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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교안, 한국 교회 모순의 결정체우상숭배의 문제(사 36:18-20)
이성훈 목사(명일한움교회) | 승인 2019.05.26 17:31
18 혹시 히스기야가 너희에게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우리를 건지시리라 할지라도 속지 말라 열국의 신들 중에 자기의 땅을 앗수르 왕의 손에서 건진 자가 있느냐 19 하맛과 아르밧의 신들이 어디 있느냐 스발와임의 신들이 어디 있느냐 그들이 사마리아를 내 손에서 건졌느냐 20 이 열방의 신들 중에 어떤 신이 자기의 나라를 내 손에서 건져냈기에 여호와가 능히 예루살렘을 내 손에서 건지겠느냐 하셨느니라 하니라

최근에 사회적으로 종교문제가 붉어지고 있습니다. 어지간해서 정치적으로 누군가 개인을 특정 짓는 이야기는 하고 싶지 않았습니다만, 그것이 종교, 특히 우리 개신교와 연결되어 있는 문제라면, 이 문제에 대해서 한 사람의 목회자로 여러분께 설명해드리고 대답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오늘은 우상숭배의 문제에 대해서 함께 말씀을 나눠보려고 합니다.

5월 12일 부처님 오신 날에 자유한국당 대표인 황교안 씨가 경북 영천 은해사에서 열린 봉축법요식에 참석하면서 문제가 생겼습니다. 우선 ‘봉축법요식’이 뭔지를 알아야 이 문제를 조금 더 이야기할 수 있으리라고 봅니다. ‘봉축’은 저희가 일반적으로도 흔하게 사용하는 단어이기에 다 아시겠지만, ‘받들 봉’에 ‘빌 축’을 써서 ‘받들어 축하한다,’ ‘공경하는 마음으로 축하한다.’는 의미가 됩니다.

법요식은 ‘법회 주요 의식(法會 主要 儀式)’의 줄임말이라고 합니다. 부처님의 말씀을 전하는 설법 법회와 불공을 드리는 기도 법회 등등이 법요식 안에 포함된다고 합니다. 간단하게 보자면, 교회에서 ‘예배’라고 부르는 일들이 불교의 ‘법요식’이라고 보입니다. 약간의 차이는 있는 듯도 합니다만 참여해 본 적이 없어서 자세히는 모르겠습니다.

정리해보자면, ‘봉축법요식’은 석가모니의 탄생을 기념하면서, 공경의 마음으로 탄생을 축하하는 불교 예식입니다. 우리의 성탄예배나 부활절예배와 동일한 예식입니다.

문자주의적 신앙의 잣대에서

야당 대표의 태도에 대해서 개인적인 견해를 먼저 말씀드리고 시작할까 합니다. 우리는 오직 하나님을 믿습니다. 그런 우리가 다른 종교의 행사에 참여하는 일은 옳은가?

▲ 자유한국당 황교안 대표가 부처님 오신 날인 5월12일 경북 영천 은해사를 찾아 봉축 법요식에 참석하고 있다. 다른 참석자들이 합장한 후 반배를 올리는 있는 동안 합장을 하지 않고 두 손을 아래로 모으고 있다. ⓒ연합뉴스

제가 말씀드려왔고 전해드리고자 하는 신앙이 아니라, 그 분이 믿고 있는 기독교 신앙 안에서 먼저 생각해보려고 합니다. 그 분이 가진 신앙이 십계명 제2계명인 ‘우상을 만들지 말고, 그것에 절하지 말고, 섬기지 말라’를 문자적으로 그대로 받아들이는 신앙을 가지고 있다면, 그 우상을 숭배하는 집단의 행사에 참여하는 일은 분명 옳지 않은 일입니다.

그런데 이 분은 그런 신앙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보임에도 불구하고 그 행사에 참석했습니다. 자신의 정치적인 이유 때문입니다. 왜 스스로에게 이중잣대를 적용하고 있는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이미 부처님 오신 날 행사에 참여한 순간에 본인이 지켜왔던 문자주의적인 신앙은 깨집니다. 자신의 신앙 안에서 우상이라고 확정해 놓은 부처의 탄생을 기뻐하는 자리에 참석한 사실이 스스로의 신앙을 깨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참석은 했지만, 합장은 안 했으니까 내 종교적 신념은 지켰다는 말은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정치적인 이익을 얻기 위해서 그 자리에 참석한 사실 자체가 이미 본인의 신앙에서 벗어나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성경을 문자적으로만 읽고 받아들이는 신앙태도를 엄청 잘못된 행태라고 말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다만 문자주의적인 신앙을 강조하려면, 성경 전체의 말씀에 따르라는 이야기를 드리고 싶습니다.

