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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여 원칙 따라 산업분야 경제민주주의 구현한다교회를 위한 기독교 경제윤리 8
강원돈 교수(한신대학교 신학부/사회윤리와 민중신학) | 승인 2019.07.01 19:07

교회는 참여의 원칙에 따라 기업 차원에서 노동과 자본의 공동결정을 옹호하는 데서 더 나아가 산업분야와 국민경제와 세계경제를 민주주의적으로 규율할 것을 요구한다. 지난 7회 연재에서 살핀 바와 같이, 기업 차원에서 민주주의를 창설하는 것은 소유권 주장의 장벽을 넘어서야 하기에 매우 어려운 과제였다. 이에 비하면, 산업분야와 국민경제, 그리고 세계경제 차원에서 경제 민주주의를 창설하는 것은 이론적으로는 큰 어려움이 없다. 다만, 이 분야와 영역들에서 경제 민주주의를 가로 막는 권력들이 막강하고 그 권력들의 배치가 공고하기 때문에 그 실현이 지극히 어려울 뿐이다.

산업민주주의, 산업분야별로 노동권력과 자본권력이 균형 이루어야 실현

시장경제의 틀에서 노동과 자본이 이익을 최대화할 수 있는 가장 이상적인 조건은 노동의 권력과 자본의 권력이 균형을 이루는 상태이다. 노동에 대한 자본의 지배가 제도화되어 있는 시장경제에서 이 권력 균형을 이루는 방편은 기업 차원에서 노동과 자본의 공동결정을 제도화하는 것 이외에 산별 교섭체계를 법제화하여 노동의 교섭력을 강화하는 것이다. 이와 관련된 논의는 노동자들에게서 오래 전부터 이루어져 왔지만, 자본 측은 산별 교섭제도에 대해 소극적이거나 부정적인 태도로 일관해 왔다. 군사정권은 총자본가의 역할을 수행하였기에 기업과 산업 분야에서 노동 권력의 형성을 가혹하게 억눌렀지만, 군사 정권 이후에 수립된 민간 정부들도 산별 노사교섭 제도를 법제화하려는 뚜렷한 의지를 보이지 않았다. 이것은 문재인 정권도 마찬가지이다.

노동자들의 힘은 단결과 연대에 바탕을 두고 있다. 노동자들이 산별 노동조합을 결성하여 노동 권력을 강화시키면, 그 힘으로 산별 단체교섭을 벌여서 노동자들의 권익을 실현할 수 있다. 자본 측의 신자유주의적 공세로 인하여 노동 권력이 광범위하게 침식되고 있음을 고려한다면, 정규직, 비정규직, 파트타임 아르바이트 등 다양한 형태의 고용관계에 있는 노동자들은 좁은 사업장을 넘어서서 직종별로, 산업분야별로 단결하여 더 큰 권력을 형성하고 스스로 권익을 지키기 위해 시급히 나서야 할 것이다.

▲ 독일의 산별노조 운동 ⓒGetty Image

예컨대 금속을 활용하여 철강, 아연강, 동관, 알루미늄 합금 등등의 금속재를 위시해서 전선, 모터, 금속제 부품, 농기구, 공구, 자동차, 전동차, 선박, 비행기, 플랜트 등 이루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다양한 상품을 생산하는 금속산업 분야의 노동자들이 단결하여 노동조합을 결성한다고 생각해 보자. 그 대표들이 금속 산업 분야의 경영자 협회에서 파견한 대표들과 마주 앉아서 단체교섭을 하고, 자본 측이 그 교섭에 성실하게 응하지 않을 때 금속 산업 분야의 노동자들이 의지를 모아 모든 사업장들에서 파업을 결행한다면, 그 파급력은 엄청날 것이다.

노동의 권력은 이렇게 조직되고 행사되어야 하는 것이고, 그래야 자본의 권력에 대등하게 맞설 수 있다. 

