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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와의 날 1: <천국과 지옥>(암 5:18-24; 계 2:8-11; 막 13:1-13)성령강림후 여섯째주일(7월21일)
최병학 목사(남부산용호교회) | 승인 2019.07.19 17:58

1. 구로자와 아키라 감독의 <천국과 지옥>

<일본 가지 않습니다>

최근 일본의 경제보복으로 ‘일본 가지 않습니다. 일본 제품 사지 않습니다.’ 운동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물론 여러 다른 이유도 있겠지만(일본군 위안부 합의 문제, 후쿠시마 산 해산물 수입규제에 대한 WTO의 판결, 최근의 남북 평화 분위기 등), 핑계는 우리 대법원이 내린 일제의 강제징용노동자 배상 판결에 불만을 품고, 이러한 경제보복 카드를 꺼내 들었던 것입니다.

우리 대법원은 한일협정으로 인해 개인의 부당한 청구권 자체가 소멸된 것이 아니라는 취지로 결정한 것입니다. 특별히 국제적 규범에 의해 반인륜적 범죄행위는 끝까지 책임을 물어야 한다는 취지를 따른 것입니다. 사실 강제징용 조선인들은 탄광과 제철소, 조선소 등에서 혹독한 노동착취를 당하며 급여도 제대로 받지 못했습니다. 외출도 통제된 채, 구타와 감시 속에서 위험한 일을 했습니다. 미흡하나마, 영화 <군함도>(2018)가 그 상황을 잘 보여줍니다.

<영화 <군함도> 포스터>
<일제 강제징용 피해자>

일본은 참 이해하기 힘든 나라입니다. 따라서 이번 경제보복을 일본의 집단무의식으로 분석하면 흥미롭습니다. 왜냐하면 이전에도 있었던 무의식이기 때문입니다. 그 무의식이 지금 다시 부활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2차 세계 대전 후, 패망한 일본인들의 자학적인 집단 무의식입니다. 대전 이후, 일본 전역은 극심한 패배의식과 절망에 휩싸였습니다. 당시 일본인들은 자신들이 처한 현실을 지옥으로 여겼습니다.

물론, 이후 이카다 하야토 수상(1960~1964) 시기에는 ‘소득배증계획’에 힘입어, 연평균 14%의 초고속 성장을 하게 됩니다. 그러나 그 당시에도 극심한 빈부격차로 인해, 몇 몇 사람들은 천국의 삶을 누리지만, 대다수 사람들에게 지옥은 여전히 계속되었습니다. 따라서 일본인들 대부분은 자연스럽게 자신보다 더 잘 사는 사람들에게 증오를 가지게 됩니다. 그 증오가 같은 일본인을 넘어, 이웃 나라에 까지 전해진 것이 오늘 경제보복의 이면에 있는 일본인의 집단 무의식입니다.

앞서 말씀드렸던, 이카다 하야토 수상은 일본인들이 가장 존경하는 총리 가운데 한명으로 정치적 쟁점에서 물러나, 경제 발전에 힘쓴 총리입니다. 그의 업적은 3가지입니다. ‘소득배증계획’, ‘저자세 정치’, ‘일본의 선진국 발 돋음’ 등. 10년 안에 일본의 GDP를 2배로 성장시키겠다고 공약했지만, 2년 만에 달성시켰고, 야당에도 자세를 낮추어 귀를 기울였으며, 일본의 대표적인 교통수단인 신칸센을 개통하고, 1964년 제 18회 도쿄 올림픽도 개최했습니다. 그해 아시아 최초로 OECD에도 가입했습니다. 이러한 발전과 그 이면에 있는 그늘, 곧 일본인들의 집단무의식을 영상 이미지로 잘 만든 영화가 바로 <천국과 지옥>(1963)입니다.

영화계의 마이클 조던인 구로자와 아키라(1910~1998) 감독의 작품인데, 아키라 감독은 오즈 야스지로, 미조구치 겐지와 더불어 일본 영화의 3대 거장 중 한명입니다. <7인의 사무라이>, <가케무사>, <라쇼몽> 등 세계 영화사에 길이 빛날 영화들을 연출하였습니다. 특별히 <천국과 지옥>은 장면 하나로 인물의 심리 상태를 묘사하고, 계속해서 관객들을 주인공이 처한 딜레마 상황으로 몰아가는 아키라 감독의 탁월한 연출력을 잘 보여줍니다.