어떤 말씀은 시대에 안 맞으니까 의미만을 강조합니다. 구약성경 대부분은 예전부터 무시해왔으니까, 돼지고기나 선지를 먹는 문제는 뒤로 하더라도, 우리가 너무 잘 아는 예수님의 말씀, 공관복음서에 다 나오는 말씀입니다만 마태복음을 인용하자면, “네가 온전하고자 할진대 가서 네 소유를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라(마19:21)” 이 말씀은 왜 안 지킵니까? 오히려 목사들이 앞장서서 사유재산을 챙기고 있지 않습니까?

반대로 어떤 말씀은 내가 지킬 수 있을 듯 하니까 문자 그대로 받아들이면서 이를 지킨다고 말하고, 또 누군가를 정죄할 때 사용합니다. 아마 한동안 퀴어축제 때문에 동성애 문제가 어김없이 등장할 텐데, 동성애 얘기할 때는 왜 평소에 잘 지키지도 않는 레위기 말씀까지 꺼내들면서 반대합니까? 이런 모습을 보면, 지금 한국 개신교는 결코 문자주의적인 성경 해석을 하고 있지 않고, 문자주의적인 신앙을 갖고 있지도 않습니다.

성공 위한 신앙

지금 야당 대표가 보여주고 있는 이 문제는 문자주의가 아니면서 문자주의를 표방하고 있는 보수 교회들의 잘못들과, 한국 개신교가 얼마나 잘못된 신앙과 신앙 태도를 가르쳐왔는지를 여실하게 보여주는 사건입니다.

한국 기독교는 끊임없는 성공만을 강조합니다. 하나님께 무한한 복, 끊임없는 물질의 복을 받는 일만이 신앙의 궁극에 있다고 가르쳐왔습니다. 그렇기에 이를 위해서 어떠한 일도 행할 수 있는 것처럼 가르칩니다. 지금의 자유한국당 대표, 또는 전직 대통령들이 굳건한 기독교 신앙을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개인적 성공, 정치가로서 정치적 성공을 위해서 타종교 행사에 참석하는 일을 문제시 삼지 않았습니다.

다만 여기에서 종교적 행위, 다른 종교의 행위를 하는 일은 금지합니다. 문자주의인 척 하는 신앙의 대표적인 예입니다. 그렇기에 이번에 황교안 대표도 합장만은 하지 않으리라고 생각하고 봉축법요식에 참석했는지 모르겠습니다.

물론 과거의 사례를 보면 이런 행위도 문제 삼지 않아 왔습니다. 다른 종교 행사에 참여해서 하는 종교적 행동이 현실적 삶에서 성공을 위한 도구라고 여겨지기 때문입니다. “그저 성공을 위한 행위로서 종교 행위를 했을 뿐이지, 그로 인해서 신앙이 흔들렸다고 말할 수 없다.” 라는 방식으로 이야기합니다.

저는 보수적이라고 말하는 교회들의 이런 행태가 오히려 우상숭배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어쩌면 이는 보수냐 진보냐의 문제가 아니라, 지금 한국 개신교 대부분이 범하고 있는 잘못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많은 교회들은 우리가 교회에 열심히 다니면서 헌금 열심히 하고, 교회를 더욱 크게 키워나가는 일에 최선을 다한다면, 그것이 바른 신앙이라고 말합니다. 반면에 세상에서 우리의 태도는 크게 문제 삼지 않습니다. 교회가 앞장서서 성공이라는 우상, 돈이라는 우상을 쫓으라고 말하고 있기 때문에 이를 위해서라면 무슨 일이라도 해도 괜찮다고 말합니다. 그렇게 성도님들이 세상에서 돈을 많이 벌어야 교회에 헌금도 많이 하고, 이런 사람들이 많이 모여야 교회의 자산이 늘어나게 됨은 분명하기 때문입니다.

나를 지키지 못하는 신

이제 오늘 본문 말씀을 보았으면 합니다. 성경에서 말하는 우상숭배의 문제는 부처님 앞에서 합장을 하냐 안하냐의 문제가 아닙니다. 제가 가끔 제 아들에게 얘기하다가 불교 예화나 불교에서부터 전해진 고사를 말할 때가 있는데, 그때마다 아들은 그렇게 말합니다. 목사님이면 불교 얘기 좀 그만하고 교회 얘기나 하라고. 제 아들의 지적처럼 다른 종교의 예화를 말하냐 안하냐의 문제는 성경에서 우상숭배를 지적하는 중요한 문제가 아닙니다.

