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여백
HOME 말씀의 잔치 Sermonday
거룩함에 이르는 열매를 맺으라(사 54:1-8; 롬 6:15-23; 눅 19:1-10)성령강림후 둘째 주일(6월23일)
최병학 목사(남부산용호교회) | 승인 2019.06.21 18:55

1. 법, 돈, 국가를 넘어 ‘신(神)’의 가치로

이스라엘 예루살렘 히브리 대학교의 역사학 교수인 유발 하라리는 『사피엔스』 (김영사, 2015)와 『호모 데우스』 (김영사, 2017)에서 인간의 역사를 ‘인지혁명’, ‘농업혁명’, ‘과학혁명’, ‘생명공학혁명’이라는 네 가지 혁명의 틀로 바라봅니다.

지금으로부터 10만 년 전, 지구에는 ‘호모 사피엔스’뿐만 아니라 네안데르탈인, 호모 에렉투스 등 최소 6종의 인간 종이 살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후 호모 사피엔스 종만이 유일한 승자로 지구상에 살아남게 되었고, 이제 그들은 신의 영역까지 넘보고 있다고 합니다. 이것은 아프리카에 살던, 별 볼 일 없던 호모 사피엔스가, 사람들의 상상 속에 함께 존재하는 허구적인 실재인 ‘법, 돈, 신, 국가’ 등을 믿는 능력 덕분에 서로 협력할 수 있어서, 지구라는 행성을 지배할 수 있게 된 성공의 비결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라리는 이렇게 비판합니다. “인간은 새로운 힘을 얻는 데는 극단적으로 유능하지만, 이 같은 힘을 더 큰 행복으로 전환하는 데는 매우 미숙하다.” 이것은 사피엔스의 숙명적인 한계입니다. 선악과의 의미가 여기서 이렇게 드러납니다. 낙원을 만들 수는 있지만, 낙원을 유지할 수 없는 인간의 한계!

그리고 여기서 기독교 신앙과 유발 하라리의 길은 나눠집니다. 하라리는 ‘과학혁명’의 후속편인 ‘생명공학혁명’으로 인류는 앞으로 몇 세기 지나지 않아 사라지고, 불멸, 행복, 신성에 도전하는 신인류, 곧 호모 데우스(Homo Deus, 신적 인간)로 대체될 것이라고 예언합니다. 그러나 기독교 신앙은 창조주의 아들 예수를 만난 ‘새 존재’들이 세상을 바꿀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것은 생명공학혁명보다 영성혁명에 인간의 미래가 있다는 말입니다.

과학에 영성이 기입되지 않으면, 기술에서 종교성이 산출되지 않으면, 이제 호모 데우스라는 새로운 인류조차도 유발 하라리가 말한 데이터교(우주가 데이터의 흐름으로 이루어져있고, 어떤 현상이나 실체의 가치는 데이터 처리에 기여하는 바에 따라 결정된다고 믿는 종교, 쉽게 예시를 찾아 볼 수 있는 것이 야구입니다. 타율과 방어율 등 데이터를 통해 선수를 기용하죠?)에 파묻혀 인류의 역사는 우주 속에서 지워질 것입니다.

지금부터 세상은 우리가 살아온 세상과 전혀 다른 세상이 시작될 것입니다. 사실 과학혁명을 가속화한 21세기 인류는 여러 가지 지구촌의 새로운 문제들을 만들어 냈습니다. 지구 온난화, 바다 오염과 해수면 상승, 대규모 생물종 멸종, 대기권 오존층 파괴, 인구 폭발과 자원의 고갈, 지구 생태계를 수십 번 파괴할 수 있는 양의 핵무기 등. 이것은 종말의 징조입니다.

종말론, 인류의 마지막에 대한 내용입니다. 유발 하라리는 『사피엔스』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약 200년 뒤에는 (지구상에) 인간이 없을 거라고 생각한다.” 퓰리처상을 수상한 세계적 석학 재레드 다이아몬드도 『총, 균, 쇠』 (문학사상, 2005)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앞으로 50년간 인류가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100년이나 200년 뒤에는 더 이상 지구에 인간이 살지 않게 되거나 석기시대처럼 살아가게 될 것이다.”

오늘날 생태계의 위기는, 기존의 자연재해와는 달리 우리가 넘어야 할 ‘다섯 가지 패러독스’가 있습니다. 그것은 ‘ⓛ지킬 박사와 하이드, ②키케로, ③시간감각 불일치, ④공범 만들기, ⑤증가하는 격차 패러독스’입니다. 한양대 의대 신영전 교수의 정리를 요약해 보겠습니다.

