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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빈에 대한 오해와 진실칼빈의 삶과 신학 (2)
최영 소장(기독교장로회 목회와신학연구소) | 승인 2019.05.04 20:03

교회사에서 칼빈만큼 높이 평가되거나 혹은 천박하게 멸시당한 사람도 없을 것입니다. 많은 개신교인들을 포함하여 대부분의 기독 교인들은 그에 대하여 다음의 두 가지 사실은 확실히 알고 있습니다. 그가 “이중 예정의 교리”를 주장했고, 세르베투스를 화형에 처했다 는 것입니다.

▲ 존 칼빈 ⓒGetty Image

두 가지 모두 진실인 이러한 사실로부터 칼빈의 왜곡된 인물론이 나왔습니다. 개신교의 당당한 종교재판관, 제네바의 잔인 한 독재자, 음울􏰀고 모질고 완전히 비인간적인 인물이라는 것이 칼빈에 대한 대체적인 인물평입니다. 이 왜곡된 이미지는 이미 칼빈 자신의 시대로부터 생겨났으며, 다음과 같은 몇몇 사람들이 부정적인 이미지를 만드는데 영향을 주었습니다.

피에르 카롤리(Pierre Caroli)

카롤리는 프랑스 북부지방 출신으로, 박해를 피해서 제네바로 망명한 인물이며, 신학적인 문제로 가장 먼저 칼빈과 기욤 파렐을 공격 했던 사람입니다. 놀랍게도 칼빈과 파렐은 삼위일체 교리를 부정했다는 비난을 받았습니다. 1531년에 세르베투스는 『삼위일체의 오류에 관하여』라는 작은 책을 출판했는데, 칼빈이 세르베투스의 제자라고 공격을 받았던 것입니다.

그렇게 모함했던 사람이 카롤리였습니다. 1536-38년 동안 카롤리의 모략은 제네바 교회에 큰 혼란을 일으켰고, 제네바의 개혁자들에게 큰 상처를 주었습니다. 칼빈이 반삼위일체주의자인 세르베투스에 대해서 엄격하게 대응한 것도 카롤리의 비난과 관련이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1)

제롬 볼섹(Jerome Bolsec)

볼섹은 전에는 카르멜 수사였으나 개신교로 전향했다가 다시 가톨릭에로 돌아갔던 사람입니다. 그는 종교개혁으로 전향한 뒤 제네바에서 목사들의 모임에 참여하는 등 활발한 활동을 하였습니다. 그는 칼빈의 신학􏰁에 전체적으로는 동의􏰀하였지만, 그의 예정론에 대해서는 크게 반대하였습니다.

예정론은 계시에 근거한 것이 아니며, 성경을 잘못 해석했기 때문에 그런 주장이 나왔다는 것입니다. 그는 1551년 10월 16일에 열렸던 목사들의 모임에서 칼빈의 예정론을 격렬하게 공격했고, 칼빈은 그와 격렬한 논쟁에 들어갔습니다. 그리고 같은 해 12월 18일, 칼빈은 “하나님의 영원한 선택”, “뻔뻔하􏰀게 자신의 독을 토해내는 거짓교리의 파종자의 오류를 반박함”이라는 주제로 목사들의 모임을 주재하였고, 그리고 같은 달 23일, 볼섹은 제네바로부터 추방을 선고받게 되었습니다.

그 후 볼섹은 로마 가톨릭에 다시 돌아가서 1577년에 『칼빈의 생애』를 출판하고 거기서 칼빈을 교만􏰀고 허풍쟁이며 잔인􏰀고 복수에 불타며, 특히 무지한 사람으로 소개했습니다. 볼섹의 책은 가톨릭의 험담가들이 칼빈을 공격할 때 사용􏰀는 무기고 역할을 하였습니다.(2)

카스텔리오(Sebastian Castellio)

카스텔리오는 리용에서 인문주의자로서 종교개혁에 가담했다가 박해를 피해 1540년, 칼빈이 체류􏰀고 있던 스트라스부르에 갔습니 다. 그는 거기서 칼빈과 같은 집에 기거하며 칼빈과 우정을 나눴습니 다. 그리고 카스텔리오는 칼빈보다 먼저 대학􏰁교수로 제네바의 부름 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1543년에, 칼빈에게 제네바 인근 교회의 목사로 임명해줄 것을 요청했다가 거절당하자, 칼빈에게 적대적으로 돌아섰습니다. 칼빈은 두 가지 이유로 그의 임명을 반대했습니다. 카스텔리오가 ‘아가서’의 영감설을 부인했고, 그 책이 정경으로 채택된 것에 대해서 유감으로 여겼기 때문입니다.