특히 공간을 폐쇄된 공간에서 야외로 확장하고(추격씬), 다시 폐쇄된 곳(감옥)으로 몰아가는 힘은 탁월합니다. 게다가 시간 역시 플래시백(flash back, 회상을 나타내는 장면)이나 속도를 조절하는 풍경화 등을 삽입하지 않고, 곧장 달려가는 직선적인 힘, 곧 남성적인 힘의 연출로 공간적 변주와 동시에 시간적 몰입감을 관객들에게 선사합니다. 또한 전반부의 정적인 카메라가 후반부에 동적으로 움직이므로 영상이미지의 변화 또한 뛰어난 형식미를 갖추고 있습니다.

영화 <천국과 지옥> 포스터

영화의 내용은 이렇습니다. 여성용 신발제조 회사인 ‘내쇼날 슈즈’의 공장장인 주인공 곤도(미후네 도시로 분, 이 배우는 아키라 감독의 페르조나입니다)와 회사 중역들은 나이든 사장을 몰아내기 위해 의논합니다. 그러나 신발의 품질을 우선시하는 곤도와 단기간의 이익을 창출하기 위해 신발을 싸구려로 만들고자 하는 회사 중역들과 의견이 맞지 않아, 곤도와 중역들은 서로를 적으로 돌리게 됩니다. 따라서 중역들은 곤도를 내쫓으려 하고, 곤도도 자신의 전 재산을 저장 잡혀 5천만 엔을 빌려 회사 주식을 사서 중역들을 내쫓고, 내쇼날 슈즈를 소유하려고 합니다.

주식을 판매하기로 한 주주들이 있는 오사카로 비서를 보내려는 순간, 급작스럽게 전화가 한통 걸려옵니다. 유괴범입니다. “너의 아들을 살리기 위해 3천만 엔을 내 놓으라!” 첫 번째 딜레마입니다. “회사를 살리느냐? 아들을 살리느냐?”

곤도는 당연히 아들을 선택합니다. 유괴범에게 돈을 주겠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그때 아들이 나타납니다. 유괴범은 운전기사의 아들을 납치한 것입니다 곤도의 아들인 쥰과 운전기사의 아들인 신이치는 나이도 같고, 비슷하게 생겼습니다. 유괴범이 쥰이 아니라, 신이치를 납치한 것입니다.

그리고 다시 유괴범으로부터 전화가 옵니다. 그러자 곤도는 “내 아들이 아니다.”라고 말합니다. 유괴범은 이렇게 말합니다. “상관없다. 돈을 주지 않으면 이 아이를 죽이겠다.” 자, 이제 두 번째 딜레마입니다. ‘나와 상관없는 아이가 나의 선택으로 죽을 수 도 있고, 나의 선택으로 살릴 수도 있다. 어떻게 할 것인가?’ 영화는 화면 한 구석, 어둠 속에 앉아, 고민하고 있는 곤도를 보여줍니다. 탁월한 미장센입니다.

아무튼 곤도는 아이를 살리기로 합니다. 경찰의 도움도 요청합니다. 고속열차에서 3천만 엔이 들어있는 돈 가방을 던져주고 아이는 풀려납니다. 그리고 이제 추격전이 영화의 후반부 1시간을 차지합니다. 언론은 이러한 곤도의 인도적인 처사를 대서특필합니다. 지옥에서 천국으로 옮겨졌던 것입니다. 그리고 결국 유괴범도 붙잡히게 됩니다. 이렇게 해피엔딩으로 끝날까요? 대가의 작품의 묘미는 지금부터입니다. 마지막 장면에 사형 선고를 받은 유괴범은 신부의 면회를 거절하고, 곤도의 면회를 요청합니다. 의아한 표정으로 교도소를 방문한 곤도에게 유괴범은 이렇게 말합니다.