단위 사업장 단체교섭에서 산별 단체교섭으로 나아가야 하는 까닭

유감스럽게도, 우리나라 노동법은 단위사업장 노사교섭만을 인정하고 있고, 이로 인해 노동자들이 권익을 실현할 수 있는 기회는 크게 제약되고 있다. 단위사업장 차원의 노사교섭은 자본 측이 노동 측에 심각한 정치적 압박과 사회심리적 압력을 가할 수 있다. 자본과 노동 사이에 애초부터 기울어져 있었던 관계는 단위사업장 차원의 교섭에서 더 기울어진다. 또한 단위사업장 차원의 노사교섭은 노동 측과 자본 측 모두에게 넓은 시야에서 회사 경영의 성과를 평가하고 미래를 전망하는 가운데 회사 운영에 책임적으로 기여하기 어렵게 만든다. 단위사업장 차원의 단체교섭에 매몰되면, 노동 측과 자본 측이 산업분야의 발전과 국민경제의 발전을 폭넓게 고려하면서 임금, 노동시간, 노동조건 등 회사 운영의 핵심 사항들에 관한 결정을 내리는 데 많은 한계가 있다.

산별 노사교섭은 단위 사업장들의 각기 다른 상황들을 충분히 고려할 뿐만 아니라 국민경제의 발전과 산업 분야의 발전 방향과 발전 속도 등 산업정책까지도 염두에 두고 적정 임금과 적정 이윤을 조율하는 데 크게 이바지할 수 있다. 그렇게 되면 사회적 평화가 수립될 수 있는 유리한 조건이 마련된다.

또한 산별 노사교섭은 해당 산업분야에 속한 모든 사업장들에 적용되는 임금 수준, 노동시간, 노동조건 등에 관한 지침을 정하고, 그 지침은 법률에 버금가는 구속력을 갖는다. 그 어떤 사업장도 지침이 정하는 수준을 밑도는 임금이나 노동시간이나 노동조건을 노동자들에게 부과할 수 없는 것이다. 정규직과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계약 형태와 무관하게 동일노동 동일임금의 원칙에 따라 처우와 복지 차원에서 차별을 당하지 않도록 단체협약을 체결할 수 있다.

더 나아가 산별 노사교섭은 산업정책의 큰 틀에서 한계 기업을 정리하는 효과를 발휘하고, 산업 구조조정으로 인하여 해고된 노동자들의 재교육과 재취업 등에 관련된 사회계획을 산업분야별로 수립하는 데에도 유리하다.

위에서 말한 점들을 감안하기만 해도, 정부와 입법자는 단위사업장 교섭제도를 산별 단체교섭 제도로 전환할 필요를 충분히 공감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산별 노사교섭 제도의 도입은 매우 절실하고 시급하다. 정부와 입법자는 노동의 권력이 자본의 권력에 압도당하는 상황 속에서 사회적 양극화가 극도로 악화되고 사회적 평화가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파괴된다는 것을 직시하여야 하고, 이에 맞서서 산별 노동조합을 통하여 자본 측과 교섭을 벌이고자 하는 노동자들의 절박한 요구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헌법 규범과 단체교섭법의 괴리

우리나라 헌법 제21조 ⓵항은 모든 국민의 결사의 자유를 확인하고 이를 보장할 것을 국가의 의무로 규정하고 있다. 노동자들은 국가나 사업자의 자의적 방해나 억압을 물리치고 자유롭게 단위사업장 노동조합이나 산별 노동조합을 결성할 권리가 있다. 우리나라의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도 제10조 ⓵항에서 ‘연합단체인 노동조합’의 결성을 규정하고, ⓶항에서 ‘연합단체인 노동조합’을 ‘동종산업의 단위노동조합을 구성원으로 하는 산업별 연합단체’와 ‘산업별 연합단체 또는 전국규모의 산업별 단위노동조합을 구성원으로 하는 총연합단체’로 규정하고 있어서 일단 산별 노동조합을 결성할 길을 열어 두고 있기는 하다.

그러나 위의 법 어디에도 산별 노사교섭을 규정하고 있지 않다. 노동자들이 산별 노동조합을 결성하여도 단체교섭의 실효를 거둘 수 없도록 봉쇄하고 있는 셈이다. 따라서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은 위헌의 시비를 피하면서도 사회국가의 이념을 표방하는 헌법의 규범적 요구를 묵살할 수 있도록 교묘하게 설계되어 있다고 볼 수 있다.