먼저 ‘지킬 박사와 하이드’ 패러독스는 ‘마법의 탄환’으로 여겨온 과학기술(지킬 박사)이 현재의 생태계 위기(하이드)를 만들었다는 것입니다. 사실 ‘썩지 않는 플라스틱’ 쓰레기, 매연을 쏟아내는 ‘자동차와 화력발전소’, 방사성 폐기물을 만들어내는 ‘핵발전소’ 등은 개발 당시 과학기술의 승리로 불린 것들이었습니다.

둘째 ‘키케로’(Cicero) 패러독스는 2000여년 전 로마 정치가 키케로의 말에서 유래되었습니다. 키케로의 말을 들어 볼까요? 『노년에 관하여·우정에 관하여』 (숲, 2005)에 나와 있습니다. “모두들 노년에 도달하기를 바라면서도 일단 도달하고 나면 비난하니, 이 얼마나 어리석고 모순되고 이치에 어긋나는가!”

이 말은 우리가 과학기술 발전을 통한 완벽함을 지향하면 할수록, 우리의 노년은 길어지고, 우리의 불완전함은 더욱 부각된다는 의미입니다. 사실 의학기술의 발전은 고령화 문제의 해결책이 아니라, 오히려 고령화 문제의 시작입니다. 자본과 결탁한 의료산업은 사람을 도구화, 자본의 전리품으로 변질시켜 버렸습니다.

셋째는 ‘시간감각 불일치’인데, 시차를 생각하면 됩니다. 지금의 과학기술은 현재보다 미래에 더 위험합니다. 그러나 우리들 대부분은 자신의 생애 안에는 이러한 위험이 일어나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따라서 관심이 없습니다. “나 만 아니면 돼!”입니다. 게다가 미래세대인 아이들의 목소리는 늘 기성세대의 권위에 묻히고 맙니다.

넷째는 ‘공범 만들기’는 문제를 제기하는 사람들을 공범으로 만드는 것입니다. 가령, “너도 자동차, 비닐, 전기를 사용하고 있지 않느냐?” 할 말이 없죠?

다섯째는 ‘증가하는 격차’ 패러독스입니다. 부익부 빈익빈입니다. 과학기술이 발전하면 할수록 거대과학과 거대 자본의 결합은 강화되는 반면, 전문지식에 취약한 일반 시민은 더욱 왜소해지는 것을 말합니다.

새로운 공동체는 이 다섯 가지 패러독스와의 싸움입니다. 그리고 신영전 교수에 의하면, 이것은 우리 인류의 ‘마지막 싸움’이 될 것입니다.

따라서 날마다 영성을 통해 물질적 가치에 머물지 않고, 새로운 영의 세계에 눈을 뜬 사람들이 역사에 관한 통시적 안목을 가지고 현재의 기술공학 시대를, 영적인 안목으로 통찰할 때, 하나님의 나라는 가능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처음 호모 사피엔스의 상상 속에 함께 존재하는 허구적인 실재인 ‘법, 돈, 국가’는 이제 사용가치가 끝났으며, 마지막 남아있는 ‘신’의 가치가, 제대로 활용된다면 인류에 희망이 있는 것입니다. 그러한 신의 가치가 성령을 통해 사람들에게 임했습니다. 그것이 바로 교회 공동체, 예수 믿는 믿음의 공동체입니다.

성령강림절은 교회의 탄생 혹은 생일이라고 말씀드렸죠? 성령강림 절기를 지나며, 성령 받은 공동체는 어떻게, 어떤 마음으로 살아야 하는지가 이 절기에 계속 이어집니다. 특별히 오늘 세 본문 말씀은 하나님의 긍휼로 다시 회복된 공동체, 새로워진 공동체는 어떻게 해야 구원의 완성에 이르는지, 또 무엇을, 구체적으로 실천해야 하는지를 잘 보여줍니다. 그것은 바로 “거룩함에 이르는 열매를 맺으라.”는 것입니다.

2. 큰 긍휼로 너를 모을 것이요

구약의 말씀은 하나님의 긍휼로 다시 회복된 공동체를 소개합니다. 이스라엘의 재건과 번영의 약속이 있는 본문 이사야 54장 말씀은 선민의 회복에 대한 말씀입니다. 이것은 바벨론 포로 생활에서 귀환한 이스라엘 공동체의 회복과 번영의 말씀입니다. 그 회복과 번영의 말씀이 너무나 아름답게 펼쳐집니다. 말씀을 볼까요?

