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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속에서 어둠이 사라지지 않는다면네 빛이 떠올라(사 58:9-11)
이성훈 목사(명일한움교회) | 승인 2019.06.23 18:57
9 네가 부를 때에는 나 여호와가 응답하겠고 네가 부르짖을 때에는 내가 여기 있다 하리라. 만일 네가 너희 중에서 멍에와 손가락질과 허망한 말을 제하여 버리고 10 주린 자에게 네 심정이 동하며 괴로워하는 자의 심정을 만족하게 하면 네 빛이 흑암 중에서 떠올라 네 어둠이 낮과 같이 될 것이며 11 여호와가 너를 항상 인도하여 메마른 곳에서도 네 영혼을 만족하게 하며 네 뼈를 견고하게 하리니 너는 물 댄 동산 같겠고 물이 끊어지지 아니하는 샘 같을 것이라.

이사야 58장에는 금식과 안식일에 대한 말씀이 나옵니다. 예언자들이 전했던 예배는 우리의 삶과 연결되어 있고, 삶 속에서 어떤 실천을 하는가가 중요하게 예배와 연결되어 있습니다. 

예배와 관련하여 오늘 본문을 살펴보고, 56장에 나타난 안식일 문제와 연결시켜서 말씀을 생각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오늘은 58장에 한정하여, 금식의 문제를 생각해보려고 합니다. 이사야는 금식에 대해서 어떻게 이야기하고 있으며,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금식이 무엇인지를 생각해보려고 합니다.

회개의 가능성

먼저 우리가 봐야할 본문은 58장 1절입니다.

“크게 외치라. 목소리를 아끼지 말라. 네 목소리를 나팔 같이 높여 내 백성에게 그들의 허물을, 야곱의 집에 그들의 죄를 알리라.”

학자들은 이사야를 시대 구분에 따라 세 부분으로 나눕니다. 제1 이사야, 제2 이사야, 제3 이사야, 이런 식으로 나누어서 이사야를 연구합니다. 대략적으로 제1 이사야가 이스라엘이 심판을 받으리라는 ‘심판 선언’을 하고 있다면, 제2 이사야는 심판을 당한 상황을 전제에 놓고 예언을 합니다. 제3 이사야의 경우는 회복을 말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학자들은 포로기 이전으로부터 포로기 이후까지로 시대를 나누고, 이사야를 여기에 맞춰 세 개의 다른 시대에 선포된 예언으로 보고 있습니다.

이러한 시대 구분에 따른 여러 신학적인 이야기가 있지만, 우리가 거기까지 생각해야 할 필요는 없다고 봅니다. 다만 이사야의 흐름이 심판 선언으로부터 심판을 당한 상태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전하는 말씀으로 바뀌어가고, 마지막에 이르러서 회복의 선포가 전해진다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58장 1절을 먼저 살펴보려고 하는데, 그 이유는 앞서 말씀드린 이사야의 선포 내용의 변화와 연결되어 있습니다. 우리가 너무 잘 알고 있는 본문 중에 이사야 6장에 나타난 이사야를 예언자로 부르신 이야기가 있습니다.

웃시야 왕이 죽던 해에 이사야는 거룩하신 하나님과 하나님을 모시고 있는 스랍들을 보게 됩니다. 6장 5절에 보면, 이사야는 부정한 자신이 하나님을 뵈었기 때문에 죽으리라고 말합니다. 그때, 6절에 보면 스랍 중 하나가 부젖가락으로 제단에서 숯을 집은 후, 이를 손에 들고 와서 이사야의 입에 댑니다. 그리고 말하기를, 네 악이 제하여졌고, 네 죄가 사하여졌다고 말합니다. 그 뒤에 8절에 우리가 잘 아는 말씀이 나옵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내가 누구를 보내며, 누가 우리를 위하여 갈꼬”

이사야가 대답합니다.