헌법 규범과 그 규범의 법적 실현 장치 사이의 괴리를 해소하기 위해서는 물론 노동자들이 앞장서야 한다. 그러나 노동자들의 권력을 강화시키고 분배의 정의를 더 많이 실현시켜서 사회적 평화를 구현하는 것은 시민사회의 관심사일 수밖에 없다. 이것이 노동조합 결성과 단체교섭을 규율하는 노동법 개정에 시민사회가 적극적으로 나서야 하는 이유이다. 시민단체들과 사회단체들이 노동법 개정을 통해 사회국가를 강화하자는데, 정부와 입법자가 손을 놓고 있을 수는 없을 것이다. 아니, 시민사회단체들은 정부와 입법자가 헌법 규범과 노동법을 일치시키는 책임을 지도록 강력하게 압박하여야 한다.

독일의 교훈

독일에서 산별 노사협약 제도는 1918년의 11월 혁명 이후 1918년 12월 23일에 반포된 노사협약 규정에 뿌리를 두고 있다.(1) 1949년에 공표된 독일 기본법 9조 3항의 결사자유 규정(2)과 1953년에 제정된 단체교섭법(3)은 노사교섭의 자율성 원칙의 법적 기반이다. 노동측은 산별 단체교섭 제도가 사회정의를 실현시키는 중요한 도구로 인식하고 있고, 이러한 노사교섭의 자율성을 부정하는 세력은 사회적 평화를 파괴하는 세력으로 규정하는 데 서슴지 않았다.

독일에서도 신자유주의가 자리를 잡으면서 산별 노사협약 제도를 허구화하려는 자본 측의 공세는 집요하게 진행되었다. 자본 측은 단체교섭법 제4조 3항이 허용하는 유리성의 원칙(4)에 근거하여 직장 내 노사협약을 단체협약에 앞세우고자 했다. 자본 측은 이 조항이 단체협약과 개별적인 노사협약이 상호 배타적인 개념이 아니고, 상호 보완적인 개념이라는 취지로 해석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5).

이러한 해석을 받아들이면, 개별적인 노동자들은 단체협약이 규율하는 바대로 임금 수준과 노동조건 등에 관한 노동계약을 맺을 수도 있고, 사용자측이 노사협약을 무시하고 제시하는 계약조건을 받아들일 수도 있다. 어떤 방식을 취하든 노동자들에게 유리하면 된다는 것이 자본 측의 집요한 주장이었다. 현대 독일 사회에서는 자본 측의 주장이 먹힐 수 있는 경우가 중가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노동시간을 단축하고, 이에 따라 임금을 조정해야 하는 경우가 대표적이다. 노동시간과 임금은 단체교섭에 의해 규율되는 것이 상례이기는 하지만, 직장마다 경영조건이 다를 수 있기 때문에 이 둘을 연결하여 직장 내 노사협약을 맺는 것이 합리적인 경우가 없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노동 측은 이와 같은 자본 측의 공세에 대해 ‘직장 내 노사협약에 대한 산별 단체교섭의 우위성’이 ‘헌정질서’에 속할 뿐만 아니라, 유리성의 원칙은 사회적 우위에 있는 세력으로부터 노동자들을 보호하려는 취지로 주어진 것이라는 논거를 내세웠다.(6) 예를 들면, 노동시간 단축과 이에 대한 임금조정은 오직 노동자들에게 유리하다고 객관적으로 입증되고, 이에 관한 노사 간 합의가 일자리의 안정성을 보장하는 방식으로 성문화될 경우에만 인정될 수 있다는 것이다.