“잉태하지 못하며 출산하지 못한 너는 노래할지어다. 산고를 겪지 못한 너는 외쳐 노래할지어다. 이는 홀로 된 여인의 자식이 남편 있는 자의 자식보다 많음이라. 여호와께서 말씀하셨느니라. 네 장막터를 넓히며 네 처소의 휘장을 아끼지 말고 널리 펴되, 너의 줄을 길게 하며 너의 말뚝을 견고히 할지어다. 이는 네가 좌우로 퍼지며 네 자손은 열방을 얻으며 황폐한 성읍들을 사람 살 곳이 되게 할 것임이라. 두려워하지 말라! 네가 수치를 당하지 아니하리라. 놀라지 말라! 네가 부끄러움을 보지 아니하리라. 네가 네 젊었을 때의 수치를 잊겠고 과부 때의 치욕을 다시 기억함이 없으리니, 이는 너를 지으신 이가 네 남편이시라. 그의 이름은 만군의 여호와이시며 네 구속자는 이스라엘의 거룩한 이시라. 그는 온 땅의 하나님이라 일컬음을 받으실 것이라.”(사 54:1-5)

바벨론 포로기는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잉태하지 못한 시기, 출산하지 못한 암흑기, 산고를 겪지 못한 절망이 시기였습니다. 그러나 이제 하나님께서 친히 이스라엘의 남편이 되시어 구속해 주시겠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계속 볼까요?

“여호와께서 너를 부르시되, 마치 버림을 받아 마음에 근심하는 아내, 곧 어릴 때에 아내가 되었다가 버림을 받은 자에게 함과 같이 하실 것임이라. 네 하나님께서 말씀하셨느니라. 내가 잠시 너를 버렸으나, 큰 긍휼로 너를 모을 것이요. 내가 넘치는 진노로 내 얼굴을 네게서 잠시 가렸으나, 영원한 자비로 너를 긍휼히 여기리라. 네 구속자 여호와께서 말씀하셨느니라.”(사54:6-8)

잠시 심판했으나, 다시 회복시켜주시겠다는 말씀입니다. 그렇다면 이렇게 회복된 공동체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3. 오늘 구원이 이 집에 이르렀으니

복음서의 말씀은 한 개인의 회개를 통해 공동체의 길을 보여줍니다. 그 사람은 바로 너무나 유명한 삭개오입니다. 본문 말씀은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입성하시기 전, 여리고에 있는 로마의 세리장 삭개오가 예수님을 영접한 이야기입니다. 말씀을 볼까요?

“예수께서 여리고로 들어가 지나가시더라. 삭개오라 이름하는 자가 있으니 세리장이요, 또한 부자라. 그가 예수께서 어떠한 사람인가 하여 보고자 하되, 키가 작고 사람이 많아 할 수 없어, 앞으로 달려가서 보기 위하여 돌무화과 나무에 올라가니, 이는 예수께서 그리로 지나가시게 됨이러라.”(눅 19:1-4)

예수님께서 삭개오를 보았습니다. “예수께서 그 곳에 이르사, 쳐다보시고 이르시되, 삭개오야! 속히 내려오라. 내가 오늘 네 집에 유하여야 하겠다 하시니, 급히 내려와 즐거워하며 영접하거늘(눅 19:5-6).” 그러자 “뭇 사람이 보고 수군거려 이르되, 저가 죄인의 집에 유하러 들어갔도다 하더라.”(눅 19:7)

<루마니아 정교회에 남아 있는 삭개오 그림>

삭개오는 마을 사람들에게 ‘죄인’ 취급받는 사람이었습니다. 그가 하는 세리장은 자신의 지위와 권력으로 동족을 속여서 세금을 거두어 로마에 바치고 자신도 취하는 그런 자리이기 때문입니다. 아무튼 삭개오가 이렇게 고백합니다. “삭개오가 서서 주께 여짜오되, 주여 보시옵소서. 내 소유의 절반을 가난한 자들에게 주겠사오며 만일 누구의 것을 속여 빼앗은 일이 있으면 네 갑절이나 갚겠나이다(눅 19:8).” 그러자 “예수께서 이르시되 오늘 구원이 이 집에 이르렀으니 이 사람도 아브라함의 자손임이로다.”(눅 19:9)

삭개오는 두 가지를 서원합니다. 하나는 누구의 것을 속여 빼앗은 일이 있으면 네 갑절이나 갚겠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자신의 소유의 절반을 가난한 자들에게 주겠다는 것입니다. 각종 손해배상에 관한 법이 기록되어 있는 출애굽기 22장에 “사람이 소나 양을 도둑질하여(יִגְנֹֽב־)잡거나 팔면 그는 소 한 마리에 소 다섯 마리로 갚고, 양 한 마리에는 네 마리로 갚을지니라(출 22:1)”라고 되어 있습니다.

