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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친 베옷을 입더라도 옥을 품는다” - 被褐懷玉도덕경과 마가복음을 묵상하면서 70
이병일 목사(광주무등교회) | 승인 2019.05.06 17:33
“내 말은 매우 알기 쉽고, 행하기도 매우 쉽지만, 천하에 능히 아는 자가 없고, 능히 행하는 자가 없다. (내) 말에는 근본이 있고, 일에는 君子가 있으나, 대저 오로지 알지 못하므로 내가 알지 못한다고 한다. 나를 아는 자가 드무니, 곧 나는 귀한 자다. 이럼으로써 성인은 거친 베옷을 입더라도 옥(德)을 품었다고 한다.”
- 노자, 『도덕경』, 70장
吾言甚易知, 甚易行, 天下莫能知, 莫能行, 言有宗, 事有君, 夫唯無知, 是以不我知, 知我者希, 則我者貴, 是以聖人被褐懷玉

노자는 인위적인 수단을 쓰지 않는 정치가 실제로 잘 다스리는 길이며 인민을 사랑하는 길이라고 강조한다. 그러나 무위의 도를 아무도 받아들이지 않는 현실을 개탄하고 있다. 노자는 언제나 소박한 통나무와 같이, 혹은 영아나 어린아이 같이 유순하고, 텅 빈 계곡처럼 고요하며 아무 하는 일 없는 것 같지만 스스로 그러한 원리를 따라 사는 삶을 말하지만 사람들은 한결같이 명분과 이익만 추구하거나 화려한 외모나 형식에 더욱 치중하고 있다.

사람들이 노자를 알아주지 않거나 노자의 길을 따르지 않는 것은 노자의 도에 이익이나 벼슬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노자의 도를 현실에서 이루는 성인은 거친 베옷을 입는 가난한 삶을 산다. 그러나 속에는 고귀하고 변하지 않는 옥을 품고 있다. 옥은 노자의 덕이다.

장자가 꿰맨 허름한 베옷을 입고 다 떨어진 신을 신고서
위나라 왕을 찾았다.
위나라 왕이 물었다. “선생은 어째서 고달픕니까?”
“나는 가난한 것[貧]이니, 고달픈 것[憊]이 아니다.
선비가 도덕이 있으나 실행하지 못하는 것이 고달픈 것이다.
옷이 헤지거나 신발이 구멍이 난 것은
가난한 것이지, 고달픈 것이 아니다.
지금 어두운 임금과 어지러운 신하 사이에 처해 있으니
아무리 고달프지 않으려 해도 될 수가 있겠소?”
- 장자, “山木” 편

성인은 거친 베옷을 입더라도 옥을 품는다. 가난할지라도 속에는 굳은 심지, 변하지 않는 덕, 항구여일한 진리를 품으라는 말이다. 지금 어려움이나 환란이나 고난을 당할지라도 의지를 굳게 하라는 말이다. 이러한 고민은 결정적인 운명의 순간에 다가와서 선택을 강요한다.

▲ Paul Troger(Austrian Painter, 1698-1762), “Christ comforted by an angel”(c. 1730), Oil on canvas, Museo Diocesano, Camerino. ⓒWikimediaCommons

예수는 자기에게 닥친 죽음의 운명과 치열한 싸움을 한다. 예수는 죽음을 죽어가는 과정으로 체험한다. 죽음이라는 사실뿐 아니라 그 사실을 자신의 내면에 의식화해 나가는 과정도 결국은 혼자서 감당해야 하는 고달픈 일이다. 죽음이라는 현실 앞에서 예수님의 몸과 마음은 ‘죽음 때문에 죽을 지경이었다’라고 말한다.

예수가 땅에 엎드려서 기도하는 모습은 마치 실패하고 무너져서 파멸에 이르는[πίπτω] 것 같이 보인다. 그 기도는 한 마디로 “나는 더 살고 싶다”는 생존의 본능뿐 아니라 자신이 가려는 길에서 하느님 나라는 선포하고 인류를 구원하는 방법이 죽음만이 유일한 선택인지를 확인하려는 희원이다. 다른 생명을 살리기 위해서 내가 꼭 죽어야만 하는지를 확인하고 싶은 열망이다.

겟세마네 기도는 예수의 신적인 속성이 아니라 인간적인 나약함을 그대로 드러내면서도 인간의 한계에서 맛볼 수 있는 처절한 아픔을 극복하고 초월하면서 승화된 인간성의 극치를 보여준다. 결국 예수는 죽어서 거친 베옷을 입을지라도 자기 속에 하느님 나라와 생명의 구원을 위한 옥을 품고 그 길을 간다.

“죽음의 그림자가 다가오는 순간, 연약한 육체의 한계에도 불구하고 그 한계의 현실을 껴안고 기도로써 자신의 운명과 싸워야 하는 실존에 동참한 예수님은 제자들의 한계 또한 동정하고 이해하였습니다. 세 번의 간곡한 당부의 말에도 불구하고 잠들어버린 제자들, 스승은 죽음의 고통을 넘어서기 위해서 몸부림치는 데 나 몰라라 하면서 눈을 뜨지 못하는 제자들을 언제나 그랬듯이 연민이 가득한 마음으로 품어줍니다. 예수님과 제자들이 이루는 하느님 나라를 향한 공동체에서 제자들은 스승에 대한 많은 오해나 몰이해뿐만 아니라 배신, 도망, 부인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은 제자들을 받아들이고 끝까지 가르쳤습니다. 실망하고 포기하지 않고, 인간의 약함을 인정하고, 그 약함으로 인해 지친 제자들을 측은하게 여기고 동정하였습니다. 죽음의 그림자가 눈앞에 다가왔을 때에도 ‘이제부터는 자고 쉬어라. 충분하다.’고 말하면서 제자들을 위로합니다. 인간의 약함을 그대로 간직한 제자들의 실패, 한 번이 아니라 반복되는 실패의 경험은 그들을 더욱 굳게 연단하였습니다. 거룩한 영의 임재로 예수님의 가르침과 그들의 오해를 모두 깨달았을 때, 그들은 비로소 예수님의 진정한 제자가 되었습니다. 아픔과 절망의 순간, 위기와 와해의 시간을 이기고 극복한 제자들에 의해 예수님의 꿈을 향한 발걸음이 우리 앞에도 와 있습니다. 겟세마네 이야기에서 우리는 고난이 고통에 머물지 않고, 절망이 희망을 갉아먹지 못하고, 나약함이 포기로 이어지지 않는 가능성과 희망이 바로 연약하고 초라한 인간 속에 잠재해 있음을 느끼고 깨닫습니다. 우리에게 찾아오는 고난과 절망의 순간은 나를 더욱 자라게 하는 거름이 됩니다.”
- 이병일, 『미친 예수』(서울: 도서출판 밥북, 2017), “당신이 바라는 대로” 중에서

이병일 목사(광주무등교회)  dotorikey@yaho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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