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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에 매이지 말고 사랑의 본질을(에스겔 23:1-49)천천히 걷자
여상범 목사(제주신흥교회) | 승인 2019.07.16 19:03

성서에서 여성에 대한 비하나 성적인 차별을 목격하는 일은 불가피합니다. 애써 그런 부분까지 변증하려 하다 보면 오히려 성서를 읽기 싫은 책으로 만들 수 있습니다. 성서는 흠이 있으므로 가치 없는 책이라고 주장하는 일이나, 성서의 모든 흠을 완벽하게 변증해보려고 시도하는 일이나 같은 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둘 다 문자에 매인 ‘문자주의’입니다.

성서는 하나님의 말씀을 들은 자가 그분의 뜻을 세상에 알리기 위해 “인간의 언어”로 기록한 책입니다. 그리고 인간의 언어는 당연히 오순절에 내린 방언과 같은 신령한 언어가 될 수 없습니다. 인간의 언어는 배운 사람만 알아들을 수 있습니다.

아쉽지만 성서에서 사용된 언어는 신령한 언어가 아니라 “고대, 팔레스타인 지역, 남자”의 언어입니다. 그래서 다른 말을 쓰는 사람이 이 언어로 된 하나님의 말씀을 알아듣기 위해서는 번역가와 해설가들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 오홀라와 오홀리바 ⓒGetty Image

어떤 어리석은 사람들은 성서의 언어는 신령한 언어이고, 일점일획도 틀린 부분이 없다고 주장합니다. 그런데 그렇게 주장하려면 성서를 히브리어와 헬라어로만 읽어야 하는데, 그런 사람들 중에 히브리어와 헬라어로만 성서를 읽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은 본적이 없습니다. ‘킹 제임스 버전’이라는 영어 성서의 한 번역본을 신성시하는 우스운 사람들이 있을 뿐입니다.

남성의 언어는 여성이 알아듣기 어렵습니다. 그래서 여성의 언어로 성서를 다시 이해하려는 사람들이 생겨났습니다. 우리가 성서를 온전하게 이해하려면 그런 사람들의 말에도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사람이 하나님과 사람의 관계, 신뢰의 관계를 이어가기 위해 꼭 지켜야 할 중요한 계명을 ‘정조’, ‘정절’의 개념으로 설명한 것은 남자 입장에서 알아듣기 쉬운 말입니다. 여자를 소유물로 생각하던 고대의 남자 입장에서, 자기 소유물이 바람을 피웠다며 주인을 배신한 일이 되지 않겠습니까? 그러니 벌을 받아 마땅하다는 자연스러운 결론에 이르게 됩니다. 그리고 이것이 하나님의 심판을 사람들에게 설명하고자 하는 에스겔의 전략입니다.

오홀라와 오홀리바는 모두 ‘오헬(אהל, 천막)’이라는 단에서 비롯된 이름입니다. 구약성서에서 천막(장막)과 성막은 같은 단어를 사용합니다. 거룩한 천막이라는 뜻을 가진 ‘성막(聖幕)’이라는 단어가 따로 있지 않은 것입니다.

이스라엘과 유다가 각각 우상숭배의 음행으로 더립힌 것은 가장 먼저 자기 자신입니다. 그런데 이스라엘과 유다는 하나님께서 선택하신 성막과 같은 존재들입니다. 그러므로 그들이 우상숭배로 자신을 더럽힌 일은 결과적으로 하나님을 모독한 것이 되었다는 말씀입니다.

성서는 사랑을 가르치는 책입니다. 그런데 ‘몸을 더럽혔다’는 식의 남성적인 언어로는 하나님에 대한 사랑을 온전하게 가르칠 수 없습니다. 만일 어떤 사람이 바람은 피우지 않는데, 함께 사는 배우자에게 전혀 마음을 쓰지 않고 보살펴주지 않는다면, 그 사람이 정절을 지킨 것은 의미 있는 일이라고 하기 어렵지 않겠습니까?

그러므로 오홀라와 오홀리바의 죄의 본질은 하나님으로부터 마음이 떠나버린 죄, 하나님을 섬기는 일에 “마음과 뜻과 힘”을 다하지 못한 죄가 되겠습니다.

사랑은 한두 가지 계명으로 축소될 수 없는 위대한 개념입니다. 그러므로 성서에서 하나님에 관하여 배우고자 하는 사람은 글자에 매이지 말고, 사랑의 본질을 추구해야 합니다.

여상범 목사(제주신흥교회)  uptiger@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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