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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룩한 타락”살며 묵상하며
하태혁 목사(단해감리교회) | 승인 2019.06.03 16:45

예수께서 이 말씀을 하실 때에, 지도자 한 사람이 와서, 예수께 무릎을 꿇고 말하였다. “내 딸이 방금 죽었습니다. 그러나 오셔서, 그 아이에게 손을 얹어 주십시오. 그러면 살아날 것입니다.” 예수께서 일어나서 그를 따라가셨고, 제자들도 뒤따라갔다. 그런데 열두 해 동안 혈루증을 앓는 여자가 뒤에서 예수께로 다가와서, 예수의 옷술에 손을 대었다. 그 여자는 속으로 말하기를 “내가 그의 옷에 손을 대기만 하여도 나을 텐데!”했던 것이다. 예수께서 돌아서서, 그 여자를 보시고 말씀하셨다. “기운을 내어라, 딸아.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바로 그 때에 그 여자가 나았다. 예수께서 그 지도자의 집에 이르러서, 피리를 부는 사람들과 떠드는 무리를 보시고, 이렇게 말씀하셨다. “모두 물러가거라. 그 소녀는 죽은 것이 아니라, 자고 있다.” 그들은 예수를 비웃었다. 무리를 내보낸 다음에, 예수께서 들어가셔서, 그 소녀의 손을 잡으시니, 그 소녀가 벌떡 일어났다. 이 소문이 온 땅에 퍼졌다.(마태복음 9:18~26/새번역)

예수께서 돌아서서 여자를 보셨다. 그리고 이렇게 다독여 주셨다. “안심하여라, 딸아. 너는 믿음의 모험을 했고, 이제 병이 나았다.”(메시지성경)

혈루증 앓는 여인이 치유되고 죽은 소녀가 살아납니다. 여기에는 한 가지 공통점이 있습니다. 부정함과의 접촉! 출혈이 멈추지 않는 여인과 접촉하면 부정해진다 여겼습니다. 시체 역시 몸에 닿으면 더렵혀진다고 믿었습니다. 감염을 치료할 방법을 몰랐던 당시로서는 자연스러운 태도입니다. 공동체를 안전하게 지키려는 지혜였습니다.

그럼에도 주님께서는 율법을 넘어서십니다. 사랑은 율법에도, 안전에도 갇힐 수 없습니다. 만지게 허락하시고, 시체에도 손을 대십니다. 말씀으로 하실 수 있어도 손을 잡아주십니다. 접촉이 주님을 더럽히지 못합니다. 접촉을 통해 오히려 깨끗이 낫게 하십니다. 오염되지 않고 치유하십니다.

▲ Vladimir Kush, “Key Of Love” 마음을 받아줘 하나된 만남, 삶의 문제를 푸는 열쇠가 되다.

자신의 병을 고치고자 주님을 더럽히려는 여인, 자기 딸을 살리고자 주님께 시체에 손을 얹어 달라는 지도자, 이들에게는 절박한 이유가 있습니다. 그러나 주님을 부정하게 만든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습니다. 어떤 이유가 있든 주님을 이용하려 한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기꺼이 이용당해주십니다. 사랑은 배신당하더라고 기꺼이 이용당합니다. 그래서 죄인 됨을 받아들이십니다. 한결 같은 모습이십니다. 죄인들과 함께 식사하시고 안식일을 범하시고 이방 여인을 만나셨습니다. 하나님의 뜻이라면, 사랑이라면 기꺼이 타락하십니다. 순순히 스캔들에 휘말려 손가락질을 감수하십니다.

살다보면 자신을 이용해 먹으려는 이들을 만날 때가 있습니다. 필요한 만큼만 이용하고 손해 볼 상황이 되면 돌아서는 이들입니다. 인간의 비루함이 씁쓸합니다. 사람은 믿을 존재가 아니라 그저 사랑할 존재라지만, 막상 이용당하면 마음이 쉽지 않습니다.

‘살아남으려고 발버둥 치다 보면 누구나 그럴 수 있겠지. 깊은 상처가 있어서 어쩔 수 없겠지.’ 이해 못할 일은 아니지만, 겪고 나면 마음이 닫힙니다. 애초에 Give & Take는 생각도 안했지만, 겪고 나면 허탈해집니다. ‘마음 주면 뭐해, 다치기만 하고 서로 불편해지기만 하지. 적당히 거리를 유지하고 선을 긋는 게 서로를 위해서도 좋은 거야.’ 어느새 꼰대가 되어갑니다.

그러나 나 자신도 주님을 이용하려 했었고, 그런 자신 그대로를 받아주셨습니다. 죽음처럼 썩어가던 마음을 주님 만져주시고 살려주셨습니다. 그럼에도 여전히 주님을 통해 받을 평안과 은총에 시선이 먼저 갑니다. 다른 바람 없이 주님만을 원하는 마음, 주님 뜻만을 향하는 사랑은 여전히 먼 이야기입니다.

혈루병 걸린 여인과 죽은 딸의 아버지에게서 자신이 보입니다. 그들을 받아들이게 됩니다. 그들을 안아주게 됩니다, 자신을 안는 것처럼. 그들과 접촉해 죄인이 되는 것이 아닙니다. 이미 죄인인 자신이 그들을 안아주며 깨끗해지는 것입니다. 사랑의 접촉이 서로를 거룩하게 하는 열쇠입니다.

하태혁 목사(단해감리교회)  devi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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