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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민주주의란 무엇인가교회를 위한 기독교 경제윤리 (9)
강원돈 교수(한신대학교 신학부/사회윤리와 민중신학) | 승인 2019.07.08 17:55

교회는 참여를 경제에 대한 윤리적 판단의 기준들 가운데 하나로 설정하고, 이로부터 경제의 여러 층위와 수준들에서 경제 민주주의를 실현할 것을 요구한다. 이미 “교회를 위한 기독교 경제윤리”의 연재 7회와 8회에서 필자는 기업 수준의 공동결정 제도와 산업분야 수준의 노사교섭 제도를 옹호하면서 기업과 산업분야 수준에서 경제 민주주의를 실현하는 방안을 제사하였고, 이제는 국민경제 수준과 세계경제 수준에서 경제 민주주의를 구현하는 방안을 제시하여야 할 단계에 이르렀다.

그런데 여러 독자들이 필자의 글을 읽으면서 경제 민주주의의 개념을 조금 더 상세하게 설명해 줄 것을 요구하였기에 이번 연재에서는 이 개념을 충실하게 다루고, 연재 10회부터 국민경제 차원과 세계경제 차원에서 경제 민주주의를 차례대로 살피기로 하겠다.

시장경제는 왜 민주주의적으로 규율되어야 하는가?

냉전시대의 유산 때문인지, 시장경제와 민주주의가 함께 간다는 통념이 널리 퍼져 있지만, 이것은 이데올로기적 환상일 뿐 현실은 전혀 그렇지 않다. 역사적으로 시장경제는 자유주의와 밀접하게 결합되었는데, 자유주의가 곧 민주주의는 아니다.

근대 시장경제의 역사적 조건들 가운데 중요한 것은 두 가지이다. 하나는 봉건적 속박으로부터 해방된 자유로운 개인의 탄생이고, 또 다른 하나는 가계와 영리의 역사적 분리이다. 이 두 가지 조건들이 충족되면서 시장경제의 역사적 핵을 이루는 노동시장과 자본시장이 탄생하였다. 시장경제에서 노동력을 재생하여 이를 영리 활동에 조달하는 것이 가계의 역할이라면, 시장에서 노동력을 사들여 재화와 용역의 생산과 판매에 투입하는 것이 영리의 역할이다. 노동력과 자본을 조달하고 투입하는 일은 개인들의 자유의사에 입각한 계약을 필요로 한다는 점에서 자유주의는 시장경제의 정치적 질서라 할 만하다. 그러나 시장경제와 자유주의의 역사적 결합은 시장경제와 민주주의를 서로 연관시키지 못했고, 시장경제를 민주주의적으로 규율하는 것은 결코 아니었다.

▲ 노동자와 사업주 사이의 끊어진 다리처럼 먼 거리를 이어주는 것이 국가의 역할이라고 할 수 있다. ⓒFrits Ahlefeldt. CC BY ND

민주주의는 매우 다양한 방식으로 조직될 수 있지만, 그 본령은 사회와 국가를 구성하는 사람들의 자치, 곧 인민의 참여와 그것에 바탕을 둔 인민의 지배이다. 인민의 지배는 권리능력과 의무능력이 있는 인민 스스로 사회공동체와 국가공동체의 규율을 제정하여 스스로를 그 통제 아래 둘 때 완성된다. 그렇다면 시장경제에서는 사정이 어떤가?

시장경제는 사회공동체와 국가공동체의 물적인 기반을 이루지만, 사회구성원들이나 국가구성원들이 모두 시장경제의 구성원들인 것은 아니다. 시장경제의 구성원들은 시장에서 그 가치를 인정받는 재화와 용역의 교환에 업적을 제공하는 사람들이다. 유효수요가 없거나 시장업적을 제공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시장에서 아무것도 아니다. 따라서 모든 인민이 자동적으로 시장주체로 인정되는 것은 아니다.

시장경제에 참여하는 사람들이 시장의 규칙과 법을 민주적으로 제정하는가 하면, 이 또한 전혀 그렇지 않다. 시장에서 재화와 용역의 교환을 지배하고 시장업적을 평가하는 것은 엄밀하게 말하면 시장주체들이 서로에게 행사하는 민낯의 권력이다. 생산물시장과 노동시장, 더 나아가 자본시장의 상황을 조금만 깊이 들여다보면, 이를 생생하게 알 수 있다.

