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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양명과 함석헌 사상 비교 연구의 근거와 출발점왕양명의 良知와 함석헌의 씨ㅇㆍㄹ, 생물권정치학(biosphere politics) 시대를 위한 존재사건 (1)
이은선 명예교수(한국 信연구소, 세종대) | 승인 2019.05.11 18:36

3.1운동 백주년 기념과 4.27 판문점선언 1주기 DMZ 인간띠잇기 행사를 많은 사람들의 수고와 참여로 잘 보냈지만 한반도 평화와 통일 문제는 여전히 앞길이 잘 보이지 않는다. 마침 이 시기에 “에큐메니안”(대표 이해학 목사, 운영위원장 윤인중 목사)에서 한나 아렌트에 대한 관심을 보여서 지난 번 오재식 선생과 노옥신 여사의 에큐메니즘 운동의 삶을 그 시각에서 살펴본 글을 실었다. 이번부터는 먼저 함석헌과 왕양명의 삶을 유교와 기독교의 대화의 관점에서 살펴보는 글을 싣기로 했다.

더 이상 의미없는 동·서 이분법

박은식 등을 포함해서 한말 지식인들이 오랜 유교 전통의 조선사회를 개혁하기 위해서 다시 찾고자 한 것이 양명학이었다. 오늘 21세기 동서를 막론하고 다시 많이 찾는 사상가가 한나 아렌트라면 이 둘 사이의 연관성과 유사성을 밝히는 글이 의미를 줄 것이다. 그런데 그에 앞서 먼저 양명의 신유교적 세계관과 다석 유영모를 잇는 함석헌의 사고를 연결시키는 글을 보기로 했다.

보통 아시아의 종교는 자속의 일이고, 기독교는 대속의 종교라고 많이 말하며 둘 사이의 간극을 강조한다. 하지만 그런 인습적인 구분이 특히 오늘날은 더 이상 의미가 없다. 오히려 우리 인류의 삶에 해롭기까지 하다는 것을 보여주고자 한다.

지금 한반도가 마주하고, 그와 함께 인류가 맞이한 위기의 현실을 이 두 문명권의 화합과 연결로써 보다 용기 있게 응대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얼마 전 문재인 대통령의 독일 일간지(FAZ) 글이 “평범함의 위대함”이라는 화두로 한국의 근현대사뿐 아니라 세계 문명사의 방향을 잘 밝혀주었다면, 본 글이 양명과 함석헌을 해석하는 키워드로 내세운 “聖의 평범성의 확대”는 여전히 세계 곳곳에서 동서고금을 통해 진행 중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번 글은 먼저 양명학회와 함석헌 학회가 공동주관한 2013년 학술심포지엄에서 발표되었고, 그 후 본인의 저서 『다른 유교, 다른 기독교, 도서출판모시는사람들, 2016』에 묶어냈다.

왕양명의 ‘용장대오’와 함석헌의 ‘시즈노비 못가’

본 논문은 그 둘 안에 역사적으로 뿐 아니라 내용면에서 많은 연결점과 유사점이 있다고 여겨지는 두 사상가, 중국 명나라의 왕양명과 한국 현대의 함석헌을 비교 연구한 것이다. 특히 그들 삶과 사상의 고유한 출발점과 토대를 양명의 ‘용장대오’(龍場大悟, 1508)와 함석헌의 일본 관동대지진 ‘시즈노비 못가’(1923)에서의 경험으로 본다. 거기서부터 어떻게 이들 삶과 사상이 그 강력한 ‘존재사건’의 경험에 근거해서 정치 사회적으로 급진적으로 전개되어 갔는지를 살펴보려는 것이다.

▲ 왕양명 ⓒWikipedia

양명의 ‘심즉리’(心卽理, 마음이 곧 하늘이다)와 ‘지행합일’(知行合一)의 깨달음은 후에 다시 ‘양지’(良知, 선한 본성)의 발견으로 이어졌다. 이런 일련의 전개 속에서 그는 모든 인간 존재의 초월적 근거를 확신했다. 거기에 근거해서 당시의 학문세계, 정치, 문화, 교육 등의 혁신을 위해서 혼신의 힘을 다했다.

