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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가 아니라 “지금”(에스겔 18:1-32)천천히 걷자
여상범 목사(제주신흥교회) | 승인 2019.07.02 03:57

아버지가 지은 죄 때문에 아들이 벌을 받는 것은 아버지가 지은 빚을 아들이 물려받는 것처럼 당연하게 여겨지던 일이었습니다. 예언자들의 예언 중에도 조상의 죄로 인해 하나님의 심판이 이스라엘에 임했다는 내용이 여러 차례 등장합니다. 그중에 특히 므낫세 왕의 죄가 자주 거론되곤 합니다.

그런데 에스겔 예언자는 그런 상식과 반대되는 말씀을 선포합니다. 이제 더 이상 아버지의 죄 때문에 아들이 벌 받는 일이 없을 것이라고 선언합니다(3절).

이와 같은 말씀은 에스겔과 함께 포로로 끌려온 사람들의 내적인 상황을 반영한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이 처한 상황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그 마음의 분노를 조상들에게 향하고 있었음이 분명합니다. 한 마디로 “조상 탓” 하고 있었던 셈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런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지금의 너는 어떠하냐?’고 묻고 계십니다. 포로로 끌려오기 전에 모든 것이 평안하고 잘 갖춰져 있을 때 어떻게 했느냐를 생각하지 말고, 지금, 이 상황에서 자신이 어떻게 행동하고 있는지를 돌아보도록 요청하시는 것입니다.

절망, 패배감, 상실감, 우울과 같은 마음의 짐들은 사람에게 결코 가벼운 것이 아닙니다. 상상해본 적 없는 큰 고난에 처하게 되면, 대부분은 이전과 다르게 행동하게 됩니다. 상황의 변화도 문제지만 그보다 마음이 무너져버렸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계속 남 탓, 혹은 상황 탓을 하며 무너져 내리기만 할 수는 없습니다. 뭔가 새롭게 시작할 기회를 찾아야 하고, 다시 중심을 회복하고 새로운 걸음을 걸어야 합니다.

▲ 우리는 과거라는 무덤 위에 살고 있는 것은 아닐까 ⓒGetty Image

이때 율법은 지금의 나를 돌아보는데 필요한 거울이자 잣대입니다. 그래서 본문에서 율법이 여러차례 강조되었습니다. 중요한 것은 그 조항들을 절대화하여 지키는 것이 아니라, 그 조항들 안에 담긴 하나님의 뜻을 발견하고 나의 마음과 행동을 그 뜻에 맞게 조율해가는 것입니다.

율법은 삶의 원리이지 업적 목록이 아닙니다. 과거에 잘한 일이 지금의 잘못에 대하여 정상참작의 근거가 되어주지 못합니다(24절). 심판대 앞에 선 사람은 누구나 지금 어떻게 하고 있느냐에 따라 하나님의 판결을 받게 된다는 것입니다. 자타가 공인하는 악인이라도 제외되지 않습니다(21절).

22절 같은 말씀은 악용되기 쉬운 말씀입니다. “그 범죄한 것이 하나도 기억함이 되지 아니하리니 그가 행한 공의로 살리라”고 했는데, 실제로 교회는 범죄자들의 신분세탁소로 악용되어오기도 했습니다. 고문기술자가 목사가 되어서 자신이 예전에 민주화운동 하던 사람들 고문하던 이야기를 자랑처럼 떠벌리거나, 상습적인 가정폭력범이 목사가 되어서 자신의 말재주를 뽐내며 사람들을 울리고 웃기는 것과 같은 상황이 교회에서 비일비재했던 것입니다.

이런 잘못된 상황이 연출되는 까닭은 회개를 업적으로 보았기 때문입니다. 눈물을 흘리며 자기 죄를 회개하고 고백하면 그것이 업적이 되어서 이제 새사람으로 거듭났다고 착각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이 요청하시는 회개는 “한 번 회개”가 아니라 계속 율법대로 사는 “계속 회개”입니다.

좋을 때 잘한 값으로 나쁠 때 나빠진 것을 “퉁칠 수” 없습니다. 에스겔은 과거에 매여서 지금을 포기해가고 있던 바벨론의 포로들에게 바로 이 사실을 일깨워주고 있습니다. 어떤 상황에서라도 하나님의 뜻을 생각하고 결단하며 실천하는 사람이 하나님의 구원받은 백성입니다. “예전에”가 아니라 “지금” 구원받은 백성으로 살아가자고 호소하는 것입니다.

여상범 목사(제주신흥교회)  uptiger@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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