여기 나오는 도둑질(게나바)은 ‘잃어버린 것’으로, 가나브라는 ‘훔치다, 속이다’라는 동사에서 나온 것입니다. 오늘날로 확대 해석하면, ‘사기, 횡령, 배임, 공갈, 강도’가 모두 포함이 될 것입니다. 따라서 삭개오가 세리장이라는 자신의 지위와 권세를 이용해서 부당한 이득을 취하였다면 배임이나 공갈에 해당이 될 것이고, 속여서 누군가의 것을 빼앗았다면 사기가 될 것입니다. 그런데 삭개오는 네 갑절로 갚겠다고 하며 임의로 배상의 범위를 정한 것이 아니라, 율법의 정신에 기초하여 서원한 것입니다. 자신의 삶이 그렇게 뭇사람들이 수근 거릴 ‘죄인’의 삶은 아니었다는 자부심이 엿보입니다.

그리고 삭개오는 여기서 한 걸음 더 나갑니다. 자신의 소유 절반을 가난한 자들에게 주겠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삭개오는 아마도 시편의 말씀도 알았을 것입니다. 시편 112편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그가 재물을 흩어 빈궁한 자들에게 주었으니, 그의 의가 영구히 있고, 그의 뿔이 영광중에 들어가리로다(시 112:9).” 삭개오는 예수님을 통해 새로운 삶, 새로운 공동체의 비젼을 보았습니다. 그의 서원은 바로 그 기쁨에서 나온 결단입니다.

이제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인자가 온 것은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려 함이니라.”(눅 19:10) 그렇다면 잃어버린 자의 모습이 어떠한 모습인지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 율법의 말씀을 알았으나, 그 말씀대로 실천하지 않은 자들입니다. 쉽게 말하면 교회 다니지 않는, 예수님을 모르는 이들이 아니라, 예수님을 잘 알고 교회도 열심히 다니지만, 말씀대로 살지 않는 이들이 잃어버린 자라는 것입니다. 따라서 예수님께서 오신 이유는 이러한 이들, 말씀을 실천하지 않는 이들에게 오셔서, 성령을 주시어 말씀을 실천하도록 하신 것입니다. 서신서 말씀도 마찬가지입니다. 

4. 거룩함에 이르는 열매를 맺으라

로마서는 이신칭의(以信稱義)로 유명합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 말씀인 6장의 말씀은 ‘성화적 구원’, 즉 구원받은 이후 성도들의 생활에 대한 말씀입니다. 구원받은 이후, 그리스도인들이, 새로운 교회 공동체가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에 대한 성화의 원리와 실천 강령이 소개되어 있습니다. 말씀을 볼까요?

“그런즉 어찌하리요? 우리가 법 아래에 있지 아니하고 은혜 아래에 있으니, 죄를 지으리요? 그럴 수 없느니라. 너희 자신을 종으로 내주어 누구에게 순종하든지 그 순종함을 받는 자의 종이 되는 줄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혹은 죄의 종으로 사망에 이르고, 혹은 순종의 종으로 의에 이르느니라.”(롬 6:15-16)

이스라엘 사람들이 죄인이라 수군거리는 삭개오도 이렇게 말씀을 실천하였는데, 은혜 아래 있는 그리스도인들은 더 말할 나위없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사도 바울은 감사의 고백을 올립니다. “하나님께 감사하리로다. 너희가 본래 죄의 종이더니, 너희에게 전하여 준 바 교훈의 본을 마음으로 순종하여, 죄로부터 해방되어 의에게 종이 되었느니라(롬 6:17-18).” 이제 새로운 공동체의 비전이 분명해졌습니다. 거룩함에 이르라는 것입니다. “너희 육신이 연약하므로 내가 사람의 예대로 말하노니, 전에 너희가 너희 지체를 부정과 불법에 내주어 불법에 이른 것 같이, 이제는 너희 지체를 의에게 종으로 내주어 거룩함에 이르라.”(롬 6:19)

왜냐하면 죄로부터 해방된 새로운 공동체는 거룩함에 이르는 열매를 맺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하나님의 은사요, 우리 주 예수 안에 있는 영생입니다.

