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뼈에 새기는 과정(에스겔 19:1-14)천천히 걷자
여상범 목사(제주신흥교회) | 승인 2019.07.05 18:53

가슴 아픈 역사를 잊지 않기 위하여 시를 짓고 노래를 만들거나 자기 분야의 작품을 만들어서 기억하는 일은 예술가들의 의무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에스겔에게 그러한 예술가적 의무를 이행하도록 요청하셨습니다. 여호아하스(2-4절)와 여호야긴(5-9절)의 가슴 아픈 역사를 곱씹도록 명령하신 것입니다.

때로는 망각이 유일한 대안인 순간도 있겠지만, 장기적으로 보자면 회피는 오히려 독이 되는 경우가 많은 듯합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예술을 이용하여 아픈 감정은 어루만지고, 그 역사에 담긴 교훈은 뼈에 새기는 승화의 과정을 이루도록 에스겔을 독려하셨습니다.

처칠이 “역사를 잊는 국가에게 미래는 없다”고 말했다는데, 이는 신앙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역사를 잊은 성도에게 구원은 없습니다. 구원의 시작은 회개이고 구원의 마침은 예수 그리스도인데, 시작이 없이 끝이 주어질 수는 없을 것이 때문입니다.

간혹 신앙인의 거룩함을 세상과의 단절로 이해하는 분들이 있습니다만, 거룩은 단절이나 배척이나 차별이 아니라 “구별”입니다. 하나님이 창조하신 피조물로서 세상에 속해 있으나 세상을 닮지 않고 하나님을 닮는 독특한 경지를 추구하는 것이 바로 신앙인의 거룩인 것입니다.

▲ 바벨론 물가에서 고국 땅을 그리며 노래를 불렀다는 시편의 말씀을 형상화한 작품 ⓒGetty Image

이 믿음의 연단을 바르게 행하려면, 악으로 악을 이기려 해서는 안 됩니다. 그래서 노래가 필요한 것입니다.

세월호 피해자들과 그들의 아픔을 공유하는 시인들이 만든 “416합창단”이 좋은 예가 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이 위대한 사람들을 통해 가슴 아픈 역사를 이겨내고 새로운 역사를 써 내려가는, 하나님이 인간에게 부어주신 선으로 악을 이기는 놀라운 능력을 목격하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에스겔에게 명령하신 일이 바로 그와 같은 일입니다. 다시는 기억하고 싶지 않은 뼈아픈 역사일지라도 그 안에 새겨야 할 교훈이 있다면 노래를 불러서라도 기억하라는 것입니다. 잊으려고만 애쓰는 사람은 오히려 더 묶이게 되기 때문입니다.

똑바로 기억하고 바로잡아가는 사람이 진정한 자유를 얻을 수 있습니다. 개인의 잘못이든, 사회의 불의함이든 바로 잡아서 회개에 이르게 하는 능력은 기억하는 힘에서 비롯되기 때문입니다. 기억하는 힘이란 잡다한 것을 많이 기억하는 기억력이 아니라, 중요한 것을 곱씹어가며 잊지 않는 내면의 힘입니다. 그리고 신앙인에게 이 힘의 원천은 기도(하나님과의 만남)입니다.

여상범 목사(제주신흥교회)  uptiger@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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