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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시장경제를 제어할 것인가교회를 위한 기독교 경제윤리 (5)
강원돈 교수(한신대학교 신학부/사회윤리와 민중신학) | 승인 2019.06.10 19:26

기독교 경제윤리는 그리스도 사건에서 조명되는 창조와 종말의 지평에서 구상하는 경제 운영의 네 가지 원칙들, 곧 생태학적 규율의 원칙, 참여의 원칙, 정의의 원칙, 인간의 존엄성 보장의 원칙을 갖고서 역사적 시장경제에서 경제과정과 그 기본얼개들에서 비롯되는 문제들을 해결하여 경제를 새롭게 규율하고 형성하는 방안을 제시하여야 한다. 

경제적 합리성이 야기한 문제들

기독교 경제윤리는 희소한 자원들을 갖고서 인간의 욕망을 충족시키고자 하는 경제가 합리성의 요구를 최대한 충족하여야 한다는 것을 인정하지만, 경제적 합리성이 제한된 의미를 갖고 있을 뿐만 아니라, 경제적 합리성을 매개하는 가격 장치가 사회적이고 생태학적인 관점에서 전면적으로 보완되어야 한다는 것을 지적하여야 한다.

경제적 합리성은 희소한 자원의 제약 때문에 최소의 비용으로 최대의 효과를 얻고자 하는 경제 활동의 경향이며, 본래는 기업의 타산을 맞추기 위한 장부 기재 방법에서 비롯된 개념이다. 시장경제의 치열한 경쟁 조건 아래서 기업이 살아남기 위해 경제적 합리성을 따르지 않으면 안 된다는 강박이 형성되다보니 경제적 합리성의 추구가 절대화되는 경향이 나타난다. 비용 절약적 합리화를 통해 이윤을 극대화하는 것이 기업의 목적이라는 주장은 경제적 합리성을 절대화하는 한 예이다.

경제적 합리성이 절대화됨으로써 나타나는 결과는 참혹하다. 몇 가지 예를 든다면, 노동 비용이 자본 비용보다 높을 때 나타나는 고용조정은 대규모 실업과 비정규직 고용의 증가로 나타난다. 기업의 합리성 추구는 한편으로는 수많은 노동자들에게서 삶의 기회를 박탈하거나 악화시키고, 다른 한편으로 엄청난 사회적 비용을 발생시킨다.

▲ 시장은 경제적 합리성과 가격을 중심으로 움직여 간다. 하지만 이것들이 야기하는 문제들을 더 이상 방치할 수 없다. ⓒGetty Image

또한 기업의 경제 활동이 환경에 미치는 부정적 효과를 처리하는 비용도 기업에 자발적으로 내부화되지 않고, 많은 경우에 외부화되어 피해를 보는 국민에게 전가된다. 더 나아가 기업의 영향력이 커지고 있는 현대 사회에서 경제적 합리성은 기업을 넘어서서 정부와 대학 등 국가 부문과 문화 부문에서도 지배적인 가치로 자리를 잡아 이 부문들이 제 기능을 발휘할 수 없게 만든다. 국민의 생명과 안전 보장 등 돈으로 살 수 없는 것이 경영마인드를 앞세운 행정으로 인해 부차화되고, 관행과 통념, 이데올로기와 체제 논리 등을 비판적으로 성찰하는 능력을 키워야 할 대학은 시장 논리에 충실한 기능인을 양성하는 곳으로 전락하는 것이다.

따라서 기독교 경제윤리는 경제가 합리성의 요구에 따라 운영되어야 한다는 것을 말하는 데 그쳐서는 안 되고 경제적 합리성이 절대화의 경향을 띠고 급기야 이데올로기로 경직화될 수 있다는 것을 경고하여야 한다. 경제적 합리성이 관철되는 곳은 경제 영역으로 한정되어야 하고, 그 타당성 요구는 제한적으로 인정되어야 한다.(1) 경제적 합리성을 관철하는 데서 발생하는 사회적, 생태학적, 정치적, 문화적 문제들을 고려해 볼 때, 경제적 합리성의 관철 방식은 시민적 동의와 정치적 합의에 근거하여 조율되지 않으면 안 된다.

