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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녀는 참지 않았다』전래동화 뒤집기
최병학 목사(남부산용호교회) | 승인 2019.06.22 18:55

『서동과 선화공주』, 『선녀와 나무꾼』, 『처용』, 『우렁각시』, 『장화홍련전』, 『혹부리 영감』, 『콩쥐팥쥐전』, 『박씨전』, 『반쪽이』, 『바리데기』 등 제가 어릴 적에 읽었거나, 들었던 전래동화는 지금도 아이들이 읽고 있습니다. 이러한 전래동화는 우리들 무의식에 자리 잡아, 한 사람의 인식에 막대한 영향을 미침에도 불구하고, 그 속에 담긴 성차별적 요소에 관해서는 지금껏 충분한 고찰이 이루어지고 있지 않았습니다.

‘함께 깨닫다’라는 이름 아래, 대학생들이 주축이 되어 2015년부터 함께 읽고, 쓰고, 생각을 나누는 독서토론 모임인 ‘구오(俱悟)’는  『선녀는 참지 않았다: 고정관념 차별 혐오 없이 다시 쓴 페미니즘 전래동화』 (위즈덤하우스, 2019)이렇게 말합니다. “전래동화나 전통 설화를 읽으면서 다들 한 번쯤은 가져보았던 의문들이 있을 것이다. ‘선녀를 아내로 삼은 나무꾼은 범죄자가 아닌가?’, ‘왜 계모는 항상 못됐는가?’, ‘왜 딸들은 남성 영웅의 포상이 되는가?’ 우리는 유년 시절부터 끊임없이 전래동화를 접하고 자라면서 그 주제와 내용으로부터 무의식적으로 영향을 받는다. 어린 시절 경험한 전래동화에 대한 기억은 하나의 문화적 원형을 이루어 성인이 된 이후에도 우리의 사고 깊은 곳에 자리할 가능성이 크다.”

따라서 독서모임 구오는 이러한 문제의식을 가지고 각종 성범죄와 차별, 혐오가 난무한 한국의 전래동화를 페미니즘 시각에서 다시 썼습니다. 1,124명의 후원자가 모여 1,491% 목표 달성으로 텀블벅 펀딩(tumblbug은 대한민국에서 서비스 중인 대표적인 크라우드 펀딩 사이트 중 하나로 예술, 문화 컨텐츠를 중점적으로 다루고 있습니다. 특히 독립적인 문화창작자들의 지원을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에 성공해서 이 책을 썼습니다. 그 결과 앞서 언급한 10편의 전래동화가 해롭지 않은 새로운 이야기로 재탄생되었습니다. 이 책은 모든 등장인물들이 고정된 성역할과 편견에서 벗어나, 원전보다 훨씬 입체적이고 흥미진진한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선녀와 나무꾼>

몇 개만 살펴볼까요? 먼저, 표제작인 ‘선녀와 나무꾼: 선녀는 참지 않았다’입니다. 이야기는 이렇습니다. 나무꾼은 숲에서 사냥꾼에게 쫓기던 사슴을 수풀에 숨겼습니다. 사슴이 은혜를 갚는다며 나무꾼에게 소원을 물어보니, ‘예쁜 아내를 얻어 장가나 가고 싶다’고 말합니다. 사슴은 선녀들이 목욕을 하러 내려오는 고개 너머 폭포로 나무꾼을 데려갔고, 나무꾼은 사슴의 조언에 따라 마음에 드는 선녀의 옷을 바위틈에 숨깁니다. ‘지금쯤이면 옷이 없어진 걸 알고 큰일 났다며 울고 있겠지?’ 나무꾼이 그렇게 생각하고 있을 때, 벌거벗은 선녀가 나무꾼을 찾아내 호통을 칩니다. 선녀는 참지 않았던 것입니다.

사실 사회는 변하고, 사회가 요청하는 정의의 모습 역시 변합니다. 어릴 적에 ‘선녀와 나무꾼’을 읽으면서 남편을 버리고, 하늘나라로 다시 돌아가는 선녀가 ‘매정하다’고 느낀 적이 있었는데, 지금은, ‘데이트 폭력’과 ‘불법 촬영’이 범죄인 시대입니다. 따라서 선녀의 꾸지람은 당연한 것입니다. 어디서 감히 옷을 숨기고, 이렇게 폭력적으로 데이트를 신청하다니요! 나무꾼은 꾸지람을 받아도 쌉니다. 아니 감옥에 쳐 넣어야 하나요?

사실, 원작에서는 ‘은혜 갚은 사슴의 신의’와 ‘선행을 베푼 나무꾼의 고운 심성’만을 칭찬할 뿐, 선녀들을 훔쳐 보다 옷을 숨기고 갈 곳 없도록 상황을 꾸며 아내로 취하는 것은 전혀 이상하지 않은 행동처럼 묘사되었습니다. 따라서 선녀의 입장에서 생각하면 됩니다. 그러면 이 전래동화가 얼마나 남성 중심 가부장적 사회의 이데올로기 산물인지 제대로 보일 것입니다.

