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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절대주권과 인간의 책임성칼빈의 삶과 신학 (8)
최영 소장(기독교장로회 목회와신학연구소) | 승인 2019.07.13 18:50

칼빈은 하나님의 전능한 능력과 인간의 책임, 하나님의 선택과 인간의 결단 양쪽 모두를 결코 놓치지 않습니다. 그러나 ‘앞선 것’에 대한 관심은 하나님과 인간의 ‘변증법적 관계’에서 언제나􏰀 하나님이 주도권을 갖는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교회사에서 이 문제는 언제나 심각한 논쟁을 불러일으켰습니다.

5세기 어거스틴과 펠라기우스의 논쟁, 그리고 17세기 개혁교회 진영에서 일어난 아르미니우스 논쟁이 대표적입니다. 펠라기우스나 아르미니우스파들에 의하면 구원은 하나님이 주도권을 갖지만, 인간의 응답이 결정적인 요인이 되는 하나님과 인간의 결합된 노력을 통하여 성취됩니다(신인협력설).

▲ 펠라기우스(좌)와 어거스틴(우) ⓒGetty Image

그러나 칼빈은 하나님의 은혜를 떠나서 인간은 단 하나의 선행도 자기에게 돌릴 수 없다고 주장합니다. 칼빈의 이러한 자세는 그가 “우리 시대의 펠라기우스주의자들, 곧 소르본느의 궤변가들”(II. iii.13)이라고 부른 로마 가톨릭교회 신자들과는 전적으로 구별됩니다. 저들은 인간에게 “하나님의 은혜와 협력할 고유한 힘”(II. iii.11)이 있다고 주장하면서, 이 주장의 성서적 근거를 “내가 모든 사도보다 더 많이 수고하였으나 내가 한 것이 아니요 오직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의 은혜로라”(고전 15:10)는 바울의 진술에서 찾습니다.

그러나 저들은 자신들의 주장을 정당화하기 위해 바울의 진술을 왜곡합니다. 바울은 자신이 다른 모든 사도보다 낫다고 말한 것이 너무 거만하게 보일까봐 하나님의 은혜를 찬양하면서 자신을하나님과 함께 일하는 동료로서 일컬었다는 것입니다(II.iii.12).

그러나 칼빈은 저들이 사용하는 라틴어 번역판 ‘불가타역 성서’가 아니라 바울의 헬라어 본문에로 돌아가(ad fontes) 사도가 진정 말하고자 한 것은 “하나님의 은혜가 자기와 협력했다는 것이 아니라, 자신과 함께 하는 은혜가 모든 것의 원인이다”는 것이었다고 저들을 논박합니다(II.iii.12).

예정론에 대해 말할 때, 보다 자세하게 언급되겠지만, 하나님의 주도권에 대한 이러한 강조는 칼빈이 성서에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위한 하나님의 한없는 사랑, 값없이 우리에게 주어진 의와 생명을 발견했기 때문입니다. 그가 우리를 위해서 자신을 온전히 내어 주셨는데, 그에게 영광을 돌리지 않을 까닭이 어디 있겠으며, 그의 예정과 섭리를 신뢰하지 못할 이유가 또 어디 있겠습니까! 오직 하나님께만 영광을!(Soli Deo Gloria!) 개혁자의 구호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 서 나타난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에 대한 감격과 감사에서 터져 나왔던 것입니다.

최영 소장(기독교장로회 목회와신학연구소)  webmaster@ecumen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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