“내가 여기 있나이다. 나를 보내소서”

우리가 너무나 잘 아는 이사야의 예언자 소명 설화입니다. 하나님 앞에 당당히 나아가 “나를 보내소서”라고 말해야 한다고, 주님의 일을 하는데 열심히 나아가야 한다고 말할 때, 이 본문을 사용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생각할 점이 있습니다. 이사야는 왜 자신을 보내달라고 말했을까요? 이사야는 지금 막 죄 사함의 체험을 했습니다. 하나님으로부터 죄를 용서받는 체험을 했습니다. 그렇기에 그는 생각합니다. ‘내 민족 이스라엘의 죄도 용서받을 수 있겠구나. 나처럼 죄사함을 받을 수 있겠구나.’ 그렇기에 이사야는 하나님 앞에 나서서 자신을 보내달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9절 이하에 나타난 하나님의 음성은 이사야의 기대와는 정반대였습니다.

“가서 이 백성에게 이르기를 너희가 듣기는 들어도 깨닫지 못할 것이요, 보기는 보아도 알지 못하리라”

이스라엘 백성들은 용서받을 수 없다는 선언을 하십니다. 그래서 이사야는 하나님께 여쭙습니다. “주여 어느때까지니이까” 이에 대한 하나님의 답변은 참담합니다.

“성읍들은 황폐하여 주민이 없으며 가옥들에는 사람이 없고 이 토지는 황폐하게 되며, 여호와께서 사람들을 멀리 옮기셔서 이 땅 가운데에 황폐한 곳이 많을 때까지니라”

이사야의 도입부는 이렇게 시작되었습니다. 너희의 죄는 도무지 용서받을 수 없기에 너희는 무조건 심판을 받아야 한다. 그리고 이스라엘은 실제로 하나님의 심판을 받게 됩니다. 포로로 끌려가게 됩니다.

▲ 우리의 빛을 비추기 위해 우리속에 어둠을 살펴야 한다. ⓒGetty Image

심판의 기간을 다루고 있는 제2이사야의 내용이 지나고 나서, 오늘 본문이 속한 제3이사야에서 하나님께서는 이제야 이스라엘 백성을 향해 죄를 알 수 있도록 선포하십니다. 이제야 이스라엘 백성들은 자신의 죄를 깨달을 수 있는 자리에 놓인 것입니다. 죄를 깨달으라는 말씀은 바꿔 말하면 회개하라는 말씀입니다. 회개는 자신의 죄를 깨닫고, 이를 고백하고, 자신의 행동을 바꿔 다시는 죄를 행하지 않는 일입니다.

회개와 금식

58장은 너희는 이제 회개할 수 있다는 선포로 시작됩니다. 이제는 심판에서 벗어날 수 있음을 말씀하시며 시작됩니다. 그러면서 이어지는 말씀은 금식입니다. 5절에 보면 금식을 다른 표현으로도 말씀하십니다. ‘마음을 괴롭게 하는 날’입니다. 우리는 보통 사순절 기간에 금식을 합니다만, 구약성경에 보면 금식은 성전파괴일 같은, 비탄에 잠기는 시기에 행해집니다. 아마도 본질적인 맥락은 같다고 생각됩니다. 자신들의 죄로 인해 성전이 파괴된 때에, 또는 하나님의 심판이 이루어지려는 때에 죄를 회개하며 괴로운 마음으로 하나님 앞에 서는 일이 금식입니다. 즉 금식은 회개와 연결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58장에 나타난 이스라엘 백성들의 금식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3절에 보면, ‘오락을 구하였고’, ‘종에게 온갖 일을 시켰습니다.’ 4절에 보면, ‘논쟁하며 다투었고’, ‘주먹으로 누군가를 쳤습니다.’ 그러면서도 5절에 보면 금식의 형식만은 취하고 있었습니다.

그렇기에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향해 하시는 말씀, “이것이 어찌 내가 기뻐하는 금식이 되겠느냐”는 말씀은 바꿔 말해서 “이것은 내가 기뻐하는 회개가 아니다”라는 말씀이 됩니다. 또 이 말은 무엇이 이스라엘의 죄인지를 드러내시는 말씀이기도 합니다. 6절과 7절에 나타나는 말씀,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금식이 무엇인지 나열된 목록은 반대로 생각했을 때, 이스라엘이 지키고 있지 않던 죄악의 목록이며, 이 죄에서 벗어나라는 말씀을 하나님께서는 전하고 계십니다.

