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착하고 좋은 마음으로(신 30:15-20; 갈 5:16-26; 막 4:1-20)성령강림후 첫째 주일(6월16일)
최병학 목사(남부산용호교회) | 승인 2019.06.14 20:10

1. 어떤 마음으로,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지난주 성령강림절의 말씀은 성령을 간절히 사모하고, 마침내 성령이 오시면 자녀들은 장래 일을 말하며, 늙은이는 꿈을 꾸며, 젊은이는 이상을 볼 것이라는 말씀이었습니다. 그때는 남종과 여종에게도 성령을 부어주시어, 새로운 공동체가 시작될 것인데, 그것이 바로 교회 공동체라는 말씀이었습니다. 물론 이러한 성령께서 오시는 날은 ‘심판의 날’이기도 합니다. 따라서 오늘 성령강림 후 첫째 주일 세 본문 말씀은 성령 받은 새로운 공동체인 교회가,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들이 어떤 마음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를 들여 줍니다. 곧, ‘말씀을 청종하며 하나님을 의지’하고, ‘말씀을 듣고 받아, 결실’하며, 마침내 ‘성령을 따라 행하라’는 말씀입니다.

2. 말씀을 청종하며 그를 의지하라!

먼저, 구약의 말씀인 ‘말씀을 청종하며 하나님을 의지하라’는 말씀을 볼까요? 본문 신명기 말씀은 120세가 된 이스라엘의 지도자 모세가 행한 세 차례의 고별설교입니다. 설교의 핵심은 약속의 땅 가나안을 소유할 신세대, 즉 40년 동안 광야생활에서 살아남은 세대들에게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들려준 것입니다. 모세오경의 레위기와 마찬가지로, 신명기에도 율법의 세세한 내용이 많이 기록되어 있지만, 레위기가 제사장들을 위한 율법서라면, 신명기는 일반백성들을 위한 율법서라고 볼 수 있습니다.

아무튼, 모세는 신세대들에게 부모들 세대의 쓰라린 본보기에서 배워야 할 것을 말해주고 있는데, 그것은 바로 ‘순종이 생명의 길이요, 살 길’이라는 것입니다. 또한 “잊지 않도록 주의하라!”도 신명기의 핵심주제라고 볼 수 있습니다. 따라서 모세는 자만과 불순종으로 이어지는 ‘망각의 위험’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망각하지 않고 기억해야 할 것은 무엇인가요? 모세는 두 가지를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첫째는 이스라엘이 번성하게 되었을 때, 그 번성함을 가져다주신 분이 하나님이시라는 것과 둘째, 이스라엘 백성이 가데스 바네아에서 처럼 하나님께 불순종할 때, 그들을 징계하신다는 것입니다.

가데스 바네아 사건은 가나안 접경 지역인 바란 광야에서, 12명의 정탐꾼을 가나안 땅으로 보내어 그 결과를 들었던 사건입니다. 이때, 여호수아와 갈렙 외 나머지 10지파의 정탐꾼들은 모두, 가나안 백성들이 이스라엘 백성들보다 훨씬 강하기 때문에 당해낼 수가 없으며, 아낙 자손들과 비교해, 우리는 메뚜기와 같다(민 13:33)고 절망했던 사건입니다. 따라서 백성들은 “어찌하여 여호와가 우리를 그 땅으로 인도하여 칼에 쓰러지게 하려 하는가? 우리 처자가 사로잡히리니, 애굽으로 돌아가는 것일 낫지 아니하랴(민 14:3)?”하며 불평합니다. 따라서 하나님께서는 믿음 없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그 원망을 들으시고(민 14:27), 그들에게 사십 년 간의 광야 생활이라는 연단의 시간(민 14:34)을 주셨던 사건입니다. 오늘 본문 말씀도 신세대들에게 부모세대들과 같이 불순종하지 말고, 하나님의 말씀을 청종하며, 하나님을 의지하라고 말씀하십니다.

