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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전두환이다대전교도서에서 보낸 2번째 감옥생활
김정택 목사 | 승인 2019.06.08 19:48

YWCA 위장결혼식 주동자들은 고문당하고 조사를 받으면서 서빙고에서 지내는 동안 “전두환이가 무서운 놈이다. 저 놈이 대통령을 노리는 것 같다. 뭔가 일을 저지를 놈이다.” 하는 느낌을 받고 생각도 하게 되었다.

엄혹한 현실 속에서도 주동자들은 상황을 치열하게 읽어가고 있었다. 아니, 현실을 느끼는 것 바로 그것이 가장 빠른 상황 알아채기일지 모르겠다. 역사에 직접  참여하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느낌,알아채기가 있고 그 다음에 그 순간의 느낌들을 다시 떠올리면서 정리된 생각들을  만들어가는 것 같다.

감옥에서 문득 든 생각, 문제는 전두환이다

전두환을 의심하게 되는 것도 “우리들은 군부에 대해 특별한 적대감을 갖고 있지도 않았는데 보안사는 왜 이토록 지독한 고문을 할까? 그래서 정리되는 생각이 전두환이가 뭔가를 노리고 있다. 그것이 권력, 대통령이다.” 하는 생각으로 정리가 되어갔다. 12월 12일 이후에는 보안사 요원들이 느긋해지는 것을 느꼈다.

우리는 그게 12.12군부 쿠데타의 성공 때문이라는 것은 바로 그 즉시는 알지 못했다. 지나서 12월12일에 군부 쿠데타가 있었고 전두환 쪽이 승리한 것을 알고서 “아하, 이녀석들이 그래서 느긋해졌고 우리들에게도 전과는 달리 친절하게 대했구나!” 정리가 되는 것이었다. 생각을 더욱 진전시켜 보기도 했다.

혹시 전두환이가 주동이 되어 12.12군부 쿠데타를 일으킨 것은 과연 YWCA 하고는 전혀 무관할까? YWCA위장결혼식이 11월24일이고 25일부터 고문이다, 조사다, 들어갔고 우리들의 진술을 토대로 다른 수많은 민주인사들을 끌고오고 또 고문하고 백기완은 고문으로 죽을 지경이 되자 병원에 입원시켰고. 소문은 민주화세력에게 군부에 대한 의심에서 군부를 민주화의 적으로 돌리게 할 것이다.

▲ 전두환 일당이 일으킨 12.12 군부 구테타 당시 광화문을 지키던 군인들 ⓒGetty Image

그러면 정승화 계엄사령관이나 군의 비정치화를 신념으로 하는 군장성들이 움직이지는 않을 것인가? 12.12는 정말 빨라도 너무 빨랐다. 급하게 서둘러 합법을 가장할 시간적 여유가 없었던 것은 아닐까? 희안하게도 주동자들의 느낌과 생각들이 비슷했다.

대전교도서에서 만난 사람들

우리들은 형이 확정되자 전부 같이 대전교도소로 이송되었다. 무슨 사유가 있는지는 모르겠으나 정치범 공범들에게는 있을 수 없는 합방을 시켰다. 전두환의 지시가 있었는지, 그렇지 않으면 곧 석방될 사람들이라고 교도소장이 판단해서 그렇게 했는지 알 수는 없었지만 합방은 우리들로 하여금  곧 석방될 것이란 생각을 갖게 하였다.

인원이 많아 한방 합방은 이루어지지 않고 2방으로 나뉘었다. 나는 임채정, 최열, 최민화, 이우회, 강구철, 홍성엽과 한방을 쓰게 되었다. 다른 한방에는 박종태, 양순직, 박종열, 권진관, 이상익이 들어갔다.

운동할 때도 우리 2방을 같이 따주고 만나게 해주었다. 우리와 함께 운동하는 사람들 중에는 국선도 창시자인 청산거사와 주요간부들이 있었고 양은이파 조폭두목인 조양은도 있었다. 긴급조치9호로 1차 감옥생활할 때 나는 요가에만 관심을 가진 것은 아니다.