“흉악의 결박을 풀어주며, 멍에의 줄을 끌러 주며, 압제 당하는 자를 자유하게 하며, 모든 멍에를 꺽는 것이 아니겠느냐? 또 주린 자에게 네 양식을 나누어 주며, 유리하는 빈민을 집에 들이며, 헐벗은 자를 보면 입히며, 또 네 골육을 피하여 스스로 숨지 아니하는 것이 아니겠느냐”

6절의 말씀은 종, 또는 불의에 의해 핍박 받는 사람들에 관한 말씀입니다. 7절의 말씀은 가진 것이 없는 이들, 어려움에 처한 이들, 아픔을 가진 이들에 관한 말씀입니다. 이들을 돕는 행위가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행위이고, 이들을 돕지 않았던 행위가 이스라엘의 죄입니다. 그렇기에 하나님께서는 이 죄를 회개하고 돌이키라 말씀하십니다. 9절 하반절부터 10절 상반절에는 행위와 함께 심정적인 측면이 나타납니다.

“멍에와 손가락질과 허망한 말을 제하여 버리고, 주린 자에게 네 심정이 동하며 괴로워하는 자의 심정을 만족하게 하면”

누군가에게 멍에를 씌우는 일, 누군가를 향해 손가락질 하는 일, 허망한 말을 일삼는 일이 죄입니다. 그런데 10절의 말씀은 그에 앞선 우리의 자세를 말합니다. ‘주린 자에게 네 심정이 동하며.’ 앞서 나타난 모든 일들의 전제가 될지도 모르는 말씀입니다. 고난당하는 사람을 보면서 마음 아파하는 일, 힘들어하는 사람을 보면서 함께 괴로워하는 일, 어려움에 처한 사람을 보면서 같이 고민하는 일, 모든 선행은 여기에서부터 시작되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우리는 지금 어떻게 살아가고 있습니까? 내 코가 석잔데 누굴 생각할 처지가 못 된다고 말할지도 모릅니다. 때때로 힘들어하고 있는 누군가를 보면서 ‘우리 때는 더 심했는데 다 넘겨왔어’, ‘너 그런 건 힘든 것도 아냐’ 라면서 위로보다는 질타를 하지 않았나 생각해봅니다. 이스라엘의 태도도 마찬가지가 아니었을까 생각합니다.

자신의 시기가 그리 힘들었다면, 자신이 겪었던 일들이 그리 어렵고 힘들었다면, 오히려 더 상대방을 알아줄 수 있지 않겠습니까? 하지만 어쩌면 우리는 남을 알아주기보다 나를 알아주기를 바래왔기에 남의 아픔을 공감해주는 일에 소홀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회개의 첫 걸음, 참된 금식의 첫 걸음은 누군가의 아픔을 누군가의 고통을, 어려움을 알아주는 데에서 시작합니다.

이사야는 우리에게 ‘이렇게 해라’, ‘너희의 죄는 무엇이다’라는 말만을 전하지 않습니다. 참된 회개를 했을 때에, 참된 하나님의 길로 행했을 때에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무엇을 주시는지를 알려줍니다.

이에 대한 본문은 8절부터 9절 상반절, 10절 하반절부터 12절까지입니다. 여기에서 처음에 나타나는 말씀이 참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8절 처음에, ‘네 빛이 새벽 같이 비칠 것이며’ 10절 하반절에 ‘네 빛이 흑암 중에 떠올라’ 라고 나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갔을 때에 먼저 나타나는 것은 하나님의 영광이 아니라, ‘우리의 빛’입니다. 8절을 보면, 우리가 바른 금식을 했을 때에 “네 빛이 새벽 같이 비칠 것이며, 네 치유가 급속할 것이며, 네 공의가 네 앞에 행하고”, ‘하나님의 영광’은 ‘그 뒤에 호위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10절 하반절을 보면, “네 빛이 흑암 중에서 떠올라 네 어둠이 낮과 같이 될 것이며” 라고 말씀하십니다. 과거로부터 ‘자력구원’에 대한 논쟁은 계속 되어오고 있습니다. 우리가 스스로의 행위로 구원에 이르게 되는지, 초대 교부로부터 종교개혁자들에 이르기까지 주장되어왔던 오직 하나님의 은총이 있어야 구원에 이르게 되는지의 논쟁은 끝이 나지 않습니다.