가격이라는 미신

시장경제에서 경제적 합리성을 표현하는 매체는 가격이다. 비용 대비 효과가 경제적 합리성의 핵심이고, 비용과 효과는 모두 가격으로 표시되기 때문이다. 시장경제에서 탈중심화된 경제주체들은 재화나 서비스의 가격에 민감하게 반응하면서 생산과 소비를 조절하기 때문에 가격 장치는 시장경제의 조정 장치로 여겨지고, 가격은 시장경제의 중심 개념이다.

그런데 가격은 재화나 서비스의 본질이나 성질을 담는 그릇이 아니라, 재화나 서비스의 희소성을 나타내는 표지일 뿐이다. 경제학적 의미의 희소성은 재화나 서비스가 시장에 공급되는 양과 소비되는 양 사이의 관계가 드러나는 현상이다. 따라서 가격은 현상으로서의 희소성을 가리키는 우연한 기호이다.

가격이 시장경제에서 생산과 소비를 조절하는 중립적인 신호의 역할을 하려면, 그 어떤 생산자나 소비자도 가격을 임의로 조작할 수 없는 이상적인 조건이 마련되어야 한다. 현실은 그렇지 않다. 시장에서 독점이나 과점을 이루는 경제권력은 생산 측면에서나 소비 측면에서 임의로 가격을 조작할 수 있다.

따라서, 논리적으로 보면, 가격의 중립성은 경제권력을 정치적으로 완전히 제어할 경우에만 달성될 수 있을 뿐이고, 경제권력이 정치권력을 압도하고 있는 오늘의 상황에서 그런 경우는 거의 상상할 수 없다. 현실의 경제는 가격이 끊임없이 왜곡되는 불완전한 상태에서 운영된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가격이 시장경제에서 생산과 소비를 조정하는 장치라는 주장은 경제과정에 노동력, 자본, 자원 등과 같이 가격으로 표시되기는 하지만 가격으로 표시하기가 지극히 어려운 생산요소들이 투입되고 소비된다는 점에서 또 다른 난관에 부딪친다. 노동력, 자본, 자원 등의 가격은 매우 복잡한 성격을 띠고 있다. 노동력의 가격인 임금은 노동력 상품의 공급과 수요의 양적 관계에 영향을 받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궁극적으로는 노동시장에서 작용하는 자본의 권력과 노동의 권력 사이의 힘겨루기에 따라 결정된다. 자본의 시장 가격은 따지기가 더 어렵다.

기업의 현금 흐름에 관련하여 시장에서 화폐를 조달하는 비용이나 감가상각비용은 시장 이자로 계산될 수 있는 자본비용이니 일단 차치할수도 있다. 하지만 자본이 일단 생산자본으로 움직이는 경우에는 자본 자체가 권력으로 작용하기 때문에 자본의 권력이 창출할 수 있는 이윤을 반영하여 자본의 시장 가격을 결정하여야 할 것이다. 노동력이나 자본과는 다른 차원을 갖는 자원의 가격은 실로 터무니없이 책정된다.

자원의 가격은 자연자원을 가공하여 경제적으로 활용하기 위해 투입된 자본비용과 노동비용 등을 원가에 반영한 뒤에 시장에서 나타나는 자원의 희소성에 따라 결정된다. 이러한 가격에는 경제적으로 동원된 자원 그 자체가 생태계에서 갖는 고유한 가치가 반영되어 있지 않은데다가 자원을 경제적으로 소비하는 데서 발생하는 생태계 교란이 초래하는 천문학적 비용은 아예 감안되어 있지 않다. 사정이 이러한 데도 불구하고, 자원의 원가를 공산품의 원가처럼 계산해 온 것은 자연이 경제에 필요한 재화를 변함없이 공급할 것이라는 자연상수의 이데올로기가 깊은 뿌리를 내리고 있었기 때문이다.(2)

