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여백
HOME 학술 칼럼
Q복음서가 그리는 예수Q복음서의 서기관 (4)
김재현 교수(계명대) | 승인 2019.07.12 14:34

지난 글에서는 Q복음서가 이야기는 세례자 요한에 대해 알아 보았다. 이번 글에서 Q복음서가 보도하고 있는 예수에 대해 살펴보도록 하겠다. Q복음서가 언급하는 예수는 ‘종말론적인 예언자’, ‘오실 그분’과 ‘하나님의 아들’이다.

먼저 ‘종말론적인 예언자’와 ‘오실 그분’에 관해 이야기하도록 하겠다.

예수: 종말론적인 예언자

Q복음서의 서기관들이 다루었던 두 번째 주제는 예수 사역의 의미에 관한 것이었다. Q7:22(LXX)은 구약성서의 다양한 구절에 대한 “인용복합문”이다.

그가 대답하여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가서 요한에게 너희가 듣고 보는 것을 말하여라. 눈먼 사람이 보고, 다리 저는 사람이 걷고, 한센병자가 깨끗해지고, 귀먹은 사람이 듣고, 죽은 자들이 일어나고, 가난한 사람들에게 좋은 소식이 전파된다(Q7:22).

이 인용문에서도 서기관의 흔적을 발견할 수 있다. Q7:22는 이사야서(사29:18; 35:5; 42:7; 61:1)과 엘리야-엘리사 전승(왕상17:17-24;왕하4:18-37; 왕하5:1-27)의 결합물이다.(1) 이 로기온은 아람어로 번역했을 때 ןי-압운과 מ-두운이라는 시적인 운율이 발견된다.(2)

Q7:22은 Q7:18-23라는 “아포프테그마”(apophthegma)에 포함되어 있다.(3) Q복음서의 서기관들은 복합인용문을 세례자의 질문이라는 맥락에 위치시킨다(Q7:18-19). 이러한 질문은 세례자가 예수를 확신하지 못했다는 것을 전해준다.

▲ 종말론적 예언자, 예수 ⓒGetty Image

하지만 그와 동시에 Q복음서의 서기관들이 활동하던 당시 Q공동체의 내부에 있든지 외부에 있든지 Q사람들과 밀접한 세례자 그룹이 계속 가졌던 의문을 암시한다. Q복음서의 서기관들은 그들의 질문에 대해서 성서를 통해 대답한다.

이 기적목록이 구약성서의 구절들을 묶어 놓은 순수한 서기관적인 것만은 아니다. 이 기적목록의 배후에는 실질적인 “기적행위자”(Wundertäter) 예수와 기적을 체험한 사람들이 있었을 것이다. 그래서 이 목록들은 또한 기적을 체험한 Q사람들의 “사회전기”(soziale Biographie)로 이해될 수 있다.(4)

하지만 이 목록들은 동시에 발생한 사건들에 대한 신학적 해석을 포함하고 있다. Q복음서의 서기관들은 체험된 예수의 기적을 구약성서의 빛에서 이해하여 예수의 기적을 구약성서 예언의 종말론적 성취로 해석한다.(5)

“예수의 사역을 요약하는 모든 6개의 구절은 종말론적 기호를 의미한다. 오실 그분인 예수는 마지막 때의 구원이라는 구약성서의 희망을 성취한다.”(6)

이 복합인용문에 축귀가 발견되지 않는다. 전승된 본문에 축귀 이야기가 있는 것으로 보아서(Q11:14f 참조) Q의 서기관들은 축귀에 대해서 거부감을 가졌던 것일까?

기적목록을 보도하는 복합인용문 중에서 특별히 사61:1이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사실은 지적되어야 한다. 특히 사61:1과 비교하면 다음과 같다.(7)

그러므로 Q61:1이 Q복음서의 서기관들에게 매우 중요한 성서본문이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사61:1의 중요성을 보다 확대해서 생각하는 학자들은 프로그램적 설교의 축복(Q6:20-21)이 사61:1f를 암시한다고 주장한다.(8) Q6:20과 Q7:22가 사61을 인용하고 있기 때문에 사61:1은 예수가 자신의 사역을 어떻게 이해했는지를 보여주는 성서라는 것이다.