마지막 구원 자체는 오직 하나님의 은총으로만 이루어지겠지만, 오늘 이사야는 그 앞에 있는 단계를 말합니다. “네가 비추는 빛이 이 땅에 비춰지고, 그 빛이 너를 치유하며, 너의 어둠을 낮과 같이 바꾸리라.”

우리는 내 코가 석자이기에 남을 도울 여력이 없고, 내 상황이 더 힘들고 어렵기에 남의 어려움을 살필 여력이 없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이사야는 반대로 말합니다. “네가 누군가를 살필 때에, 네가 누군가를 도울 때에, 너의 빛이 너 자신을 치유하고, 너 자신에게 빛을 비추리라.”

우리가 지금 어렵고 힘들고 지치는 상황에 놓여있다면, 나를 구원해달라고 하나님께 간구하기보다 그 순간에 오히려 다른 이들을 둘러봐야 한다고 이사야는 말합니다. 비록 우리의 처지가 그들을 돕는 행위로 이어지지는 않을지언정, 그들의 아픔과 어려움을 생각하고 이해하려는 노력이라도 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여러분들께서 그런 마음을 가지고 그런 삶을 살아가시길 바랍니다. 여러분의 그런 마음이, 그런 자세가 여러분의 빛이 되어서 세상에 퍼져나갈 줄 믿습니다. 그리고 내가 아니라 남을 향했던 그 빛이 오히려 여러분 스스로를 치유하고 어둠에서 이끌어 낼 줄 믿습니다.

하나님의 도우심

여기서 끝이 아닙니다. 자신의 선함으로, 선행으로 하나님 앞에 바르게 회개하고 바르게 금식에 동참하는 이들은 스스로의 빛으로 스스로를 돕게 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깊은 어려움에서 벗어나지 못할 때에, 우리의 아픔과 고통에서 헤어 나오지 못할 때에,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네가 부를 때에는 나 여호와가 응답하겠고, 네가 부르짖을 때에는 내가 여기 있다 하리라.(9절)”
“여호와가 너를 항상 인도하여 메마른 곳에서도 네 영혼을 만족하게 하며 네 뼈를 견고하게 하리니 너는 물 댄 동산 같겠고, 물이 끊어지지 아니하는 샘 같을 것이라(11절)”

우리가 우리 스스로를 돕는 일에는 분명 한계가 있습니다. 연예인들 중에 기부를 많이 하는 사람들이나 자원봉사를 많이 하는 사람들이 그런 이야기를 합니다. 누군가를 도왔을 때 얻는 기쁨과 즐거움이 세상에서 얻는 힘든 감정들을 이기게 해준다고 말합니다.

분명히 맞는 말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우리는 끊임없이 힘든 상황에 처하게 되고, 마음에 상처를 얻고, 어려움에 계속 불안해하게 됩니다. 연약한 인간이기에 극복했던 어려움 앞에서도 또다시 힘들어합니다.

그런 우리에게 참된 평화를 주시는 분은 오직 하나님 뿐이십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도우십니다. 우리가 부르짖을 때에 응답하시는 하나님, 언제나 내 옆에 계시는 하나님, 우리의 영혼을 채우시고 영원한 샘물을 허락하시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도우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사야의 입을 통해 그 약속을 우리에게 전하십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살아가심으로, 혹시 잘못을 범하고 있었다면 회개하시고 다른 이들의 어려움과 아픔을 살피실 수 있게 되심으로, 여러분의 빛을 세상에 비추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그 빛으로 마음의 모든 불안과 걱정을 떨치시기 바랍니다.

그럼에도 마음속에서 어둠이 사라지지 않는다면, 아픔이 사라지지 않는다면, 하나님을 부르시기 바랍니다. 하나님 따라 살아가시는 여러분의 곁에 하나님께서 항상 함께 하십니다. 항상 도우시고 지키십니다.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신다’, ‘임마누엘’의 하나님을 체험하시고 고백하시는 성도님들 되시길 축원합니다.

이성훈 목사(명일한움교회)  joey8100@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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