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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나라는 겨자씨와 같으니작은 것의 가능성
오강남 명예교수(캐나다 리자이나 대학교) | 승인 2019.06.05 19:34
제자들이 예수께 말했습니다. “나라가 어떠할지 저희에게 말씀해 주십시오.” 예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그것은 겨자씨와 같으니, 모든 씨들 중 지극히 작은 것이나 준비된 땅에 떨어지면 나무가 되어 하늘을 나는 새들의 쉼터가 될 것입니다.”(제20절)

우리 속에 잠재적 상태로 있는 변화의 씨앗은 미미하기 그지없다.  그러나 그것이 적절한 때(kairos)를 맞으면, 혹은 인연(因緣)을 얻으면, 엄청난 변화를 가져다준다.  이런 변화의 엄청남을 시각적 크기로 표현한 것이 겨자씨가 큰 숲이 된다는 식으로 표현한 것이다.

중국 도가(道家)의 고전 『장자』 첫 장 첫머리에 보면 ‘붕(鵬)’ 새 이야기가 나온다. 북쪽 깊은 바다에 작은 물고기 알 하나가 있었는데, 그것이 물고기가 되고 그것이 크기가 몇 천리인지 알 수 없는 큰 물고기로 변하고, 또 그것이 다시 등 길이가 몇 천리인지 알 수 없을 정도로 큰 붕새로 바뀌어 하늘로 힘차게 날아올라 남쪽 ‘하늘 못’으로 가는 붕정(鵬程)에 오른다는 이야기이다. 우리 속에 있는 조그마한 가능성의 씨알이 엄청난 현실로 바뀔 수 있다는 것, 그것이 결국에는 대붕의 비상(飛翔)이 상징하는 초월과 자유를 누릴 수 있게 된다는 것을 말하는 비유이다.(1)

세계 여러 종교 전통에서 가장 중요시 여기는 것 중 하나가 바로 인간이 얻을 수 있는 이런 ‘변화(transformation)’의 체험이다. 그래서 비교종교학자 프레데릭 스트렝(Frederick J. Streng) 같은 사람은 ‘종교’를 두고 ‘궁극적 변화를 위한 수단(a means to ultimate transformation)’으로까지 정의했다.(2) 그리스도교에서 새 사람이 된다, 거듭난다, 새로운 피조물이 된다고 하는 말이나, 불교에서 성불한다, 부처님이 된다는 말이나 유교에서 소인에서 군자나 성인이 된다고 하는 것이 모두 이런 변화를 각각의 전통에 따라 다른 각도, 다른 표현으로 말한 것이다. 물론 이런 변화는 궁극 실재를 봄, 깨달음으로 가능하게 된다. 우물 안 개구리가 바깥세상을 보면 이전의 개구리가 아니라 다른 개구리로 변화될 수밖에 없는 이치다.

▲ 작은 겨자씨가 자라 새들이 깃드는 나무가 된다. ⓒGetty Image

한 가지 더 주목할 만한 것은 작은 겨자씨가 큰 나무가 되면 (생물학적으로 겨자는 일년생 풀로서 나무가 될 수 없다고 하지만 아무튼 크게 되었다는 뜻이리라), 그런 변화를 경험하게 된 당사자에게만 훌륭한 일일 뿐 아니라 ‘하늘을 나는 새들의 쉼터’를 제공해 줘서 주위에도 좋은 것이 된다고 하는 사실이다. 유교 경전 『대학(大學)』에도 보면 ‘큰 배움[大學]’은 여덟 가지 단계로 구성되었는데, 그것은 사물을 궁구하고[格物], 깨달음을 극대화하고[致知], 뜻을 정성스럽게 하고[誠意], 마음을 바르게 하고[正心], 인격을 도야하고[修身], 가정을 살피고[齊家], 나라를 다스리고[治國], 궁극적으로 세계에 평화를 가져오는 일[平天下]이다.

여기서 볼 수 있는 것은 이런 배움의 단계 중 처음 다섯 단계는 자신의 변화를 위한 노력이지만 나머지 세 단계는 가족과 이웃과 세계를 위해 도움을 주는 일이다. 앞에 나온 16절 풀이에서 언급한 것과 마찬가지로 선불교에서 말하는 『십우도(十牛圖)』에서도 깨달음을 찾아 집을 떠나는 첫째 그림부터 완전한 깨달음에 이르는 변화를 얻은 다음 마지막으로 오는 열 번째 그림은 남을 돕기 위해 저자거리로 나가는 입전수수(入廛垂手)의 그림이다. 신비적 경험을 통해 변화된 사람은 남에게 도움이 되는 사람임을 말해주는 몇 가지 사례라 할 수 있다.

여기서 주의해야 할 것은 깨친 사람들이 사회에 무슨 도움을 주게 된다고 하여 반드시 직접 나서서 부산을 떨고 설쳐야 한다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이런 사실 때문에 그들을 보고 사회에서 분리되어 고고하게 스스로의 평화만을 즐기는 도피주의자들이라 오해하는 경우도 있다. 설령 깨친 사람들이 사회에 직접 뛰어들어 우리 눈에 뜨일 만큼 큰일을 이루어 내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하더라도 그들의 공헌을 적어도 두 가지 측면에서 생각할 수 있다.

첫째, 모두가 쓸데없이 부산을 떨며 흙탕물을 일으키는 이 혼탁한 세상에서 깨친 사람들만이라도 우선 흙탕물을 일으키지 않고 가만히 있으면 그만큼 사회가 덜 혼탁해지게 된다는 것이다. 둘째, 『장자』에 나오는 요 임금이 고야 산에 사는 네 명의 신인(神人)들을 찾아가 뵙고 돌아오는 길에 분(汾)강 북쪽 기슭에 이르자 ‘망연자실(茫然自失)’했다는 이야기에서 볼 수 있듯, 깨친 사람들이 직접 나서지 않는다고 해도 요 임금 같이 직접 나라를 다스리는 사람에게 영향을 주어 나라를 그만큼 좋게 만드는 데 공헌하게 된다는 것이다.

한 가지 더 알아 두어야 할 것이 있다. 깨친 사람들은 모든 것과 하나 된 상태에서 만물과 함께 자연스럽게 어울려 물 흐르듯 흐르기 때문에 구태여 뭔가 한다고 나서서 설치는 일을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무위(無爲)의 상태에서 유유자적(悠悠自適)하며 살면 그 자체가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는 것이다. 알프스 산이 나서서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려고 쏘다니지 않고도 사람에게 도움을 주고, 동네 정자나무가 사람들을 찾아다니지 않아도 많은 사람들이 찾아와 그 그늘에서 쉼을 얻는 것과 같은 이치다.

미주

(미주 1) 오강남 풀이 『장자』(현암사, 1999) 26-27 참조.
(미주 2) 그의 책 Understanding Religious Life, 3rd edition(1985), 2. 미국 신학자 Marcus J. Borg도 종래까지의 기독교를 ‘천당/지옥’ 기독교라고 하고 새롭게 등장하는 기독교를 변화를 강조하는 기독교라고 했다. 그의 책 『기독교의 심장』(김준우 옮김[서울: 한국기독교연구소, 2009]) 참조. 원제 The Heart of Christianty: Rediscovering a Life of Faith (2003년)

오강남 명예교수(캐나다 리자이나 대학교)  soft103@hot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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