“내 방은 겨울에는 춥고, 여름에는 잠을 잘 수도 없게 덥다는 걸 알아요? 저 위의 당신 집은 천국 같아 보였습니다. 매일매일 당신을 미워하기 시작했습니다. 그게 내가 사는 목적이 됐습니다. 그래서 운 좋은 남자가 불행해지는 것이 흥미로웠습니다.”

2차 대전 이후, 패배의식에 사로잡힌 일본인들의 집단 무의식을 이렇게 반영합니다. 사실 전쟁으로 패망한 일본은 한국 전쟁을 기회로 다시 발전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 발전의 열매는 몇 명만이 가질 수 있었고, 소외된 이들은 적개심으로 살아가게 되었습니다. 천국과 지옥은 높은 곳의 좋은 집과, 낮은 곳의 춥고 더운 집으로 비유됩니다.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2019)도 높은 곳의 대저택과 낮은 곳의 반 지하로 아키라 감독의 고민을 오마주 (hommage, 프랑스어로 ‘존경, 경의’를 뜻하며 영화에서 존경의 의도로 장면과 대사를 인용하여 표현하는 것)합니다.

오늘 세 본문 말씀은 교회 공동체에 들려주는 다가올 여호와의 날에 대한 선포입니다. 다른 말로 천국과 지옥의 선포입니다. 그리고 그 날은 빛이 아니라, 어둠의 날입니다. 그 날은 환난의 날입니다. 정의와 공의가 실현되지 않으면 심판의 날, 지옥이라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령 받은 교회 공동체는 지금의 환난과 궁핍, 그리고 고난을 두려워하지 말라고 말씀하십니다. 천국을 살라는 것입니다. 끝까지 견디는 자는 구원을 받을 것이라고 위로합니다.

2. 여호와의 날

남 유다 출신으로 북 왕국 이스라엘로 가서 예언을 선포한 아모스는 정의의 예언자로 알려져 있습니다. 왜냐하면 아모스의 예언은 당시 지도자와 권력을 가진 자들의 횡포를 꾸짖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 지도자와 권력을 가진 사람들이 오늘 본문에는 ‘여호와의 날을 사모하는 자’라고 말합니다. 요즘 언어로 바꾸면, ‘예수님의 재림을 기다리는 자’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그들에게 화 있을 것이라고 말합니다. 말씀을 볼까요?

<예언을 선포하는 아모스>
“화 있을진저! 여호와의 날을 사모하는 자여! 너희가 어찌하여 여호와의 날을 사모하느냐? 그 날은 어둠이요, 빛이 아니라. 마치 사람이 사자를 피하다가 곰을 만나거나, 혹은 집에 들어가서 손을 벽에 대었다가 뱀에게 물림 같도다.”(암 5:18-19)

여호와의 날을 기다리는 사람들에게 저주를 받으라는 말입니다. 그날이 오면 무슨 뾰족한 수라도 있을 줄 아느냐? 빛이 꺼져 깜깜하게 되리라는 말씀입니다. 왜 이렇게 저주를 선포할까요? 그 당시 종교 지도자들에게, 권력자들에게 정의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사실 아모스는 정의를 ‘관계’에서 찾았습니다. 따라서 정의는 하나님께 충직하고, 부모와 자녀에서 충실하고, 이웃에게 성실해야 정의로운 사람이라고 평가를 받았습니다.

당시 북 이스라엘은 시리아(암몬)를 정복했고, 남서쪽의 애굽은 내분에 휩싸여 내적으로 경제적 부흥과 정치적 안정기를 이루고 있었습니다. 물론 남유다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나 안정과 번영은 빈부의 격차를 벌어지게 했습니다. 요즘 말로 말하면 최고임금과 최저임금의 차이가 하늘과 땅, 천국과 지옥의 차이가 되어 없는 사람은 고통 가운데 살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또한 권력자들은 물질을 위해서는 부정도 서슴지 않았고, 민중에 대한 착취는 날이 갈수록 극심해졌습니다. 종교생활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종교지도자들은 화려한 예식과 외적 행사에만 신경을 썼습니다. 이때 아모스가 형식적인 예배보다 실질적인 사회 ‘정의’를 부르짖었던 것입니다. 아모스의 예언입니다.

