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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교회, 누구에게 관대한가천천히 걷자
여상범 목사(제주신흥교회) | 승인 2019.05.10 18:58

에스겔은 사람들이 듣기 싫어하는 말을 꿋꿋하게 전해야 하는 난감한 사명을 부여받게 됩니다. 그런데 그 사람들은 심지어 가시 같고 전갈 같은(6절) 성향의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예레미야에게 “네 발로 일어서라”(1절)며 결단을 요청하셨습니다.

모세에게는 “내가 친히 가리라. 내가 너를 쉬게 하리라.”(출33:14)고 하시던 분이, 에스겔에게는 ‘네 힘으로 알아서 하라’고 요청하시는 것입니다. 조금 불공평해 보이기는 하지만 상황이 서로 다르기에 어쩔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을 향해 귀를 막아버린 사람들에게 좋은 말도 아니고 심판의 메시지를 전해야 하는 이런 상황에서는 결단이 필요한 것입니다.

사실, 이런 메시지는 지금 우리의 상황에서는 바르게 묵상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언제부터인지는 모르겠으나 한국 교회의 대다수가 ‘억지로라도 떠먹이면 나중에 고마워한다’는 식의 전도론을 지지해왔기 때문입니다. 듣는 사람의 상황이나 의견은 무시되기 일쑤였고, 대세에 따르지 않는 ‘마이너리티 리포트’(소수의견)들은 묻혀버리는 것이 당연하게 여겨지지 않았습니까?

우리가 이런 상황에서 살아왔기 때문에, “듣든지 아니 듣든지” 말씀을 선포하라고 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은 심각하게 왜곡되어 들릴 가능성이 있습니다. 남의 말은 전혀 듣지 않고 자기 얘기만 하는 사람들, 남들을 불편하게 하는 말을 거리낌없이 아무 자리에서나 함부로 내뱉는 사람들이 확신 있는 사람인양 행세하는 것이 한국 교회의 현실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성령께서 주시는 능력으로 바르게 분별해야 합니다. 세월호 유가족이나 난민이나 동성애자나 한국 사회에서는 소수인 이슬람교 같은 약자들을 대할 때는 한없이 잔인하면서, 성폭력 범죄자, 교회세습자, 부정부패로 고발당한 자들에게 대해서는 한없이 관대한 것이 한국 교회입니다. 이런 현실에서 진정으로 “듣든지 아니 듣든지” 하나님의 메시지를 전하는 사람이 누구이겠습니까?

▲ 시리아 난민 ⓒ유엔난민기구(UNHCR) 제공

분별하기를 포기해 버리면 마음은 편안해지겠지만 현실은 불편해지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을 부르실 때는 “악인은 그의 길을, 불의한 자는 그의 생각을 버리고 여호와께로 돌아오라”(사55:7)는 메시지를 함께 내리신다는 것을 잊지 맙시다.

모두가 예언자일 수는 없지만, 분별하는 사람은 적어도 예언자를 죽이는 사람은 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구덩이에 갇혀 죽을 뻔한 예레미야 예언자를 살려낸 구스 출신의 내시 에벳멜렉도 반드시 필요한 사람이 아니었겠습니까?

성령은 감정만 자극하는 존재가 아닙니다. 이성과 감성과 행위 전체를 움직이게 하시는 영이 하나님의 영입니다. 제대로 성령 받은, 제대로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백성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여상범 목사(제주신흥교회)  uptiger@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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