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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아스달 연대기>에 관한 비판 다섯 가지에 대한 반론다른 세상은 모방에서부터 시작된다
최병학 목사(남부산용호교회) | 승인 2019.07.06 17:18

주말드라마 <아스달 연대기>(tvN)에 관한 일명 식자들의 비판이 뜨겁습니다. 요약하자면 다섯 가지입니다. 티브이 칼럼니스트 이승한은 이렇게 말합니다.(참조: ‘상업적 성공의 욕망이 이야기꾼의 욕망을 앞섰을 때, http://www.hani.co.kr/arti/culture/entertainment/899788.html)

“첫째, 뇌안탈족의 언어는 알고 보니, 현대 한국어 어휘를 자음과 모음 단위로 파자해 순서만 뒤집어 읽은 어구전철(語句轉綴)에 불과하다.
둘째, 대흑벽은 미국 드라마 <왕자의 게임>에서 따온 흔적이다.
셋째, 설정들이 영상문법으로 채 녹아들지 못한 채, 등장인물들의 대사나 내레이션을 통해 화급하게 설명되었는데, 시청자들을 이해시키기엔 역부족이었다.
넷째, 컴퓨터 그래픽은 조악했다.
다섯째, 심형래 감독의 <디워>(2007)처럼 국뽕 마케팅 전략이다.
결론적으로 <디월>가 따라 하고 싶었던 콘텐츠가 <쥬라기 공원>이나 <고질라>같은 할리우드산 괴수물이었다면, <아스달 연대기>가 따라 하고 싶었던 콘텐츠는 <왕좌의 게임>이었다.”

충분히 공감이 되고, 이해도 됩니다. 그러나 필자의 수준이 낮아서인지 <아스달 연대기>를 보며 ‘고조선의 역사’, ‘종교와 정치의 관계’, ‘자연과 인간의 관계’, ‘민족사에 대한 생각(한단고기, 한철학)’, ‘문명(기술, 농업, 국가)과 진로’ 등 너무나 많은 생각거리와 토론 거리가 있다고 봅니다. 또한 절묘하게 끊고 맺는 편집의 기술로, 회 차마다 재미있게 보고 있습니다. 특히 ‘신화에 대한 이해’, ‘종교에 대한 이해’, ‘정치적인 역학 구도’를 이해하지 못하면, 일반인들이 이해하기는 쉽지 않겠구나 이런 생각도 해봅니다. 아무튼 이러한 팬의 입장에서 위의 다섯 가지에 관해 반박해보자면 이렇습니다.

첫째, 뇌안탈은 호모사피엔스에 의해 사라진 네안데르탈인을 뜻합니다. 뇌의 용량이 1300~1600mL이었고(현대인보다 두뇌 용량이 현대인보다 크다고 추정), 매장풍습이 있었고, 높은 정신성과 지능을 갖고 있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불을 사용하지 못해 멸종했다는 설이 있습니다. 아무튼 그들의 언어가 어떠했는지는 정말 알 수 없죠?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한글을 중심으로 상상력을 발휘한다면 어구전철 밖에 없습니다. 한국 드라마에 그들이 영어 어구전철을 사용해야 하나요? 아니면 중국어를 사용해야 하나요?

사실 어구전철(anagram)의 역사는 매우 오래된 것입니다. 처음 시작한 사람들은 유대인이라고 알려져 있습니다. 히브리의 후기 작가들, 특히 유대의 신비철학자들은 이렇게 말합니다. “철자 수 속에는 신비스런 비밀들이 숨겨져 있다.” 따라서 어구전철을 즐겨 사용했습니다. 그리고 그리스와 로마 시대에도 알려졌습니다. 중세 유럽에도 유행했고, 16~17세기에는 많은 성직자들이 거쳐야 하는 수업의 한 과정이 바로 어구전철이었습니다.

가령, “Ave Maria, gratia plena, Dominus tecum(성모 마리아, 자비로움으로 충만한 이여, 주께서 함께 하는 이여)!”라는 성스러운 인사말은 즐겨 이용된 어구전철의 기본 문제였습니다. 이 어구는 철자 바꾸기에 의해 수백 가지의 다른 문장으로 변형되었는데, 가령 예를 들며 이러한 어구전철이 유명합니다. “Virgo serena, pia, munda et immaculata(거룩하고 신성하며 순수하고 순결한 성모 마리아)!”

17세기의 몇몇 과학자들, 가령 갈릴레오, 크리스티안 호이헨스, 로버트 후크 같은 이들은 자신들의 과학적 발전을 어구전철로 표현하여 다른 사람들의 도용으로부터 보호하려고 했습니다. 작가들 역시 필명에 어구전철을 사용한 경우가 많았습니다. 20세기에는 어구전철은 크로스워드 퍼즐(십자말 퍼즐)에서 종종 단서와 해답으로 이용됩니다.

BTS 팬들은 잘 아는 할시(Halsey)는, 본명인 애쉴리(Ashley)의 철자를 재구성해 만든 아나그램입니다. 또한 <해리포터>는 엄청난 아나그램이 사용되었는데, 가령, 톰 마볼로 리들(TOM MARVOLO RIDDLE)을 ‘난 볼드모트 경이야(I AM LOAD VOLDEMORT)’로 한 것이 유명하죠? 영화 <메트릭스>의 네오(Neo)는 ‘ONE’을 어구전철한 것입니다. 한글을 어구전철하여, 대사로 만들어 사용했으니 얼마나 대단한가요!