함석헌은 잘 알다시피 동경유학에서 돌아와서 당시 일제의 식민지 아래 놓여있던 조선의 역사를 초월적 ‘뜻’의 역사로 풀어냈다. 거기서 하느님의 ‘고난의 종’의 형상을 읽어내면서 그 역사의 주체를 ‘씨ㅇㆍㄹ’의 민중으로 드러내고자 했다. 이후 이어지는 그의 모든 정치적 저항운동과 정통 기독교신학과 교회로부터의 탈(脫)의 행보는 바로 여기/이곳에서의 존재의 현존을 경험하는 일과 깊이 관련되어 있다고 보았다.

본 연구는 이것을 “聖의 평범성의 확대”라는 말로 의미화 하고자 했고, 바로 초월적(종교적) 존재사건이 가지는 강한 정치적인 파급력의 의미를 드러내고자 한 것이다.

왕양명과 함석헌, 어디서 만날 수 있을까

잘 알다시피 왕양명(王陽明, 1472-1529)은 중국 명나라의 신유교가로서 행정가와 군인, 교육가와 시인 등으로 매우 역동적인 삶을 산 사상가였다. 그는 당시 철저히 관학화 되었고, 주희 식의 차가운 사변이론으로 전락한 유교 전통을 다시 한 번 크게 개혁한 사상가이다.

이에 대해서 함석헌(咸錫憲, 1901-1989)은 20세기 한국이 낳은 뛰어난 기독교 사상가로서 ‘한국의 간디’라는 칭호가 잘 말해주듯이 구한말에 태어나서 3.1운동과 혹독했던 일제의 억압, 해방 후의 혼란과 6.25, 그 후로 이어지는 5.16과 박정희 군사독재를 겪으면서 민족과 나라를 위해서 저술가와 저항운동가, 시인으로 활동했던 “동서종교사상을 한 몸 안에 융섭한 위대한 혼”의 사상가이다.(1) 지금까지 이 둘 각자에 대한 연구는 많이 이루어져 왔지만 이렇게 이 두 사상가를 함께 연결하여 살펴보는 일은 이제 막 시작되었다.

이 둘의 비교연구의 타당성을 여러 가지로 들 수 있다. 16세기 양명학이 조선 땅에서 ‘불행한 만남’으로 시작되긴 했지만 이후 강화의 정하곡(鄭霞谷, 1649-1736)과 같은 뛰어난 학자를 배출할 정도로 한국 땅에서 전개되었다. 특히 조선조 말의 실학의 발생과 천주교 서학과의 만남에서 양명학이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이 지적되고 있는 것을 보면,(2) 함석헌이 20세기의 시작에서 기독교의 개혁정신을 받아들였고, 또한 일본 유학에서 큰 영향을 받은 무교회주의자 우찌무라 간조가 일본 양명학의 비조인 나가에 도쥬(中江藤樹, 1608-1648)의 정신과 맞닿아 있다는 지적 등은 두 사람을 연결시킬 수 있는 좋은 근거라고 할 수 있다.(3)

본인도 함석헌 사상이 지금까지 주로 노자나 장자 등의 도교와의 관련 속에서만 동양사상적으로 의미 지어져 왔지만, 그러나 그 보다 더 근본적으로 그 사상을 형성하는 뿌리는 유교였다고 지적했다.(4) 그가 비록 구체적인 언어로써 그 영향을 의식하고 밝히는 부분은 적지만, 구한말 평안북도 용천에서 대가족의 어진 부모님 밑에서 태어나고 자라면서 받은 유교적 영향은 크고도 깊었으며, 그 삶에 대한 여러 가지 내러티브들이 좋은 증거라고 생각한다. 여기에 더해서 1921년 오산학교로 편입해서 만난 이승훈 선생과 특히 유영모 선생이 양명학을 매우 친애했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므로 이 둘의 비교 연구는 무리가 아니라고 본다.

