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단력 확장(the extention)과 치량지(致)

그런데 문제는 어떻게 이렇게 개인적이며, 주관적이어서 상대방에게 그 느낌(sensation)을 잘 전달해 줄 수 없는 ‘미각’(취미)으로서의 판단력을 인간 공동 삶에서 판단력으로서 신뢰할 수 있겠는가 하는 것이다. 이것은 우리 판단력의 ‘확장’(enlargement)과 관련한 문제인데, 칸트가 우리의 미감이 제6 감각이라고 할 수 있는 ‘공통감’(common sense, the sensus communis)의 조건하에서 서로 통할 수 있다고 한 대로, 아렌트는 여기서부터 우리 마음의 ‘공통감’에 대해서 집중한다.

공통감(common sense)으로서의 판단력과 마음의 네 가지 기초(四端)로서의 양지

공통감이란 토마스 아퀴나스 이래로 인간의 ‘제6감’(a kind of sixth sense)이라고 불리어졌고, 불어에서는 ‘좋은 감정’(bon sens), 영어로는 ‘상식’(common sense)이라고 불려서 우리의 ‘양심’(conscience)과도 통하는데, 이 공통감을 통해서 인간의 판단은 그것이 아무리 주관적이라고 하더라도 한 대상에 대해서 다른 사람도 나와 같은 감정을 가질 수 있다고 기대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인간은 항상 다른 사람과 같이 느끼고 있을 때에만 만족을 느끼고, 쾌감을 느낄 수 있다는 사실은 인간의 판단, 특히 미감적 판단이 ‘공통감’이라는 것을 알 수 있게 만든다고 한다. 또한 아렌트는 칸트가 인간이 만약 무인도에 홀로 떨어져 있다면 자신의 모자나 인격을 가꾸지 않을 것이고, 게임에서 남을 속였을 때 자기비하감은 있겠지만 만약 남에게 발각되지 않았다면 그렇게 ‘부끄러워’ 하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한 사실을 지적한다.(1) 공통감은 이렇게 항상 다른 사람을 염두에 두는 것이며, 다른 사람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는 것이다.

그래서 이 공통감에 의해서 인간의 판단은 결코 사적이거나 주관적이지 않고 ‘간주관적’이고, 한 시대와 장소에서 공공의 감각이 된다고 한다.(2) 아렌트는 “판단에서 에고이즘은 극복되고”(In taste egoism is overcome), “나는 인간이고 이 인간적 공동체를 떠나서는 살 수 없기 때문에 이 공통감이 필요하다”고 말한다.(3) 이와 더불어 “모든 사람의 입장에서 생각해보기”(to put ourself in thought in the place of everyone else)와 “자기 자신과 일치하는 일관성”(to be in agreement with oneself)이 판단력의 두 가지 핵심 규범(the maximes of the sensus communis)이 된다고 지적한다.(4)

우리는 이런 이야기를 듣고 있으면 유교전통의 유명한 ‘사단’(四端, four beginnings of the virtue)에 대한 이야기가 생각난다. 여기서 ‘모든 사람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기’란 다른 사람의 처지에 대해서 동정을 느끼는 ‘측은지심’(惻隱之心, the sense of commiseration)과 다른 사람에 대하여 부끄러움을 느끼는 ‘수오지심’(羞惡之心, the sense of shame), 그리고 다른 사람에 대하여 자기 자신을 낮추는 ‘겸양지심’(謙讓之心, the senseof modesty)과 무엇이 옳고 그른지를 분별할 수 있는 ‘시비지심’(是非之心, the sense of right and wrong)과 다르지 않다고 하겠다.

▲ 상대방의 입장을 전혀 공감하지 못했던 나치의 부역자 아이히만. 그의 재판을 다룬 한나 아렌트의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은 현대 고전으로 잡리잡았다. ⓒGetty Image

이 네 가지의 덕의 뿌리가 인간 누구에게나 있고 그것을 양지나 양능으로 표현한 맹자와 양명이야말로 인간 ‘공통감’을 누구보다도 잘 이해하고 있었다고 말할 수 있겠다. 양명은 지칠 줄 모르고 양지란 바로 하늘의 도리로서 인간 누구에게나 선천적으로(性, innate nature) 내재해 있는 선한 능력이고 덕이라는 것을 강조했다. 그것은 마치 공자가 우리 모두의 마음안에 내재해 있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한다.(5)

상상력으로서의 판단력과 측은지심으로서의 양지

우리의 판단력이 ‘공통감’이라는 사실은 우리의 판단은 반드시 다른 사람들과 이웃의 존재를 전제한다는 것이고, 그들의 존재가 아니고서는 우리의 판단력은 기능하지 않으며, 따라서 판단력은 공동생활을 통해서 길러지고, 나 홀로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밝혀준다.