둘째, 대흑벽은 <왕자의 게임>에서 따온 흔적이다? 일본 만화 <진격의 거인>에도 벽은 나옵니다. 고대 당시 씨족과 부족을 가르는 것 가운데 자연스러운 것이 강이나 산이라면, 인공적인 벽은 어쩌면 부자연스럽습니다. <왕자의 게임>과 <진격의 거인>은 인공적인 벽이었습니다. 그러나 <아스달 연대기>의 대흑벽은 자연적인 것입니다. 인공과 자연을 구별하지 못하고, 벽이 나오니 무조건 모방했다고 비판하면 조금 심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셋째, 설정들이 등장인물들의 대사나 내레이션을 통해 설명되는데, 시청자들을 이해하기 쉽지 않았다는 것은 충분히 공감이 갑니다. 이승한 칼럼니스트의 비판과 달리, 역설적으로 ‘이야기꾼의 욕망’이 앞섰기 때문입니다. 고대사이기에, 또한 무수한 상징과 신화, 종교적 의미, 정치적 역학 관계를 영상 이미지로 설득하기에는 너무 힘듭니다. 대사를 통해(특히 김옥분의 딕션, 발성은 얼마나 분명한가요?) 전달 할 수밖에 없습니다. 따라서 아스달 연대기는 고조선의 역사와 종교의 역할, 신화의 내용 등을 알고 있어야 재미있게 들을 수 있는 드라마입니다.

넷째, 컴퓨터 그래픽은 조악했다? 그렇습니다. 어느 정도 그런 부분이 있지만, 저는 이 드라마의 숲의 장면은 미야자키 하야오의 애니메이션 <월령공주>의 숲이 생각이 났습니다. 어떻게 이렇게 잘 만들었을까 하는 감탄을 느낀 적도 있습니다. 해외 로케인가요? 작정하고 비판하려면 흠만 보이겠지만, 나름 괜찮은 CG도 적지 않았습니다.

다섯째, 심형래 감독의 <디워>(2007)처럼 국뽕 마케팅 전략이다? 처음 <디워>가 나왔을 때, 진중권 교수가 <100분 토론>에서 영화를 비판하며, ‘아리랑 코드’, ‘민족주의 코드’, ‘영화 <300>과 달리 서사가 없다(아리스토텔레스 운운했죠?)’ 등 ‘진중’하지 못한 발언을 한 적이 있었죠?

그러나 <디워>는 말 그대로 괴수영화입니다. 괴수영화의 ABC를 말씀드리겠습니다. 첫째, ‘괴수가 커야 한다!’ 이무기는 그때 까지 나온 영화의 괴수 가운데, 가장 큰 괴수입니다. 미국의 킹콩, 일본의 고질라 보다! 그러나 나중에 일본은 이 충격으로 고질라를 더 크게 만들어 냅니다. 둘째, ‘괴수가 사람을 많이 죽여야 한다!’ 많은 영화의 이미지를 도용하여, 참 많이도 죽입니다. 셋째, ‘서사가 복잡하지 않아야 한다!’ 누가 괴수 영화 보는데, 깊고 심오한 서사를 찾겠습니까? 그냥 덩치 큰 괴수가 부수고, 죽이고 하는 것이 괴수 영화의 본질입니다. 따라서 봉준호 감독의 <괴물>은 가장 못 만든 괴수영화입니다(그러나 예술 영화죠?). 심형래 감독은 <디워>를 예술 영화로 만들지 않았습니다. 거기다 대고, 아리스토텔레스의 서사니 뭐니, 정말 진중권 교수가 진중하지 못했죠? 단연코 괴수영화 가운데 <디워>는 최고입니다!

그리고 ‘국뽕’ 코드인데요. 왜 국뽕 코드로 만들면 안됩니까? 한단고기(桓檀古記)나 삼일신고(三一神誥), 고조선의 역사 등 친일 사학자들이 우리의 고대사를 삭제하는데, 이렇게 고조선의 역사를 영상 이미지로 살리는 국뽕이 무슨 잘못이 있나요? 게다가 한글을, 또한 우리의 고대사를 세계에 알리는 것이 뭐가 문제인가요? 우리 안에 식민주의, 사대주의가 이렇게 대중문화 분석에도 자리 잡고 있음에 개탄합니다.

결론적으로, “<디워>가 따라 하고 싶었던 콘텐츠가 <쥬라기 공원>이나 <고질라>같은 할리우드산 괴수물이었다면, <아스달 연대기>가 따라 하고 싶었던 콘텐츠는 <왕좌의 게임>이었다.”는 말을 이렇게 바꿔 볼까요?

“현대가 따라 하고 싶었던 콘텐츠는 미국의 포드나 일본의 혼다, 독일의 BMW였다면, 삼성 갤럭시가 따라 하고 싶었던 콘텐츠는 애플의 아이폰이었다.”라고 이야기 하면 정리가 될 듯합니다. 헐리우드의 막강한 기술력과 자본력, 거기에 우리의 자본과 신화와 스토리를 가지고 이제 이렇게 시작하는데 고춧가루를 뿌리는 것은 솔직히 비겁합니다. 왜 우리는 봉준호류의 예술영화에는 아무말 못하며, 드라마나 SF, 판타지 같은 것에는 매몰찰까요?

다른 세상은 모방에서 시작됩니다. 그리고 모방 속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통해, 지평융합으로 새로운 융합적 사유로, 창의적인 것이 도출됩니다. <아스달 연대기>! 이제 시작입니다. 응원합니다.

최병학 목사(남부산용호교회)  hak-99@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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