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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으로 가는 밀가루에게 말을 걸었다북한 밀가루보내기운동에 동참하며
이이소 | 승인 2019.07.29 17:28

주기도문을 암송할 때 가끔 눈가에 이슬이 맺힌다. “오늘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옵고”를 읊을 때, 끼니를 위해서 간절히 기도하는 십대 청소년 가장 예수의 눈물 젖은 얼굴이 보인다.

어린 예수 경험이 녹아든 주기도문

일찍이 아버지를 여읜 그는 맏이로서 어머님을 모시고 야고보, 요셉, 시몬, 유다를 비롯한 남동생들과 최소한 두 명 이상의 누이 동생의 생계를 책임져야했다. 어머니 마리아가 있었지만 예수님 당시 여성은 사람의 숫자 계수에 들어가지 않는 존재였으므로 가족 부양의 실제적인 책임은 장남인 예수가 져야했다. 그러나 그는 스스로 사업을 주관할 수 있는 숙련공도 아니었고 나이도 어린 까닭에 ‘목수 보조’의 잡무로 날품팔이를 하였을 것이다.

때로는 일을 찾아 나사렛을 떠나 “가나”, “시뽀리” “막달라” “나인”, “가버나움” 등지에도 갔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고된 노동과 수고에 비해 열악한 보수로 늘 배고픔에 시달리며, 식구들의 굶주림에 대해 괴로워했을 것이다. 그는 자신이 종처럼 밤낮없이 일하여도 어머니와 동생들이 굶주리는 아픔을 하나님께 아뢰었다.

“아바 아버지! 오늘도 밥을 한 끼 밖에 못 먹었습니다. 배고픕니다. 하루하루 살기가 너무 힘듭니다. 양식을 주십시오. 밥을 주십시오!”

“아버지시여, 제가 배고픈 것은 견딜 수 있지만 어머님과 동생들이 굶주리는 것은 너무 아프고 슬픕니다. 우리가 마음껏 먹고 마실 수 있도록 충분한 양식을 주십시오.”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처럼 땅에서도 이루어져서 굶주림이 없는 세상, 서로 사랑으로 나누며 근심 없이 밥을 먹는 세상, 하늘나라가 속히 오길 빕니다.”

“아바 아버지여! 굶주림으로 고통당하는 우리들을 위해서, 이방인에게 학대와 모욕을 당하며 살아야 하는 당신의 자녀들을 불쌍히 여기셔서 속히 메시아를 보내주십시오.”

나는 “주기도문”에서 청소년 가장 예수의 절박한 기도 소리를 듣는다. 주기도문을 묵상하며 그의 배고픔, 상심, 분노, 절망을 손끝으로 느끼며 자주 운다. 뿐만 아니라, 굶주리면서도 밥을 독점하는 악의 세력에 짓눌리거나 좌절하지 않고 하나님을 희망하며 사모하는 그의 믿음과 “하나님 나라”에 대한 선포에 전율한다. 환희한다. 감사하며 찬양한다.

오른편에 있는 보잘 것 없는 사람들

예수님의 일상의 삶에서 나온 주기도문은 “오병이어의 기적”, “양과 염소의 비유”, “최후의 만찬”에서 심화되고 있다. 양과 염소의 비유는 오른편의 무리들에게 “내 아버지께 복 받을 자들이여 나아와 창세로부터 너희를 위하여 예비 된 나라를 상속 받으라”고 한다. 여기에 놀라운 반전이 있다.  예비된 하나님 나라를 상속받을 오른편의 무리들이 세상의 눈으로 볼 때 별 볼일이 없는 사람들이다.

그들은 분명 세상이 선망하고 선호하는 사람이 아니다. 혼란한 시대를 구하고 나라를 세우거나 적의 침략으로부터 나라를 구해낸 영웅이 아니다. 뛰어난 지식과 능력이 있는 탁월한 학자도 아니다. 예술적인 재능과 감각으로 위대한 드라마를 연출하는 사람도 아니다. 천사의 말을 하며 위대한 기적으로 사람들의 숭앙을 받는 성인도 아니다. 엄청난 재산을 기증하여 웅장한 건물을 짓거나 사회봉사에 이바지하는 헌신적인 사람도 아니다. 막강한 권력으로 한 시대를 이끌며 시대정신을 창출하는 사람도 아니다.

▲ 밀가루/콩기름 보내기 운동 포스터

그들은 단지 작은 자들의 굶주림과 목마름, 헐벗음과 고달픔, 외로움, 불우함과 억울함의 고통을 자신의 것으로 이해한다. 그들의 가난과 아픔에 공감하며 진심으로 그들의 건강과 회복, 평화와 행복을 생각한다. 그들은 굶주리는 사람들을 프로젝트나, 연구 대상, 사업 대상으로 만나는 것이 아니라 사람으로, 하나님의 자녀로, 생명으로, 사랑으로, 가슴으로, 아픔으로, 친구로, 이웃으로 만난다. 그들은 고통당하는 한 사람의 영혼, 생명에 주목하였기에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처럼 땅에서도 이루어지는 일에 도구로 쓰임 받는 것이다.

