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빚을 갚는 환희김상기 목사와 함께 하는 <성서와 위로>
김상기 목사(백합교회) | 승인 2019.05.01 18:42
그렇다. 형제들아, 우리는 빚진 자들이다. 그렇지만  육신에게 (빚져서) 육신을 따라 살아야 하는 것이 아니다. 너희가 육신을 따라 살면 너희는 죽을 것이다. 그러나 너희가 영(을 따라) 몸의 행실을 죽이면 살 것이다.(로마서 8,12-13)

빚진 자라는 그리스도인 이해가 독특합니다. 그리스도인이 빚진 자라면 그는 무엇인가 갚아야 할 의무가 있는 자입니다. 이것은  값없이 은혜로 그리스도인이 되었다는 일반적인 이해와 상충됩니다.

갚아야 한다는 그 말은 무엇을 염두에 두고 있는 것일까요? 그에 앞서 육신이란 무엇을 가리키는지요? 이해를 돕기 위해 본문은 육신에게 (빚진 자)는 육신의 요구를 따라 살 것이라고 합니다.

비유적인 이 말 역시 쉽지는 않습니다. 육신은 '육체, 살덩이'를 뜻하며 몸이나 영과 구별되고 사람의 물질성을 강조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러한 의미의 육신에게 빚진 자란 육신의 욕구를 따라 사는 사람입니다. 육신이 우리 삶의 주인이 되고 그 원칙이 됩니다.

▲ Stained glass depiction of St. Thomas Aquinas speaking with Jesus, located in Saint Patrick Church in Columbus, Ohio. ⓒWikimedia Commons

육신은 생명체의 일차적인 존재 조건이기 때문에 사람이 육신의 욕구를 따라 산다는 것은 상당 부분 당연한 일일 것입니다. 하지만 사람은 물질적 속성에만 귀속될 수 없는 존재입니다. 그런데 그가 육신의 지배 아래 있다면, 그는 '사물화된' 사람이라고 해야 될 것입니다. 이는 사람으로서의 존재 이유와 가치가 상실되었음을 뜻하고, 본문은 그런 자에게  죽음에 이를 것을 선고합니다.

우리의 몸은 어떤 원칙의 지배를 받느냐에 따라 서로 다른 실천들을 낳습니다. 육신의 지배 아래 있는 몸은 물신(物神)을 섬기고 그의 요구들을 실천할 것입니다. 그것이 파괴적인 까닭은 사람과 하나님을 포함한 모두를 '사물화시키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문제는 그러한 육신의 지배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길이 있는가, 있다면 그것은 무엇인가 입니다. 그리스도 사건입니다. 이로써 죽음의 길에서 생명의 길로의 전환이 일어났습니다.

그 사건은 이를 위해 값을 지불한 사건입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빚진 자로서 그 길 위에 있습니다. 우리가 그 길 어디 쯤에 있던지 그 길은 육신의 지배에서 완전히 해방된 길이 아닙니다.

진리의 영의 안내와 도움을 받으며 육신의 욕구를 제어할 때 비로서 갈 수 있는 길입니다. 바로 그 길을 오롯이 가는 것이 빚을 갚는 방법입니다. 그 길 위에서 사람이 보이고 사랑이 자랄 것입니다. 광야와 메마른 땅이 기뻐하며 모든 장애와 상처가 온전해지고 어우러져 해방의 춤을 출 것입니다.(사 35)

생명의 길을 감으로 빚을 갚는 환희의 오늘이기를. 사물화로 죽어가던 것들을 사랑으로 되살리는 성령의 사건이 일어나는 이날이기를.

김상기 목사(백합교회)  webmaster@ecumen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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