그러나 Q6:20-21이 사61:1을 암시하는지의 여부는 확실하지 않다.(9) 반면 사61:1이 Q7:22에서 가장 중요한 구약성서본문이라는 사실은 명백하다. 예수가 사61:1에서 자신의 사명을 이했을 가능성도 부인할 수는 없지만, 사61:1의 사용은 예수에 대한 Q 서기관들의 이해를 반영하는 것으로 보아야 한다.

앨리슨(D. C. Allsion)은 쿰란문헌 중 4Q521 2와 4 ii 12(4Q 메시아적 묵시록)과 Q7:22의 평행에 주목한다. 물론 쿰란문헌과 Q7:22의 평행을 과장해서 강조할 필요는 없다. 그러나 이러한 평행은 Q7:22의 방식(“예언으로 구성된 성구들의 짧은 목록”)이 서기관적 관행에서 유래했다는 것을 암시한다.(10) 4Q512와 Q7:22의 차이점은 복수와 심판의 말씀이 누락되어 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아마도 세례자 요한과의 관계 때문에 생략되었을 것이다.

Q7:27과 Q3:4이 세례자의 성격을 예수의 선구자(종말론적인 엘리야)로 묘사하기 위한 것이었다. 반면에, 예수의 사역과 관련되어 인용된 본문들은 세례자를 능가하는 아니, 세례자가 고대했던 구약성서에 예언되었던 “오실 그분”(ὁ ἐρχόμενος)이 바로 예수라는 사실을 증거하기 위해 사용되었다. 예수가 행했던 기적은 구약성서의 예언의 현실에 의해서 강화되고 새롭게 조명되어 예수가 “오실 그분”(Q7:18)이라는 사실의 증거가 된다.

이 성경인용문을 통해 Q복음서의 서기관들은 “오실 그분” 예수가 세례자 요한이 예언했던 심판하는 존재(Q3:16-17)가 아니라 고통받고 가난한 자들을 치유하는 “민중의 치료자”(11)이며 복음의 담지자라는 사실을 밝히고 있는 것이다.

예수: 오실 그분

Q복음서의 서기관들은 예루살렘에 대한 탄식의 전승에서 시117:26(LXX)를 인용했다.(12) 이 인용구절은 매우 중요하다. 왜냐하면 시117:26(LXX)은 Q3장과 Q7장의 Q 서기관들이 관심가졌던 핵심적인 칭호인 “오실 그분”을 포함하고 있기 때문이다. Q복음서에서 “오실 그분”은 3번 등장하며 그 3번은 모두 서기관적 작업과 연관되어 있다.(Q3:16; Q7:18-19; Q13:35)

Q복음서의 서기관들은 예수의 죽음에 관해서 설명해야 하는 상황 가운데서 자신들의 신학적 작업을 수행했다. Q복음서에 따르면, 예수의 죽음은 신명기적 예언자의 순교적 죽음이며,(13) 예루살렘의 멸망은 지혜에 의해서 파송된 예언자들에 대한 거부와 그 계열의 마지막에 서 있는 예수에 대한 거부의 결과이다(Q11:49-51). 그러나 죽음과 멸망이 Q복음서의 마지막 말씀인 것은 아니다.

앨리슨에 따르면 Q13:35는 긍정적인 의미를 포함하고 있는 조건문(conditional sentence)이다. Q복음서의 서기관들은 117:26(LXX)의 전반부만을 인용한다. 동일한 내용을 담고 있는 마소라 텍스트(MT)의 본문을 번역하면 다음과 같다:

“여호와의 이름으로 오는 자가 복이 있음이여 우리가 여호와의 집(οἴκου)에서 너희를 축복하였도다.”(시118:26, Q1:35a의 “너희 집”과 비교)

그러므로 Q13:35는 심판의 메시지 뿐 아니라 주님의 이름으로 오시는 분을 찬송하게 되었을 때의 예루살렘과 성전의 구원을 암시하고 있다.(14)

Q복음서의 서기관들은 시117:26(LXX)에 근거해서 예수의 죽음과 성전의 멸망이 끝이 아니고 오셨던 예수가 다시 오신다는 희망을 전한다. 예수는 “다시 오실 그분으로서 오셨던 분”(Der Gekommene als Wiederkommender)(15)인 것이다.

