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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C 유감내가 MBC 편을 들 수 없는 이유
한석호 사회운동가 | 승인 2019.07.06 20:12

MBC의 계약직 비정규직 아나운서 해고가 부당하다는 인식이 노동·시민사회로 확산되고 있다. 어떻게 할 거냐, 묻는 이들이 늘었다. 궁금해하는 이도 늘었다.

노동·시민사회가 혼란스러워한 대목은 계약직 아나운서들이 파업 대체인력 아니었냐는 점이었다. 그것이 아니라는 점을 확인한 순간 노동·시민사회는 이구동성 부당해고를 얘기한다. 계약직 아나운서들은 파업 대체인력이 아니었다. 파업 1년 전부터 채용되기 시작했고, 정규직 전환 약속을 받았다.

그래서 지방노동위원회와 중앙노동위원회에서 모두 부당해고 판정을 내린 것이다. 설사 그렇지 않더라도, 비정규직을 지켜야 하는 것이 노동존중 정신이고 진보의 정신이다. 계약 기간이 끝나더라도 고용을 지속시키거나 정규직으로 전환시키려 노력하는 것이 노동존중 정신이고 진보의 정신 아닌가 말이다.

내가 MBC 편을 들 수 없는 이유, 하나

곰곰 씹고 또 씹어 봤다. 이명박·박근혜 시대 긴 시간 동안 적폐에 맞서 공정방송을 지키려고 고군분투했던 최승호, 그가 사장으로 앉아 있는 MBC 편을 들 수 없을까. 해고된 계약직 아나운서들과는 아무 연고도 없는데 뭐 한다고 또 모난 돌 노릇을 하고 있나. 그래도 그것은 소신과 양심에 찔리니까, 업무 바쁘다는 핑계 대고 두 눈 질끈 감아도 될 텐데. 그러면 투쟁에 연대한 마봉춘 구성원들과 불편하지 않아도 될 텐데.

▲ 지난 2012년 MBC파업 때 MBC노조의 승리를 위해 적극 연대했다. ⓒ한석호 제공

MBC의 계약직 아나운서 해고 문제를 생각하는 동안 머릿속에서는 끊임없이 죽창이 맴돌았다. 그래서 이 글 제목을 MBC와 죽창이라 붙이려 했다. 하지만 최승호 사장 체제의 MBC에 너무 가혹할 수 있다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제목을 바꿨다.

“당신의 둘째 형님이 병원에서 운명한 것은 우리 집안 가족사에 강제로 새겨진 끔찍한 사건의 후유증이었다. 한국 현대사의 아픈 한 장면이기도 했다. 아버지가 계속 이은 이야기는 다음과 같았다.
좌우 이념 갈등이 피에 피를 부르던 1949년이었다. 소백산 일대, 고향 예천도 낮밤이 수시로 바뀔 만큼 치열했다. 7남매의 막내였던 당신은 11살이었다. 4월 1일, 음력으론 3월 3일이었다. 강남 갔던 제비가 돌아온다는 삼월 삼짇날, 봄을 알리는 기분 좋은 명절이었다. 어스름에 저녁을 먹고 있었다.
여느 날처럼 당신의 아버지 한재혁과 당신의 둘째 형님 순교는 사랑채에서 먹었고, 나머지는 안방이었다. 마당에서 아버지를 부르는 소리가 안방 가족들의 귀에 들렸다. 안방 가족들은 누군가 볼일이 있어 찾아온 것이라 생각하고 그러려니 했다. 그랬는데 잠시 뒤 마당에서 처참한 비명 소리가 들렸다. 다들 놀라 밖으로 뛰쳐나가니, 당신의 아버지와 둘째 형님이 피투성이로 마당에 뒹굴고 있었다. 죽창에 찔린 아버지는 그 길로 불귀객이 되고 말았다. 옆에서 말렸다는 둘째 형님도 죽창에 찔려 치명상을 입었다. 둘째 형님은 다행히 치료를 받고 회복돼서 결혼도 하고 서울에서 취직도 했다. 하지만 후유증이 발생했다. 둘째 형님은 젊은 아내와 어린 자식 넷을 남겨두고 운명했다.
내 할아버지를 죽창으로 찔러 죽인 이는 좌익에 휩쓸린 윗마을 두 청년이었다고 했다. 할아버지의 장남이 경찰이란 이유였다. 나의 첫째 백부는 당시 봉화에서 경찰이었다. 윗마을 청년들이 어떻게 되었는지는 불투명했다. 집안 어른들마다 얘기가 달랐다. 붙잡혀 죽은 것 같다고도 했고, 북으로 넘어간 것 같다고도 했다.”
- 한석호, 『누리야 아빠랑 산에 가자』, 도서출판 레디앙

그랬다. 나의 할아버지는 당신의 장남이 경찰이라는 이유로 그렇게 무참히 죽었다. 당시 40대 중반, 지금의 나보다 10년이나 적은 나이였다. 이 나이의 나도 종종 주체하지 못할 만큼 혈기를 표출하곤 하는데, 40대 중반의 할아버지는 어땠을까 상상해 본다.

