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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광훈과 그리스도인의 거짓말육신의 일을 도모치 말고(롬 13:13-14)
이성훈 목사(명일한움교회) | 승인 2019.06.16 18:55
13 낮에와 같이 단정히 행하고 방탕하거나 술 취하지 말며 음란하거나 호색하지 말며 다투거나 시기하지 말고 14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고 정욕을 위하여 육신의 일을 도모하지 말라

얼마 전에 저희 교회 장로님께서 카톡을 보내주셨습니다. 전광훈 같이 정신 나간 소리를 하는 목사가 있는데, 우리 교단은 왜 조용히 있느냐는 질문을 하셨습니다. 사실 전광훈 목사가 뭔 소리를 하건 관심이 없기 때문에 저도 자세히 보고 있지는 않습니다만, 이번에는 한층 더 강하게 헛소리를 했던 것 같습니다.

일전에 일본에 계신 서정민 교수님이 페이스북에 글을 하나 올리셨었습니다. 페북 친구들을 향한 요청이라고 올리셨는데, 전광훈 같은 자는 관심종자에 정치꾼인지라, 자신에 관련된 부정적인 글들조차도 좋아하는 사람이라고, 흔히 정치인은 자신에 관련된 기사는 부고 빼고는 긍정적이건 부정적이건 모두 좋아한다고 말하는데, 전광훈도 그런 사람이니까 그에 대한 기사 링크도 언질도 하지 말자는 이야기를 하셨습니다.

찾아보니까 NCCK(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에서 전광훈 목사의 발언에 대한 성명서를 냈습니다. 성명서에 앞선 내용에서 이런 이야기를 합니다. “우리의 성명이 또 다른 갈등의 빌미가 될까 지금까지 참고 있었다.” 그리고 또 이렇게 말합니다. “이 일을 마지막으로 한국의 모든 언론이 더 이상 전광훈 목사의 비상식적 발언에 관심을 갖지 않고 무시해 주길 기대합니다. 그의 끊임없는 거짓발언은 어떠한 측면에서도 한국 사회에 하등의 도움이 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앞서 페이스북에 올라온 글을 이야기 드렸는데, 아마 대다수의 교단들은 NCCK의 이런 방침에 동조하여 더 이상 이 사람에 대해서 언급도 안하고 있는 듯 합니다. 이런 사람은 사실 무시하는 게 맞습니다. 하지만 그런 생각도 듭니다. 어떤 사람들은 이 사람의 말이 예수님의 말씀과 맞지 않다는 점을 분명하게 알고 있기 때문에 이 사람의 말 자체를 무시합니다.

하지만 반대로 이 사람의 말이 맞다고 여기며 그것이 또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생각하는 성도님들도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렇기에 저는 오늘 이 점에 대해서 어느 정도는 말씀을 드려야겠다고 생각을 합니다. 그리고 잘못된 길을 걷고 있는 일부 교회의 목회자들보다는 그들에게 현혹되어 계신 성도님들이 바른 교회들로 돌아오게 되시길 바랍니다.

경제 발전

전광훈 목사가 쓴 글이라고 해서 찾아봤습니다. 이 사람이 도대체 무슨 말을 하는가를 알아야 우리가 비판을 하던 동조를 하던 반박을 하던 할 수 있습니다.

우선 이 글을 읽고 느끼게 되는 생각은 “왜 목사가 이런 이야기를 할까?”라는 점입니다. 이 사람이 주장하는 대부분의 이야기는 우리나라가 잘 살려면 지금 정권이 하는 방식대로 하면 안 된다는 이야기입니다. 우리나라에서 보수, 또는 우익이라고 스스로를 자칭하는 분들의 논조와 거의 동일합니다.

▲ 전광훈의 단식은 하루만에 끝났다. ⓒ연합뉴스

원전을 폐기하면 안 되고, 소득주도 성장 정책을 취하면 안 되고, 4대강 보를 해체하면 안 된다는 이야기를 합니다. 아마 이 사람은 민주화운동 당시나 지금이나 진보적인 교회들이 정권을 비판하면서 예언자적 소명을 감당한다고 말했던 것을 자신에게도 적용하고 싶었던 것 같습니다.