요가를 실제 실행하면서도 한국의 역사에 대해 이해를 해야 진정한 운동가가 되지 않을까 해서 한문도 배우려고 딴에는 노력도 해봤고 전통수련법도 어떤 것이 있는지 찾아보기는 했다. 한문배우기는 접근을 잘못해서 아무런 진전도 못이루었다. 성경도 보면서 성경의 깊은 진리도 깨닫고 영어도 배우자고 꿩먹고 알먹기식의 영어성경과 한국말성경을 같이 보았던 것처럼 한문도 그렇게 배워야지 생각한 것이다.

그렇게 해서 선택한 것이 원효다. 한국사람으로서 원효 정도는 접근해봐야 한다는 기특한 생각을 한 것이다. 원효하면 대승기신론이기에 대승기신론에 바로 들어갔다. 한문으로도 보고 한글로도 보았다.

좀 보다보니 무슨 소리인지도 모르겠고 그러니 지루했다. 그래서 한문배우기는 안되겠구나 하고 그 이후로는 한자 배울 생각은 하지 않게 되었다. 처음 길을 잘못 들어선 결과다.

한국 고유의 전통수련법은 어떤 것이 있는지 뒤적여보다 국선도도 슬쩍 지나쳐 보게 되었다. 제헌의회 국회의원이었던 윤길중 선생도 국선도를 했다는 것과 많은 장성들이 국선도수련을 했다는 정보도 그때 얻었다. 청산거사가 신묘하다고 하여 창시자인 청산거사라는 이름도 그때 접했다.

1차 감옥생활에서는 건강이 목표였고 강함도 추구하던 바이기에 요가 이외에 국선도 등에 대해서도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은 어쩌면 자연스러운 결과라 할 수 있겠다. 그런데 바로 그 청산거사를 만나게 되었으니 흥분이 안 되겠는가! 나는 운동하면서  청산거사에게는 직접 물어보지 못하고 간부에게 감옥에 들어오게된 내력을 물어 보았다.

청산거사는 산속에서 수련을 하던 중 박정희가 죽고 세상이 흉흉하고 계엄까지 선포되자 나라의 안정을 위해 국선도회원들과 함께 나서야 한다는 깨달음이 왔다는 것이다. 그래서 주요 간부들과 청와대도 찾아가고 보안대에도 찾아갔다고 한다. 국선도회원들과 함께 성스러운 나라를 세우기 위한 성포령을 내리도록 요청했다는 것이다.

그런 후 며칠이 지났는데 보안사에서 청산거사와 주요 간부들을 보안사로 끌고갔다. 끌려가자마자 YWCA주동자들에게 한 것처럼 쇠파이프로 온 뼈가 으스러지도록 맞았다.

청산거사에게는 “김대중을 언제 만났느냐? 김대중과 잘 알지? 김대중과 무슨 얘기를 나눴느냐?” 하며 그때마다 “모른다, 그런 일 없다”니까 더 패서 죽을 지경까지 갔다. 그들은 얘기하면서 국선도를 열심히 선전도 한다. 자신들이 국선도로 단련되어 살아났지 보통사람이 그토록 맞았다가는 다 죽었을 거라고 한다.

국선도야말로 우리들의 조상, 신라의 화랑이나 고구려 선인들이 한 단전호흡을 이어받았다는 것이다. 나는 그 이후로 우리나라 고유의 수련법이다, 신라 화랑의 수련법이다, 고구려에서 하던 수련법이다고 하는 수련법에 대해서는 경계심이 생겨 버렸다. 건강과 강함을 추구하는 것은 좋으나 청와대를 찾아가고, 보안사를 찾아가고 성포령을 내려야 한다는 둥 하는 그들의 정신상태는 도저히 이해도 안 되고 황당하게만 느껴졌기 때문이다.

언제일까? 김지하 시인이 이승헌 교주의 전통심신수련, 단학선원이 사이비종교같다고 탈퇴하고 기자회견까지 하기 전 단학선원을 높게 평가할 때도 경계심이 발동하였다. 예수가 우리 모두의 친구로 너무나도 좋은 이미지로 다가오기 시작하고서는 전통심신수련법이니, 교주니 하는 것과는 더욱 멀어졌다. 강함에 대한 추구도 달리 생각하게 되었다.

조양은이와도 자주 보다보니 많이 친해졌다. 하루는 운동을 같이하다 유연성 대결을 하게 되었다. 허리의 유연성과 손의 힘을 테스트하는 대결이었다.  발과 발을 맞대고 서로 악수를 하고 힘을 쓰는 것이다. 넘어지거나 맞댄 발을 떼면 지는 것이다.