“여호와의 날은 빛 없는 어둠이 아니며 빛남 없는 캄캄함이 아니냐? 내가 너희 절기들을 미워하여 멸시하며 너희 성회들을 기뻐하지 아니하나니, 너희가 내게 번제나 소제를 드릴지라도 내가 받지 아니할 것이요. 너희의 살진 희생의 화목제도 내가 돌아보지 아니하리라! 네 노랫소리를 내 앞에서 그칠지어다! 네 비파 소리도 내가 듣지 아니하리라.”(암 5:20-23)

20절이 조금 어렵게 번역되어 있는데, 공동번역으로 보면 이해가 쉽습니다. “야훼께서 오시는 날, 그 날이 밝은 날일 줄 아느냐? 아니다. 그 날은 다만 깜깜할 뿐 한 가닥 빛도 없으리라.”(암 5:20) 나아가 너희 성회, 곧 예배를 기뻐 받지 않으시겠다고 합니다. 찬양 소리도 듣기 싫다는 것입니다. 형식적인 예배보다 무엇이 먼저 선행되어야 하는지를 아모스는 잘 보여줍니다.

 
3. 고난을 두려워하지 말라

<소아시아 7대 교회>

그러나 요한계시록에 나오는 서머나(현재, 터키의 3대 대도시 중 하나인 이즈미르) 교회는 칭찬을 받습니다. 서머나는 그리스 최대 서사시인 『일리아드』와 『오디세이』를 쓴 호메로스의 고향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유명한 서머나 교회의 감독 폴리캅(Polycarp, 69∼155)이 순교한 곳입니다. 폴리캅은 86세 때 배교하면 목숨을 살려주겠다는 서머나 총독의 회유에도 불구하고, 당당하게 믿음을 지켜 서머나의 12번째 순교자가 되었고 서머나 교회는 소아시아 7대 교회 중 하나가 되었습니다.

<현재의 서머나, 터키의 이즈미르>

서머나는 항구도시로 교역이 풍성하여 유대인들이 많이 살았던 아름다운 곳입니다. ‘에게 해의 진주’, ‘아시아의 사랑’, ‘아시아의 꽃’, ‘아시아의 면류관’이라 불릴 정도로 아름다운 항구도시입니다. 그러나 서머나 교회의 성도들은 경제적으로 어렵고, 가난한 생활을 했습니다. 왜냐하면 동족인 유대인들이 이방인들보다 더 과격하게 서머나 교인들을 비방하며 악행을 일삼았기 때문입니다. 더군다나 유대인들은 서머나 교회 성도들의 재산을 약탈하기도 하였습니다. 오늘 본문 말씀에 잘 나와 있습니다.

“서머나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라. 처음이며 마지막이요, 죽었다가 살아나신 이가 이르시되, 내가 네 환난과 궁핍을 알거니와, 실상은 네가 부요한 자니라. 자칭 유대인이라 하는 자들의 비방도 알거니와 실상은 유대인이 아니요, 사탄의 회당이라.”(계 2:8-9)

여기 실상은 ‘부요한 자(πλούσιος)’라는 말의 의미가 중요합니다. ‘플루시오스’는 ‘플루토스(πλοῦτος)’에서 유래합니다. ‘재물’이라는 말로, 크레타 섬의 풍작을 관장하는 여신 데메테르와 크레타인 이아시온의 아들로 태어난 그리스의 풍요의 신입니다. 이 신 덕분에 농부들은 매년 풍성한 수확을 거둘 수 있게 되었다고 그리스 사람들은 믿고 있습니다. 아무튼 플루시오스는 말 그대로 ‘부요한 자’라는 것입니다. 지금 서머나 교회 교인들은 동족인 유대인들에게 핍박당하고, 고통당하고, 또 경제적으로는 궁핍한데, 실상은 부요하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흔히 하는 말로 ‘영적인 풍요’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반드시 물질적 풍요를 누릴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폴리캅 감독이 순교당한 서머나 폴리캅 기념교회>(사진 위)와 <서머나 폴리캅 기념교회 내부>