미주

(미주 1) M.-S. Kim, Die Trägergruppe von Q: Sozialgeschichtliche Forschung zur Q-Überlieferung in den synoptischen Evangelien (Ammersbek bei Hamburg: Verlag an der Lottbek, 1990), 190.
(미주 2) M. Sato, Q und Prophetie: Studien zur Gattungs- und Traditionsgeschichte der Quelle Q (Tübingen: J. C. B. Mohr(Paul Siebeck), 1988), 142.
(미주 3) S. Schulz, Q: Die Spruchquelle der Evangelisten (Zürich: Theologischer Verlag, 1972), 192.
(미주 4) Ibid., 196.
(미주 5) D. C. Allison, The Intertextuality in Q (Harrisburg, Pennsylvania: Trinity Press International, 2000), 111. 앨리슨은 Q7:18-22을 다음과 같이 재구성한다: 질문: 당신은 오시는 분인가? 대답: 눈먼 사람이 보고, 다리 저는 사람이 걷고..등등 인식: 이러한 행동들은 이사야 예언자에 의해서 예언된 것이다. 결론: 예수는 성서적/종말론적 예언의 성취이다.
(미주 6) H. T. Fleddermann, Q: A Reconstruction and Commentary (Leuven, Paris, Dudley, MA: Peeters, 2005), 377.
(미주 7) T. Hieke, “Q7:22: A Compendium of Isaian Eschatology,” Ephemerides Theologicae Lovanienses 82/1 (2006): 179. Fleddermann, Q, 376.
(미주 8) C. Tuckett, “Scriptures and Q”, in The Scriptures in the Gospel. Edited by C. M. Tuckett. (Leuven: Leuven University Press, 1997), 23.
(미주 9) F. Neurynck, “Q6:20b-21 and Isaiah 61,” in Evangelica Ⅲ: 1992-2000 Collected Essays (Leuven: Leuven University Press, 2001), 129-166.
(미주 10) Allison, The Intertextuality in Q , 112.
(미주 11) 김명수, 『초대기독교의 민중생명신학담론』 (서울: 한국신학연구소, 2002), 157.
(미주 12) 대부분의 학자들은 Q13:35의 배후에 시117:26이 있었다고 추정하지만, 합2:3-4가 시117:26과 미드라쉬적으로 연결되었을 가능성도 제기되었다. D. A. Smith, The Post-Mortem Vindication of Jesus in the Sayings Gospel (London: T&T Clark, 2005), 114-115 참조.
(미주 13) Kim, op. cit., 327-336. 지금까지 연구자들은 Q복음서가 예수의 죽음을 신명기적 예언자의 순교로 이해했다고 주장해 왔다. 그러나 최근 스미스(D. Smith)는 Q복음서가 예수의 죽음을 다른 방식으로 변호했다고 주장한다. 그에 따르면 Q복음서는 예수가 마치 엘리야처럼 승천했고, 또 그러한 승천의 상태에서 재림할 것이라고 주장하면서 예수의 죽음을 변호했다는 것이다. 즉 Q복음서는 승천-사라짐-재림(assumption-absence-parousia)의 도식으로 예수의 죽음을 변호했다. 스미스는 갑자기 사라지는 주인의 비유(Q12:42-46; Q19:12-26)에서 승천의 모티브를 본다. Smith, 앞의 책(2005),124-130.
(미주 14) D. C. Allison, Jesus Tradition in Q (Harrisburg, Pennsylvania: Trinity Press International, 1997), 192-204.
(미주 15) M. Labahn, Der Gekommene als Wiederkommender: Die Logeinquelle als erzählte Geschichte (Leipzig: Evangelische Verlagsanstalt, 2010).

김재현 교수(계명대)  verticalkjh@naver.com

<저작권자 © 에큐메니안,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김재현 교수(계명대)의 다른기사 보기
icon인기기사
기사 댓글 0
전체보기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여백
신문사소개기사제보광고문의불편신고개인정보취급방침청소년보호정책이메일무단수집거부
서울시 종로구 김상옥로 30, 402호  |  제호 : 에큐메니안
대표전화 : 070-4252-0176  |  팩스 : 0303-3442-0176  |  등록번호 : 서울 자 00392  |  등록일 : 2012.10.22
발행인 및 편집인 : 이해학  |  청소년보호책임자 : 이해학  |  E-mail : webmaster@ecumenian.com
Copyright © 2019 에큐메니안. All rights reserved.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