“너희가 죄의 종이 되었을 때에는 의에 대하여 자유로웠느니라. 너희가 그 때에 무슨 열매를 얻었느냐? 이제는 너희가 그 일을 부끄러워하나니 이는 그 마지막이 사망임이라. 그러나 이제는 너희가 죄로부터 해방되고, 하나님께 종이 되어 거룩함에 이르는 열매를 맺었으니 그 마지막은 영생이라. 죄의 삯은 사망이요, 하나님의 은사는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 있는 영생이니라.”(롬 6:20-23)

5. 공생 시대의 부상

토론토 대학교 경영대학원의 지리경제학과 도시경제연구의 석학인 리처드 플로리다 교수는 경제적인 시스템 측면에서 지금까지의 역사적 시기를 5가지로 구분합니다.

1) 계획농업시대(농업시스템)
2) 근대상업과 전문화시스템 시대(길드 시스템)
3) 산업자본주의 시대(공장 시스템)
4) 조직시대(조직 시스템)
5) 창조적 시대의 부상

‘조직시대’는 윌리엄 화이트가 1956년 출간한 『조직 인간』을 기반으로 합니다. 인간을 조직 시스템의 부속으로 보는 것입니다. ‘조직의, 조직에 의한, 조직을 위한 삶을 사는 인간형’을 ‘조직인간’으로 본 것입니다. 드라마 <미생>의 대사 가운데 “회사가 전쟁터라고? 밖은 지옥이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정규직 회사원들은 이미 오래전부터 알고 있던 상식이었습니다. 회사 내의 그 어떤 갑질을 당하더라도 참고 견디면, ‘지옥’에선 꿈도 꿀 수 없는 조직의 혜택과 보상을 누릴 수 있다는 것입니다.

▲ 드라마 <미생>의 한 장면

공장 시스템을 넘어 조직 시스템으로 넘어오면 ‘조직 인간’이 당시의 일터와 문화에 얼마나 심각한 변화를 가져왔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물론 화이트가 60여년 전, ‘조직인간’이라고 부른 것은 폄하의 뜻이었지만, 오늘 대한민국에서는 조직인간을 스스로 자랑스러워하는 건 물론이고, 부러움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따라서 인류는 ‘농업 인간’에서 ‘상업 인간’으로, 그리고 ‘공장 인간’에서 ‘조직 인간’을 넘어, ‘창조적 인간’으로 진화해 왔습니다. 삼성경제연구소도 미래의 최고경영자가 갖추어야 할 조건으로 창조성을 들었습니다. 1960년대까지는 창업가형, 1970~1980년대는 관리형, 1998~2008년까지는 구조 조정형 CEO가 필요했다면, 2008년 이후부터 2019년까지는 창조형 CEO가 요구되었던 시대입니다.

그러나 플로리다 교수의 5가지 시스템에 저는 하나를 더 보태겠습니다. ‘6) 공생 시대의 부상(길드조직의 연대 시스템)’ 이것은 ‘2) 근대상업과 전문화 시스템’으로 돌아가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다양한 농업, 공업, 산업 전문시스템들이 서로 연대하며 공생하는 것이기에 차이가 있습니다. 그리고 여기서 길드조직은 다양한 생산 및 소비 분야를 말합니다. 우리가 이제 성령을 받아 살아갈 교회 공동체는 아니, 이 세상은 이러한 길드들이 공생을 위해 연대할 때 가능할 것입니다. 조직형 리더와 창조형 CEO를 넘어, 연대하고 소통하고 공감하는 목회자와 교인들이, 시민들과 노동자들, 시민들이 그리고 거룩함에 이르는 열매를 통해 세상을 바꿀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성서가 말하는 새로운 공동체의 비전입니다. 오늘 이 말씀이 저와 여러분들에게 귀한 은혜의 말씀이 되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최병학 목사(남부산용호교회)  hak-99@hanmail.net

<저작권자 © 에큐메니안,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최병학 목사(남부산용호교회)의 다른기사 보기
icon인기기사
기사 댓글 0
전체보기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여백
신문사소개기사제보광고문의불편신고개인정보취급방침청소년보호정책이메일무단수집거부
서울시 종로구 김상옥로 30, 402호  |  제호 : 에큐메니안
대표전화 : 070-4252-0176  |  팩스 : 0303-3442-0176  |  등록번호 : 서울 자 00392  |  등록일 : 2012.10.22
발행인 및 편집인 : 이해학  |  청소년보호책임자 : 이해학  |  E-mail : webmaster@ecumenian.com
Copyright © 2019 에큐메니안. All rights reserved.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