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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치가 끝나고 모두 제자리로 돌아갔다천국에 이르는 길(마22:8-10)
이성훈 목사(명일한움교회) | 승인 2019.06.30 19:20
8 이에 종들에게 이르되 혼인 잔치는 준비되었으나 청한 사람들은 합당하지 아니하니 9 네거리 길에 가서 사람을 만나는 대로 혼인 잔치에 청하여 오라 한대 10 종들이 길에 나가 악한 자나 선한 자나 만나는 대로 모두 데려오니 혼인 잔치에 손님들이 가득한지라

예수님께서 전해주신 비유 중에 혼인 잔치의 비유가 있습니다. 마태복음 22장과 누가복음 14장에 나타나 있습니다. 마태복음과 누가복음의 비유는 같은 듯 하면서도 상당한 차이가 있습니다. 오늘 말씀에서는 마태복음에 나타난 혼인 잔치의 비유를 생각해보려고 합니다.

예전에 이 비유에 대해서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누가복음에 따르면 어떤 사람이 잔치를 베풀고 사람들을 초대하지만, 마태복음의 경우에는 임금이 잔치를 베풀고 사람들을 초대합니다. 그런데 도대체 어떤 담력을 가진 사람들이 임금의 초대에 응하지 않고 자기 일을 묵묵히 하는 걸까요? 전에는 이런 관점에서 비유를 바라보았기 때문에 잔치에 오지 않은 사람들을 중심으로만 생각을 했었습니다.

그런데 최근에 로마서 말씀을 정리하면서 사도 바울의 로마서를 가장 잘 설명해줄 수 있는 예수님의 말씀이 바로 이 비유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이 말한 ‘믿음으로 의롭게 된다’는 의미를 오늘 혼인 잔치의 비유에 대입해서 함께 생각해보려고 합니다.

사도 바울의 의로움

로마서에서 사도 바울이 말했던 ‘믿음으로 의롭게 된다’는 말은 ‘믿음이 있으면 구원 받는다’가 아닙니다. 믿음은 구원에 이르는 첫 걸음일 뿐이고 구원으로 향하는 길은 믿음을 가진 사람들이 나아가야 할 신앙의 여정입니다. 쉽게 말해서 ‘믿음’으로 얻게 된 ‘의로움’은 ‘천국행 티켓’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저희가 잘 아는 어린이 복음성가가 있습니다. ‘구원열차’라는 복음성가입니다.

“나는 구원 열차 올라타고서 하늘나라 가지요. 죄악역 벗어나 달려가다가 다시 내리지 않죠. 차표 필요 없어요. 주님 차장되시니 나는 염려 없어요. 나는 구원 열차 올라타고서 하늘나라 가지요.”

사도 바울이 편지를 통해 말한 방식으로 보자면, 몇 가지 생각해봐야 할 부분이 있습니다. 우선 ‘죄악역 벗어나 올라가다 다시 내리지 않죠.’는 맞는 말입니다만, 하지만 의미가 마치 구원열차에 한 번 올라타면 자동적으로 끝까지 간다는 것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고린도전서 5장을 보면, 교회에 들어왔다가 죄를 짓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고린도전서 5장 13절은 이렇게 말합니다.

“밖에 있는 사람들은 하나님이 심판하시려니와 이 악한 사람은 너희 중에서 내쫓으라”

하늘나라로 가는 구원 열차를 올라탄 사람들 중에도 다시 죄악으로 향해가는 사람이 있다는 말이고, 이들은 교회에서 추방하라고 말합니다. 물론 고린도전서 5장 4-5절을 보면, 심판 때에 이들의 육은 사탄에게 내주어도 영은 구원한다는 이야기가 있기는 합니다만, 이 부분은 조금 더 깊이 살펴봐야 할 점이 있기 때문에 오늘은 제외하도록 하겠습니다. 다만 죄악역을 벗어나 달려가다가 다시 내리는 사람도 있다는 점입니다.