내가 조양은이를 이겼다. 조양은은 그럼 이번에는 팔씨름을 하자고 한다. 팔씨름은 내가 졌다. 역시 주먹잽이는 팔힘이 쎄야하나 보다.

박종태 어르신은 운동시간에 나에게 요가를 배웠다. 그리고는 방에서도 열심히 한 모양이다. 어느날 운동 중에 만났는데 요가를 해 보이면서 나이가 들면 뼈가 고정화되어 유연성이 회복되지 않을 것이란 고정관념이 깨졌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해보인다. 상당히 유연해진 모습이다.

같은 방생활을 하다보면 서로에 대해 새로운 모습들을 대하게 된다. 그리고 미래도 어느 정도 짐작케 된다. 임채정 선배는 김대중선생 걱정을 정말 많이 하신다. 김대중 선생이 죽으면 안 되는데 하는 소리를 자주 반복하신다. 후에 임선배는 김대중 선생과 함께 정치생활을 하였다.

최열 선배는 무슨 화학같은 공부를 열심히 한다. 나는 화학이 운동하고 무슨 관계가 있소하고 의아한듯이 질문했다. 그런데 공해추방운동연합을 꾸리더니 우리나라 환경운동의 대부가 되었다. 최열 선배는 내가 꾸준히 요가를 하니까 요가가 운동하고 무슨 관계가 있냐고 한다.

홍성엽이는 참깨끗하다 겉인상도 깨끗하지만 실제 생활에 있어서도 모든 면에서 깨끗함을 유지했다. 그런데 혼자 깨끗함을 유지할 때는 좋았는데 다들 좀 깨끗함을 유지해주면 좋겠다고 할 때부터는 긴장이 생겼다. 그래서 깨끗이라는 주제를 잡아 토론을 하게 되었다.

요약하면 이렇다. 깨끗한 것은 좋은 것이다. 그런데 상황에 따라 어느 정도의 깨끗함으로 만족할 것인지가 중요하다. 여기는 감옥이고, 물도 한정되어 있는데 어느정도로 깨끗할 수 있는가? 하는 것이다.

불길한 예감은 현실이 되었다

80년 4월이 되자 면회가 부쩍 늘었다. 정치인들도 많이 오고. 국회조사단이 온다고도 하고. 면회를 오면 우리들이 곧 옥문이 활짝 열리면서 만세 부르면서 나오게 될 것이라고 희망적인 얘기들만 쏟아낸다. 아직 계엄령이 해제되지 않았는데 하고 우려섞인 말을 하면 너희는 잘 지내고 있기만 하면 되고 밖에서 알아서 잘들 하고 있으니까 하고는 우리들의 우려는 무시해 버린다.

교도관들도 더 잘 대해주고 뭐 먹고싶은 것 없냐고 한다. 생마늘, 오징어 그냥 생각나는대로 먹고 싶은 것을 얘기하면 판매 물품에 그것들이 다 포함되어서 실제로 사서 먹을 수 있게 되었다. 5월에 들어서면서는 밖에 상황이 더 좋아졌는지 교도관들이 흘리는 소리로 나갈 준비들을 해야할 것 같다고 한다. 우리는 한편으로는 불안하면서도 또 한편으로는 석방에 대한 마음의 준비들을 하고 있었다.

우리들은 5월18일 당일에는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는 몰랐다. 5월 하순 쯤에나 가서 양순직, 박종태 의원의 동생들이 면회와서 광주에서 난리가 났다고 하니까 그제서야 큰 사건이 터졌구나 감만 잡았다. 하여튼 그 여파인지 좀 지나자 교도소에도 완전무장한 군인들이 배치되었다.

우리들 중 누군가가 6.25 때 감옥에 갇혀 있는 인사들이 많이 죽임을 당했다는 생각하고 싶지 않은 역사를 상기시켜 주었다. 이거 우리도 어떻게 당하는건 아닌가 불안속에 하루하루를 지냈다.

시간은 그렇게  흘러 흘러 갔고 우리들은 1981년 3월3일 그토록 경계하던 위험 인물, 전두환의 대통령 취임식 특사로 옥문을 나서게 되었다.

김정택 목사  kjt9425@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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