오늘 본문은 열왕기하 18장과 역대하 32장에도 동일하게 나타나는 본문입니다. 북왕국 이스라엘을 멸망시킨 앗수르가 이제 남왕국 유다까지도 압박하는 시기의 이야기입니다. 앗수르의 장군 랍사게는 유다를 침공해 옵니다. 옛날 전쟁들을 보면, 성을 지키고 있는 쪽을 향해서 공격하는 쪽이 도발을 하는 장면을 많이 보게 됩니다. 공성을 포기하고 전장으로 나오게 만들려는 계획이던지, 내부에 반역자를 만들려는 계획이던, 무언가 계획을 가지고 상대방을 도발합니다.

랍사게가 유다를 향해 도발한 내용은 몇 가지가 있습니다. 애굽은 너희의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이야기도 합니다. 그 중에 저희가 신경써서 볼 부분은 36장 7절에서 히스기야의 종교개혁 자체를 비판하는 이야기를 합니다. 지방에 있던 산당과 제단을 모두 헐어버리고 오직 예루살렘에서만 예배하라고 명령한 그 신을 너희가 섬기고 있고, 그런 명령을 내린 왕인 히스기야를 너희가 따르고 있다는 이야기를 합니다.

예루살렘이라는 특정 지역에 모든 종교 활동을 한정시키면 왕의 입장에서는 수도를 중심으로 권력 집중을 이룰 수 있겠지만, 이런 개혁이 일반 대중들에게는 상당히 불편했던 것 같습니다. 오히려 신앙생활을 힘들게 만들었다는 인식도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랍사게는 사람들의 마음을 흔들기 위해서 이런 이야기를 먼저 합니다.

그 뒤에 몇 가지 이야기를 더 하는데, 가장 중요한 이야기가 오늘 저희가 읽은 본문입니다. “앗수르는 이미 다른 나라들을 멸망시켰다. 각 나라의 신들이 그 백성들을 지켜줬느냐?” 랍사게는 이런 질문을 유다 백성들에게 던지고 있습니다.

고대 사회에서 신은 자신의 나라를, 백성을 지키는 존재입니다. 지켜줄 수 있어야 신으로서 역할을 하게 됩니다. 이스라엘이 하나님이 최고의 신이라고 말할 수 있으려면 이웃 국가가 이스라엘을 점령하는 일은 발생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모든 신들 중에 최고라고 여기는 신앙을 잘 보여주는 예가 엘리야의 갈멜산 사건입니다. 거두절미하고 엘리야가 자신의 제단에 물을 잔뜩 부은 후에 하나님의 불덩이가 내려와서 물과 제물을 모두 불살라버린 사건은, 비유적으로 이런 의미를 갖게 됩니다. 바알이 아무리 비를 내리려고 해도 바알보다 위에 계신 하나님께서 그 물을 다 말려버린다는 의미입니다.

그런데 남왕국 유다에 앞서 북왕국 이스라엘이 무너져 버렸습니다. 그렇기에 당시의 사람들은 이렇게 생각합니다. 북왕국의 멸망은 하나님이 약해서가 아니라 금송아지라는 잘못된 방식을 선택했기 때문이라고 여깁니다. 북왕국 이스라엘은 하나님을 바르게 섬기지 않았고 오히려 잘못된 신을 섬겼기에 멸망했다고 여기게 됩니다. 이러한 인식은 구약성경 곳곳에서 발견됩니다.

그런데 이제 앗수르는 하나님을 잘 섬기고 있는, 스스로는 잘 섬기고 있다고 여기는 남왕국 유다까지 점령하려고 합니다. 유다 왕국이 앗수르를 절대 못 이긴다고 생각한다면, 이는 하나님이 앗수르의 신보다 약하다는 결론으로 이어지게 됩니다.

앗수르의 랍사게는 유다 백성들에게 선택지를 던져줍니다. 앗수르의 승리로 증명된, 전 세계의 신들보다 강한 앗수르의 신을 섬길 것인지, 너희를 지키지도 못하는 그 하나님을 섬길 것인지 유대 백성들에게 선택하라고 말합니다.

우상 숭배의 본질적 문제는 여기에 있습니다. 하나님이 내 삶을 지켜주지 못할 때에, 나에게 안 좋은 일이 생길 때에, 나에게 어려움이 생길 때에, 나는 이 하나님을 여전히 나의 신으로 고백하면서 살아갈 수 있겠는가? 더 나아가서 하나님을 아무리 열심히 잘 믿고 잘 섬겨도 내가 이 삶에서 부자가 될 수 없다고 한다면, 오히려 어렵고 험난한 삶을 살아야 한다면, 나는 이 하나님을 신으로 섬길 수 있을 것인가?