이 사람이 차라리 원전 폐기, 4대강 보 해체, 52시간 근무제, 최저임금 인상에 따라서 어떤 특정 집단, 수탈이 가능한 집단이 큰 이익을 얻게 되고, 가진 것이 없는 이들은 빼앗기게 된다는 주장을 하였다면, 그나마 예언자적인 언어를 사용했다고 말할 수는 있습니다.

하지만 결국 주장하는 내용은 우리나라 경제 성장입니다. 지금 정권의 방침으로는 경제가 망하기 때문에 과거 이명박, 박근혜 대통령 시기의 경제 정책을 사용해야 한다는 주장으로 보입니다. NCCK의 성명에는 이 사람이 반성서적인 말을 한 것처럼 나와 있지만, 사실 그의 주장은 성경에 나오는 말입니다.

아모스 8장 4-6절을 보면,

“가난한 자를 삼키며 땅의 힘없는 자를 망하게 하려는 자들아 이 말을 들으라. 너희가 이르기를 월삭이 언제 지나서 우리가 곡식을 팔며 안식일이 언제 지나서 우리가 밀을 내게 할꼬 에바를 작게 하고 세겔을 크게 하여 거짓 저울로 속이며, 은으로 힘없는 자를 사며 신 한 켤레로 가난한 자를 사며 찌꺼기 밀을 팔자 하는도다.”

부를 추구하는 자들은 안식일에 종들을 쉬게 하는 일을 못마땅해 했습니다. 안식일에도 일을 시켜야 부를 더욱 쌓을 수 있는데, 하나님의 말씀 때문에 부를 쌓을 수 없으니 고민이었습니다. 이사야 58장을 보면, 이스라엘 백성들은 실제로 안식일을 지키지 않고 일을 시키기도 했습니다.

언제 예언자들이 경제 성장을 부르짖었습니까? 오히려 부를 쌓아야 한다고 말하는 이들을 향해, 경제를 성장시켜야 한다고 말하는 이들을 향해 이렇게 말합니다. 이어지는 아모스의 말씀입니다.

“너희 절기를 애통으로, 너희 모든 노래를 애곡으로 변하게 하며 모든 사람에게 굵은 베로 허리를 동이게 하며 모든 머리를 대머리가 되게 하며 독자의 죽음으로 말미암아 애통하듯 하게 하며 결국은 곤고한 날과 같게 하리라.”(아모스 8:10)

경제를 성장시켜야 한다, 어떤 방법으로든 부국을 만들어야 한다는 말은 예언자가 한 말이 아니라, 당시의 심판 당한 이스라엘이 한 말이고 예언자들은 이를 비판한 사람들입니다. 반성서적이라기보다 성서에서 비판받고 심판의 대상이 되는 사람들의 언어를 이 사람이 그대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원전 문제는 논란이 많은 문제라고 생각합니다만, 개인적으로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예전에 애플의 스티브잡스가 살아있을 때, 어도비(Adobe)사의 플래시를 애플이 사용하지 않는다는 문제로 스티브 잡스와 어도비가 논쟁이 붙었던 적이 있습니다. 이때 스티브 잡스가 그런 이야기를 합니다.

“플래시는 좋은 기술이었다. 하지만 이제 정점을 찍었고, 내리막에 들어선 기술이다. 애플이 왜 그런 기술을 사용해야 하는가? 우리는 언제나 정점을 향해가고 있는 기술만을 사용한다.”

원전은 좋은 발전 기술이었고, 우리나라의 원전 기술이 좋다는 점도 맞습니다. 그런데 원전은 폭발의 위험성과 방사능 폐기물의 문제가 있습니다. 미래를 위해서 새로운 발전 기술의 개발은 당연한 일입니다. 왜 전세계적으로 수소 에너지에 집중하고 있겠습니까? 공해가 없고, 우주에 무한하게 존재하는 자원이 수소이기 때문입니다.

만약 그리스도인이라면 원전 유지와 수소 에너지 개발 중 무엇을 선택하겠냐고 물었을 때, 기술적인 측면을 넘어서 수소 에너지 개발이라고 대답해야 할 것입니다. 최소한 하나님께서 만드신 이 세상에 오염물을 남기는, 원자력 발전소 고준위 폐기물을 자연으로 돌려보내는데 10만년이 걸린다는데, 그러한 폐기물을 남기는 발전 방식을 하나님의 창조세계를 지켜가야 할 목회자와 그리스도인이 주장할 수는 없습니다.