<4.4조 민요조 향가인 처용가>

우리가 잘 아는 ‘처용가’도 재각색의 대상입니다. 사실 처용은 흔히 우리 머릿속에 ‘남성’으로 상정됩니다. 그리고 역신에게 속아, 역신과 관계를 맺게 된 처용의 처는 ‘여성’입니다. 이 이야기에서 처용의 처인 여성은 그저 처용의 영웅적 면모와 현명함을 보여 주기 위해 소모적으로 그려질 뿐입니다. 그녀는 이름도 없고, 또한 이름이 없기에 목소리도 없습니다. 그러나 세 번째 이야기인 ‘처용: 처용의 진짜 이름’에서 저자 구오는 ‘여성’에게 ‘구오’라는 이름을 부여함으로써 그동안 주목받지 못했던 여성에게 목소리를 심어주고자 했습니다. ‘00댁’, ‘00엄마’, ‘새댁’으로 불리는 여성들에게 자신의 이름을 찾아주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이름 지어진’ 존재와 ‘이름이 지워진’ 존재는 하늘과 땅처럼 멀기 때문입니다.

<외모가 변하는 박씨>

그럼, 이제는 반대로 여성이 영웅적으로 나오는 여덟 번째 이야기인 ‘박씨전: 박씨가 벗은 마음의 허물’편을 볼까요? 박씨전(朴氏傳)은 ‘박씨부인전’이라고도 합니다. 박씨 부인이라는 가공의 인물을 이시백과 임경업 같은 역사적 인물과 함께 등장시켜 초인간적 활약을 그린 역사군담소설(歷史軍談小說, 역사상 실재했던 인물이 소설 속에서 등장하여 전쟁을 통해서 영웅적인 활동을 전개해 나가는 유형의 소설)입니다. 내용은 못생긴 추녀 박씨가 허물을 벗는 전반부와 병자호란 때 활약을 하는 후반부로 크게 나누어집니다. 이 때문에 ‘이시백전’과 ‘박씨부인전’이라는 두 편의 소설이 결합된 것으로 보기도 합니다.

사실 이 소설은 『임진록』과 함께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양란을 통해 겪었던 고통을 허구를 통해서나마 극복하고자 했던 뜻이 반영되어 있기도 합니다. 또한 박씨의 영웅적 활약은 여성들이 가부장적 억압으로부터 해방되고자 하는 욕구를 담고 있는 여성영웅소설의 모태로 작용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현대에 오면서 박씨를 주체적이고 당당한 모습이 아닌 순종적인 모습으로 회자되고 재생산되는 경향이 있습니다. 게다가 손쉽게 찾아볼 수 있는 『박씨전』은 주로 못생긴 박씨가 종국에는 아름다운 외모로 탈바꿈한다는 내용에만 주목한 것이 많습니다. 이것은 여성은 무조건 예뻐야 된다고 믿어온 우리 사회의 병적인 모습을 반영합니다. 지금도 여성들은 여전히 겉모습으로 쉽게 판단되고 평가됩니다. 여성은 인간이기 이전에, ‘여성’으로 인식되고, 그 인식 아래에는 너무나 당연하게 ‘외모에 대한 품평’이 뒤따릅니다.

<반쪽이>

그렇다면 외모에 대한 품평을 넘어서는 이야기를 볼까요? 물론 여성이 아니라, 남성의 외모입니다. 아이들이 어릴 때, 제가 읽어 주었던 『반쪽이』 이야기입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정말 제가 ‘생각 없이 읽어주었구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반쪽이의 내용은 이렇습니다. 자식 하나 얻는 게 소원인 할머니가 삼신할미께 빌고 빌어 아들 셋을 내리 낳습니다. 그런데 막내가 반쪽이로 태어납니다. 형들은 반쪽이를 창피하게 여겨 못살게 굽니다. 하지만 반쪽이는 형들의 구박을 꿋꿋하게 이겨내고, 지혜를 발휘해 부잣집 처녀와 결혼을 한다는 이야기입니다.
 
나무뿌리, 바위, 굴속 등 사람들의 무의식의 세계를 상징하는 요소가 드러나 있으며, 이런 무의식의 세계를 넘어서는 반쪽이의 모습을 통해, 미성숙한 인간이 힘과 지혜를 지닌 성숙한 인간으로 성장하는 과정을 상징적으로 보여 주고 있기도 합니다. 왜냐하면 이야기 속에 반쪽이가 나무와 바위를 통째로 뽑고, 굴속에서 호랑이들과 싸워 이기는 장면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사람들에게는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큰 힘이 있으며, 이런 내면의 힘을 밖으로 드러내고 이겨낼 때 불완전한 반쪽 인생을 온쪽 인생으로 나아갈 수 있다는 의미가 숨어 있는 것이기도 합니다. 따라서 아이들도 반쪽이를 읽으며 언젠가는 자신들도 성숙한 인간으로 자라나야 한다는 사실을 깨달을 수 있기를, 또한 외모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품성과 재주가 중요하다는 사실도 더불어 알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입니다. 그러나 반쪽이가 부잣집 대감과 내기에서 이기는 대가로 얻게 되는 부잣집 딸은 그 어디에서도 주목의 대상이 아닙니다.