▲ 마태복음 22장의 잔치 비유 ⓒGetty Image

다음으로 ‘차표 필요 없어요’라는 부분은 확실히 잘못된 부분으로 보입니다. 차표는 필요합니다. 그게 사도 바울이 말한 ‘믿음’입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셨기 때문에 우리는 구원 열차에 올라탈 수 있는 자격을 얻었습니다. 자격을 노래 가사에 맞춰서 말하면 ‘차표’입니다. 그 자격, 차표를 얻는 방법은 ‘믿음’입니다.

사실 이 내용은 우리와 같은 이방인에 국한된 사항입니다. 유대인은 태생에 따라 자격을 얻게 됩니다. 꼭 출생이 유대인이어서 자격을 얻는다기보다, 할례를 통해서 유대인임을 증명하게 되고, 그것으로 자격을 얻게 됩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이 할례를 강조하는 유대주의 그리스도인들과 끊임없이 논쟁을 벌이게 된 것입니다.

잔치의 비유

사도 바울이 말한 믿음과 의로움에 대한 생각을 가지고 오늘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비유를 생각해보려고 합니다. 비유 속에서 한 임금이 잔치를 베풉니다. 이때 임금은 하나님과 직접 연결시킬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누가복음의 경우에는 잔치를 베푼 어떤 사람을 하나님과 직접적으로 연결시킬 수 있지만, 마태복음은 이 잔치를 베푼 임금을 천국이라고 말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임금을 꼭 하나님이라고 말할 수는 없고 천국 자체라고 생각할 수는 있으리라 봅니다만, 비유를 읽다보면 결국 하나님과 같아지기는 합니다.

비유 속에서 임금은 아들의 혼인 잔치를 베풉니다. 그리고 혼인 잔치에 참여할 사람들에게 초청장을 보냅니다. 임금이 베푼 잔치가 천국이라고 한다면, 이 초청장은 천국에 갈 수 있는 자격이 됩니다. 그런데 초청장을 받은 사람들, 천국에 갈 수 있는 자격을 가진 사람들은 이상하게도 천국에 가고 싶어하지 않습니다. 이들이 왜 천국에 가고 싶어하지 않았는지는 5절에 나타납니다. 한 사람은 자기 밭으로 갑니다. 또 한 사람은 사업을 하러 갑니다.

예수님의 비유는 사람들이 알아듣기 쉽게 설명하신 말씀입니다. 그렇기에 이 사람들의 모습을 보고 우리가 바로 생각할 수 있는 점이 그들이 천국에 가지 않은 이유입니다. 이들은 천국보다 이 세상에서 자신의 재산을 쌓는 일이 더 소중하다고 여긴 것입니다. 그렇기에 이들은 천국에서 잔치에 참여하는 일은 거부하고 지금 이 땅에서 자신의 부를 축적하는 일에 집중합니다.

6절을 보면, 어떤 이들은 임금이 보낸 종들을 잡아서 모욕하고 죽입니다. 도대체 왜 이런 일을 할까 싶기도 합니다만, 구약성경에 나타났던 많은 말씀들, 예언자들이 당했던 고난이나, 이스라엘 백성들이 보였던 폭력적 행위들을 생각해보면, 충분히 이해가 되기도 합니다.

살인을 범한 사람들, 그 몇몇 사람들은 구약성경에서 우리가 읽었던 바와 마찬가지로, 심판 당한 이스라엘과 마찬가지로, 임금이 분노함에 따라 전멸 당하게 됩니다. 이런 모습을 생각했을 때, 임금은 하나님으로 생각해도 이상하진 않습니다.

초청장을 가진 사람들이 잔치에 참여하기를 거부하자 임금은 이제 다른 사람들에게 초청장을 배부합니다. 10절을 보면, 이제부터 초청장을 받는 사람은 과거에 어떤 사람이었는지, 지금 어떤 사람인지가 중요하지 않았습니다. 그저 종을 만나는 사람은 선한 사람이던 악한 사람이던 초청장을 받게 됩니다.