국가 안보

이 사람이 주장하는 또 하나의 이야기는 한미관계입니다. 지금 정권의 친북 성향 때문에 한미관계가 깨지고 있다는 이야기인데, 제가 언론을 통해서 봤을 때, 김정은을 가장 옹호하고 있는 게 미국의 트럼프 대통령인데, 미국 대통령과 우리 정부가 같은 방침을 말하고 있다면 왜 한미동맹이 깨지게 되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아무튼 이 사람의 주장은 대강 북한의 위협이 있기 때문에 우리나라의 안보 체계를 강화해야 하지만, 현 정권은 간첩에 빨갱이이기 때문에 우리의 안보를 깨뜨리고 있다는 이야기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미국과의 동맹을 굳건히 하고, 미군을 다시 서울로 오게 해야 한다는 뭐 그런 이야기 같습니다.

이 사람은 정말 성경적인 사람인가봅니다. 이 이야기를 읽었을 때, 사사기와 사무엘상의 말씀이 떠올랐습니다. 사시기는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지려고, 자신들 마음대로 살아가려고 끊임없이 노력하는 이스라엘의 모습이 잘 나타나 있습니다. 이런 이스라엘을 하나님께서는 이웃 국가의 침략이라는 방법으로 심판하셨습니다.

그러자 이스라엘 사람들은 깨닫게 됩니다. 이웃 국가를 막을 수 있는 강한 군사력이 있다면, 이웃 국가와 마찬가지로 강한 왕이 통치하는 나라가 된다면, 하나님의 심판 따위는 이겨낼 수 있으리라고 생각하게 됩니다. 그래서 사사기 8장에서 기드온에게 자신들의 왕이 되어달라고 부탁합니다. 사무엘상 8장에서는 사무엘에게 왕을 요구합니다. 이런 이스라엘 사람들을 보시면서 하나님께서 사무엘에게 말씀하십니다.

“백성이 네게 한 말을 다 들으라. 이는 그들이 너를 버림이 아니요. 나를 버려 자기들의 왕이 되지 못하게 함이니라.”(사무엘상 8:7)

물론 북한이 우리나라를 공격해 온다면, 이것을 하나님의 심판이라고 말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목회자는 또 그리스도인들은 군비 강화를 말하면 안 됩니다. 군비 강화, 군사력의 증강은 하나님께서 요구하신 게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오히려 우리에게 바른 삶을, 당신이 가르쳐주신 말씀대로 살아가는 삶을 요구하셨습니다. 그렇게 살아간다면, 주변국으로부터 침입 받는 일이 없게 하시고, 침입 받는 일이 있더라도 자신이 지키신다고 말씀하십니다.

혹시나 과거 3, 4세기 이후의 교부들이 구약성경의 언어는 천박하다고 말하면서 구약성경을 신약성경에 비해 낮게 취급했던 전통을 따라서 구약성경의 이야기에는 관심이 없는 것일까요? 그렇다면 예수님께서 하셨던 이야기는 어떨까요?

“네 칼을 도로 칼집에 꽂으라. 칼을 가지는 자는 다 칼로 망하느니라.”(마태복음 26:52)

지금 시대에 있어서 최소한의 군사력은 필요합니다. 국가적으로 어떠한 사태가 벌어질지 모르기 때문에 국민들을 지킬 수 있는 군사력은 필요합니다. 우리나라의 군사력을 어떻게 어떻게 강화해야 한다는 이야기는 군사 전문가들이 할 이야기입니다. 교회가 할 이야기는 아닙니다. 목회자가 해서도 안 되고, 그리스도인이 해서 될 이야기가 아닙니다.

때로 사람들과의 관계에 있어서 이런 이야기들을 소재로 자신의 의견을 낼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 여러분들이 어떤 선택을 하시건 상관없습니다. 원전 찬성을 하셔도 되고, 한미동맹을 굳건히 해야 한다고 주장을 하셔도 됩니다. 북한은 다 빨갱이라고 말씀하셔도 됩니다.

그런데 한 가지만 부탁드립니다. 그런 이야기를 하실 때는, 그리스도인이라는 호칭은 떼고 이야기하시기 바랍니다. 최소한 이렇게 첨언을 해주시기 바랍니다. “내가 그리스도인으로서 이런 말을 하면 안 되지만,” 이렇게 말을 시작해주셨으면 합니다.