제가 딸이 셋이 있는데, 최 씨니까, 최 진사댁 세 딸들, 딸부자입니다. 노래도 있죠? ‘최 진사댁 셋째 딸’, 가사를 볼까요?

건너 마을에 최 진사 댁에 딸이 셋 있는데,
그 중에서도 셋째 따님이 제일 예쁘다던데.
아따, 그 양반 호랑이라고 소문이 나서,
먹쇠도 얼굴 한 번 밤쇠도 얼굴 한 번 못 봤다나요.
그렇다면 내가 최 진사 만나 뵙고 넙죽 절하고,
아랫마을 사는 칠복이 놈이라고 말씀 드리고 나서,
염치없지만 셋째따님을 사랑하오니,
사윗감 없으시면 이 몸이 어떠냐고 졸라봐야지.

다음 날 아침 용기를 내서 뛰어 갔더니만,
먹쇠란 놈이 눈물을 흘리며 엉금엉금 기면서,
아침 일찍이 최 진사 댁에 문을 두드리니,
얘기도 꺼내기 전 볼기만 맞았다고 넋두리 하네.
아이구, 아야. 그렇지만 나는 대문을 활짝 열고 뛰어 들어가,
요즘 보기 드문 사윗감 왔노라고 말씀 드리고 나서,
육간대청에 무릎 꿇고서 머리 조아리니,
최진사 호탕하게 껄껄껄 웃으시며 좋아하셨네. 으흐흐허허하하하

웃는 소리에 깜짝 놀라서 고개를 들어보니,
최 진사 양반 보이지 않고 구경꾼만 보였네.
아차, 이제는 틀렸구나 하고 일어서려니까,
셋째 딸 사뿐사뿐 내게로 걸어와서 절을 하네요.
얼씨구나 좋다. 지화자 절씨구 땡이로구나.
천하의 호랑이 최 진사 사위되고 예쁜 색시 얻으니,
먹쇠란 놈도 밤쇠란 놈도 나를 보면은 일곱 개 복중에서 한 개가 맞았다고 놀려대겠지.

저는 이 노래와 같이 칠복이에게 셋째 딸을 주지 않을 것입니다(이 표현에 오해가 없으시길). 아니, 셋째 딸 희은이는 이런 불한당을 참지 않을 것입니다.

다시 반쪽이로 돌아가 볼까요? 아무리 동화책을 살펴보더라도 딸이 어떤 사람인지, 호랑이 가죽과 교환되는 일종의 물건처럼 취급된 딸의 심정이 어땠을지는 딱히 다뤄지고 있지 않습니다. 아예 드러나지 않거나, 그나마, “대감의 딸도 반쪽이를 마음에 들어 했어요”라는 식으로 한 줄 끼워 넣을 뿐입니다. 왜냐하면 이 이야기의 주체는 어디까지나 반쪽이이기 때문일 것입니다. 이러한 이야기의 구조 속에서 그것을 읽는 독자들은 과연 여성에 대하여 어떤 가치관을 가지게 될까요? 또한 ‘최 진사댁 셋째 딸’ 노래를 우리 딸들은 어떻게 생각할까요?

다른 이야기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새로 써진 이 전래동화에서 선화공주는 자신을 음해한 이야기를 퍼뜨리고 다닌 서동을 궐내로 잡아들여 처벌하고, ‘우렁각시’ 대신 요리를 너무 좋아하는 ‘우렁총각’이 등장합니다. 이 책은 단순히 남성의 잘못을 징벌하거나, 여성-남성의 역할을 바꾸는 데에서 그치지 않고, 여성의 주체성과 여성들 간의 연대를 부각하고 있습니다.

추천의 글에서 여성학자 정희진 선생은 이렇게 말합니다. “어느 시대나 지배 세력이 가장 두려워하는 현상은 피지배 세력이 자기 위치와 구조의 부당함을 깨닫고 이전처럼 살기를 거부하는 것이다. 흑인이 노예 노동을 거부하고 여성이 희생과 자기 비하에서 벗어난다면, 우리가 더 이상 서구 사회에 콤플렉스를 느끼지 않는다면, 세상은 보다 살 만한 곳이 될 것이다. 그래서 동화는 미래 세대인 어린이를 훈육, 세뇌하는 가장 효과적인 이데올로기이다. 동화에 대한 개입, 재해석이 중요한 사회적 과제인 이유다. 동화도 다른 담론처럼 치열한 정치적 경합의 장이다.”

성서가 고대 근동, 강압적인 제국들 사이의 지배 담론의 장에서 살아남아(물론, 하나님의 말씀이기에 당연하겠지만), 오늘 우리들에게 전해지기까지는, 다시 교회와 교권, 교리의 강압에 눌려 성서 자체의 목소리를 잃고 왜곡 된지 오래입니다. 따라서 “그리스도인은 참지 않아야 합니다!”, 성서를 제대로 읽어야 합니다. 『선녀는 참지 않았다』는 고정관념과 차별, 혐오 없이 다시 성서를 읽어야 한다는 통찰도 그리스도인들에게 전해줍니다.

최병학 목사(남부산용호교회)  hak-99@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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