▲ 함석헌

2011년 사회학자 송호근은 조선조 유교의 역사와 특히 조선조 말 동학의 등장과 서학의 유입이라는 시간을 “인민의 탄생”이라는 화두로 정리했다.(5) 이 정리에 일면 동의하는 바이지만 나는 그가 파악하는 것보다 훨씬 더 적극적으로 조선 유교가 한국인들의 인간화와 ‘인민의 탄생’(민주화)에 기여했다고 보는 입장이다. 즉 유교가 가지고 있는 초월(하늘, 聖)의 강력한 내재화의 능력(天命, 理一分數, 性卽理/心卽理, 人物性同異論 등)은 삶의 모든 영역을 성화(聖化)하고 예화(禮化)하고자 하는 기도로 나타났다.

이 조선조 유교화의 기도가 비록 신분제에 묶이고, 특히 여성들에게는 매우 차별적으로 적용되었다 하더라도 이를 통한 인민층의 확대와 근대적 자아의식의 성장에 크게 기여했다고 보는 입장을 말한다. 나는 이러한 전개를 특히 유교적 포스트모던적 종교성(“a secular religiosity”)에 근거한 “聖의 평범성의 확대”라고 파악하였다.(6) 이러한 유교적 기반이 있었음으로 인해서 서구 기독교가 유입되었을 때에 보다 크게 번성할 수 있었고, 그와 더불어 근대적 자아의식의 확립이 용이했음을 말하는 것이다.

또한 ‘중세’ 유교와 ‘근대’ 기독교의 관계가 송호근 교수도 포함해서 많은 서구식 의식의 학자들이 파악하는 것처럼 그렇게 양자택일적이고 반목적이지 않았다는 것을 말하고자 한다.(7)

본 연구가 양명과 함석헌의 사상을 이해하는 것도 이러한 맥락에서이다. 이 둘의 의미를 한 마디로 그들 삶과 사고에서 내보이는 “존재사건의 정치적 함의”로 정리해 낼 수 있다고 생각한다.(8) 즉 이들을 모두 나름의 ‘종교’ 사상가로  본다는 의미인데, 기독교 사상가인 함석헌뿐 아니라 신유교가인 양명도 나름의 방식으로 일종의 신비적 존재 체험가로 이해하는 것을 말한다.

즉 이 둘 모두는 자신들의 심도 깊은 ‘세계 의미물음’(Sinn-Sein Frage)의 추구 가운데서 존재의 핵심과 만남을 체험했다. 이러한 존재체험이 이후 이어지는 그들 활동의 중요한 근간이 되었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그런 뜻에서 이들에게서 종교와 정치, 존재와 윤리, 사고와 실천 등은 결코 둘로 나누어질 수 없다.

그렇게 그들은 매우 통합적이고 전일적인 삶과 사고의 사상가들이었음을 말한다. 이들 사고와 실천의 급진성과 저항성, 이들 사고의 “근본적인 민중주의적 성향”은 바로 그러한 깊이 있는 존재와의 조우가 밑받침되었다. 근본이 정립된 경우라는 것을 말하는 의미이다.(9)

존재의 가치를 밝혀야 하는 시대

오늘 우리 시대도 이러한 근본을 밝혀주는 사상가들이 긴급히 요청된다고 생각한다. 오늘 우리 시대도 그들의 시대만큼이나 각종 실리주의와 도구주의로 세상의 모든 것이 도구화되고 수단화되어서 존재의 무의미성의 고리가 한없이 이어지고 있다. 양명과 함석헌이 나름의 경험에서 존재의 내재적 가치를 발견하고, 그 가치에 근거해서 인간 삶과 생명과 우주의 가치를 웅변적으로 대변했다면 그러한 존재사건이 오늘 우리에게도 긴요하다고 본다.

이에 본 연구는 크게 세 단계로 나누어서 이들 경험과 사상의 전개가 어떻게 이루어졌는지를 살피보고자 한다. 그 과정 속에서 드러나는 통찰과 실천이 오늘 우리에게 어떤 의미를 줄 수 있는지를 말해보고자 하는 것이다.

