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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푸하, 경계를 가로지르다경계를 넘나드는 힘은 어디서부터 왔을까
이정훈 | 승인 2019.06.19 21:06

미국의 꽤 많은 대중문화 가수들이 교회 성가대 출신이다. 가스펠, 특히 흑인들로 이루어진 교회에서 불려지던 블랙 가스펠로부터 영향을 받은 가수들이었다. 소위 아재 인증이라고 하겠지만 기자의 중고등 시절 즐겨듣던 가수였던 휘트니 휴스턴, 머라이어 캐리 등등이 이에 속한다.

미국으로부터 불어닥친 또 하나의 교회 문화

그리고 7-80년대 미국을 중심으로 CCM(Contemporary Christian Music, 현대기독교음악)이 교회문화로 자리잡았고, 그 영향은 고스란히 한국교회로 이식되었다. 한국의 모 대형교회를 중심으로 소위 “경배와 찬양”은 이를 모방해 한국교회의 찬양문화를 일거에 획일화시키는 현상을 몰고 왔다. 교회마다 찬양팀이 구성되고 전자악기와 드럼 등의 악기가 유입되었다.

그간 사회와 교회 간의 문화적 단절에 힘들어 했던 그 당시 교회 청년들은 청량감마저 느꼈다. 그 당시 유명새를 탔던 CCM 가수들은 일반 대중음악으로 진출하기도 했다. 이른바 CCM논쟁이 일어날만큼 한국교회에 큰 영향을 주었다.

▲ 성공회대 신학과와 장신대 신학대학원 졸업하고 예장 통합측 새민족교회 전도사로 사역하며 음반 앨범을 발표한 황푸하 전도사. 지난 3월 옥바라지선교센터 3주년을 맞아 박준경 열사 묘역에서 추모 예배를 드릴 때 노래하는 모습. ⓒ옥바라지선교센터 제공

하지만 90년말부터 급격히 쇠퇴하기 시작하며 이제는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그럼에도 그 당시 문화는 많은 교회 청년들로 하여금 음악의 경계를 넘어서도록 만들었다. 교회 문화와 일반 대중문화가 만나는 접점이 생긴 것이다.

이러한 영향을 직접적으로 이야기 하든 간접적인 영향이든 교회 청년들로 하여금 대중문화로의 진출을 가속화시켰다. 용어의 적절성에 대해서는 논란이 있겠지만 CCM Kid들의 탄생은 또 하나의 문화로 정착한 것이 아닐까 한다. 기자에게는 긍정적인 영향으로 보인다.

경계는 경계로, 하지만 월경하는 기독교인들

기자 개인의 시각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대중음악분야에서 활동하는 기독교인들을 만나게 되면 이러한 영향을 확인해 보고 싶은 묘한 충동을 느끼곤 한다. 옥바라지선교센터(사무국장 이종건, 이하 옥선)의 황푸하 전도사를 알게 되었을 때도 이런 충동이 작동했던 것 같다. 어쩌면 사사로운 관심이라 해도 좋을듯 했다.

그렇게 시작된 인터뷰를 통해 전혀 새로운 세계를 만났다는 것이 솔직한 이야기이다. 신학과 사회과학, 교회문화와 대중문화의 경계를 넘나드는 젊은 활동가의 답을 통해 이제 한국 기독교는 전혀 새로운 단계에 진입한 것이 아닌가 했다. 교회와 사회와의 차별성을 강조해 왔던 한국교회가, 일부일수도 있지만, 공존하고 적극적으로 함께 살아가는 법을, 소통하는 방법을 찾아낸 것으로 보였다.

소통하지 못하고 언어의 차이를 극복하지 못해 역으로 차별받는 기독교에서 벗어나기 시작한 것이다. 경계가 뚜렷했던 것에서 경계가 사려졌다가 이제는 월경하는 기독교인들의 활동을 보게 된다. 이러한 모습이 조금 더 성숙한 모습으로 변화되기를 기원하게 되었다.

다음은 전도사이자 가수인 황푸하님과 나눈 일문일답이다.

