니체는 이러한 “없음의 경험”을 견뎌내라고, 아니 극복하라고 촉구한다. 니체는 자신의 초인이 이러한 “없음”을 뛰어넘을 수 있다고 믿었다.

그런데 니체가 말하는 초인은 “힘에의 의지”를 통해 허무주의를 극복하기커녕 오히려 인간들을 근대적 전체주의로 몰아 넣고 말았다. 이 전체주의는 인간적인 것의 대파국이 되었다. 결국 허무주의는 극복되지 않은 채 지속되고 있다.(2)

현대문학 속의 “없음”에 대한 경험

벨테는 “없음”에 대한 경험을 우리들 시대의 “근본 경험”으로서 파악하고 있다. 이러한 경험의 증인들로서 그는 하이데거와 브레히트도 꼽고 있다. 하지만 엘리엇(T. S. Eliot)와 파울 켈란(Paul Celan)을 중요한 증인으로서 다루고 있다.(3)

엘리엇의 시는 “없음”, “어둠”, “빔”, “침묵함” 등에 대해 말하고 있다. 여기서의 “없음”은 결코 무차별적인 것 아니라 모든 것과 모든 사람에게 관계한다. 그 모든 것을 전율케 하는 것으로서 경험된다.(4)

파울 켈란은 “없음의 자리”에 대한 종교적 경험을 시로 노래하고 있다. 신이 나타나야 할 자리로서의 “편도”에는 “아무것도 나타나 있지 않다.” 그는 “아무것도 없음”만을 볼 뿐이며, 언제나 “아무것도 없음”만이 지속될 뿐 거기에는 아무 흔적이 없다.(5)

벨테는 우리 시대의 다양한 “없음 경험들”에 대해 다양한 증인들을 언급함으로써 “신의 떠나버림”-벨테의 말로는 신의 경험의 “떨어져 나감”-과, 그로 인한 “아무것도 없음” 그리고 허무주의 등이 오늘날의 우리들의 “근본 경험”임을 말하고자 한다. 벨테는 이러한 “없음 경험”은 결국 “경험 없음”이 아님을 강조한다. 만일 “없음 경험”이 경험이라면, 그것은 그러한 경험을 한 자를 어떻게든 변화시켜야 할 것이다. 보통의 변화는 그러한 경험 자체로부터 도망가는 것이 될 것이다. 물론 그 경험을 지키며 물러서지 않은 채 그 속에 머무르는 것도 가능하다.

미주

(미주 1) Bernhard Welte, Das Licht des Nichts (아무것도 없음의 빛), Düsseldorf 1980, 37 이하.
(미주 2) 참조. 같은 책, 38 이하.
(미주 3) 참조. 같은 책, 40 이하.
(미주 4) 참조. 같은 책, 41.
(미주 5) 참조. 같은 책, 42.

이기상 명예교수(한국외대)  saemom@cho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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