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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념이 어떻게 안 변할 수가 있니?!코젤렉의 개념사 사전 11-15권 번역되어 출판
이정훈 | 승인 2019.05.21 19:33

일상에서 자주 쓰는 말 중에 “개념”이라는 단어가 있다. 국어사전을 찾아보면 “어떤 사물이나 현상에 대한 일반적인 지식” 혹은 “사회과학분야에서, 구체적인 사회적 사실들에서 귀납하여 일반화한 추상적인 사람들의 생각”, “여러 관념 속에서 공통된 요소를 뽑아내어 종합하여서 얻은 하나의 보편적인 관념” 등으로 풀이해 놓았다. 쉽게 읽혀야 할 사전이 더 어렵게 느껴진다.

고정된 개념은 없다?

쉽게 말하면 이런 것이다. 가령 ‘정의’라는 단어를 누군가 듣게 된다면 머리속에 딱 하고 떠오르는 그런 것이다. 문제는 이런 개념이 추상적인 영역이라 많은 사람이 공유하고 있지만 백이면 백 다 같은 생각을 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또한 처음 한 단어 혹은 개념이 역사 속에 등장하고 시간의 풍상을 겪으면 그 개념은 처음부터 끝까지 똑같은 것으로 사용되지 않는다. 즉 역사의 흐름에 따라 변화를 겪는다. 처음 생겨났을 때는 이런 뜻으로 사람들이 생각했다가 시간이 흘러 후대 사람들은 다른 뜻으로 혹은 뜻을 더 첨가해 사용하게 된다.

가령, “철없는 사람”이라는 말이 원래 농경 시대에 처음 생겨난 말이었다. 고대 농경시대 먹거리이자 생활수단이었던 농업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날씨 혹은 계절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철이 없다는 말은 계절의 변화를 모르는 사람이라는 뜻이었다.

하지만 현재에는 “사리를 분별할 만한 지각이 없다”는 뜻으로 쓰인다. 대동소이 하게 보일 수 있는 부분이었지만 농경사회에서 산업사회로의 진입이라는 거대한 사회변화를 겪으면 뜻이 변화된 지극히 평범한 예이다. 우리가 사용하는 일상어들 중에 이런 용례는 수도 없이 많다.

개념의 변천은 정치·사회적인 변동과 맞물린다

여기서 개념사가 등장하는 부분이다. 처음에는 생겨났던 말이 후대에는 왜 이렇게 변화되어 쓰이게 되었을까 하는 간단한 질문을 던지게 되면 역사적 변천 과정을 추적해 들어가면 보이게 된다. 그리고 역사적 변천 과정을 겪을 수밖에 없었던 사회·정치적 상황과 맞닿뜨릴 수 있게 된다.

▲ 한린대학교 한림과학원의 주관 아래 번역되고 있는 『코젤렉의 개념사 사전』 5권이 출판되었다. ⓒ푸른역사 제공

이러한 개념의 역사를 추적한 책이 바로 작고한 독일의 역사학자 ‘라인하르트 코젤렉’(Reinhart Koselleck, 1923-2006)을 주축으로 철학·신학·법학·경제학 분야 등의 학자들이 망라되어 100여명이 함께 연구하고 출판한 Geschichtliche Grundbegriffe: Historisches Lexikon zur politisch-sozialen Sprache in Deutschland이다. 번역하자면 “역사적 기본 개념들: 독일 정치·사회 언어에 관한 역사적 사전”이다. 한국어로는 『코젤렉의 개념사 사전』이라는 제하로 2010년부터 번역 출판되기 시작해 현재 15권까지 출판되었다. 한림대학교 한림과학원 주도 하에 번역이 이루어지고 있다.

이 코젤렉의 개념사 사전은 코젤렉의 주도 아래 총 115개의 주제어(기본 개념 항목)에 대해 조사해 추적하고 연구해 집필된 사전이다. 1972년 첫 권이 세상에 빛을 본 이래 1997년 마지막 8권이 출판되기까지 무려 25년의 세월이 소요된 ‘대작’이라는 용어가 전혀 무색하지 않은 책이다. 독일어로 총 7000여쪽에 걸쳐 서술된 이 개념사 사전은 일부 개념들은 하나의 기본 개념 항목으로 통합되어 서술되기도 해 120개가 넘는 기본 개념을 다루고 있다.