▲ 먼저 인터뷰에 응해주셔서 감사드린다. 활동가들과 가까이 있지 못하니 예전보다 낯선 분들이 많다. 오히려 낯선 분들이 많아진다는 것은 반가운 일일수도 있겠다. 성함부터 시작해서 여러 가지가 낯선 분 중에 한 분이다. 자기 소개 좀 부탁드린다. 요즘 쓰는 말로 자신을 탈탈 털어주시면 좋겠다.

저는 성공회대학교에서 신학을 전공하고 장로회신학대학교 신대원을 졸업했고, 현재 망원동 새민족교회에서 전도사로 일하고 있습니다.

대학 시절 신학과 선배의 권유로 홍대에서 인디밴드를 하게 되었고, 2011년도부터는 “황푸하”라는 이름으로 솔로활동을 시작했습니다. 16년도에 정규 1집 <칼라가 없는 새벽>을 발매했고, 18년도에는 2집 <자화상>을 발매했습니다. <자화상>은 제16회 한국대중음악상 최우수 포크 음반 부문과 노래 부문에 노미네이트 되었습니다. 그래서 “황푸하”의 음악 활동 ‘신’은 교회음악신이 아니라 인디씬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성공회대학교 학생이라 자연스럽게 1학년 때부터 시위에 참가했습니다. 신입생이 들어오면 당연히 데모에 데려가는 그런 분위기였습니다. 홍대에서 음악을 하면 또 자연스럽게 투쟁현장으로 노래를 하러 갑니다.

왜냐하면 현장에서 문화제를 기획하는 사람들이 홍대의 인디밴드들을 섭외하기 때문이고 이 씬에서 활동하는 많은 음악가들이 사회 문제에 관심이 많기 때문입니다. 콜트콜텍 해고노동자 투쟁과 용산참사가 저에게 큰 영향을 주었습니다. 그때부터 자연스럽게 많은 현장을 다니게 되었습니다.

2016년에는 옥바라지 골목 투쟁을 시작하기 위한 모임에 참가했다가 감신대 이종건 전도사를 만났습니다. 세월호 예배를 함께 기획한 기억이 있어서 옥바라지 골목에서도 투쟁을 위한 기독교 단체를 만들어보기로 했습니다. 그것이 <옥바라지선교센터>이고, 지금까지 많은 분들과 함께 활동을 이어오고 있습니다.

▲ 황푸하님은 지난 주 싱글앨범 <이사>를 재즈피아니스트 이선지님과 작업하고 “이사”라는 소재로 잃어버렸던 우리의 소중한 추억들을 다시 찾아가는 장면들을 노래에 담았다. ⓒ황푸하 제공

▲ 성함을 처음 알게 된 것은 옥바라지선교센터 활동가들의 이름을 보았을 때이다. 옥선에서 맡고 있는 역할이라고 해야 할까, 어떤 역할을 하고 계신가?

현재 저는 <예전과신학 분과위원회> 위원장을 맡고 있습니다. <현장예배>라는 형식의 예배를 연구하고 기획하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현장에서 사용할 수 있는 교회 노래, <옥선 찬송가>를 개발하고, 전례적 요소들을 어떻게 고난 현장에 접목시킬 것인지 고민합니다.

또 다양한 현장과 상황에 어울리는 예배를 기획하는 방법들을 정리해서 기록하는 일들을 하고 있습니다. 또 저희 분과는 옥선이라는 단체의 신학 또한 고민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옥선의 기독교적 정체성을 잡은 채 나아갈 방향을 제시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 특히 에큐메니안에서 옥선 3주년 기사를 내보낼 때, “이 곡은 인터내셔널가에 있는 “허공에 매인 십자가”라는 가사를 보고 영감을 얻어 만든 곡”이라는 문구를 보고 내심 많이 놀랐다. 젊은 활동가들 중에서 아직 마르크스주의에 관심을 가진 분들이 계신가 싶어서 놀란 것이다. 그리고 곡을 직접 만드셨다는 부분에서도 놀랐다. 음악적인 이야기는 조금 뒤에서 다시 하고 마르크스주의에 대해 관심이 많으신가? 자신의 활동에 어느 정도 차지하고 있다고 생각하시는가?

