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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편파성, 설교단의 편파성장애인주일 연합예배의 한 광경에서
이정훈 | 승인 2019.04.18 19:33

행사 취재 기사를 칼럼이나 사설로 쓰는 경우는 없다. 행사 진행 순서에 맞추어, 특히 기독교 예식의 경우, 사회자의 발언, 기도, 설교 등을 충실히 소개하는 것이 일반적인 기사 형식이다. 물론 기자의 취사 선택에 따라 내용들이 축약되지만 말이다.

이러한 일상적인 형식을 벗어나 ‘2019 장애인주일 연합예배’를 사설에 가까운 기사 형식을 빌어 서술하게 된 점에 대해 독자 여러분과 NCCK 관계자 여러분께 양해를 구한다.

외연이 확장된 장애인주일 연합예배였지만

NCCK(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총무 이홍정 목사) 장애인소위원회(위원장 황필규 목사)가 주관한 이번 장애일주일 연합예배는 그간 해왔던 예배 형식이나 내용에서 크게 벗어난 점은 없었다. 다만 그간에 특정 교회를 이용해 관계자들이나, 특히 NCCK 장애인소위원회 관계자들과 교회 교우들이 함께 드리던 예배에서 벗어나 신학대학교 예배 시간에 학생들과 예배를 드린 것은 매우 이례적인 모습이었다. 이렇게 예배가 진행될 수 있었던 것은 설교를 담당한 감리교 ‘너와나의교회’ 담임목사이자 감리교 신학대학교 출신인 유흥주 목사의 수고가 녹아 있었다는 후문이다.

이러한 이례적이고 외연이 확장된 장애인주일 연합예배가 안타까웠던 점은 장애인을 위한 배려가 없었던 설교단의 형태 때문이었다. 뇌병변장애를 가지고 있는 유 목사가 혼자서 설교단으로 접근하는 것은 불가능했다는 뜻이다. 수동휠체어를 사용하고 활동보조인의 조력으로 움직이는 유 목사에게 설교단으로 향하는 길목에 놓인 계단은 장벽이었다.

▲ NCCK 장애인소위원회 주관 2019 장애인주일 연합예배가 감리교신학대학교 채플실에서 진행되었다. 그러나 이날 설교를 맡은 유흥주 목사는 휠체어로는 접근이 불가능한 설교단의 높이 때문에 관계자들에 의해 설교단으로 옮겨졌다. ⓒ이정훈

예배가 시작되기 전 유 목사는 NCCK 관계자들과 감리교신학대학교 학생들에 의해 휠체어와 함께 설교단으로 들려올려졌다. 어쩔 수 없는 모습이라고 할 수 있지만 상당히 위험한 장면이다. 혹여라도 휠체어를 들고 이동하는 사람들 중 하나라도 합이 맞지 않으면 사고를 초래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설교단으로의 접근성 문제는 비단 감리교신학대교만의 문제는 아니다. 지난해 장애인주일 연합예배가 진행되었던 교회에서도 설교자가 휠체어에 착석한 채로 관계자들에 의해 설교단으로 올려졌다. 즉 대부분의 한국교회의 설교단의 구조적인 문제라는 뜻이다.

장애인이 접근 불가능한 설교단은 언제부터 시작되었나

전통이라고 하기에는 머슥한 이러한 설교단의 모습은 어디서부터 유래했을까? 역사적으로 종교개혁 이전 로마가톨릭이나 동방정교회의 예배당은 신학과 교리를 대변하고 있었다. 특히 라틴어나 희랍어로 미사를 집전하고 성서도 여전히 라틴어와 희랍어였던 중세 교회들은 성서에 접근이 불가능했던 글을 알지 못하는 신도들을 위해 예배당은 하나의 학교와 같은 기능을 하도록 설계했다.