또 􏰀하나는 그가 사도신경에 기록된 “음부에 내려가시고”라는 본문에 대한 칼빈의 해석을 비판했다는 점입니다. 칼빈은 성경 중의 한 책의 영감에 대해 겨냥된 의혹은 성경 전체의 영감설을 해칠 수 있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종교개혁의 근본 원리 중의 􏰀하나가 동요될 수 있다고 본 것입니다. 이후 카스텔리오는 칼빈의 성경해석을 비판하기 시작했고, 세르베투스가 처형당하자, 카스텔리오는 이 모든 책임이 칼빈에게 있다고 주장하기 시작했습니다.

스페인 출신 세르베투스는 『삼위일체의 오류에 관􏰀여』(1531)라는 책에서 아리우스의 견해를 취하􏰀고 그리스도의 신성을 부정했습니다. 그는 1553년에는 『기독교재강요』(Restitutio)를 썼는데, 이것은 칼빈의 『기독교강요』(Institutio)가 세워놓은 것을 다시 세운다는 의미를 지닌 말입니다. 가톨릭 종교재판소는 세르베투스를 체포하여 처형하려고 했지만, 감옥을 탈출한 세르베투스는 제네바에서 체포되어 시의회의 선고에 따라 1553년 10월 27일 화형에 처해졌습니다. 세르베투스의 처형에 충격을 받은 카스텔리오는 칼빈의 인권유린을 비난하는 “칼빈에 대한 고발”을 썼고, “관용에 대한 선언”을 통해 사 상의 자유는 인간의 영원한 권리라고 표명했습니다.(3)

볼테르(Voltaire)

볼테르(1694-1778)는 프랑스 계몽주의를 대표􏰀는 문필가로서 평생을 낡은 제도와 정치적 불의에 맞서 비판의 칼날을 멈추지 않았던 자유인이었습니다. 그가 1763년에 쓴 『관용론』(Traité sur la tolérance)은 종교적 편견 때문에 무고한 노인을 􏰂능지처참한 장 칼라스 사건 (1761)에 대한 항거의 결과입니다. 그의 종교비판은 가톨릭교회의 영역을 넘어, 교조적인 신앙에 사로잡혀 보편성을 상실한 당대의 칼빈주의자들에게도 향했습니다.

그는 그가 경험한 칼빈주의자들의 종교적 맹신의 모습을 보면서, 210년 전의 칼빈을 이해했습니다. 세르베투스를 화형에 처한 제네바의 칼빈을 관용을 모르는 교조적인 종교권력의 화신으로 보았던 것입니다.(4)

슈테판 츠바이크(Stefan Zweig)

카스텔리오의 칼빈에 대한 견해를 극적으로 증폭시킨 인물이 츠바이크입니다. 그는 1936년, 국가 사회주의 체제 동안에 『폭력에 맞 서는 양심, 칼빈에 맞서는 카스텔리오』라는 제목의 책을 저술하였습니다. 여기서 그는 대단한 문학적 재능과 함께 실제로는 독재자 히틀러를 겨냥하면서 칼빈에 대해 말하였습니다. 이 책은 지난 몇 십년 동 안 칼빈의 이미지를 어둡게 하는데 기여했였습니다.(5)

▲ 슈테판 츠바이크 ⓒGetty Image

칼빈의 성격의 어떤 특성들은 현대인에게 낯설게 보일 수 있을 것 입니다. 그는 그의 삶 전체를 종교개혁에 바친 수도자였고 그래서 극도로 엄격한 행동을 취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다른 이미지를 파악􏰀하려는 노력을 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사람들이 오늘날 칼빈에 대􏰀여 갖고 있는 왜곡된 이미지는 20세기까지 지속되었던 교파들 간의 논쟁들에 기인􏰀기 때문입니다. 무엇보다도 17세기에는 교파들 사이에, 특히 개혁파와 루터파 기독교인들 사이에서 수많은 갈등들이 있었습니다.

수많은 중상모략들, 거짓말들 그리고 거짓된 주장들이 있었습니다. 부정한 일들은 모든 진영에서 저질러졌고, 거기에 개혁교회도 포함됩니다. 이러한 맥락에서 그리고 칼빈주의자들보다 더 유력한 루터교도들의 수많은 저술들을 근거로 􏰀하여 칼빈에 대한 평판이 무엇보다도 독일에서 생겨났습니다.

몇 세기가 지난 오늘날까지도 이 이미지는 약화된 형태로 교회사의 수많은 저서들과 대중 서적들에서 살아 있고 지속되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편견들에 좌우되지 않고 칼빈이 어떻게 살았고, 가르쳤으며 활동했는가를 보다 더 정확􏰀게 바라보고 문제를 제기􏰀는 것은 좋은 일입니다.

미주

(미주 1) 장 카디에/이오갑 옮김, 『칼빈, 하나님이 길들인 사람』(서울: 대한기독교서회, 1995), 99-103.
(미주 2) Ibid., 155이􏰀하.
(미주 3) Ibid., 152-155.
(미주 4) Ibid., 175이하.
(미주 5) 이재천 편집, 『칼빈의 신앙유산과 오늘의 개혁교회』(서울: 한국기독교장로회출판사, 2009), 88-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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