“보라! 내가 오늘 생명과 복과 사망과 화를 네 앞에 두었나니, 곧 내가 오늘 네게 명령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고, 그 모든 길로 행하며 그의 명령과 규례와 법도를 지키라 하는 것이라. 그리하면 네가 생존하며 번성할 것이요, 또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가 가서 차지할 땅에서 네게 복을 주실 것임이니라. 그러나 네가 만일 마음을 돌이켜 듣지 아니하고, 유혹을 받아 다른 신들에게 절하고 그를 섬기면, 내가 오늘 너희에게 선언하노니, 너희가 반드시 망할 것이라! 너희가 요단을 건너가서 차지할 땅에서 너희의 날이 길지 못할 것이니라.”(신 30:15-18)

또한 모세는 신세대들에게 ‘저주와 축복, 생명과 사망’ 중에서 선택하라고 말합니다. 장차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 어떠한 삶을 살 것인지, 스스로 선택하라는 것입니다. 말씀을 볼까요?

“내가 오늘 하늘과 땅을 불러, 너희에게 증거를 삼노라. 내가 생명과 사망과 복과 저주를 네 앞에 두었은즉, 너와 네 자손이 살기 위하여 생명을 택하고,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고 그의 말씀을 청종하며 또 그를 의지하라. 그는 네 생명이시오. 네 장수이시니, 여호와께서 네 조상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주리라고 맹세하신 땅에 네가 거주하리라.”(신 30:19-20)

새로운 공동체, 연단의 시간을 거친 하나님을 따르는 사람들은 이렇게 살라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말씀을 청종하며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만으로는 안 됩니다. 따라서 새로운 공동체인 교회 공동체는 결실도 필요합니다. 모세의 유언을 넘어, 오늘 복음서에 나오는 예수님의 비유의 말씀은 결실에 대한 말씀입니다.

3. 말씀을 듣고 받아, 결실하라!

마가복음 4장 말씀은 예수님께서 하나님 나라를 비유를 통해 가르치셨기에 ‘비유장’이라는 이름이 붙어 있습니다. 씨 뿌리는 자의 비유(4:1-20), 등불의 비유(4:21-25), 성장하는 씨앗의 비유(4:26-29), 겨자씨 비유(4:30-32) 등을 통해 하나님 나라를 비유로 설명하고, 마침내 풍랑인 혼돈을 예수님께서 잔잔케 하신(4:35-41) 내용이 들어 있습니다. 본문은 ‘씨 뿌리는 자의 비유’입니다. 마태복음 13:1-9, 누가복음 8:4-8절 말씀이 병행 본문입니다. 우리가 너무 잘 알고 있는 비유입니다. 먼저 말씀을 볼까요?

“예수께서 다시 바닷가에서 가르치시니, 큰 무리가 모여들거늘, 예수께서 바다에 떠 있는 배에 올라앉으시고, 온 무리는 바닷가 육지에 있더라. 이에 예수께서 여러 가지를 비유로 가르치시니, 그 가르치시는 중에 그들에게 이르시되, 들으라! 씨를 뿌리는 자가 뿌리러 나가서, 뿌릴새 더러는 길 가에 떨어지매 새들이 와서 먹어 버렸고, 더러는 흙이 얕은 돌밭에 떨어지매 흙이 깊지 아니하므로 곧 싹이 나오나, 해가 돋은 후에 타서 뿌리가 없으므로 말랐고, 더러는 가시떨기에 떨어지매, 가시가 자라 기운을 막으므로 결실하지 못하였고, 더러는 좋은 땅에 떨어지매, 자라 무성하여 결실하였으니, 삼십 배나 육십 배나 백배가 되었느니라 하시고, 또 이르시되 들을 귀 있는 자는 들으라 하시니라.”(막 4:1-9)

예수님께서 비유를 말씀하시기 전에, 먼저 “들으라(Ἀκούετε)”고 말씀하십니다. 이 말은 신명기에 나오는 “쉐마(שְׁמַע)!”와 같습니다. ‘너희는 들으라!’는 말인데, 중요한 율법의 말씀을 선포할 때, 서두에 이 말을 씁니다. 따라서 이 비유는 주님의 제자들이, 아니 성령 받은 새로운 공동체가  반드시 들어야 하는 귀중한 말씀이라는 것입니다.