마르크스가 지금까지도 많은 운동에 영향을 주는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저는 전공 때문인지, 마르크스의 이론 혹은 철학 자체보다는 그것이 신학적으로 어떻게 이해되고 있는지에 더욱 관심이 많습니다. 도로테 죌레의 <사랑과 노동>에서도 마르크스의 노동 개념이 창조의 개념 안에서 신학적으로 어떻게 새롭게 이해되고 있는지 발견할 수 있는데, 그 지점은 저에게도 운동을 지속하게 만드는 뜨거움입니다.

<옥선찬송가>에 수록되어 있는 “허공”이라는 노래는 사실 “허공이 매인 십자가”라는 인터내셔널가의 유물론적인 가사를 비판하는 노래입니다. 우리가 주먹을 쥐고 구호를 외치며, 노래를 부르며 하늘에 팔뚝질(?)하는 모양이 사실은 얼마나 약합니까. 우리가 그렇게 한다고 세계가 바뀌기라도 합니까? 그 어떤 기적도 일어나지 않을 거라고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신앙을 갖고 있는 사람들은 그 허공에 기대를 거는 사람들입니다. 해방의 방법을 모두 빼앗긴 사람들에게 허공의 하나님은 그들이 잡을 수 있는 마지막 지푸라기일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그 허공에 허우적대는 우리의 발걸음이 우리를 구원할 거라는 역설의 신비가 기독교가 말하는 복음이 아니겠습니까?

▲ 이제 이 인터뷰의 주제라고 해도 좋겠다. 곡을 직접 만드실 정도면 상당한 음악적 재능을 가지고 계신 것이 아닌가 싶다. 제가 알고 있기로는 교회 사역자로 알고 있는데 신학 공부를 하시기 전에 음악 교육을 받으셨는가?

어렸을 적 첼로를 했습니다. 그래서 악보를 읽을 줄 알고, 클래식 음악들을 자주 들었습니다. 그 외에 음악 교육을 받은 적은 없습니다. 군악대 시절, 선후임이 재즈 연주자들이었는데, 그들과 함께 연주하면서 재즈도 어깨너머 배웠습니다. 

▲ 음악 장르를 구분해서 여쭈어 보는 것이 좀 우스워보이기도 한다. 음악을 전혀 모르니 그저 제가 알고 있는 수준에서 여쭈어 보는 것이다. 지금 하고 계신 음악은 그럼 기독교 음악인가? 아니면 기독교가 음악 작업하시는데 어느 정도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고 생각하나?

지금 제가 하는 음악은 기독교 음악이 아닙니다. 일부러 구분 짓기도 합니다. 왜냐하면 제가 활동하고 있는 곳은 인디씬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저의 신학 공부를 통한 여러가지 고민들, 인간과 세계에 대한 고민들, 사랑과 정의에 대한 고민들이 노래에 담겨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옥선 찬송가>는 기독교 음악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만, 주류의 CCM 음악들과는 전혀 다른 결을 갖고 있다고 하고 싶습니다. 류형선, 주현신 같은 선배들의 노래 운동을 새롭게 시작하고 싶었고, 예배에서 사용하는 노래들이 고난 현장과 맞닿게 하고 싶었습니다. 사회의 고난 현장과 개인의 신앙을 절대로 구별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 80-90년대 한국교회에 선풍적인 바람을 일으켰던 것이 모 교회를 중심으로 한 “경배와 찬양”이었다. 소위 CCM이라 불리기도 했고 각 교회마다 악기며 음악 스타일이며 거의 획일적으로 통일되던 시기였다. 기자도 그 세대에 속해 있다. 그런데 지금은 거의 흔적도 없다. 이 질문이 실례가 된다면 넘기셔도 되지만 이제 교회음악 혹은 젊은이들이 향유할 수 있는 교회음악은 이제 없다는 생각마저 든다. 음악을 하시는 입장에서 여전히 교회 젊은층들에게 교회음악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는가?