아마 모르긴 몰라도, 당신의 자식이 경찰이니까, 어디선가 좌익보다는 우익에 우호적 발언을 했을 것이다. 좌익이 무언가를 요구했을 때 거부하면서 화를 돋우었을지도 모른다. 아마 그런 상황이 있었을 것이다.

그러면 그렇게 농사꾼 촌부를 죽여도 되는 것이었을까. 학생운동·노동운동에 뛰어들어 체제전복을 꿈꾸던 시절의 내 청춘이 오랫동안 풀지 못한 숙제였다. 낮밤 바뀌며 서로 죽고 죽이는 그런 상황이 온다면 나도 누군가를 그렇게 죽여야 하는가.

그의 가족 누군가가 나의 반대편에 있다는 이유로, 또는 나의 편에게 불리한 행동을 한다는 이유로, 그렇게 촌부까지 죽여야 하는 것일까. 아니, 설사 그가 반대편에 서 있다고 해도 죽여야만 하는 것일까. 현대사 비극을 되풀이해야 하는 것일까. 내가 꿈꾸는 혁명이 그런 것일까.

이전 정권이 도구로 쓰려했던 계약직 비정규직 아나운서들

이명박·박근혜의 적폐 경영진은 계약직 아나운서를 도구로 삼으려 했다. MBC노조가 파업하면 아나운서들이 선무 역할을 하니까, 신입을 계약직으로 뽑아 길들인 뒤에 정규직으로 전환하는 계획이었다. 그렇게 뽑았는데, 정권이 바뀌면서 파업이 일찍 다가왔다. 비정규직 아나운서들은 파업에 동참할 수 없었다. 파업에 동참하면 당시의 경영진에 의해 해고될 것이 명백한 상황이었다.

계약직 비정규직 아나운서들의 성격을 어떻게 규정할 것인가의 문제가 있다. MBC 일각에서는 그이들을 적폐로 규정한다. 단언컨대, 동의할 수 없다. 정규직이 아닌 계약직 신분으로 어떻게 그 어마어마한 싸움판에서 감히 적폐의 위치에 설 수 있겠는가. 적폐가 도구로 쓰려던 희생양일 뿐이다. 그래서 내 머릿속에서는 할아버지와 둘째 큰아버지를 처참하게 찌른 죽창이 자꾸만 맴돌았다.

MBC 구성원 중에 적폐의 중심에 섰던 사람이 있다. 적폐의 도구 정도가 아니라, 명백한 적폐다. 그러나 MBC는 해고하지 못한다. 정규직이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같은 공간에서 선배·후배 하면서 인사하고 때로는 밥도 같이 먹는다.

정말 안타깝고 또 미안하지만, 나는 MBC 편을 들 수 없다. 계약직 아나운서들에 대한 부당한 조치의 빠른 수습을 바란다. 그렇지 않으면, MBC에 맞서 행동할 수밖에 없고 연대를 조직할 수밖에 없다. 그 상황이 몹시 불편하고 내가 마음의 상처를 받더라도 그럴 수밖에 없다.

내가 MBC 편을 들 수 없는 이유, 비정규직

다행히 MBC가 진지하게 고민하고 있다는 소문을 접했다. 분위기 탓에 대놓고 말은 못하지만, MBC 경영진의 조치가 부당하다고 생각하는 구성원들이 적지 않다는 얘기도 들었다. 하루속히 지혜로운 해결책을 찾아, MBC 최승호 체제와 노동·시민사회가 서로 얼굴 붉히는 민망한 상황이 벌어지지 않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노동·시민사회는 여전히 마봉춘을 사랑한다. 마봉춘 최승호PD를 나는 여전히 신뢰한다. 파업에 나서던 마봉춘 구성원들을 나는 여전히 존경한다. 사실은 그래서 지금까지 행동을 유보했고 또 기다리는 이유다.

해고된, 그러나 지노위와 중노위에서 부당해고 판정을 받은, 그래서 행정소송에서도 부당해고 판결 가능성이 거의 분명한, 그래서 행정소송 판결이 날 때까지 근로자 지위를 보전하라는 가처분까지 법원에서 받은, 그럼에도 기존 아나운서국이 아닌 별도 공간에 넣어져 아무 일도 받지 못하고 내부통신망도 차단당한 채, 하루하루 힘겨운 날을 강제당하고 있는, 한창 파릇파릇해야 할 일곱 명의 그 청년에게서 빼앗은 꿈과 웃음을 어서 되돌려줘야 한다.

내가 MBC 편을 들 수 없는 이유가 또 있다. 사회 곳곳에서 청년의 절반 넘는 수가 비정규직이라는 이름으로, 을이라는 이름으로, 또는 신참이라는 이유로, 부당한 처우·대우를 받으며 살고 있다. 그 풍토와 체계를 바꾸지 못하면, 머지않은 시기에 사회로 진출할 하나뿐인 내 딸도 그렇게 살아갈 확률이 절반인데, 확률이 갈수록 높아지고 있는데, 어찌 내가 MBC 편을 들 수 있단 말인가.

마봉춘은 노동·시민사회의 품으로 돌아와야 한다.

한석호 사회운동가  webmaster@ecumen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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