이렇게 보면, 시장경제가 희소성을 반영하는 가격장치에 근거하여 합리적으로 운영된다는 것은 미신에 가깝다. 독과점 가격이나 지대 추구 같은 용어가 가리키듯이 생산물시장에서 결정되는 재화와 서비스의 가격은 시장권력의 영향으로부터 결코 자유롭지 않다. 노동력과 자본과 자원에 희소성의 지표인 가격을 매길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가격을 앞세워서 노동력과 자본이 단순한 사물이 아니라 사람들 사이의 관계라는 것을 은폐하고, 자원의 가격이 자연에 대한 인간의 일방적 지배관계를 은폐한다는 것을 애써 무시한다는 뜻이다.

따라서 시장경제를 조정하는 가격 장치는 시민적 동의와 정치적 합의에 의해 근본적으로 보완되어야 한다. 노동력과 자본을 생산과정에 투입하여 활용한 대가로 노동자들과 자본가들에게 돌아가는 임금과 이윤은 결국 노동과 자본의 권력관계에 따라 배분되는 것이므로, 노동과 자본이 대등한 권력관계를 맺도록 법제화하고, 국민경제에서 생산과 소비의 거시 균형을 유지하도록 이바지하는 가운데 기업의 생존 능력과 미래 능력을 보장하는 것을 전제로 해서 노동과 자본이 적정 임금과 적정 이윤에 관해 합의하도록 해야 할 것이다. 자원의 가격을 굳이 말한다면, 경제과정에 의해 교란되거나 파괴된 생태계의 안정성과 건강성을 회복하는 데 들어가는 비용을 자원의 가격에 내부화하는 시민적 합의와 정치적 합의가 필요할 것이다. 그렇게 할 떼 비로소 경제를 사회적이고 생태학적으로 규율하는 데 적절한 사회적 가격 장치와 생태학적 가격 장치를 갖출 수 있을 것이다.

기독교경제윤리, 어떻게 시장을 제어할 것인가

위에서 논의한 바로부터, 기독교 경제윤리는 경제적 합리성이 희소성의 조건 아래서 경제를 효율적으로 운영하는 데 필요하다는 점을 인정하면서도, 경제적 합리성이 인간 생활의 모든 것을 지배하는 가치이기나 한 것처럼 이데올로기화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을 지적하고자 한다.

이러한 이데올로기화를 피하기 위하여 기독교 경제윤리는 첫째 경제적 합리성이 경제의 영역에만 한정해서 적용되어야 하고, 그 적용 방식은 시민적 동의와 정치적 합의를 필요로 한다는 것을 강조한다. 둘째, 시장경제에서 경제적 합리성을 매개하는 가격장치가 불완전하기 때문에 노동력, 자본, 자원의 특성을 가격 장치에 반영할 수 있도록 시민적 동의와 정치적 합의에 바탕을 두고 전면적으로 보완되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한다.

미주

(미주 1) 이런 점에서 ‘생활세계의 식민지화’에 관한 위르겐 하버마스의 경고는 여전히 새겨들을 만하다. J. Habermas, Theorie des kommunikativen Handelns, Bd. 2 : Zur Kritik der funktionalistischen Vernunft(Frankfurt am Main : Suhrkamp, 1981), 182.
(미주 2) 자연은 경제를 위해 변함 없이 자원을 제공한다는 의미의 ‘자연성수’ 관념은 데이비드 리카아도에게서 유래했다. 이에 대해서는 H. Immler/W. Schmied-Kowarzik, Marx und die Naturfrage(Hamburg :  VSA-Verl., 1984), 27을 보라.

강원돈 교수(한신대학교 신학부/사회윤리와 민중신학)  wdkang55@hs.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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