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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바라기내 인생의 꽃과 나무(7)
이수호 이사장(전태일재단) | 승인 2019.04.29 11:36

나는 어릴 적 시골에 살면서 꽃밭 만들기를 좋아했다. 낮고 초라한 초가집이었지만 마당이 넓어서 그렇게 할 수 있었다. 봄이 되고 참꽃이 필 때면 산에 들에 뾰족뾰족 새싹이 돋는다. 봄비가 한 번 지나가면 논둑 밭둑이 연둣빛으로 바뀌는 때이다. 이때쯤이면 지난 가을 받아둔 씨앗 봉지를 꺼낸다. 봉지마다 다른 모양과 크기의 씨앗들이 까만 얼굴로 쳐다보며 겨울을 무사히 보낸 인사를 한다. 그렇게 예쁘고 귀여울 수가 없다. 씨들을 가만히 바라보노라면 각각 다른 모양의 꽃들이 보인다.

양지바른 곳에 돌을 골라내고 흙을 가늘게 부수고 부드럽게 해서 묘판을 만든다. 적당히 골을 내고 낮은 둔덕을 만든다. 그리고 줄마다 종류대로 씨를 뿌리고 살짝 덮어 준다. 모래알보다 작은 채송화 씨부터 제법 손톱만큼 도톰한 해바라기 씨까지 골고루 뿌린다. 며칠을 정성 드려 물도 주고 센 바람도 막아 주면 어느 날 놀랍게도 땅껍질을 뚫고 새움이 돋는다. 수세미나 해바라기처럼 씨가 큰 놈은 땅껍질을 아예 머리에 이고 올라오기도 한다. 언제 봐도 신비롭고 놀랍다.

ⓒGetty Image

적당히 자란 어느 날 비라도 살포시 내리면 미리 마련해 놓은 화단에 옮겨 심는다. 대체로 키에 맞춰 채송화처럼 작은 놈은 제일 앞에, 키가 제일 큰 해바라기는 언제나 제일 뒤편 돌담 바로 앞에 심는다. 매일 물도 주고 풀도 매 주고 적당히 거름도 주면 꽃들은 하루가 다르게 쑥쑥 자란다.

그 중에서도 가장 크고 씩씩하게 자라는 놈은 역시 해바라기다. 비라도 온 뒤면 너무도 싱싱하게 자라 어느 듯 내 허리에 차더니, 여름이 되며 내 키를 넘어 버린다. 그리고 꼭대기에 딱 하나 큰 꽃이 맺힌다. 날씨가 더워지고 태양이 이글거리기 시작하면, 작은 접시가 쟁반 만해지며 바깥 둘레로는 노란 꽃잎이 이글거리는, 어릴 적 내 얼굴보다 큰 꽃이 피기 시작한다. 가운데는 수많은 작은 꽃들이 모여 있지만 얼른 보면 한 개의 큰 꽃이다. 나란히 몇 포기를 심어 놓으면 마치 꽃밭 전체를 감싸고 지키는 보초들처럼 씩씩하고 당당하다.

내가 또 다른 해바라기를 만난 건 아마 내 나이가 40이 넘어서인 것 같다. 나는 전교조 결성과 함께 감옥에 갔다가 6개월 만에 나왔다. 그리고는 우여곡절 끝에 국민연합 집행위원장이 되어 싸우다가 수배를 당하게 됐다. 1990년 이었다. 가족과는 몰래 어렵게 만나기도 했으나 함께 활동하던 전교조 선생님들 얼굴은 볼 수가 없었다. 당시 전교조에서 나는 서울 북부사립지회 소속이었는데, 여기는 나와 나이도 비슷하면서 친구처럼 지내던 선생님들도 계셨다. 서로 보고 싶은 나머지 등산을 가장해서 몰래 산에서 만나기도 했다.

그렇게 시작한 것이 ‘낮은 뫼’라는 등산모임이었다. 우리는 몇 주에 한 번씩 접선을 하듯 산에서 만나 회포를 풀곤 했다. 그 모임이 시간이 지나며 아주 가까운 친구 몇이 부부가 함께하는 산행모임으로 남게 됐다. 이부영, 송영관, 고춘식, 박명철과 나 그리고 아내들이었다. 한 달에 한 번 정기 모임은 말할 것도 없고 수시로 보기도 하고 외국여행까지 같이하며 우정은 쌓여 갔다. 당연히 연락과 소통을 위해 온라인에서 카페도 운영하고 카톡방으로 진화하기도 했다.

그렇게 하면서 각자가 별명을 지었는데, 자연스럽게 남자는 동물 이름으로 여자는 꽃 이름으로 했다. 부엉이, 쏘가리, 궁노루, 멧돼지, 물범은 남자들이었고 민들레, 원추리, 산나리, 쭉정이, 해바라기는 여성이었다. 그렇게 해놓고 보니 원래 인물과 이미지가 비슷하다고 다들 즐거워하고, 온라인에서는 말할 것도 없고 만나면 즐겁게 서로 별명을 불렀다.

아내는 스스로 해바라기라고 이름 짓고 노골적으로 한 사람만 바라보고 산다고 당당하게 선포하는 바람에 나는 몹시 당황했다. 그리고 미안하고 마음이 아팠다. 내가 교육운동이다 노동운동이다 하며 가족의 역할을 제대로 안 했음에도 아내는 나만 바라보며 그 모든 것을 이해하려 애썼다. 부부는 그래야 되는 게 아니냐며 나를 더욱 미안하게 했다.

어언 일흔 즈음, 요즘도 우리는 각자의 삶을 열심히 살고 있다. 그러면서도 아내는 스스로 해바라기라 낮추며 나를 인정하며 함께하려 애쓰고 있다. 나는 그 환하고 밝은 해바라기의 얼굴에 기대어 쉬기도 하고 위로도 받고 용기도 얻는다.

내 어릴 적 내 꽃밭의 가장 뒤편에 서서 꽃밭 전체를 감싸고 바람도 막아주고 그늘도 돼 주던 그 해바라기가 항상 내 곁에 있어서 너무 좋다.

이수호 이사장(전태일재단)  president1109@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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