생산물시장에서 공급 독과점이나 소비 독과점이 이루어지면, 재화와 서비스의 가격은 크게 왜곡된다. 엄청난 힘을 가진 공급자가 지대 수익을 추구하기 위해 상품의 가격을 왜곡시키기 때문이다. 이와는 정반대로, 거대 대기업들이 완제품 생산에 필요한 부품들을 사들일 때, 소비 독과점을 형성하여 부품 가격을 후려쳐서 엄청난 이익을 얻는 경우도 비일비재하다. 그러나 생산물시장에 참여하여 상품을 공급하고 소비하는 경제 주체들 사이에서 이러한 폐해를 시정하기 위해 민주적으로 규칙을 제정하였다는 이야기는 아직 들어보지 못했다. 큰 권력을 가진 세력이 작은 권력을 가지고 있는 세력을 내리 눌러 이익을 극대화하는 야수 같은 모습을 매일 볼 수 있을 뿐이다. 생산물시장에서 독과점 세력이 형성되어 시장가격을 왜곡하면 교환의 정의가 무참하게 짓밟혀진다. 그렇기 때문에 국가가 나서서 독과점 세력의 형성을 억제하고 시장의 가격장치가 왜곡되지 않도록 공정거래법 같은 여러 법제들을 마련한다. 이것이 국가의 강제적인 시장규율이다. 이러한 강제적인 시장규율조차 없다면, 시장은 약탈경제로 변질될 것이다.

자본시장과 노동시장의 상황은 생산물시장의 사정보다 더 나쁘다. 이미 앞의 연재들에서도 강조하였듯이, 임금과 이윤이 결정되는 시장들에서 시장주체들은 적나라한 권력관계에 내맡겨져 있을 뿐, 이 권력관계를 민주적으로 규율하기 위한 제도는 아직 충분하게 발전되지 못했다. 이제까지 정착된 가장 선진적인 모델은 국가가 노동의 권력과 자본의 권력에 대하여 중립을 지키고, 이 두 권력이 산업분야의 수준에서 서로를 사회적 파트너로 인정하면서 적정 임금 수준과 적정 이윤 수준을 결정하는 것이었다. 이 모델이 ‘노사협약의 자율성’에 근거한 산별 노사교섭 제도이다. 그러나 노사협약의 자율성은 노동시장과 자본시장에서 권력관계가 한쪽으로 부풀어 오르는 것까지 방지하지는 못한다. 경제 민주주의는 바로 이를 시정하고자 한다.

자유로운 법치국가와 경제 민주주의

경제 민주주의는 자유로운 법치국가 없이는 성립될 수 없다. 파시즘의 지배 아래 있던 이탈리아나 독일의 예를 들 것도 없이, 군사독재 시절에 개발독재의 이름으로 자행된 노동탄압과 자본집중을 생각해 보면 충분할 것이다.

우리나라의 국가주도 자본화 과정에서 강력하게 관철되었던 개발독재는 노동에 대한 자본의 지배력을 엄청나게 강화시켰다. 개발독재에서 국가는 자본의 축적뿐만 아니라, 자본의 조달과 분배에서도 주도적인 역할을 하였다. 자본의 축적에 방해되는 노동자들의 권력형성은 애초부터 금기사항이었다. 5.16 쿠데타 세력으로부터 신군부에 이르기까지 무수히 개악된 노동법령들이 그 증거이다.

경제민주주의가 자유로운 법치국가를 필요로 한다는 것은 시장주체들의 자유로운 경쟁이 보장되어야 할 뿐만 아니라, 자본의 권력에 대항하는 노동의 권력이 절차적 민주주의 원칙에 따라 자유롭게 형성될 수 있어야 한다는 뜻이다. 이런 점에서, 자유로운 법치국가는 경제민주주의를 위한 최소한의 가능성 조건이다. 그러나 자유로운 법치국가가 경제민주주의를 위한 충분조건은 아니다. 그것은 결사의 자유에 따라 노동의 권력이 형성될 수 있었던 선진 시장경제들에서조차 국민소득의 왜곡된 분배나 노동과 자본의 권력관계가 시장경제를 민주적으로 규율할 수 있을 만큼 균형 상태에 이르지 못했다는 데서 분명하게 드러난다. 경제민주주의가 목표로 하는 시장경제의 민주적 규율은 아직 실현되지 않은 역사적 과제이다.
  