그 세 단계란 첫 번째, 양명이 용장대오에서 득한 ‘심즉리’(心卽理)의 체험과 함석헌이 1923년 관동대지진을 겪으면서 동경 “시즈노비 못가”에서 맞이한 생명 체험 등을 중심으로 한 이들 사고의 출발점으로서 존재체험에 관한 물음이다. 둘째, 이 존재체험에 근거해서 그들이 기성의 가치체계에 도전하고 저항하면서 제시하는 새로운 정치·사회적 대안에 관한 물음이다. 마지막 세 번째 단계로서 이들 삶과 사상의 정점으로서의 종교, 정치, 교육·문화 등의 대통합적 사고와 세계의미물음에 대한 나름의 최종적 대안제시에 관한 것이다.

본인은 여기서 오늘 우리 시대를 ‘생물권 정치학’(Biosphere Politics)의 시대라고 이름 지었다. 이것은 오늘 우리 시대의 문제가 단지 인간의 문제만이 아니라 전 생물권의 우주 생태적 문제라는 의식을 표현한 것이다.(10) 오늘 우리 시대의 위기는 “단지 인식론의 위기가 아니라 존재론의 위기”(a crisis of ontology, not just of epistemology)라는 지적대로(11) 아무리 하찮은 존재라도 그 존재가 가지는 내재적 차원의 의미를 지지해줄 존재론적 근거가 요청되는 시대가 되었고, 두 사상가가 만난 존재 사건들이 가지는 의미가 우리 시대를 위해서 좋은 의미가 된다고 생각한다.

(다음 호에 계속)

미주

(미주 1) 김경재, 「함석헌의 종교사상」, 『씨ㅇㄹ의 소리』, 100호, 1988.4, 강돈구, 「유영모 종교 사상의 계보와 종교 사상사적 의의」, 김흥호·이정배 편, 『多夕 유영모의 동양사상과 신학』, 솔, 2002, 369쪽 재인용.
(미주 2) 류승국, 「한국 근대사상사에서 양명학의 역할」, 『한국 사상의 연원과 역사적 전망』, 유교문화연구소 유교문화연구총서 10, 2009, 417-442쪽.
(미주 3) 최재목, 「咸錫憲과 陽明學」,『陽明學』제32호, 2012.8, 164쪽.
(미주 4) 이은선, 仁의 사도 함석헌 사상의 유교적 뿌리에 대하여」로『陽明學』제33호, 2012.12, 295쪽 이하.
(미주 5) 송호근, 『인민의 탄생』, 민음사 2012.
(미주 6) 이은선, 「유교와 기독교-그 만남의 필요성과 의미」,『유교, 기독교 그리고 페미니즘』, 지식산업사, 2003, 26쪽 이하; 이은선,「종교문화적 다원성과 한국 여성신학」,『한국 생물生物 여성영성의 신학』, 도서출판 모시는 사람들, 2011, 29쪽 이하.
(미주 7) 이은선, 「21세기 한국 여성리더십에서의 유교와 기독교 I」, 『東洋哲學硏究』, 제62집, 2010.5, 205-242쪽.
(미주 8) 프레드 달마이어, 『다른 하이데거』, 신충식 옮김, 문학과 지성사, 2011, 00쪽.
(미주 9) 리처드 J. 번스타인, 『한나 아렌트와 유대인 문제』, 김선욱 옮김, 아모르 문디, 2009, 107쪽.
(미주 10) 이은선, 『생물권 정치학 시대에서의 정치와 교육-한나 아렌트와 유교와의 대화 속에서』, 도서출판 모시는 사람들, 2013.
(미주 11) Neil L. Whitehead and Michael Wesch(eds.), Human no more-Digital Subjectivities, Unhuman Subjects and the End of Anthropology, University Press of Colorado, 2012, p. 218.

이은선 명예교수(한국 信연구소, 세종대)  leeus@sejong.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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