전쟁을 위해서 군사력을 강화해야 한다는 주장, 공해를 만들지 않는 기술을 개발하기보다는 무한에 가까운 공해를 축적하면서도 지금의 기술을 유지해야 한다는 주장, 경제를 발전시키는 일 만이 지상 최대의 목표라는 주장, 원수는 다 때려죽여야 한다는 주장, 전부 성경에서 비판 받고 심판의 대상이 된 사람들이 했던 주장입니다.

성경과 상관없는, 교회와 상관없는 자신의 주장은 말씀하셔도 됩니다만, 그것이 하나님의 말씀과는 동떨어져 있다는 사실을 아시기 바라고, 그런 주장을 하실 때는, 이를 꼭 밝혀주시길 바랍니다.

자신을 가꾸는 일

성경 말씀은 잠깐만 살펴보려고 합니다. 오늘 저희가 읽은 본문은 알만한 분들은 다 아는 어거스틴의 회심 일화로 유명한 본문입니다. 어머니 모니카의 기도로 더욱 유명한 어거스틴이 진리를 깨닫지 못하고, 진리에 도달하지 못해 괴로워하고 있을 때, 옆집인지 어딘가에서 들려오는 아이의 노랫소리를 듣게 됩니다. “들어서 읽어라” 이 노랫소리를 듣고 어거스틴은 자신의 탁자 위에 놓여져 있던 바울 서신 중 한 권을 들고 읽습니다. 그게 오늘 읽은 본문, 로마서 13장 13-14절이었습니다.

이에 대한 이야기는 어거스틴의 『고백록』 제8권에 나옵니다. 『고백록』은 어거스틴의 자전적인 일기가 아닙니다. 당시 교회 청년들의 신앙을 위해, 성도님들의 신앙 교육을 위해 적은 책이기도 합니다. 그렇기에 어거스틴은 이 말씀을 성경의 핵심이라고 생각하고 『고백록』에 기록합니다. 그가 생각했던 성경의 핵심은 ‘먼저 자신을 가꾸는 일’에서 출발합니다. 이는 나중에 공동체로 발전되어 나가지만, 우선적으로 중요한 점이 자신을 정결케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방탕, 취함, 음란, 호색, 다툼, 시기를 나열하고, 이를 한 구절로 다시 요약합니다. ‘정욕을 위한 육신의 일’이라고 말합니다.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들은 이러한 일을 버리고 그리스도로 옷 입어야 합니다. 천로역정과 같이 ‘그리스도의 옷’이라는 걸 입는건 아니고, 그리스도 안에서 살아가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사도 바울은 이 말 뒤에 14장에서 ‘남을 비판하지 말라’는 이야기를 이어갑니다. 이것도 다시 생각해보면, 남을 비판하기에 앞서 자기 자신이 그리스도 안에 바르게 살아가고 있는가를 살피라는 말씀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사도 바울이 말하는 비판은 평화를 깨뜨리는 비판입니다.

사도 바울 스스로도 베드로의 잘못된 점을 지적하고 비판했기 때문에 그러한 비판을 금지하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내 생각만이 옳다고 여기면서 남들은 다 틀렸다고 말하는 비판, 공동체의 평화를 깨뜨리는 비판을 하지 말라고 말합니다. 그런 비판을 하기 전에 먼저 스스로를 가꾸라고 말합니다.

사서(四書) 중 한 권인 대학(大學)에는 우리가 잘 아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수신제가치국평천하(修身齊家治國平天下)’ 자신을 닦고 가정을 다스리고 나라를 다스리고 천하를 평화롭게 한다는 말입니다. 사실은 ‘수신(修身)’ 앞에 더 긴 이야기가 있습니다. ‘수신(修身)’에 이르는 방법입니다. ‘격물·치지·성의·정심(格物․致知․誠意․正心)’

“만물의 이치를 철저히 연구한 이후에 지식이 지극히 되고, 지식이 지극히 된 이후에 뜻이 성실히 되고, 뜻이 성실히 된 이후에 마음이 바르게 되며, 마음이 바르게 된 이후에 자신의 몸이 수양이 된다.”

