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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통 앞에 에돔 같지 않기를김상기 목사와 함께 하는 <성서와 위로>
김상기 목사(백합교회) | 승인 2019.05.12 18:45
너는 형제의 날 곧 그의 재앙의 날에 방관하지 말았어야 했고 유다 자손이 패망하는 날 그들(이 당하는 것)을 기뻐해서는 안됐고 고난의 날에 입을 크게 벌리지 말았어야 했다.(오바댜 1,12)

에돔은 일찌기 이스라엘이 마침내 광야를 떠나 가나안 여정을 시작했을 때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 피해 가야 했던 곳입니다. 형제국이라는 이유때문이었습니다. 조상들의 미움과 갈등을 넘어 서로의 공존과 평화의 발판이 마련된 셈이었습니다.

그렇다고 그 관계가 역사 속에서 계속 유지되리라고 생각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앗시리아 같은 강대국의 침입에 대해 양자는 정반대의 정책을 펼치고 대립하기도 합니다. 오바댜가 지금과 같은 말을 하기까지 어떤 역사가 있었던지 그의 말에는 배신감과 서러움과 분노가 섞여 있습니다.

에돔은 형제의 나라로 간주됩니다. 그러나 그 나라는 이스라엘이 강대국에 유린당하고 처참히 무너질 때 약탈자들과 다르지 않은 태도를 취했습니다.

▲ Govert Flinck(1615&#8211;1660), “Isaac blessing Jacob”(1638), Oil on canvas ⓒWikiCommons

개인과 집단은 물론 다릅니다. 그럼에도 기본적인 감성, 기대, 규범은 연속성을 갖습니다. 그 가운데 하나가 고통당하는 이에 대한 공감 능력입니다.

비교의 순서는 다르지만 잠 25,24는 폭력과 수탈을 공감의 부재 관점에서 언급하고 있습니다. 옷을 빼앗아 가는 것이 채권자의 권리일지 모르지만 추운 날 빼앗아간다면, 그것은 마음이 상한 자 앞에서 즐거운 노래를 부르는 것에 비교합니다. 이는 소다에 식초를 부을 때 폭발하는 것처럼 분노를 일으킬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비참한 처지를 불쌍히 여기지는 못할 망정 고소해하고 박장대소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비록 이스라엘이 심판당한다고 해도 그 고통에 이처럼 공감할 줄 모르는 에돔은 하나님을 그토록 분노케 했고 하나님은 그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그 까닭은 불행당한 자를 불쌍히 여기고 그에 따라 행동하는 능력이 개인과 지역과 인종과 국가를 넘어서는 보편적인 감정과 능력이기 때문일 것입니다. 하나님은 여기에서 사람됨과 사람임을 보십니다. 집단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주님을 따르며 공감행동능력이 커져 가는 오늘이기를. 북을 대하는 '우리'가 마치 에돔처럼 되지 않기를 비는 이날이기를.

김상기 목사(백합교회)  webmaster@ecumen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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