<씨뿌리는 자>

농부가 씨를 뿌리러 나갑니다. 팔레스틴에서는 농부가 씨를 뿌리는 방법은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본문 말씀처럼 농부가 직접 씨를 뿌리는 방식이고, 다른 하나는 곡식 자루에 구멍을 내고, 이것을 짐승 위에 싣고 가면서 씨를 뿌리는 방법입니다. 따라서 씨는 자연스럽게 길가나 돌밭이나, 가시떨기가 있는 덤불에 떨어지기도 하고, 혹은 좋은 땅에 떨어지기도 합니다. 아무튼 이 비유의 말씀이 무슨 뜻인지 사람들이 예수님께 물어봅니다.

“예수께서 홀로 계실 때에, 함께 한 사람들이 열두 제자와 더불어 그 비유들에 대하여 물으니, 이르시되, 하나님 나라의 비밀을 너희에게는 주었으나, 외인에게는(τοῖς ἔξω) 모든 것을 비유로 하나니, 이는 그들로 보기는 보아도 알지 못하며, 듣기는 들어도 깨닫지 못하게 하여, 돌이켜 죄 사함을 얻지 못하게 하려 함이라 하시고, 또 이르시되, 너희가 이 비유를 알지 못할진대, 어떻게 모든 비유를 알겠느냐?”(막 4:10-13)

비유의 내용보다 이 말씀이 중요합니다. 우리가 알기에는 비유 자체는 쉬워 보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하신 이 말씀을 통해 비유의 의미가 정확히 드러납니다. 곧 이 비유는 하나님 나라의 비밀이며, 새로운 공동체에는 이 비밀을 깨닫도록 알려 주셨으나, 외인들은 보기는 보아도 알지 못하며, 듣기는 들어도 깨닫기 못하게 하여, 그들로 하여금 회개하여 죄사함을 얻지 못하게 하신다는 말씀입니다. 여기서 외인은 영어로는 ‘the outside’, 곧 아웃사이더(outsider)를 뜻합니다. 요즘 많이 쓰는 앗싸(outsider), 인싸(insider)처럼, 하나님 나라의 비밀을, 인싸들에게는, 아니 핵인싸(core insider)들에게는 알기 쉽게 주셨으나, 앗싸들에게는 비유로 주시어 깨닫지 못하게 하신다는 말씀입니다. 그럼, 예수님께서 풀어주시는 하나님 나라의 비밀을 볼까요?

“뿌리는 자는 말씀을 뿌리는 것이라, 말씀이 길 가에 뿌려졌다는 것은 이들을 가리킴이니, 곧 말씀을 들었을 때에 사탄이 즉시 와서 그들에게 뿌려진 말씀을 빼앗는 것이요. 또 이와 같이 돌밭에 뿌려졌다는 것은 이들을 가리킴이니, 곧 말씀을 들을 때에 즉시 기쁨으로 받으나, 그 속에 뿌리가 없어 잠깐 견디다가 말씀으로 인하여 환난이나 박해가 일어나는 때에는 곧 넘어지는 자요. 또 어떤 이는 가시떨기에 뿌려진 자니 이들은 말씀을 듣기는 하되, 세상의 염려와 재물의 유혹과 기타 욕심이 들어와 말씀을 막아 결실하지 못하게 되는 자요. 좋은 땅에 뿌려졌다는 것은 곧 말씀을 듣고 받아 삼십 배나 육십 배나 백배의 결실을 하는 자니라.”(막 4:10-20)

병행본문과 비교해보면, 대부분 비슷하지만 몇 가지 다른 부분이 눈에 뜁니다. 먼저 마가복음에 사용된 ‘사탄(사타나스)’은 히브리어 사탄(שָׂטָן, 대항자)에서 유래되었고, 누가복음에 사용된 ‘마귀(디아볼로스, ‘틈을 내는 자’, 곧 헐뜯는 자, 비방자, 이간하는 자)’는 헬라어에서 유래되었죠? 누가복음의 지평이 이방인 선교이기에, 헬라어 문화권에서 사용되는 언어인 마귀로 사용하였습니다. 재미있는 것은 마가복음의 사탄이나, 누가복음의 마귀나 모두 마태복음의 ‘악한 자(호 포네로스)’와 비슷한 말입니다. 그런데 포네로스라는 말은 윤리적인 의미로 ‘악독한’, 혹은 ‘비열한’이라는 의미입니다. 주기도문에 ‘악에서 구하소서(마 6:13)’에 나오는 ‘악’도 포네로스입니다.