각 개념 항목의 서술은 평균 57쪽이 넘으며, 그 중에는 300쪽에 달하는 항목도 있다. 언급한 바와 같이 학제 간 연구의 성과물이기 때문에 상당수의 항목들이 단일 저자가 아닌, 여러 명의 전문가들에 의해 공동으로 작성되었다. 이 사전에 대해 학계에서는 “20세기 후반 서양 역사학계의 최대의 성과”라는 찬사가 따라다닌다.

라인하르트 코젤렉의 관심이 서양 근대과 독일이라는 주제에 천착해 있기 때문에 연구 범위가 독일어권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긴 하지만 고대 그리스와 로마로부터 중세 유럽을 포함, 근대 영국과 프랑스 그리고 때에 따라서는 이탈리아 등의 유럽 전체를 다루고 있기도 하다. 이 개념사 사전이 뿐만 아니라 사전 번역은 어느 학자의 표현을 빌리자면 “절대로 해서는  안 되는 작업”임에도 번역되고 있다는 사실 자체만으로도 한국 인문학계가 박수 받아 마땅한 일이다. 여기에 고대 그리스어, 라틴어, 프랑스어, 영어 등 다양한 언어를 번역하고 있다는 사실 자체만으로도 원저에 버금가는 지난한 작업이다.

다양한 분야, 다양한 학자들이 결집한 개념사

푸른역사에서 지금까지 출판된 책을 출판된 순서로 살펴보면 『문명과 문화』, 『진보』, 『제국주의』, 『전쟁』, 『평화』, 『계몽』, 『자유주의』, 『개혁과 종교개혁』, 『해방』, 『노동과 노동자』, 『위기』, 『혁명』, 『근대적/근대성 근대』, 『보수/보수주의』, 『아나키/아나키즘/아나키스트』 등이다. 뒤의 5권의 책이 이번에 새로 번역되어 출판되었다. 환영할만한 일이다.

이야기를 앞으로 돌리면 어떤 개념의 역사성은 반드시 정치·사회적 갈등과 투쟁을 담지하고 있음을 볼 수밖에 없다. 즉 개념이란 정치·사회·이데올로기적 투쟁과 갈등의 장으로의 역할을 수행하고 있으며 개념을 정의하는 것 자체가 하나의 정치 행위라는 말로 바뀔 수 있다. 불과 몇 주 전에 모 당이 현 여당을 “독재 정부”라고 비판한 것에서도 볼 수 있는 바와 같이 “독재”라는 개념을 둘러싼 개념 투쟁을 벌이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또한 이러한 개념사는 정치적 개념 뿐만 아니라 경제와 사회, 문화와 종교 그리고 일상에 걸친 다양한 개념 연구의 장을 열었다.

또한 이러한 코젤렉의 개념사 사전이 번역되면서 한국 역사에 나타난 개념사를 추적해 출판하는 자극제가 되어 연구되고 출판되고 있다. 한국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학문이나 그 영역에서 사용되고 있는 용어나 개념은 수입일 수밖에 없었다. 특히 한국보다 먼저 근대화를 이룩한 일본의 영향이 일제시대를 통해 지대했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이렇게 이루어진 한국 학문 영역이나 일상 언어의 개념을 추적해 어떤 개념을 사고하고 좀 더 나은 방향으로 생각하도록 도움이 된다면 이 책은 세상에 빛을 본 충분한 이유가 되리라 생각한다. 얇은 부피이지만 다양한 분야가 망라되어 이루어지는 종합선물세트 같은 개념들을 접해본다는 것은 행복한 책읽기가 아닌가 한다. 전체가 아니어도 관심 있는 개념을 선택해 한권 한권 읽어가는 것이 방대한 이 책을 정복해 가는 길이 아닐까 싶다.

이정훈  typology@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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