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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은 낫고, ‘이름’은 잃어버리다김상기 목사와 함께 하는 <성서와 위로>
김상기 목사(백합교회) | 승인 2019.07.21 18:03
그 후 예수께서 성전에서 그 사람을 만나 말씀하셨습니다. 이 보게, 자네가 나았으니 이후에 죄를 지어 더 나쁜 일이 자네에게 생기지 않도록 하게나.(요 5,14)

조금 주의가 필요한 본문입니다. 이 말씀을 듣는 사람은 병낫기를 바라며 언제부터인지는 모르지만 베데스다 연못가를 떠나지 못했던 사람입니다. 38년동안이나 병마에 사로잡혀 시다렸으니 그의 간절함이 오죽 했겠습니까?

그를 만난 예수께서는 그의 마음을 읽으신 듯 낫고 싶으냐고 물으십니다. 그의 대답은 ‘그렇습니다’가 아니라 맺힌 한을 털어놓는 일종의 넋두리입니다. 그를 베데스다 못이 움직일 때 거니에 일착으로 넣어줄 사람이 없었을 뿐만 아니라 그에게 그렇게 말을 건네주는 사람도 없었던 탓일 겁니다.

설마 그렇게 말하는 이가 실제로 고쳐줄 거라고는 상상할 수 없었을 수도 있습니다. 그런 그에게 주께서 ‘일어나 네 자리를 들고 걸어다녀 보라’고 말씀하시니 그는 정말 크게 놀랐을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그는 즉각 나았습니다.

▲ 베데스다 연못가의 병자와 이야기를 나누시는 예수 ⓒGetty Image

그는 예수의 말씀대로 여기저기 걸어다녀 봅니다. 얼마나 신기하고 신이 났겠습니까? 그런데 공교롭게도 그날은 안식일입니다. 그렇게 하는 그가 ‘거룩한’ 유대인들의 눈에 안 띄일리 없고 시비걸지 않을리가 없습니다. 아마도 자리를 들고 춤추듯 여기 저기 다니는 그의 모습은 마치 안식일에 저항하고 안식일을 파괴하는 것처럼 보였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누가 자기를 고쳐주었는지 모르는 그는 그들에게 누군가가 자기에게 자리를 들고 가라 했던 것 외에는 아무 것도 말해줄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그는 왜 이렇게 말했을까요? 유대인들에 대한 두려움 때문일까요? 아니면 그를 고쳐준 이에 대한 긍지와 신뢰 때문일까요? 나중에 그를 만난 예수께서 위와 같이 말씀하십니다. 왜 그리 말씀하시는지 이해가 잘 안 될 수 있습니다.

여하튼 그 말은 그의 그의 긴 병이 그의 죄때문이라는 것이 아닙니다. 양자는 아무 관련이 없습니다. 더 나쁜 일이란, 38년간 그를 얽매었던 병은 예수를 만나 고쳐질 수 있었지만, 그것은 그렇게 고쳐질 수 없다는 말로 이해됩니다. 그가 지을 수도 있는 죄는 여기서 아무 죄가 아니라 예수 자신과 연관된 것으로 고발 같은 것입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그는 예수께서 경고하신 일을 하고야 맙니다. 예수께서는 이런 사태를 예상하시고 그렇게 말씀하셨나 봅니다. 그후 그에게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는 모르지만, ‘감사드리지 않은’ 그는 지금까지도 예수를 고발한 사람으로 기억되고 있습니다. 이보다 더 나쁜 일이 있을까요? 병은 낫고 ‘이름’은 잃어버린 사람입니다.

문제 해결로 더 큰 문제에 빠지지 않도록 감사하고 겸손으로 자기를 경계하는 오늘이기를. 따뜻한 눈으로 따뜻한 말을 건네며 오시는 주님에게서 위로를 얻고 자신에 대한 신뢰를 얻는 이날이기를.

김상기 목사(백합교회)  webmaster@ecumen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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