이것은 유대 공동체를 대상으로 말씀을 선포한 마태복음의 특성상, 헬라 지평의 마귀와 같이 헐뜯고, 비방하고 이간질하는 자로서 악한 자들인 유대교 공동체를 뜻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들은 하나님 나라 운동을 방해하는 세력입니다. 이들은 그리스도인들을 박해하였습니다. 하나님을 잘 믿는다 하는 유대인들이, 하나님을 믿는 그리스도인들을 핍박한 것입니다. 지금 그렇지 않나요? 목사님들이, 장로님들이, 교인들이 그리스도의 복음을 막는 사탄, 마귀가 되어 틈을 내고, 헐뜯고, 비방하고, 이간질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진실로 하나님 나라의 비유 말씀을 잘 듣고, 깨닫게 되면 마침내 삼십 배, 육십 배, 백배의 결실을 할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따라서 이 비유는 마음 밭이 각각 어떤 사람은 길가이고, 또 어떤 사람은 돌밭이고, 또 어떤 사람은 가시떨기이고, 좋은 땅이라는 의미가 아닙니다. 어떻게 각 사람의 마음을 이렇게 일방적으로 판단한다는 말입니까? 이것은 앞으로 제자들이 당면할 힘들고 어려운 상황에 대한 비유의 말씀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 나라를 완성하기 위해, 이렇게 순차적으로 힘들고 어려운 상황이 닥칠 것입니다. “악한 자(혹은 사탄, 마귀)가 방해할 것이고, 말씀으로 인해 환난과 박해를 받을 것이며, 시련을 당하여 배반하는 자도 생길 것이다!” 그리고 “세상의 재물에 대한 유혹으로, 새로운 공동체가 바로 서기 힘들 것이지만, 착하고 좋은 마음으로, 말씀을 듣고 지키어 결실하라!”는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죠? “하나님 나라의 비밀을 너희에게는 주었으나, 외인에게는 모든 것을 비유로 하나니, 이는 그들로 보기는 보아도 알지 못하며, 듣기는 들어도 깨닫지 못하게 하여, 돌이켜 죄 사함을 얻지 못하게 하려 함이라(막 4:11-12).” 하나님 나라는 누구나 다 받아들이고 함께 나누는 그런 나라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육체의 욕심을 따르는 자들, 혹은 세상 재물과 향락에 빠진 자들, 이들은 하나님 나라의 비밀을 받아들이지 않는 이들, 곧 ‘핵앗싸’이라는 말씀입니다. 따라서 길가와 돌밭, 가시떨기와 같은 상황을 극복하고, 사탄, 마귀의 유혹을 이기고, 마침내 말씀을 받아, 삼십 배, 육십 배, 백배의 결실을 맺어야 할 것입니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하나요? 사도 바울이 잘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성령을 따라 행하라!”, 그것입니다.

4. 성령을 따라 행하라!

갈라디아서는 ‘그리스도인의 자유에 관한 헌장’입니다. 갈라디아 지방에 다른 복음을 전하는 자들이 있었습니다(갈 1:9). 앞서 복음서는 이들을 사탄과 마귀, 악한자로 표현했었죠? 이들은 유대인 율법주의자들로 ‘그리스도 안에서의 자유’를, ‘율법의 노예’로 바꾸려고 갈라디아 신자들에게 영향을 미치고 있었습니다. 따라서 바울은 그들의 잘못된 믿음에 반박하여 이렇게 말합니다. “형제들아! 너희가 자유를 위하여 부르심을 입었으나, 그러나 그 자유로 육체의 기회를 삼지 말고 오직 사랑으로 서로 종노릇하라.”(갈 5:13)

따라서 오늘 본문 말씀은 예수 믿는 우리들에게 참다운 신앙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들은 육체와 함께 그 정욕과 탐심을 십자가에 못 박았느니라. 만일 우리가 성령으로 살면 또한 성령으로 행할지니, 헛된 영광을 구하여, 서로 노엽게 하거나, 서로 투기하지 말지니라(갈 5:24-26).” 그리고 육체의 일 15가지와 성령의 열매 9가지를 대조하여 구원받은 자의 삶은 성령 안에서 성령의 열매를 맺는 삶을 살아야 함을 강조합니다. 바울 사도의 말을 들어볼까요? 먼저 육체의 일 15가지입니다.