무슨 말인가요? 서머나 교회는 어렵고 힘든 상황 속에서 신앙생활을 했지만, 성도들 사이에 사랑과 섬김이 풍성했습니다. 따라서 주님께서 주시는 은혜의 체험도 가장 많았던 교회 가운데 하나였습니다. 세상적인 기준으로 보면 보잘 것 없는 이들이었지만, 교회 공동체는 서로 나눔으로 필요를 채워주었고, 비록 작은 것이지만 함께 하여 부족함이 없었다는 것입니다. 풍요한자, 부요한 자가 되었다는 말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핍박과 환난을 더 거세져 장차 고난을 받게 될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충성하면, 하나님의 정의를 선포하면, 생명의 관을 받게 될 것이라 말씀하고 있습니다.

“너는 장차 받을 고난을 두려워하지 말라! 볼지어다! 마귀가 장차 너희 가운데에서 몇 사람을 옥에 던져 시험을 받게 하리니, 너희가 십 일 동안 환난을 받으리라. 네가 죽도록 충성하라! 그리하면 내가 생명의 관을 네게 주리라.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이기는 자는 둘째 사망의 해를 받지 아니하리라!”(계 2:10-11)

이런 교회 공동체는 아모스가 말했던 여호와의 날이 심판이 날, 곧 지옥이 아니라, 둘째 사망의 해를 받지 않고 생명의 관을 얻게 되는 구원의 날, 곧 천국이 됩니다.

4. 끝까지 견디는 자

복음서의 말씀도 마찬가지입니다. 마지막 때를 선포하신 예수님께, 제자들이 그 심판을 때와 징조를 묻는 것입니다. 말씀을 보겠습니다. “예수께서 성전에서 나가실 때에, 제자 중 하나가 이르되, 선생님이여 보소서! 이 돌들이 어떠하며 이 건물들이 어떠하니이까?”(막 13:1) 그러자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가 이 큰 건물들을 보느냐? 돌 하나도 돌 위에 남지 않고 다 무너뜨려지리라 하시니라.”(막 13:2)

제자들은 그 때의 징조를 묻습니다. “예수께서 감람산에서 성전을 마주 대하여 앉으셨을 때에,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과 안드레가 조용히 묻되, 우리에게 이르소서! 어느 때에 이런 일이 있겠사오며, 이 모든 일이 이루어지려 할 때에, 무슨 징조가 있사오리이까?(막 13:3-4)” 예수님은 그 징조에 관해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가 사람의 미혹을 받지 않도록 주의하라! 많은 사람이 내 이름으로 와서 이르되, 내가 그라 하여 많은 사람을 미혹하리라. 난리와 난리의 소문을 들을 때에 두려워하지 말라! 이런 일이 있어야 하되, 아직 끝은 아니니라. 민족이 민족을, 나라가 나라를 대적하여 일어나겠고, 곳곳에 지진이 있으며 기근이 있으리니, 이는 재난의 시작이니라.”(막 13:5-8)

지금 우리는 세상이 변해가는 것을 보고 있습니다. 지구촌은 탈냉전 이후, 세계화라는 기치 아래, 지역통합과 자유무역, 문화적 관용과 상호 이해 등을 통해 하나가 되는 지구촌을 꿈꾸었습니다. 그러나 공존과 공영의 꿈은 차츰 무너져 가고 있습니다. 영국의 유럽연합탈퇴와 유럽의 반이민 및 제노포비아(Xenophobia, 이방인 혐오)의 확산, 미국의 국경 장벽 공고화와 중국의 일대일로(一帶一路, One Belt One Road, 육·해상 신 실크로드 경제권을 형성하고자하는 중국의 국가전략), 그리고 지금 대한민국에 무역전쟁을 거는 일본까지! 나라와 나라가 대적하는 것입니다. 그때 하나님의 정의를 부르짖는 이들, 인류의 공영을 주장하는 이들, 더불어 함께 살아가기를 원하는 이들은 핍박을 받을 것이라는 말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계속해서 들어볼까요?