비유는 여기에서 끝나지 않습니다. 마지막 이야기가 끝에 남아있습니다. 초청장을 받고 잔치에 온 사람 중에 예복을 입지 않고 온 사람이 있었습니다. 주인은 그를 결박하고 어두운 데에 던지도록 명령합니다. 초청장을 가지고 있었다고 해서, 잔치가 행해지는 곳에 왔다고 해서 아무나 그 잔치에 참여하지는 못한다는 의미입니다. 그렇기에 오늘 비유의 마지막에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청함을 받은 자는 많되 택함을 입은 자는 적으니라”

잔치의 초대와 구원

혼인 잔치의 비유는 사도 바울이 믿음의 역할과 예수 그리스도의 오심에 대해 로마서에서 열심히 변론한 내용을 단 하나의 비유 속에 담아버리고 있습니다.

처음 초청장을 받은 이들은 유대인들입니다. 이들이 가진 초청장은 할례입니다. 이들은 할례를 받음으로 유대인을 증명하였고, 그것으로 구원으로 향하는 길의 출발점에 설 수 있었습니다. 사도 바울의 표현으로 말하자면 ‘의로움’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초청장을 받았으나 잔치에 참여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길을 걷지 않았습니다. 세상에서 부를 쌓기에 연연했고, 어떤 이들은 폭력에 물들어 자신의 행위를 지적하는 하나님의 종들을 때리고 모욕하며 죽였습니다. 예수님의 말씀 속에서, 또 구약성경에 나타난 이스라엘의 역사 속에서 이들은 구원으로 향하는 길에 서 있었음에도 옆에 나 있는 길이 더 아름다워 보이고 좋아 보였기에 구원의 길을 떠나 세상의 길을 걸어갔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이들이 아닌 다른 사람들을 자신의 잔치, 천국으로 초대하십니다. 이들이 이방인입니다. 이방인들은 천국으로 초대될 때에 어떠한 요구도 강요되지 않았습니다. 그저 임금의 종들을 만나기만 하면, 잔치에 갈 초청장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이것이 예수님의 제자들, 사도들을 만나고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예수님을 향한 ‘믿음’을 가지는 일입니다. 그렇기에 이방인들에게 초청장, 의로움의 징표는 ‘믿음’이 됩니다.

하지만 오해하면 안 될 점이 이들은 아직 초청장만 받았다는 점입니다. 먼저 임금의 초청을 받고도 잔치에 가지 않은 사람들처럼 이들도 초청장을 받았지만 잔치에 가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오늘의 비유는 이런 사람들에 대해서는 더 이상 다루지 않습니다. 앞서 읽었던 고린도전서 5장 13절의 말씀이 ‘밖에 있는 사람들’에 대해서 관심을 두지 않는 것처럼, 이들에 대해서는 하나님께서 알아서 판단하실 것이기 때문에 우리가 신경 쓸 필요는 없다는 의미일 수도 있습니다.

잔치에 오지 않았던 이들 중에 살인을 한 사람들은 임금에 의해 죽임을 당하게 되었지만, 밭이나 사업장으로 간 사람에 대해서는 아무 말도 없습니다. 오늘 비유는 이들에 대해서도 관심을 갖지 않습니다. 다만 우리가 분명히 알 수 있는 사실은 있습니다. 그들은 임금의 잔치에, 천국에 오지 못했다는 점, 천국을 누리지 못했다는 점은 분명합니다.

천국을 누리지 못한 사람들에 대해서 우리가 깊이 생각할 이유는 없습니다. 우리는 이미 초청장을 받은, 믿음을 가진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우리가 정말로 신경 써야 할 부분은 잔치 자리에 가긴 했지만 예복을 입지 않아서 쫓겨난 사람입니다. 예복을 입었다는 말은 잔치에 맞는 복식을 준비했고 이를 갖추었다는 의미입니다.

마태복음의 경우에는 예수님의 제자가 열매를 맺어야 한다는 이야기가 핵심 중 하나이기 때문에 예복을 준비하여 입는다는 표현은 바꿔 말하자면 신앙의 열매를 맺는다는 말로 바꿀 수 있습니다.

믿음을 가지고 있다고 하더라도 세상적인 방식을 유지하면서 살아간다면, 그 사람은 잔치 자리까지 나아갔다 하더라도, 천국의 입구에 설 수는 있을지 몰라도 결국 ‘바깥 어두운 곳’으로 쫓겨나고 맙니다.

