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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레이는 관계김상기 목사와 함께 하는 <성서와 위로>
김상기 목사(백합교회) | 승인 2019.05.05 17:46
야훼의 이름을 부르는 사람은 누구든지 구원을 얻으리라. 야훼께서 말씀하신 대로 시온 산과 예루살렘에는 구원이  있으리니, 곧 야훼께서 부르신 생존자들 가운데 (있을 것이다).(욜 2,32)

야훼의 이름을 부른다는 것이 구원의 의미를 갖는다면, 그것은 어떤 것일런지요? 야훼를 기억하고 말 그대로 그 이름을 부르기만 하면 되는 것인지요? 때로는 그렇게 하는 것만도 작은 일일 수 없는 때가 있습니다.

예컨대 야훼가 탄압과 박해의 원인이 되던지 아니면 모두가 그를 버렸을 때입니다. 그때에는 위험을 감수하거나 조롱과 모욕을 견뎌낼 용기와 야훼에 대한 굳은 신뢰가 정말 필요할 것입니다. 이 두 가지 상황은 우리가 부딪히는 보통의 상황이 아니지만, 야훼의 이름을 부른다는 것은 자신의 존재를 걸고 하는 행위임을 알려줍니다.

이것은 평범한 우리 일상에서 야훼의 이름을 부를 때에도 적용되어야 하지 않을까요? 그렇다면 야훼의 이름을 부르는 것은 존재를 거는 행위입니다.

▲ 하나님과 그의 백성 간의 만남은 설레이는 것이어야 한다. ⓒGetty Image

이렇게 보면 주께서 그의 이름으로 능력과 기적을 행했다고 자랑하던 자들에게  불법을 행하는 자들이라고 모질게 말씀하셨던 까닭을 조금이나마 짐작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불법을 저지르는 이유는 일반적으로 선한 것일리 없습니다. 자신의 이익을 위해 타인을 도구화하고 희생시키는 것이 불법의 내용입니다.

주의 이름을 부르면서 주를 경외하지 않을 수 있다니 놀랍습니다. 주를 경외한다면, 악을 미워하고 악을 멀리하는 것이 마땅한데, 불법을 행하다니, 그러한 사람이 주의 이름을 부른다고 해서 그가 주를 경외하는 것이 아님은 당연한 귀결입니다.

마음과 뜻과 힘을 다해 삶으로 주의 이름을 부를 때 주께서는 구원으로 응답하시며 그들을 부르실 것입니다. 서로 부름에 응답하여 부르는 관계. 생각만해도 설레이는 관계입니다.

이러한 관계를 살고 기뻐하는 오늘이기를. 야훼의 이름을 부르며 정의와 평화와 사랑의 길을 가는 이날이기를.

김상기 목사(백합교회)  webmaster@ecumen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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