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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싸우지 않는 하늘의 도”도덕경과 마가복음을 묵상하면서 81
이병일 목사(광주무등교회) | 승인 2019.07.22 18:06
“미더운 말은 아름답지 않고, 아름다운 말은 미덥지 않다. 착한 자는 둘러대지 않고, 둘러대는 자는 착하지 않다. 아는 자는 박식하지 않고, 박식한 자는 알지 못한다. 착한 자는 많지 않고, 많은 자는 착하지 않다. 성인은 쌓아두지 않으니, 사람을 위하여 다 쓰는데 자기는 더 있게 되고, 사람과 더불어 다 쓰는데 자기는 더 많게 된다. 하늘의 도는 이로우면서 해롭지 않고, 성인의 도는 하되 싸우지 않는다.”
- 노자, 『도덕경』, 81장
信言不美, 美言不信, 善者不辯, 辯者不善, 知者不博, 博者不知, 善者不多, 多者不善. 聖人不積, 旣以爲人, 已愈有, 旣以與人, 已愈多, 天之道, 利而不害, 聖人之道, 爲而不爭

노자는 자기의 가르침이 인의와 예를 강요하는 윤리와는 달라서 아름답지 않지만 믿음이 있는 말이라고 강조한다. 예법에 따르는 말은 이익을 추구하기 때문에 미덥지 못하다. 단지 부와 명예를 위해서 행하는 사람은 처세를 하기 때문에 선하지 못하다. 출세를 위한 지식이 아무리 많을 지라도 그것은 자연의 도를 제대로 알지 못하는 것이다. 재물을 많이 축적한 사람은 착하지 않다.

진정으로 착한 사람은 자기를 위하여 부를 추구하지도 않고 재물을 쌓아두지 않는다. 하늘의 도와 자연의 덕을 추구하는 사람은 자기를 위하여 재물을 쌓아두지 않고, 다른 사람과 더불어 나누고, 그렇기 때문에 모든 생명에게 이롭다. 어느 누구와도 싸우지 않기 때문이다.

ⓒGetty Image

우리 앞에 길이 보이지 않는다면 그건 제대로 걸어온거야
언제나 길의 끝에 섰던 사람들이
우리가 온 길을 만들어 온것처럼
눈 앞에 빛이 보이지 않는다면 이제 우리의 시간이 온거야
먼저 간 사람들의 빛을 따라 온 것처럼
이제 우리가 스스로 빛이 될 차례야
이제 끝이라고 희망은 없다고
길을 찾을 수 없어 빛이 보이지 않는다고
한숨 쉬고 절망 하지마
그건 우리가 옳은 길을 걸어온 걸 확인하는거야
이제는 우리가 길을 만들 차례야 이제는 우리가 빛이 될 차례야
그렇게 왔잖아 우리 당당하게 이제 진짜 우리의 시간이 온거야

이제 끝이라고 희망은 없다고
길을 찾을 수 없어 빛이 보이지 않는다고
한숨 쉬고 절망 하지마
그건 우리가 옳은 길을 걸어온 걸 확인하는거야
이제는 우리가 길을 만들 차례야 이제는 우리가 빛이 될 차례야
그렇게 왔잖아 우리 당당하게 이제 진짜 우리의 시간이 온거야
이제는 우리가 길을 만들 차례야 이제는 우리가 빛이 될 차례야
그렇게 왔잖아 우리 당당하게 이제 진짜 우리의 시간이 온거야
- 고갑호, “길 그 끝에 서서”

하늘의 도는 모두가 함께 공유하면서 서로를 이롭게 한다. 자연과 하늘은 한 사람이 독점하거나 소유할 수 없고, 서로를 소통하게 하는 바탕이다. 그러나 노자는 이러한 자기의 가르침이 인의와 예에 익숙한 사람들에게는 아름답거나 유용하지 않다고 들릴 수 있다고 말한다. 그러나 분명 노자의 가르침은 미덥고 선하다. 자본주의가 당연시 되고 있는 지금, 아직도 노자의 가르침은 나와 우리를 위해서 유용하다.

예수님의 짧은 삶과 죽음, 그리고 부활과 승천은 남겨진 우리에게 궁극적인 삶의 의미를 추구하도록 추동한다. 특히 예수님의 승천 이야기는 노자가 말하는 하늘의 도가 모두에게 이롭다고 하는 것처럼, 서로 싸우지 않고 더불어 살아야 한다는 하늘의 의미를 우리에게 보여준다. 또한 하늘은 모든 사람과 생명들에게 기쁜 소식인 복음이 온 세상에 펼쳐질 수 있도록 우리와 함께 일하는 예수님을 상징한다.

“예수님이 하늘에서 왔다가 하늘로 올라갔다고 하는 것은 하나의 상징입니다. 상징은 삶의 정황에 맞게 해석을 해야지 그 의미가 생생하게 살아있게 됩니다. 하늘은 시작되는 점이 없습니다. 내가 숨 쉬고 활동하는 이곳으로부터 시작됩니다. 내가 숨을 쉴 때에 단순한 공기를 마시는 것을 넘어서 하늘을 마시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늘은 바로 나로부터 시작됩니다. 나의 숨은 나를 살리기 위한 것이면서, 하느님의 기운을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하늘은 저 멀리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바로 나를 둘러싸고 있으며, 내 속에도 있는 것입니다. 나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 다른 생명들 속에도 있습니다.
나와 남을 하나 되게 하는 근거가 바로 하늘입니다. 나의 숨과 남의 숨을 연결하는 것은 보이지 않지만 엄연히 존재하는 하늘입니다. 하늘을 소유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하늘을 소유했다고 하는 그 순간에 사람은 숨이 막혀서 죽게 되기 때문입니다. 하늘은 함께 나누는 것입니다. 밥을 먹는 것은 하늘로부터 온 생명의 양식인 예수님의 몸을 먹는 일이며, 숨을 쉬는 것은 바로 그 하늘을 받아들이고 내 놓는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 몸의 가장 중요한 생명활동인 먹고 숨 쉴 때마다 우리는 예수님을 먹고 하느님을 마시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하늘로 올라간 것은 제자들을 남겨두고 떠나 가버린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이 하늘로 올라가셨다고 하는 상징은 우리가 하늘을 마시듯이, 보이지 않지만 언제나 우리와 함께 계심을 역설하는 것입니다. 숨 쉴 때마다 하늘에 오르신 예수님을 내 속에 모신다고 생각하십시오. 모든 생명에게 기쁜 소식을 전할 때, 하늘에 오르사 하느님 우편에 계신 예수님은 하늘과 같이 여전히 제자들과 함께, 예수님의 길을 따라 살려 하는 우리와 함께 일하십니다.”
- 이병일, 『미친 예수』(서울: 도서출판 밥북, 2017), “하늘로 올라가신 예수님” 중에서

이병일 목사(광주무등교회)  dotorikey@yaho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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