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세기 종교개혁은 단순히 중세 후기 로마 가톨릭교회의 부패와 폐해 때문에 발생했다고 하기에는 너무나 많은 다층적인 문제를 지니고 있었습니다. 최근의 사회사적 연구들은 종교개혁이 매우 복잡한 사회현상이었으며, 다양한 요인들이 한데 어우러져 일어난 운동이라는 것을 밝혀주고 있습니다.

우리가 살펴보려는 칼빈의 개혁도 이 다양한 요인들과, 무엇보다도 르네상스의 인문주의 운동과 매우 밀접한 관계 속에서 일어난 운동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먼저 종교개혁이라는 새로운 세계사적 패러다임 전환을 준비한 몇 가지 주요한 요인들에 대해 간략􏰀게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신비주의 운동

베르나르, 에크􏰀르트, 보나벤투라, 타울러, 그리고 『독일신학』의 공통점은 하나님은 본질에 있어서는 이해할 수는 없어도 직접 체험할 수는 있다는 확신이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직접적 경험을 강조하는 신비주의 운동은 근본적으로 성례전적 대행자인 교회를 통해서만 하􏰀나님은 알려지고 중재될 수 있다는 기존의 개념과 긴장 상태에 들어가게 됩니다.

▲ William Frederick Yeames(1835-1918), “Wyclif Giving 'The Poor Priests' His Translation of the Bible” ⓒWikipedian

신비주의는 종교개혁적 사고가 자랄 수 있는 새로운 풍토와 토양을 만들어 주었던 것입니다. 루터가 출판한 첫 번째 책이 그가 『독일신학』이라고 불렀던 타울러의 설교들을 편집한 것이었다는 것과 그의 만인사제직론은 그에 대한 신비주의의 영향을 말해 줍니다.(1)

또한 칼빈이 성만찬에서 그리스도의 영적이며 현실적인 임재 (Inst. IV.17)를 주장했다는 것은 그가 신비주의적인 이해에 매우 접근 􏰀고 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후기 스콜라주의(유명론)

중세의 스콜라주의는 초기와 후기로 대별할 수 있는데, 초기 스콜 라주의(대략 1200-1350)는 토마스 아퀴나스의 저작에서 유래􏰀는 실재론의 지배를 받았습니다. 후기 스콜라주의(대략 1350-1500)는 윌리엄 옥캄, 가브리엘 비엘, 삐에르 다이 등에의해 주장된 유명론에 의해 지배되었습니다. 이 중 중세 교회의 개념을 내적으로 약화시키고 그로써 종교개혁에 영향을 미친 것은 유명론이었습니다.

그러나 중세 후기 스콜라주의는 “유명론적 다양성”을 띠고 있었습니다. 실제에 있어서는 서로 다른 두 학파가 존재했습니다. 이 두 학파의 유일한 공통점은 반실재론이라는 것입니다.

즉 두 학파 모두 보편자의 필연성을 배척했습니다. 하지만 여타의 문제들에 있어서는 실제적으로 어떤 공통된 입장도 갖고 있지 않았던 것입니다. 한 학파는 인간의 능력에 대해 대단히 낙관적인 반면, 다른 학파는 매우 비관적이었습니다.

이 두 􏰁파는 이제 일반적으로 “via moderna”와 영국의 토마스 브래워딘과 리미니의 그레고리가 중심이 된 “신-어거스틴 학파”라고 알려져 있습니다. “via moderna”는 옥캄이 토마스 아퀴나스의 방법을 “옛 방법”(via antiqua)라고 거부하며 제시한 “새 방법”을 지칭합니다. “신-어거스틴 학파”는 교부 어거스틴의 입장을 따르는 학파를 말합니다.

여기서 종교개혁, 특히 루터의 개혁에 실제로 영향을 미친 학파는 “신-어거스틴 학파”의 입장이었습니다.(2)

르네상스 인문주의

신비주의가 􏰀하나님과의 직접적인 연합의 가능성을 성직자와 세속인, 군주와 농민, 여성과 남성에게 똑같이 확대􏰀는 “모든 사람의 신학”이었습니다. 반면에 인문주의는 유럽의 지적인 엘리트에 의해 발생되었고, 지배되었던 개혁운동이었습니다.

오늘날 ‘인문주의’라는 용어는 일반적으로 하나님의 존재나 하나님과의 연관성을 부정􏰀는 세계관이나, 혹은 순전히 세속적인 세계관을 의미합니다. 하지만 15-6세기 당시에는 그리스와 로마의 이교적인 고대문화와 기독교 초기의 고전적인 자료들을 재발견하고 연구하는 것에 토대를 둔 특별한 􏰁학문 방법을 가리켰습니다. “근원으로 돌아가자”(ad fontes)는 말은 역사, 문학, 신학􏰁 등의 연구성과에서 새로운 전망들을 열었던 인문주의자들의 표어였습니다.

기독교적 의미에서 “근원으로 돌아가자”는 표어는 성서와 교부들의 저서로 직접 되돌아가는 것을 의미했습니다. 그리고 네덜란드의 에라스무스, 프랑스의 르페브르 등 소위 성서적 인문주의자들은 성서와 초대 교부들의 작품에 대한 연속적인 비평 판들을 계속 펴냈습니다. 뒤에서 다시 언급하겠지만, 개혁자들 가운데 츠빙글리와 칼빈은 인문주의자들의 왕자로 여겨졌던 에라스무스의 열렬한 연구자들 이었습니다.(3)

민족단위 국가들의 등장

신비주의, 유명론, 그리고 인문주의는 중세 후기의 자연스러운 일부였으며, 동시에 기존 사회에 대한 도전에 이용될 수 있는 요소들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운동들과 함께 종교개혁을 가능하게 만들었던 또 다른 중요한 요인은 13세기말 교황의 세계지배권의 와해와 더불어 일어나기 시작한 민족주의 운동입니다. 프랑스, 스페인, 영국, 독일 등 민족국가의 등장은 신성로마제국과 교황청의 전체주의적인 질서의 붕괴와 동시에 단일한 교회 질서의 유지를 힘들게 하􏰀였습니다.

루이스 스피츠가 적절하게 표현한대로 이 당시 정치적인 상황은 한 마디로 “다중심주의”의 시대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정치적 상황은 종교개혁에 매우 유리한 상황을 조성했습니다. 이러한 맥락 속에서 16세기 종교개혁은 국가별 개신교를 낳게 􏰀하였습니다(독일의 루터교회, 네덜란드의 개혁교회, 스코틀랜드 장로교회, 영국의 성공회 등).(4)

개혁의 선구자들

이미 오래전부터 종교개혁의 물꼬를 튼 선구자들이 등장􏰀기 시작했습니다. 리용의 발데시우스(?-1217), 존 위클리프(1328-1384), 그리고 존 후스(1372-1415)가 그들입니다. 가톨릭교회로부터 모진 박해를 받았을 뿐만 아니라 심지어 화형(후스)까지 당했던 이들의 가르침을 요약하􏰀면, 가톨릭의 교권주의에 대한 강력한 거부, 예수 그리스도 만이 교회의 머리이시며 오직 성경만이 신앙의 최종 권위라는 주장, 그리고 세례와 성만찬만이 그리스도께서 제정하􏰀신 성례전이라는 가르침 등등입니다. 이와 같은 사상은 훗날 개혁교회 사상의 기반을 이루게 됩니다.(5)

최영 소장(기독교장로회 목회와신학연구소)  webmaster@ecumen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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