“너희는 스스로 조심하라! 사람들이 너희를 공회에 넘겨주겠고, 너희를 회당에서 매질하겠으며 나로 말미암아 너희가 권력자들과 임금들 앞에 서리니, 이는 그들에게 증거가 되려 함이라. 또 복음이 먼저 만국에 전파되어야 할 것이니라. 사람들이 너희를 끌어다가 넘겨 줄 때에 무슨 말을 할까? 미리 염려하지 말고 무엇이든지 그 때에 너희에게 주시는 그 말을 하라. 말하는 이는 너희가 아니요, 성령이시니라. 형제가 형제를, 아버지가 자식을 죽는 데에 내주며 자식들이 부모를 대적하여 죽게 하리라. 또 너희가 내 이름으로 말미암아 모든 사람에게 미움을 받을 것이나, 끝까지 견디는 자는 구원을 받으리라!”(막 13:9-13)

하나님의 정의와 공의를 실행하다, 고통을 당할지라도 두려워하지 말고, 염려하지 말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성령께서 도와주시기 때문입니다.

5. 정의를 물같이 공의를 마르지 않는 강같이

처음 이야기로 돌아가, 일본의 집단무의식을 살펴볼까요? 최근 한반도 정세가 급변합니다. 미국의 트럼프 대통령과 북한의 김정은 위원장이 남한의 문재인 대토령과 함께 판문점에서 만났습니다. 분단 70년사에서 가장 중요한 사건 중 하나입니다. 한반도에 긴장이 있고, 전쟁이 있어야 일본이 반사이익으로 풍요를 누릴 수 있는데, 일본의 입장에서 돌아가는 분위기가 이상합니다.

사실 아베 신조 총리의 꿈은 평화헌법을 개정해서 일본이 군대를 보유한 강한 나라를 만드는 것입니다. 평화헌법은 2차 세계대전에서 패한 일본이 1946년 11월 공포한 헌법 제9조를 가리킵니다. 중요한 조항은 1항, ‘무력의 행사는 국제분쟁을 해결하는 수단으로서는 영구히 포기한다.’는 내용과 2항, ‘육해공군 및 그 이외의 어떠한 전력도 보유하지 않는다. 국가의 교전권은 인정하지 않는다’입니다.

연임을 3선으로 제한한 자민당의 당규가 유지된다면, 아베 총리의 임기는 2년 남았습니다. 이 기간 동안 개헌과 함께 우경화 교육을 추진해서 2차 세계 대전 이전의 과거의 영광을 되찾고 싶어 합니다. 게다가 섬나라 일본은 가라앉고 있습니다. 후쿠시마 핵발전소 사고로 안전하지도 않습니다. 대륙으로 진출해야 하는데, 몇 번 침략한 적이 있는(임진왜란, 한일합방) 대한민국이 제일 만만합니다.

영화로 돌아가 봅시다. 일본의 길은 두 가지입니다. 유괴범으로 아이를 볼모로 잡는 것과 같이 경제보복으로 가는 것과(이것은 지옥의 길입니다), 내 아이가 아님에도 그 아이를 위해 전 재산을 바쳐 살리는 주인공 곤도의 길(이것은 천국의 길)입니다. 아마도 유괴범으로 바뀔지, 곤도와 같이 인도적으로 해결할지 아키라 감독의 조언을 아베 총리는 잘 알고 있을 것입니다. 곤도의 길, 그것이 일본의 아름다운 미래가 될 것입니다. 지금 침몰하는 일본 열도에서 보면, 남과 북이 만나 저 높은 곳, 평화와 번영의 세상으로 가는 것이 괴롭겠지요? 그렇다고 유괴범의 길을 통해 보복하는 것은 옳은 일이 아닙니다. 오히려 곤도의 길이, 적어도 일본의 침몰을 ‘아름다운 침몰’로 세계인들이 기억하게 되는 마지막 남은 길이 될 것입니다.

“오직 정의를 물 같이, 공의를 마르지 않는 강 같이 흐르게 할지어다(암 5:24).”

최병학 목사(남부산용호교회)  hak-99@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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