즉 각종 성화나 성물이 곳곳에 비치되어 성서를 읽지 않거나 이해하지 못해도 그리스도나 교회전통을 이해할 수 있도록 구조적으로 만들어졌다는 뜻이다. 그리스도를 그려놓은 성화나 성상 및 십자가, 또한 그리스도의 어머니인 마리아가 그리스도를 안고 있는 성모화나 성상 등이 곳곳에 배치되었다. 또한 교회 전통을 대변하는 신앙위인들의 모습도 자주 볼 수 있도록 만들었다.

하지만 루터의 종교개혁 이후 루터를 따르는 교회 전통은 로마가톨릭 전통의 교회 양식을 이어갔지만, 스위스의 개혁자 츠빙글리는 로마 가톨릭의 이러한 모습을 비신앙적인 것으로 여기고 구별을 위해 교회 내의 스테인드글라스를 비롯해 성가 반주를 위한 오르간까지 퇴출시켰다. 특히 개혁파 전통을 정립한 요한 칼빈은 ‘오직 성서로만’이라는 기치를 그 어떤 것보다 중시하는 설교 중심의 교회 전통을 확립시켰다.

그렇기 때문에 그 당시 예배당은 현대와 같은 음향 기기가 없으니 모든 신도들이 설교를 잘 듣고 집중할 수 있도록 설교단을 예배당 제일 높은 곳에 위치시켰다. 특히 미국 청교도 전통의 예배당은 이러한 형식의 정점에 있었다. 실용성, 기능성, 검소함이 개신교 개혁파 전통의 예배당 핵심이 되었다.

이러한 예배당 형식의 전통은 한국에까지 그대로 유입되었다. 설교단은 예배 처소 한 가운데 높은 곳에 위치해 있게 되었다. 여기에 장애인이 목회자가 될 경우는 희박했으니 설교단으로의 접근성은 고려의 대상이 아니었다.

하지만 80-90년대 미국 개신교를 시작으로 극장 형식의 예배당 형식이 유행하기 시작했다. 마치 고대 희랍의 비극이나 희극이 상연되던 야외 극장처럼 무대가 가운데 있고 관람객들의 객석보다 낮은 위치에 있는 형태이다. 결국 설교단의 높이가 지면과 거의 높이가 똑같거나 계단 한 두개 정도로만 이루어져 장애인의 접근성이 높아지기는 했다.

▲ 또 다른 신학대학교 채플실 설교단의 모습 ⓒ에큐메니안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교회 대부분의 교회 예배당나 신학대학 채플실의 설교단은 여전히 장애인들에게는 접근 불가능한 곳이다. 비단 2019 장애인주일 연합예배가 진행된 감리교신학대학 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신학대학 채플실 설교단도 장애인에게 접근을 허락하지 않는다. 개신교 개혁파 전통이라고 하면 조금 과한 면이 있지만, 설교단의 높이만큼 교회와 목회자의 권위는 비례한다는 속설은 괜한 말이 아닌 것이다.

차별없이 창조한 하나님 그러나 차별을 만들어내는 교회

2019 장애인주일 연합예배에서 설교를 맡은 NCCK 장애인소위원회 위원이자 목회자인 유흥주 목사는 “바라 엘로힘”이라는 제목의 설교를 진행했다. 세상 모든 만물을 하나님께서 창조하셨다는 점을 강변했다. 즉 장애인도 하나님께서 창조하셨음을 강조한 것이다.

이는 비장애인이든 장애인이든 차별이 없어야 함을 주장한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그러나 과연 한국의 개신교 예배당은 이러한 신학을 대변하고 구현하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생각해 볼만한 점이다. 천치를 차별없이 창조한 하나님에 대항하는 차별 행위를 교회가 범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를 돌아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하나님께는 차별이 없지만 인간은 차별을 만들어낸다는 현실을 반영하는 이야기가 교회에서만큼은 통용되지 말아야 할 것이다. 가난한 자와 사회적 약자, 고아와 과부를 편드시는 하나님의 편파성은 본받아야 하지만, 접근성을 편파적으로 가르는 설교단의 편파성을 교회는 만들어지 말아야 한다. 이것이 창조신앙을 믿는 그리스도의 교회가 실천해야 할 점이다.

이정훈  typology@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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