동양이건 서양이건 지식을 쌓아야 마음이 바르게 되고, 마음이 바르게 되야 몸이 바로 서고, 가정을 세우고, 나라를 세운다고 말합니다. 어거스틴도 마찬가지의 사상을 가지고 있었고, 그렇기에 그도 신플라톤주의 철학적 사상을 이야기합니다만, 그럼에도 어거스틴은 이렇게 말합니다.

“하나님에 대한 지식을 가진 사람들은 어떤 철학자들보다 현명하다.”

성경이 말하는 ‘수신(修身)’은 만물의 이치를 따지는 격물(格物)에서 시작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아는 데서 시작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삶을 받아들이는 데서 시작합니다. 그렇기에 예수 그리스도와 동행하며 하나님 안에서 사는 삶이 ‘수신(修身)’입니다.

저는 여러분들게 많은 지식을 쌓아야 한다고 말씀드리고 싶진 않습니다. 다만 바른 하나님의 지식만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그 지식으로 우리의 몸을 가꾸시기 바랍니다. 어리석게도 성경 말씀을 말한다고 하면서, 성경이 비판하고 있는 사람들의 말을 따라하지는 마시길 바랍니다. 다시금 말씀을 읽고 깨달으심으로 육신의 정욕에서 벗어나 하나님의 말씀을, 예수 그리스도의 삶을 따르는 삶을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지금 일부 목회자들이 하는 이야기는 십계명을 읽으면서 ‘살인’만 읽고 ‘하지 말라’는 읽지 않는 것과 똑같습니다. 성경에 ‘살인’이라고 써 있으니까 살인해야지. 성경에 ‘간음’ 써 있으니까 간음해야지, 도적질 해야지, 우상숭배 해야지. 이와 다르지 않습니다. ‘하지 말라’는 읽지 않고 있습니다. 이는 하나님에 대한 올바른 지식이 없음이요, 예수 그리스도와 전혀 동행하고 있지 못함입니다.

자신의 욕망을 따라 사는 사람의 말에 귀 기울이실 필요 없습니다. 그런 이들의 말은 우리를 욕망의 길로 이끌고 우리를 현혹시킵니다.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지게 만듭니다. 참된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살아감으로 먼저 우리의 욕망을 제하여 버리고, 오직 그리스도와 함께 동행하시길 바랍니다.

이상한 신앙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닌가

마지막으로 여러분께 한 가지 질문을 던지면서 말씀을 마치고 싶습니다. 여러분은 무엇을 믿으며 살아가십니까? 고도로 발달되는 경제 체계가 우리의 삶을 지킨다고 믿으십니까? 강인한 국방력이 있어야 우리의 삶이 안전하다고 생각하십니까? 여러분의 믿음의 근간은 어디에 있습니까?

우리는 이상한 신앙을 가지고 살아가고 있지는 않습니까? 교회 끝나고 나오는 길에 무단횡단을 하면서 하나님께서 나로 사고당하지 않게 지키시리라고 믿습니다. 사회의 아주 단순한 법규도 지키지 않으면서 하나님은 나를 지키신다는 믿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국가의 문제로 넘어가면, 국가의 국방력이 나의 안보를 지켜준다는 믿음을 갖습니다. 대기업이 잘 되고, 대기업 총수들이 배불러야 우리에게 떡고물이 조금이라도 떨어진다는 낙수효과에 대한 믿음을 가지고 살아갑니다.

도대체 이 믿음은 어디에서 출발한 믿음입니까? 성경에서 출발한 믿음입니까? 아니면 그냥 내 멋대로, 내 원하는 대로 하나님이 해줘야 한다고 떼쓰는 믿음입니까? 우리 믿음의 근본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것이 사도 바울이 말한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음’입니다. 세상 욕심을 다 버리고 오직 예수님을 따라 살아가는 삶이요, 하나님만을 바라보는 삶입니다.

이런 시기에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바로 서야 합니다. 참된 세상을 이루어가기 위해서 우리가 먼저 일어서야 합니다. 하나님 안에서, 예수 그리스도와 동행하는 삶을 세상에 보여주어야 합니다. 세상의 정욕에 물든 헛된 소리로 그리스도의 영광을 가리는 행위가 아니라 오직 말씀 따라 살아가심으로 세상에 참된 주님의 빛을 비추시는 여러분 되시길 축원합니다.

이성훈 목사(명일한움교회)  joey8100@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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