경제 민주주의에 대한 독일에서의 논의 - 1848년 혁명으로부터 바이마르 공화국까지

경제 민주주의의 핵심은 국민국가의 경제적 주권 아래서 노동과 자본의 관계에서 비롯되는 경제문제와 사회문제를 거시경제 수준과 미시경제 수준에서 제대로 해결하자는 것이다. 경제 민주주의는 시장경제의 역사적 발전 단계에서 각기 다른 스타일을 발전시켰던 여러 나라들에서 다양하게 발전되어 왔다. 그 가운데서도 독일에서 이루어진 경제민주주의에 대한 토론과 그 실현은 우리에게 여러 가지 시사점을 던져 준다.

독일에서 경제 민주주의에 관한 원초적 개념은 1848년 프랑크푸르트 국민회의에 제출된 소수파 제안서에 나타나 있다. 매우 간략하고 포괄적으로 표현되어 있기는 하지만, 이 제안서에는 노동자들의 결사권을 인정할 것, 공장법의 틀에서 노동과 자본의 공동결정을 도입할 것, 국민경제 수준에서 노동과 자본의 협의를 제도화할 것 등이 의제로 집약되어 있다.

독일제국 시대에는 노동자들의 결사권이 명실 공히 보장되어 있지 않았지만, 제1차 세계대전이 한창이던 1916년 12월 5일 「조국봉사단 법령」을 통해 국가기간산업 및 전쟁전략산업 부문에서 이른바 노사정위원회가 결성되었고, 국민경제 수준과 기업 수준에서 노동과 자본의 동등권에 기초한 공동결정제도가 법제화된 적이 있었다.

1918/19년의 독일혁명이 발발한 직후인 1918년 11월 15일 노동자들과 기업가들은 ‘중앙노동공동체’ 결성에 합의하고, 기업가들의 이익단체 결성권과 노동자들의 결사권을 인정하고 노동과 자본의 동등권을 보장하는 조건 아래서 “독일 산업 및 기업과 관련되는 모든 경제적, 사회적 문제들을 공동으로 해결하고, 이와 관련된 입법 및 행정 사안을 공동으로 다루기”로 하였다. 이 합의에 따라 양측은 노동협약정책, 공장평의회정책, 쟁의조정정책, 노동시간정책 등을 의제로 놓고 마주 앉았다. 쌍방의 합의는 혁명적 분위기가 가라앉고 자본의 권력이 다시금 강화되면서 제대로 지켜지지 않았다. 1924년 1월 중앙노동공동체가 마침내 와해될 때까지 독일노동자운동은 중앙노동공동체정책을 강화하려는 노동조합 진영과 기업 및 작업장에서 노동과 자본의 동등권에 입각한 공동결정권 획득을 목표로 한 공장평의회 운동진영으로 갈렸다. 그 당시의 노동자들은 거시경제적인 노사합의와 미시경제적인 노사합의를 훌륭하게 결합할 수 있는 개념을 발전시킬 수 없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1919년 8월 11일의 바이마르공화국 헌법 156조와 165조는 국민경제의 질서를 민주적으로 규율하는 일을 미결로 남겨 두었고, 1920년 2월 4일의 공장평의회법은 공장평의회의 노동자 지분을 3분지 1로 규정하고 공장내의 사회문제 및 인사문제와 관련된 제한된 노사공동결정권을 법제화하였다.

바이마르 공화국 시대에 노동자운동의 노선갈등을 극복하는 경제 민주주의 개념을 체계화한 사람은 프리츠 납탈리(Fritz Naphtali)이다. 그는 노동조합이 국민경제 수준에서 노동자들의 집단적인 이익을 대변하는 역할을 맡고, 기업과 공장 수준에서는 공장평의회가 노동자들의 집단적인 이익을 대변하는 기능을 맡도록 규정하고, 독점적인 기업이익단체들을 공동이익 아래 종속시키는 경제 민주주의의 골격을 제시하였다. 핵심 산업의 국유화와 같은 요구는 오늘의 경제여건에서는 다소 진부한 느낌을 불러일으키지만, 국민경제의 거시계획에 노동과 자본이 동등하게 참여할 것을 요구한다든지, 기업과 작업장 수준에서 노동과 자본이 동등권에 입각하여 해당기구의 경제정책, 사회정책, 인사정책에 합의할 것을 요구한다든지 하는 것은 오늘에 이르기까지 잊히지 않는 항목들이다.

경제 민주주의에 대한 독일에서의 논의 - 제2차 세계대전 이후

경제 민주주의의 이 요구들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복원된 독일노동조합연맹과 산별노조의 기본강령으로 채택되었다. 이 요구들의 요점은 1963년 뒤쎌도르프에서 채택된 독일노동조합연맹의 기본강령 서문에 매우 잘 정리되어 있다.

