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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삐뚤삐뚤한 글씨로 쓴 진리”살며 묵상하며
하태혁 목사(단해감리교회) | 승인 2019.05.06 17:30
“아무도 보아 주지 않는 들꽃의 겉모습에도 그토록 정성을 들이시는데, 하물며 하나님께서 너희를 돌보시고 자랑스러워하시며, 너희를 위해 최선을 다하시지 않겠느냐? 나는 지금 너희로 여유를 갖게 하려는 것이며, 손에 넣는 데 온통 정신을 빼앗기지 않게 해서, 베푸시는 하나님께 반응하도록 하려는 것이다. … 너희는 하나님이 실체가 되시고, 하나님이 주도하시며, 하나님이 공급하시는 삶에 흠뻑 젖어 살아라. 뭔가 놓칠까 봐 걱정하지 마라. 너희 매일의 삶에 필요한 것은 모두 채워 주실 것이다. 하나님께서 바로 지금 하고 계신 일에 온전히 집중하여라. 내일 있을지 없을지도 모르는 일로 동요하지 마라. 어떠한 어려운 일이 닥쳐도 막상 그때가 되면 하나님께서 감당할 힘을 주실 것이다.”(마태복음 6:30~34/메시지성경)
“… 그러므로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고 걱정하지 말아라. 이 모든 것은 모두 이방 사람들이 구하는 것이요, 너희의 아버지께서는,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필요하다는 것을 아신다. 너희는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하나님의 의를 구하여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여 주실 것이다. 그러므로 내일 일을 걱정하지 말아라. 내일 걱정은 내일이 맡아서 할 것이다. 한 날의 괴로움은 그 날에 겪는 것으로 족하다.”(마태복음 6:30~34/새번역)

‘나라’로 번역한 바실레이아는 통치를 의미합니다. 하나님의 나라가 주님의 뜻이 이뤄지고 있는 통치영역을 의미한다면, 그 나라는 멀지 않습니다. “회개하여라, 하늘 나라가 가까이 왔다”(마4:17)는 말씀 역시, 삶의 방식을 돌이켜 우리 가운데 시작된 하나님 뜻(나라)을 따라 살아가라는 초대입니다.

그렇다면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구하라”는 말씀 역시 다르게 다가옵니다. 여기에 없는 나라와 의를 요청하라는 뜻이 아닙니다. 이미 시작된 그 나라의 뜻과 의를 구하고, 그에 복종하며 함께 이뤄가자는 부르심입니다. 이미 시작된 그 나라에 우선적인 관심을 갖고 참여하라는 뜻입니다.

그 나라와 의, 그 뜻과 길을 먼저 구한다, 구체적으로 어떻게 하는 것일까? 하나님의 뜻을 묻고 또 물을 때가 있습니다. 그런데 확실한 대답이 잘 들리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어느 길인지 확신이 서지 않을 때가 분명 있습니다. 그러나 적지 않은 경우, 하나님의 뜻은 단순합니다. 네 이웃을 네 몸처럼 사랑하고 하나님을 사랑하는 길입니다. 너무나 분명한 하나님의 뜻에 얼마나 순종하려고 애썼는지. 어떻게 하면 하나님과 이웃을 더 사랑할 수 있냐고 물어오고, 그 제목으로 작정기도 하는 경우가 얼마나 됩니까? 어느 길이 더 성공적인지, 더 안전한 지만 묻고 또 묻는 것은 아닙니까.

▲ Base Jump@Rio De Janeiro

사실은 그 뜻에 온전히 순종하는 삶만큼이나 중요한 삶이 있습니다. 먼저 그 나라와 의를 구하는 삶 그 자체입니다. 구하는 삶은 겸손합니다.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의가 무엇인지 잘 모른다는 것을 인정합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뜻과 의로 타자를 쉽게 정죄하지 못합니다. 그래서 매 순간 겸손히 주님께 묻습니다. 자신이 알고 있다고 판단한 모든 가치를 내려놓습니다. 자주 물어야 하니 하나님과 계속 동행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니 그 사람의 삶에서 하나님은 그 무엇보다 구체적인 실체입니다. 매 순간까지는 아니어도, 무수히 주님께 집중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주님 주시는 힘에 의지해 살아가고 매 순간 공급해주시는 주님을 경험하며 살아갑니다. 얼마나 정확히 깨달아서 순종하느냐보다, 주님께 몰입된 삶의 자세 그 자체가 축복입니다. 무엇을 잃을까 걱정하기보다 하나님의 임재를 놓칠까 걱정하기 때문입니다.

복음을 전하는 삶으로 부르셨습니다. 복음은 메시지를 전하는 삶 그 이상입니다. 집배원처럼 편지만 전하는 삶이 아닙니다. 자신이 곧 편지요, 메시지입니다. 하나님을 전하는 것만이 아니라 하나님을 경험하는 삶으로 전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과 의를 구하는 삶의 태도를 전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함께 동행하는 사람의 눈빛, 표정, 음성, 몸짓을 선사하는 삶입니다. 정답이나 대답이 아니라 삶의 태도를, 경험을 선물하는 삶입니다. 삐뚤삐뚤한 삶도 하나님의 사랑을 보여주는 글씨일 수 있습니다.

하태혁 목사(단해감리교회)  devi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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