지금 드린 말씀에는 조금 비약이 있는 듯 합니다만, 하나님을 열심히 믿어서 우리가 얻게 될 결과가 세상의 부와 명예와 성공이 아니라면, 그저 평안이라면, 적당히 쓰면서 살아갈 수 있는 부와 하나님의 영광에 가려진 개인적 명예와, 세상이 말하는 성공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에서 얻게 될 성공, 천국 뿐이라면, 우리는 이 땅에서 하나님을 믿으면서 살아갈 수 있습니까?

우상을 떠난 신앙

이 문제는 고대 이스라엘 사람들의 하나님에 대한 관점을 완전히 뒤바꾸게 되는 사건이 됩니다. 다른 신들보다 뛰어난 최고의 신인 하나님에 대한 신앙에서 오직 한 분밖에 계시지 않으며, 온 세상을 다스리시는 하나님에 대한 신앙으로 발전되어 나아가게 됩니다. 지금 자신들이 겪는 고통도 하나님의 섭리라고 믿는 신앙입니다. 신학에서 말하는 단일신 신앙에서 유일신 신앙으로 발전됩니다.

이런 신앙의 변화가 보여주는 바는, 우리가 지금 처한 상황이 아무리 암울하고 어려워도 우리는 결코 세상적인 부와 명예와 성공을 위해서 하나님을 버리지 않겠다는 결단이고 굳은 의지입니다.

더 나아가서 내가 고난을 받게 되었을 때에, 이를 하나님이 나를 버렸다던가, 하나님이 침묵하셨다고 말하면서 하나님에게 모든 책임을 전가하는 신앙이 아니라, 혹시 나에게 죄가 있지 않았는지, 이 사회가 하나님을 떠나있지는 않았는지를 살피는 신앙으로 발전해나갔다고 볼 수 있습니다.

우상숭배의 문제는 어느 종교의 행사에 가서 그 종교적 행위를 했냐 안했냐의 문제가 아닙니다. 우리나라에서 예전부터 문제 되었던 장례식장에 가서 고인의 영정에 절을 하는게 옳으냐 그르냐의 문제도 우상숭배 문제의 본질과는 거리가 있습니다. 내 삶에서 어려움과 힘든 일이 생겼을 때에 그때에도 여전히 하나님만을 믿고 하나님만을 의지할 수 있느냐의 문제가 우상숭배의 문제입니다.

이 문제는 예전에도 말씀드린 적이 있습니다만, 어려움의 순간에 하나님만을 의지한다는 말은 두 손 놓고 하나님이 도우시길 기다린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내 삶에서 하나님이 말씀하신대로, 예수님께서 보여주신대로 최선을 다해서 살아가야 맞습니다. 다만 모든 순간에, 그 어떤 어려움의 순간에도 내 마음은 흔들림 없이 하나님이 나에게 평안을 주시는 분임을 믿는가 믿지 않는가의 문제입니다.

하나님의 모든 약속은 그 어떤 순간에도 유효하다는 사실을 굳게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 약속에 대한 믿음은 흔들림이 없으시길 바랍니다. 불교 행사에 참여했느니, 거기에서 합장을 했느니, 스님하고 정답게 이야기했느니, 이런 문제는 본질적인 우상숭배의 문제와 관계가 없습니다.

오히려 우리가 세상 속에서 물질이라는, 재물이라는 우상에, 성공이라는 우상에 빠져서 하나님의 말씀, 함께하고 나누고 사랑하라는 말씀은 잊은 채 살아가는 일이 우상숭배이고 하나님을 떠난 삶입니다. 기독교인이라면서, 굳건한 신앙인이라고 말하면서 입에서 나오는 말은 전부 누군가에 대한 비난이고, 사람들의 편을 가르는 말만 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이야말로 세상의 성공을 위한 우상을 숭배하는 사람입니다.

여러분의 마음이 온전히 하나님 안에서 굳게 서 있을 때에, 그 약속을 굳게 믿으실 때에, 또한 하나님께서 말씀하신대로 세상에서 살아가려고 노력하실 때에, 하나님께서는 여러분께 약속하신 평안을 약속하신 복을 내리십니다. 하나님 안에서 확신 있는 삶을 살아가시고, 그 삶에서 복을 받으시며, 이 땅에 복을 전하여서 하나님 나라를 이루시는 성도님들 되시길 축원합니다.

이성훈 목사(명일한움교회)  joey8100@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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