또한 노동 측은 현재의 산별 노사협약 제도의 틀 안에서도 개별기업 차원의 노사협약을 탄력적으로 운영할 수 있는 여지가 많이 있다고 응수한다.(7) 기술도입과 투자기회 등 개별기업들 사이의 차이를 인정하면서 직장조직법이 규정하는 노사협약 제도를 탄력적으로, 건설적으로 활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 경우, 산별 단체교섭 수준을 밑도는 개별기업 차원의 노사협약을 인정할 수 없지만, 산별 단체교섭 제도는 그 수준을 넘어서는 노사협약을 가로막은 적이 없다는 것이다. 사정이 이러한데도 직장 내 노사협약을 위해 산별 단체교섭 제도를 허구화하려는 자본 측의 공격은, 많은 경우, 노동비용을 줄이려는 데 초점이 맞추어져 있기 때문에, 사회적 정당성도 없고 국민경제의 균형발전을 위한 시각도 결여되어 있다고 노동 측은 공격한다.

결론

우리 사회는 더 많은 사회적 평화를 실현하기 위하여 단위 사업장 노사교섭으로부터 산별 노사교섭으로 나아가야 한다. 독일이 자랑하는 산업 평화와 사회적 평화는 무엇보다도 산별 노동조합의 막강한 권력에 바탕을 두고 산별 단체협약을 진행하도록 한 법제에 크게 의존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신자유주의적 공세에 대항해서 독일 노동자들이 산별 단체협약 제도를 지키고자 투쟁하면서 내세운 주장들은 우리에게 많은 것을 시사한다.

미주

(미주 1) 1918/1919년의 독일혁명은 노동측 대표와 자본측 대표가 동수로 마주 앉아 독일 산업 및 기업과 관련되는 모든 경제적, 사회적 문제들을 해결하고 이와 관련된 입법 및 행정 사안들을 함께 다룰 수 있는 “중앙노동공동체”(Zentralarbeitgemeinschaft)를 결성하게 만들었다. 이에 대해서는 E. R. Huber, Deutsche Verfassungsgeschichte seit 1789, Bd. V: Weltkrieg, Revolution und Reicheserneuerung 1914-1919(Stuttgart/Berlin/Koeln/Mainz, 1978), 773.
(미주 2) Grundgesetz für die Bundesrepublik Deutschland 제9조 3항: “노동조건과 경제조건을 지키고 개선하기 위하여 결사체를 형성하는 권리는 모든 사람들에게 모든 직업들에 보장된다. 이 권리를 제한하거나 방해하려는 결의는 무효이며, 이를 위한 조치들은 헌법에 위배된다.”
(미주 3) Tarifvertragsgesetz 제4조 1항: “노동관계의 내용, 중단 혹은 종결을 규율하는 단체교섭의 법적 규범들은 노사교섭의 영향권 아래 있는 교섭 쌍방에게 직접적, 강제적으로 적용된다.”
(미주 4) Tarifvertragsgesetz 제4조 3항: “단체교섭과 어긋나는 합의는, 단체교섭이 그것을 허용하고 있거나 노동자들에게 유리한 교섭내용의 변경을 담고 있을 때에만, 허용된다.”
(미주 5) 이것은 Volker Riebler가 자본측을 대변하며 한 말이다. 그의 글이 실려 있는 Krise des Flächentarifvertrages? Dokumentation eines Gesprächs der Otto Brenner Stiftung, hg. von Otto Brenner Stiftung(Köln, 1996), 25를 보라.
(미주 6) 이것은 Ulrich Zachert가 노동측의 견해를 대변하며 한 말이다. 그의 글이 실려 있는 Krise des Flächentarifvertrages? Dokumentation eines Gesprächs der Otto Brenner Stiftung, hg. von Otto Brenner Stiftung(Köln, 1996), 56f.를 보라.
(미주 7) 이러한 노조측의 주장은 직장조직법 제77조 3항에 근거한다. Betriebsverfassungsgesetz 제77조 3항: “단체교섭에 의해 규율되어 있거나 규율되는 노동임금과 그 밖의 노동조건들은 직장내 노사협약의 대상이 될 수 없다. 단, 이것은 단체교섭이 보완적인 직장 내 노사협약의 체결을 허용하는 경우에는 적용하지 않는다.”

강원돈 교수(한신대학교 신학부/사회윤리와 민중신학)  wdkang55@hs.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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