일찍부터 가난의 고통을 겪은 예수 그리스도는 세상과 다르게 한 영혼의 고통에 주목하셨으며 지금도 고통의 현장에서 우는 자, 아픈 자, 병든 자, 배고픈 자와 함께 하시며 우리를 그 현장으로 부르신다.

굶주리는 사람들을 향한 예수의 관심과 나의 관심

주기도문의 은혜와 영향으로 나는 언제 어디서나 가난한 이웃에 대해 관심을 가졌고 급기야는 미션을 받아서 인도에 가게 되었다. 내가 만난 라열라시마 지역의 인도 달릿들은 하루 한 끼 또는 두 끼만 먹는 굶주림이 일상화된 삶을 살고 있었다. 전쟁 상황도 아닌데 난민처럼 살고 있는 그들의 삶이 내게 큰 충격이었다.

무엇보다 굶주림이 임신부들과 유아들에게 미치는 영향이 지대하다는 사실에 경악하지 않을 수 없었다. 임신부들의 굶주림과 영양부족, 영양실조로 태어나는 아기들은 병약하고, 학습 지진아가 되기 쉽고, 발육이 부진한 것을 눈으로 목격하였다. 뿐만 아니라 각종 장애와 기형이 동반됨을 보았다.

가슴 아픈 것은 굶주림의 고통이 어느 일정기간에 끝나는 것이 아니다. 산모와 아기의 경우에는 평생을 가지고 살아야할 심각한 신체적, 정신적 질병과 장애를 유발한다는 사실이었다. 아이들을 내 자녀처럼 생각하며 가슴이 저리도록 일용할 양식을 위해서 기도하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나중에는 긴 말을 싹둑 잘라내고 “저를 팔아서 저들에게 밥을 주십시오. 저를 팔아서 저들에게 밥을 주십시오.”라고 기도하곤 하였다. 그러나 달릿과의 일상적인 나눔은 나로서 감당할 수 없을 뿐더러 끝이 보이지 않기에 그 자리에서 도망치고 싶었다. 그러나 그럴 때 마다 하나님께서 그 일이 내가 책임지고 완성할 나의 일이 아니라 하나님의 일이며 나는 단지 현장에서 그 일에 쓰임 받고 있는 종임을 보여주셨다. 종으로서 주인의 일을 충실하게 수행하는 것으로 감사드리며 굶주리는 자, 특히 고아와 과부들을 위해서 많은 기도를 바쳤다.

인도에서의 일상 나눔과 긴급구호의 경험을 하면서 나는 자주 꿈을 꾸었다. 거대한 우주 공간에 우주적인 식탁이 배설되고 세상의 모든 고아와 과부, 장애우와 실업자들, 자연재해와 종교 갈등과 전쟁 등으로 집과 고향을 잃은 사람들이 배고픈 새들과 산 짐승들과 함께 앉아서 밥을 먹는 그런 환상 말이다. 주님께서 식탁에서 일어나 친히 밥 시중을 드시고 나 또한 그 곁에서 심부름하며 행복한 그러나 실현 가능성이 없는 꿈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날마다 하나님의 은혜로 굶주리는 자가 있는 곳에 우주적인 식탁이 배설되기를 희망하였다. 내가 인도에 부재한 5년 동안에 희망발전소에서 열어놓은 작은 식탁, 고아와 무의탁노인과 가난한 이웃이 함께 먹고 마시는 몇 개의 식탁들이 기적적으로 중단되지 않음을 감사하면서 인도에 들어갈 수 없는 아픔과 향수에 빠져 지내면서 또 다른 식탁에 대한 하나님의 계획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였다.

식량위기의 북한을 향한 숨은 노력들

봄부터 심심찮게 북한이 지속적인 대북제재와 흉년, 농업의 구조적인 문제로 올해 전체 인구의 50%가 식량난을 겪고 있으며, 올 7~9월이 큰 위기라는 소문을 들었다. 가슴이 뭉클해지면서 뭔가 액션을 취해야한다는 생각은 가졌지만 북한의 식량문제는 우리 동포의 일이기 때문에 정부를 비롯하여 큰 손들이 움직일 것이라서 우선 가만히 서서 지켜보기로 하였다. 그러나 북한 식량난의 진위가 사회 문제로 이슈화되자 북한 동포와의 나눔이 불안하고 의심스러운 일이 되어 버렸고 나는 일개인으로서 가슴앓이를 할 뿐 별 도리가 없었다.

마침 그 때에 전주 YMCA와 “평화와 통일을 위한 YMCA 100인회는 용감하게 앞장서 밀가루/콩기름 보내기 전개”를 시작하였다. 그런 사실을 전혀 몰랐던 나는 어느 날 밀린 카톡 글을 몰아서 읽던 중에 “북한 식량난 2019년 64만 톤 부족 2010년 이후 최악, 7월 ~ 9월이 고비 북한 정부 UN 긴급 지원 요청함” 이라는 문구와 아이들의 우울한 얼굴로 만들어진 포스터를 보았다. 쉽지 않은 상황 속에서 북한 동포와의 나눔을 선언하고 모금을 시작한 Y가 참으로 고마웠다.

찬찬히 포스터에 실린 사진을 살폈다. 사진에 나오는 탁아소 아이들의 무표정한 얼굴이 가슴을 찔렀다. 순간 인도에서 본 임신부들과 유아들이 떠올랐다. 3개월의 굶주림으로도 태아들과 임신부들은 평생을 지니고 살아야 할 정신적인, 육체적인 질병과 장애를 얻을 수 있다는 사실에 가슴이 철렁해졌다.

나는 아이들에게 빨리 밥상을 차려주고 싶었다. 윤기 자르르 흐르는 맛있는 쌀밥에 소고기 국을 끓이고 된장찌개와 계란말이, 콩장과 생선구이가 있는 군침이 도는 밥상으로 아이들을 부르고 싶었다. 기도를 하면서 방법을 모색하였다.

30여 명의 지인들에게 Y에서 받은 포스터를 퍼 날랐다. 그리고 몇 자를 적어서 보냈다.

“00님, 잘 지내시지요. 00님의 사랑의 빚에 늘 감사드립니다. 금번에 제게 식사 한 끼를 대접해주시길 부탁드립니다. 한 끼 식사비는 1만 원입니다. 그 돈을 북한 어린이들을 위해서 Y로 보내주시면 저를 대접한 것이 됩니다. 귀한 대접 감사합니다. 맛있게 잘 먹었습니다. 감사합니다.”

그리고 내가 속해 있는 단체에도 모금에 참여하도록 권하였다. 안타깝게도 개인적으로 모금을 독려하는 동안 ‘식량난이 사실이 아니라는 것’과 ‘식량난이 사실이라 해도 돈이 양식으로 전달되지 아니하고 남한을 공격하는 군사비용으로 쓰여 질 수 있다’는 어느 후원자의 이의 제기로 말미암아 주춤하며, 긴장과 불안, 갈등의 파고를 느끼면서 기도하며 숨 고르기를 하는 시간을 가져야 했다.

북으로 가는 밀가루가 부러웠다

그러나 힘겹게 줄다리기 하는 시간이 지나가고 모금 운동을 전개해 오신 분들의 숨은 노고와 협의 끝에 광명, 부천, 여수, 전주 YMCA와 남북평화재단의 연합 평화순례단이 북한으로 보내는 밀가루와 대면하기 위해 3일 첫 새벽에 블라디보스토크의 땅을 밟는 감격을 맛보았다. 그리고 드디어 우리는 7월 5일, 오전 11시 30분경에 우수리스크 물류쎈타에서 북쪽으로 가는 기차에 적재되어 있는 25kg으로 포장된 2,700개의 밀가루 부대를 만났다.

우리는 이미 날씨와 화물차 배차의 차질로 기차가 예상보다 하루 늦게 도착할 것이라는 소식을 들었으므로 북으로 가는 밀가루를 볼 수 없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고 있었던 터여서 너나할 것 없이 감동의 도가니에 빠졌다. 우리는 화물차량 앞에서 밀가루를 두 눈으로 볼 수 있도록 기적을 베풀어 주신 하나님께 뜨겁게 감사기도를 드렸다.

나는 밀가루에게 말을 걸었다.

“고맙다. 밀가루야, 가서 맛있는 음식이 되어다오. 그리고 우리 형제자매들에게 인사해다오. 사랑한다고! 보고 싶다고! 살아서 건강한 모습으로 만나자고! 함께 평화롭게 사는 좋은 세상을 만들자고! 잘 가라. 기회가 주어지면 다시 만나자.”

북의 형제자매들을 보고 싶은 간절한 마음에 북으로 가는 밀가루가 부러웠다. 돌아 나오면서 북으로 가는 차량을 매일 환송하는 일에 써주시라고 기도를 바쳤다. 기도 끝에 우주적인 식탁의 환상이 보였고 “내가 주릴 때에 너희가 먹을 것을 주었고,” 라는 주님의 세미한 음성이 들려왔다. 

양식 나눔에 대한 생각을 정리하며 묵상하고 있을 때, Y 사무실에서 문자 메시지가 왔다.

북한 밀가루 보내기운동에 참여해주신 선생님들께!
지난 7월 5일에 북녘 땅에 밀가루 70톤을 전달하고 왔습니다. 러시아 우수리스크에서 국제대북지원단체를 통해 ~ 중략~  열차 편으로 북한 함경북도 지역 2,800가정, 11,000여명의 북한 주민들에게 보내는 전달식을 가졌습니다.
이 밀가루는 국제대북지원단체가 직접 북한 함경북도 가정에 전달할 것입니다. 북한의 식량난에 남측에서 미온적인 태도로 일관하고 있기에, 우리 YMCA라도 굶주림에 시달리고 있는 북한 주민을 위해 앞서 모금하자 하는 마음으로 진행하였습니다. … 함께 해주셔서 정말로 감사합니다.

이이소  webmaster@ecumen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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