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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실감의 무게(에스겔 24:15-27)천천히 걷자
여상범 목사(제주신흥교회) | 승인 2019.07.23 18:41

우리 속담에 ‘든 자리는 몰라도 난 자리는 안다’는 말이 있습니다. 사람이 다른 사람과의 관계에서 느끼는 상실감의 무게를 깨닫게 해주는 훌륭한 속담이 아닐 수 없습니다.

평생 서로 의지하며 해로하던 부부 중에는 한쪽이 먼저 떠나면 그 상실감을 견디지 못해서 얼마 후에 먼저 간 사람을 따라가는 경우가 종종 있는데, 이런 경우도 상실감의 무게를 보여주는 예가 될 수 있겠습니다.

에스겔이 아내를 잃게 됩니다. 이역만리 남의 땅에서, 그것도 포로의 몸이 되어 겪는 크나큰 아픔입니다. 이런 큰 일을 겪은 후에 충분히 슬퍼하지 못하면 우울증 같은 병이 나게 된다고 합니다. 사람이 죽은 후에 시체에서 냄새가 나더라도 바로 땅에 묻어버리지 않고 일정한 시간 동안 장례를 치르는 이유도 슬퍼한 시간을 주기 위함이 아니겠습니까?

▲ William Blake, “Ezekiel”(1794) ⓒWikimedia Commons

그런데 하나님께서 에스겔에게 그런 슬픔의 시간을 금지하셨습니다. 유다 백성들이 앞으로 겪게 될 상황을 미리 보여주기 위함이었습니다. 포로가 되어 잡혀 온 사람들이 자기들을 붙잡아온 나라 한 가운데에서 조국의 멸망을 슬퍼하는 곡소리를 함부로 낼 수는 없을 것 아니겠습니까. 역사가 그렇게 흘러갈 것이라고, 예루살렘이 느부갓네살을 물리치는 기적은 없을 것이라고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에스겔의 아내는 유다 백성이 잃어버리게 될 예루살렘 성정을 상징합니다. 그토록 소중하게 여기고 자랑스러워 했던 것이지만, 그것을 주신 분이 빼앗아 갈 때는 슬퍼할 권리조차 허락되지 않을 수도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시는 예표가 된 것입니다.

웬만하면 위로를 해주어도 괜찮을 만한 큰 아픔 가운데에서, 하나님의 말씀은 위로보다 깨달음을 먼저 강조합니다. 내게 있던 무엇인가를 잃어버렸다고 생각하며 슬퍼하기 전에, 그 무엇인가를 나에게 허락한 존재가 누구인지를 기억하도록 하신 것입니다(24절).

상실감이란 어떻게 보면 내가 가진 것을 잃어버리거나 빼앗기지 않을 수 있으리라는 막연한 기대감에서 비롯된 것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집착이나 소유욕과 상실감의 크기가 비례하게 됩니다. 하나님을 인정한다는 것은 그런 막연한 기대가 우리를 지배하지 못하게 한다는 의미가 될 것입니다.

간혹, 슬픔에 잠긴 사람들에게 울지 말라며 어설픈 충고를 늘어놓는 사람들이 있기는 합니다.  심지어 자식을 잃은 부모들에게 하나님이 뜻이 있으셔서 그렇게 된 거라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깨달음이 감정보다 더 중요하다며 메마른 훈계를 하는 것인데, 하나님께서 에스겔을 통해 말씀하시는 것은 그런 얄팍한 교훈은 아닙니다. 에스겔에서 금지된 눈물은 슬퍼할 권리조차 주장할 수 없는 상황에 부닥치게 될 포로민의 처지를 보여주는 것이지, 사람의 감정 자체에 대한 비하를 나타내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 마음의 훨씬 더 깊은 곳에 결국 슬픔과도 친구가 되게 하는 깨달음이 있기를 소망합니다. 상실감보다 더 위대한 감사가 우리 안에 자리 잡게 되기를 기도합니다.

여상범 목사(제주신흥교회)  uptiger@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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