저도 CCM을 비판하는 입장입니다. 90년대에 한국에서 발전한 현대적인 예배는 파격적이고 도전적으로 밴드 음악을 도입했지만, 껍데기만 매력적으로 바뀌었지 그 알맹이는 여전히 문제가 많습니다. 현대 예배의 뿌리는 개혁주의 신학과 경건주의 부흥회의 결합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의 가장 큰 문제는 합리적인 개인주의입니다.

예배의 주제는 복음과 치유(힐링)에 집중되고, 신앙이라는 것은 예수를 믿는 개인이 천국을 가는 개인적인 일로 결론지어 졌습니다. “경배와 찬양”은 그 개인주의 신앙의 반복일 뿐, 전혀 새롭지 않습니다. 그래서 교회 젊은층들이 어떤 장르의 노래를 부르든지 그 신학의 내용이 바뀌지 않는다면 같은 문제를 되풀이할 뿐입니다. 

▲ 교회와 대중음악 그리고 개발과 폭력이 있는 곳을 오가는 황푸하 전도사에게 어울리는 명칭이 무엇일지 잠시 고민해 본다. ⓒ황푸하 제공

▲ 이번 발매하신 디지털 싱글앨범에 대해 마음껏 홍보해 주시길 부탁드린다.

이번에 발매한 싱글앨범 <이사>는 재즈피아니스트 이선지님과 작업했습니다. “이사”라는 소재로 잃어버렸던 우리의 소중한 추억들을 다시 찾아가는 장면들을 그렸습니다. 이삿짐을 쌀 때 우리는 먼지 쌓인 물건들, 한 때는 소중했던 물건들을 다시 찾고는 하잖아요.

‘우리는 그것들을 잊었지만 그 물건들은 나를 잊지 않고 있었구나.’ 하는 관점으로 정말로 우리에게 소중한 것은 무엇인지 함께 고민하고 싶었습니다.

▲ 사회관계망서비스(SNS)의 글을 보니 재즈피아니스트 이선지님과 작업하신 것으로 소개해 놓으셨다. 어떻게 인연이 되어 함께 작업하게 되신 것인가?

한국대중음악상 시상식에서 만나기도 했고, 저와 함께 활동하는 재즈베이시스트 정수민님과도 함께 트리오를 하시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인연이 되었습니다. 이선지님과는 또 다른 프로젝트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기대해주세요.(웃음)

▲ 속된 말로 언더에서 활동하는 음악가가 아닌 음반까지 발매한 음악가가 되셨다. 앞으로의 활동 계획 같은 것에 대해 이야기해 주시면 좋겠다.

싱글 앨범을 내년 초까지 분기마다 발매하기로 했습니다. 잊혀지지 않기 위한 … 발악일까요?(웃음) 올해에는 싱글앨범과 공연들을 통해서 팬 여러분을 더욱 자주 뵙고 싶습니다. (공연 정보는 페이스북 페이지, 인스타그램 계정을 통해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또 다양한 음악가들의 여러가지 프로젝트 앨범에 공동작업으로 참여하고 있습니다.

▲ 마지막으로 음악을 들려주시려는 대상이 꼭 교회는 아닌 것 같다. 그럼에도 교회에 소속되어 있는 독자들에게 자신의 음악이 교회와 이런 점이 맞닿아 있다고 이야기해 주실 수 있는가?

예배 시간에 흔히 말하는 가요(?)를 부르면 기분이 좋습니다. 세상의 아름다운 노래들은 그 가사에 유일신을 숭배하거나 그리스도를 영접하지 않더라도 “아름다움”이 담겨 있다는 이유 하나로 충분히 거룩합니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고 그리스도를 구주로 영접해서 복을 받는 것이 아니라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는 감각적인 경험입니다. 그것으로 우리는 충분히 신앙을 이어갈 수 있습니다.

이정훈  typology@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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