이러한 맥락에서 아렌트가 주목하는 또 하나의 인간 정신의 능력이 “상상력”(imagination)이다. 상상력으로서의 판단력은 우리로 하여금 한 대상을 우리가 그와 직접적으로 대면했을 때 받았던 이미지 안에서 내면화시키고 다시 재현할 수 있는 능력이다. 쾌/불쾌의 판단이란 대상의 현존에서 얻은 직관과 더불어 함께하는 ‘반성’(reflection)인데, 그런 의미에서 그 활동은 더 이상 하나의 ‘미각’이 아니고 ‘판단’이며, 우리들은 이 ‘재현’(representation) 안에서 대상의 현존으로부터 거리를 둠으로써 대상에 대한 평가를 ‘공평하게’(impartial)할 수 있다는 것이다.(6)

상상력이란 인간의 판단에서 그 대상으로부터 거리를 두고서 생각할 수 있는 능력이다. 그것은 다른 사람의 입장에서 생각할 수 있는 능력이고, 그래서 결정을 내릴 수 있는 능력이다. 이것은 인간이 자신이 직접 겪지 않고서도 어떤 대상에 대해서는 판단을 내려야 할 때가 있다는 것을 규정하는 근거인데, 그렇지 않고서는 법 심판의 실행이나 역사서술이 가능하지 않게 되고, 우리 공공의 삶은 이것으로써 크게 위협받는다고 밝힌다.(7)

나치 정권의 아이히만은 그 끔직한 일을 하면서 결코 그 일을 당하는 유대인의 입장에서 생각해 볼 수 없었고, 그는 결코 바보는 아니었지만 그의 마음은 기계처럼 굳어서 시키는 대로는 했지만(clichė) 느끼진 못했다. 상상력과 공통감과 상식을 가지고 자신이 진정으로 다른 사람들에게 무엇을 하고 있는지를 생각해 볼 수 없었던 것이다.(8)

앞에서 이야기한 유교전통의 ‘측은지심’이 아이가 우물에 빠지는 위험에 처했을 때 후에 얻어질 이익이나 명예에 대한 생각 없이 즉각적으로 뛰어드는 능력이고, 나의 부모에게 효를 다하면서 다른 노인들의 처지를 생각하는 마음이며, 양명에 따르면 이 마음을 잘 확장하면 심지어는 길에 깨어져 뒹구는 기왓장이나 돌조각에도 측은심을 갖게 되는 만물일체의 마음이 된다고 했다.(9)

유교의 사단칠정론이란, 앞에서 상상력으로서의 판단력은 더 이상 하나의 ‘감각’(미감)이 아니고 ‘반성’(판단)이라고 했듯이, 여기서 ‘측은지심’이나 ‘수오지심’ 등을 과연 하나의 ‘감정’(七情, 氣)이라고 해야 할는지, 아니면 ‘사고’(理)라고 해야 할는지, 사단과 칠정이 어떻게 관계하는지, 그들이 둘인지 아니면 하나인지를 탐구하는 논의들이다. 아렌트가 악의 평범성을 발견해서 근본악의 문제를 새롭게 보았고, 양명이 양지란 우리의 도덕심이기도 하지만 칠정도 결코 양지 밖에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고 했다면, 아렌트와 양명은 이 둘을 하나로 본 것이고, 인간 마음 안에서 모두 자연스러운 것이라고 보는 ‘이기일원론’(理氣一元論)이나 또는 ‘이기불이성’(理氣不二性)의 입장을 취한 것이라고 표현할 수 있겠다.

참된 세계사랑으로서의 미감(美感)과 우리 마음의 호감(好感)

한편 아렌트는 칸트가 인간의 판단력을 표현하면서 아주 특이하게도 가장 사적이고 즉각적인 ‘미감’(취미)으로, 그래서 어쩌면 가장 반대되는 것으로 표현한 것에 대해 후회하지 않았는지 묻지만, 결코 그렇지 않았고 오히려 거기에 확신을 가지고 있었다고 지적한다. 왜냐하면 미감이란 우리의 이차적인 반성이나 의도가 들어갈 여지가 없이 우리 자신을 잊고서 오직 그 대상의 현존에 의해서만 아주 직접적이고 즉각적으로 반응하는 것이기 때문에 우리의 판단을 말하기에 가장 적합한 모습이기 때문이라고 한다. 따라서 칸트가 ‘美’의 반대는 결코 ‘추’(醜, ugly)가 아니고 ‘역겨움’(disgust)라고 한 것은 매우 타당한 것이었다고 밝힌다.(10)

이렇게 美란 세상의 대상과 만났을 때 가장 즉각적으로, 즉 어떤 사심이나 의도 없이 그 대상의 그러함에 의해서만 느끼는 것이고, 대상에서 내가 원하는 것을 보려는 것이 아니라 그 자체의 현현 그대로가 잘 드러날 때 느껴지는 것이라고 한다. 아렌트에 따르면, 칸트는 “美란 우리로 하여금 자신의 사심(self-interest)없이 사랑할 수 있는 법을 가르쳐 준다”고 지적하였다.(11) 또한 “우리가 어떤 것을 아름답다고 부르는 것은, 우리는 그의 현존 안에 기쁨을 가지고 있다(pleasure in its existence)”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판단은 이렇게 우리가 美를 느끼듯이, ