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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암시난 살아져라”천천히 걷자
여상범 목사(제주신흥교회) | 승인 2019.04.26 17:34

“살암시난 살아져라”

이 말은 제주4.3항쟁 때 제주에 불어닥친 파괴와 학살의 광풍을 피해 살아남은 심정을 대변하는 제주어인데, “(안 죽고) 살아 있으니 (그럭저럭) 살게 되네요.”라는 뜻입니다.

전쟁이 휩쓸고 간 자리에 어디든 승리의 영광이 아니라 상처와 고통이 지배하는 듯합니다. 그리고 전쟁의 참혹함을 목격한 사람들은 그 잔인한 광경 앞에서 하나님마저도 침묵하시는 것처럼 느낄 수밖에 없습니다(18절).

그러나 예레미야는 그 참혹함 가운데에서도 절망이 이 세계의 주인은 아니라는 것을 확신합니다. “주의 한결같은 사랑이 다함이 없고 그 긍휼이 끝이 없기 때문”(22절)입니다.

▲ Guido Mazzoni “Lamentation”, Terracotta(1492, Sant'Anna dei Lombardi [Naples, Italy]) ⓒGetty Image

죽은 사람은 죽은 대로 불쌍하지만, 산 사람은 죽은 사람의 죽음까지 짊어지고 살아가야 합니다. 육체와 정신에 새겨진 온갖 상처들과 트라우마로 인해 혼이 나가버린 것 같은, 평화를 빼앗긴 삶을 살아가야 하는 것입니다(17절).

그러나 한편으로 예레미야는 그 잊을 수 없는 고통과 괴로움을 관조할 수 있게 하는 것이 하나님을 향한 믿음이었음을 고백합니다. 괴로웠던 그 순간에는 꼭 죽을 것만 같았는데, 질긴 것이 목숨인지라 살아있다보니 새삼 깨닫게 된 것이 있었는데, 그것이 바로 하나님의 끝없는 자비와 긍휼이었다는 것입니다(22절).

“사람이 여호와의 구원을 바라고 잠잠히 기다림이 좋도다.”(26절)

이 말씀은 수동적인 기다림으로 이해되지 않습니다. 사람이 최선을 다해 할 수 있는 일이 참는 것뿐인 상황이 분명히 있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두려움, 조바심, 분노, 욕망에 지배당하여 실수하지 말고 “의롭고 신실하신” 하나님의 도우심을 생각하며 행동하라는 능동적인 기다림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만일 얻어맞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면, 때리는 자의 손이 무색해지도록 빰을 돌려대고, 욕을 들을 때도 배고파서 밥을 먹듯이 기꺼이 들으라는 것입니다(30절).

“살암시난 살아져라”는 말은 체념의 말로 들리기도 하지만, 적극적으로 남아있는 삶을 받아들인 제주 민중의 지혜와 강함이 압축된 말로 보는 것이 더 적절하지 않은가 합니다. 예레미야는 하나님을 신뢰하는 믿음으로 자신에게 닥친 고난의 무게를 이겨내고자 하였습니다.

여기서 굳이 믿음이 주는 치유의 능력이 더 크다며 예레미야의 믿음과 제주 민중의 지혜를 비교하는 것은 그다지 신실한 행동은 못됩니다. 하나님을 신뢰하는 믿음은 삶에 대한 이른바 “일반은총” 이상의 것에 관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어느 쪽이든 삶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이고, 자기 스스로 모든 것을 결정하고 통제하려는 욕심을 버린 자에게는 불타버린 대지에 새순이 돋아나듯이 하나님이 지으신 세계의 신비한 힘을 맛보는 체험이 주어지게 됩니다. 믿음은 그 체험을 이끌어내는 능력이기도 하지만 보다 본질적으로 말하자면 그 체험을 제공하는 힘의 근원을 보는 능력임을 잊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믿음으로 말미암아 새로운 소망을 얻는 행복한 인생을 위해 기도합시다.

1 나는 하나님의 진노의 몽둥이에 얻어맞고, 고난당하는 자다. 2 주님께서 나를 이끄시어, 빛도 없는 캄캄한 곳에서 헤매게 하시고, 3 온종일 손을 들어서 치고 또 치시는구나. 4 주님께서 내 살갗을 약하게 하시며, 내 뼈를 꺾으시며, 5 가난과 고생으로 나를 에우시며, 6 죽은 지 오래 된 사람처럼 흑암 속에서 살게 하신다. 7 내가 도망갈 수 없도록 담을 쌓아 가두시고, 무거운 족쇄를 채우시며, 8 살려 달라고 소리를 높여 부르짖어도 내 기도를 듣지 않으시며, 9 다듬은 돌로 담을 쌓아서 내 앞길을 가로막아, 길을 가는 나를 괴롭히신다. 10 주님께서는, 엎드려서 나를 노리는 곰과 같고, 몰래 숨어서 나를 노리는 사자와 같으시다. 11 길을 잘못 들게 하시며, 내 몸을 찢으시며, 나를 외롭게 하신다. 12 주님께서 나를 과녁으로 삼아서, 활을 당기신다. 13 주님께서 화살통에서 뽑은 화살로 내 심장을 뚫으시니, 14 내 백성이 모두 나를 조롱하고, 온종일 놀려댄다. 15 쓸개즙으로 나를 배불리시고, 쓴 쑥으로 내 배를 채우신다. 16 돌로 내 이를 바수시고, 나의 얼굴을 땅에 비비신다. 17 내게서 평안을 빼앗으시니, 나는 행복을 잊고 말았다. 18 나오느니 탄식뿐이다. 이제 내게서는 찬란함도 사라지고, 주님께 두었던 마지막 희망마저 사라졌다. 19 내가 겪은 그 고통, 쓴 쑥과 쓸개즙 같은 그 고난을 잊지 못한다. 20 잠시도 잊을 수 없으므로, 울적한 마음을 가눌 길이 없다. 21 그러나 마음 속으로 곰곰이 생각하며 오히려 희망을 가지는 것은, 22 주님의 한결같은 사랑이 다함이 없고 그 긍휼이 끝이 없기 때문이다. 23 “주님의 사랑과 긍휼이 아침마다 새롭고, 주님의 신실이 큽니다.” 24 나는 늘 말하였다. “주님은 내가 가진 모든 것, 주님은 나의 희망!” 25 주님께서는, 주님을 기다리는 사람이나 주님을 찾는 사람에게 복을 주신다. 26 주님께서 구원하여 주시기를 참고 기다리는 것이 좋다. 27 젊은 시절에 이런 멍에를 짊어지는 것이 좋고, 28 짊어진 멍에가 무거울 때에는 잠자코 있는 것이 좋고, 29 어쩌면 희망이 있을지도 모르니 겸손하게 사는 것이 좋다. 30 때리려는 사람에게 뺨을 대주고, 욕을 하거든 기꺼이 들어라. 31 주님께서는 우리를 언제까지나 버려 두지는 않으신다. 32 주님께서 우리를 근심하게 하셔도, 그 크신 사랑으로 우리를 불쌍히 여기신다.

여상범 목사(제주신흥교회)  uptiger@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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