사도행전 5장에 나오는 아나니아와 삽비라 부부의 이야기는 교회에 속한 사람이 무조건 구원을 얻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분명하게 전해줍니다. 이들은 자신의 재산에 연연했기에 결국 죽음을 맞게 됩니다. 이들이 죽기 전까지 교회를 다녔으니까 천국에 갔으리라고 생각하시는 성도님들은 아무도 없으리라고 생각합니다.

천국은 어디에?

마지막으로 한 가지, 천국에 대한 생각을 조금만 해보고 말씀을 마치려고 합니다. 천국은 ‘혼인 잔치’라고 이야기 했을 때, 조금 이상하게 느껴지는 점이 있습니다. 천국은 죽어서 가는 곳이라는 생각이 우리에게 있습니다. 구원은 우리의 마지막 날이건, 세상의 마지막 날이건, 끝 날에 이루어진다는 생각이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 비유에 나오는 잔치는 시간적인 개념 속에서 세상이나 삶이 끝나는 순간은 아니라는 느낌이 강합니다. 잔치에 참여했다가 잔치가 끝나면 다시 세상의 삶으로 돌아갈 수 있을 듯한 느낌이 듭니다. ‘잔치’라는 비유의 소재 자체가 그런 느낌을 줍니다.

여기에 예수님과 사도 바울의 차이가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구원에 있어서 종말론적인 관념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 종말론적인 관념이 점차 옅어지기는 합니다만, 그럼에도 사도 바울은 재림을 통한 종말을 생각합니다. 그렇기에 사도 바울이 가진 구원에 대한 관념은 구약성경에서 찾아 볼 수 있습니다. 말라기 4장 2-3절 말씀입니다.

“내 이름을 경외하는 너희에게는 공의로운 해가 떠올라서 치료하는 광선을 비추리니 너희가 나가서 외양간에서 나온 송아지 같이 뛰리라. 또 너희가 악인을 밟을 것이니 그들이 내가 정한 날에 너희 발바닥 밑에 재와 같으리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이런 순간이 종말, 구원, 천국이고, 구원을 받은 사람들은 그때에 치유되고, 악인을 짓밟는 역할을 수행하게 됩니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종말에 대한 생각과도 유사하다고 봅니다.

하지만 예수님에게 있어서 구원, 천국은 잔치와도 같습니다. 어느 때라도 열릴 수 있는게 잔치입니다. 그곳은 모두에게 즐거움과 기쁨이 있는 자리입니다. 잔치는 세상과 동떨어진 어떤 것이 아닙니다. 그저 세상에서 언제라도 일어날 수 있는 사건이 잔치입니다.

그저 죽어서 가는 천국이 아니라 이 땅에서도 우리는 언제라도 잔치에 참여할 수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이 잔치에 들어갈 수 있는 초청장을 가지고 있고, 여러분께서 예수님의 말씀대로 이 땅에서 살아가시고 계시기 때문에 예복을 이미 입고 계십니다. 이제 그 잔치가 벌어지고 있음을 아시고 그곳에 참여하시면 됩니다.

제가 좋아하는 찬송 중 하나가 438장 ‘내 영혼이 은총 입어’인데, 다른 가사보다 마지막 가사를 가장 좋아합니다.

“주 예수와 동행하니 그 어디나 하늘나라”

바로 여러분의 삶에서 하나님의 잔치가 벌어지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이미 초청장도 예복도 갖고 계십니다. 여러분의 삶에서 그 잔치를, 임금이 베푸신 잔치를 누리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이 계신 그 어느 곳이라도 천국임을 느끼시기 바랍니다.

4절에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내가 오찬을 준비하되 나의 소와 살진 짐승을 잡고 모든 것을 갖추었으니”

그곳에는 즐거움이 있고, 기쁨이 있고 평화도 있고 모든 것이 있습니다. 잔치에 참여하시어 이 기쁨을 누리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의 모든 삶에서 잔치의 기쁨을 누리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께 이 모든 것을 베푸실 줄 믿습니다.

이성훈 목사(명일한움교회)  joey8100@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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