“노동조합들은 노동자들의 공동결정권을 확대하기 위해 투쟁하고 있다. 그들은 경제와 사회를 개조하고자 한다. 그 목표는 모든 시민들이 경제적, 문화적, 정치적 의사결정에 동등한 자격으로 참여하도록 하는 것이다.”

이를 위한 수단으로서 독일노동조합연맹은 국민경제의 거시계획, ‘자유로운 공동경제’를 위한 경제 권력의 공적인 통제, 기업 안에서 이루어지는 모든 정책 결정, 곧 기업의 경제정책, 사회정책, 인사정책상의 결정에 노동자들이 ‘동등하게‘ 참여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이에 더하여 오늘날 독일노동조합연맹은 일상적인 일터에서 노동세계의 인간화와 민주화를 실현할 것을 경제 민주주의의 기본요구로 채택하고 있다. 1996년 드레스덴에서 채택된 독일노동조합연맹 기본강령 서문에는 이 주제가 다음과 같이 정리되어 있다.

“그러나 (일터에서의 - 저자보충) 자기발전과 주도권 발휘, 자율적인 노동, 동참과 공동결정에 대한 사람들의 바람도 커지고 있다. 노동세계와 경제의 공동결정과 민주화가 사람들을 움직이는 한 이념이 될 수 있다는 경험이 생기고, 이를 위한 전제조건들이 충족되고 있다.”

독일에서 자본의 권력을 통제하기 위해 거시경제 수준과 미시경제 수준에서 시도된 경제민주주의에 대한 논의는 세 가지 심급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국민경제의 거시계획, 기업과 공장 수준에서의 공동결정, 일터에서의 민주화와 인간화가 그것이다. 이 세 심급은 따로 떼어 놓을 수 있는 것이 아니고 서로 유기적으로 연관되어 있는 것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

전통적인 경제 민주주의 개념의 보완과 확대

독일에서 전개된 경제 민주주의에 대한 논의에서 우리는 전통적인 경제민주주의 개념을 파악할 수 있는데, 이 개념은 경제 현실에 변화에 맞추어 보완되고 확대될 필요가 있다.

우선, 전통적인 경제민주주의 개념은 국민국가의 경제적 주권을 전제로 하였지만, 이미 자본이 국경을 넘어서서 자유롭게 운동하고 있는 오늘의 상황에서는 경제 민주주의 개념을 보완할 필요가 있다. 이것은 자본이 운동하는 바로 그 범위만큼 민주적 권력이 형성되어 이를 규율하여야 한다는 경제 민주주의의 원칙에서 볼 때 너무도 당연하다. 범세계적인 자본운동을 규율하는 민주적 방식에 대한 논의는 이제 막 시작되었을 뿐이다.

그 다음, 경제 민주주의 개념이 확대되거나 수정되어야 하는 또 다른 이유는 경제 활동으로 인한 생태계 파괴의 심각성 때문이다. 이 개념이 구상되던 시기에는 사회문제가 크게 의식되었으나, 생존의 자연적 기반이 갖는 중요성은 아직 인식되지 못하였다. 오늘의 상황에서 경제 민주주의가 제 기능을 다하기 위해서는 경제계와 생태계의 관계를 민주적으로 규율하는 원칙을 제시하여야 한다. 경제 민주주의의 여러 심급에 생태계의 이해관계를 대변할 수 있는 대리인을 참여시켜 경제계의 이해관계를 대표하는 사람들과 맞설 수 있게 하는 것이 이 원칙의 핵심이다. 국가가 생태계를 대리할 수는 없다. 자유로운 법치국가에서 국가는 공동의 이익을 수호할 뿐, 자연의 특수한 이익을 대표할 수 없기 때문이다. 생태계의 이해관계를 누가 대변하는가의 문제는, 이미 연재 7회에서 밝힌 바 있듯이, 자연국가의 헌법을 제정하고 자연의 이익을 대리하는 법인의 설립을 통해 해결될 수 있을 것이지만, 이에 대한 논의는 우리 사회에서 본격적으로 이루어지지지 않고 있다.

위에서 말한 두 가지 점에서 경제 민주주의 개념이 보완된다면, 우리는 사회적이고 생태학적인 관점에서 경제를 민주적으로 규율하는 획기적인 모델을 제시하고 이를 구현하는 방안을 구체적으로 밝힐 수 있을 것이다.

강원돈 교수(한신대학교 신학부/사회윤리와 민중신학)  wdkang55@hs.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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