“내가 이르노니, 너희는 성령을 따라 행하라! 그리하면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아니하리라. 육체의 소욕은 성령을 거스르고, 성령은 육체를 거스르나니, 이 둘이 서로 대적함으로 너희가 원하는 것을 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니라. 너희가 만일 성령의 인도하시는 바가 되면 율법 아래에 있지 아니하리라. 육체의 일은 분명하니 곧 음행과 더러운 것과 호색과 우상 숭배와 주술과 원수 맺는 것과 분쟁과 시기와 분 냄과 당 짓는 것과 분열함과 이단과 투기와 술 취함과 방탕함과 또 그와 같은 것들이라. 전에 너희에게 경계한 것 같이 경계하노니, 이런 일을 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 것이요.”(갈 5:16-21)

그리고 성령의 9가지 열매에 관해서 이야기 합니다.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니 이 같은 것을 금지할 법이 없느니라.”(갈 5:22)

<성령의 9가지 열매>

5. 주먹을 쥔 손은 굶주리게 된다!

서양 속담에 “주먹을 쥔 손은 굶주리게 된다.”는 말이 있습니다. 주먹을 쥐면 다른 것을 잡을 수 없다는 말입니다. 어느 마을에 화를 잘 내는 사람이 살고 있었습니다. 그는 작고 사소한 일에도 화를 잘 내기 때문에 하루가 멀다 하고, 이웃과 입씨름을 하거나 주먹질을 하였습니다. 그러다보니 집안 살림도 남아나는 것이 없었습니다. 이 사람의 성격이 그러나 보니, 이웃 사람들은 그를 피하게 되었습니다. 그러자 그는 외톨이가 되었습니다. 그는 왜 자신이 사람들과 다투는가를 곰곰이 생각해 보았습니다. 결론은 이렇습니다. ‘다른 사람들이 나의 기분을 상하게 만들었다.’는 것임을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그는 사람들이 없는 곳으로 가서 살기로 하고, 산속으로 들어갔습니다.

산속 생활에서 그는 모든 것을 혼자 해결해야 했습니다, 하루는 계곡으로 내려가 물을 길어 오다가 돌부리에 걸려 넘어져 물을 모두 쏟고 말았습니다. 다시 한 번 물을 길어 오다가, 또 넘어졌습니다. 물이 쏟아졌습니다. 화가 난 그는 소리를 지르면서 물통을 집어던졌습니다. 그러자 물통이 박살났습니다. 그는 두 주먹을 꽉 지고 몸을 부르르 떨었습니다. “물통까지 내 속을 썩이네!” 마음속에 풀리지 않는 분노는 복수를 위하여 주먹을 쥐게 됩니다. 하지만 주먹을 쥐면, 다른 것을 잡을 수 없고 되고 결국 굶주리게 됩니다.

성령을 따라 행하는 사람은 ‘말씀을 청종하며 하나님을 의지’하고, 나아가 ‘말씀을 듣고 받아, 결실’하며, 마침내 ‘성령을 따라 행하’는 사람입니다. 성령을 따라 행하는 사람은 주먹을 쥐는 손이 아니라, 펼치는 손입니다. 움켜잡는 손이 아니라, 내미는 손입니다. 이런 사람들이 모여 생명을 나눠주고, 사랑하는 공동체가 바로 교회입니다.

한국교회가 타락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오늘 우리 교회로부터, 착하고 좋은 마음으로, 이러한 참다운 교회 공동체로 거듭난다면, 한국교회는 새로워질 것입니다. 왜냐하면 성령께서 오셨기 때문입니다. 성령을 따라 행하면, 하나님께서 반드시 그렇게 만들어 주실 것입니다. 이 말씀에 힘입어 한주간도 성령 충만한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최병학 목사(남부산용호교회)  hak-99@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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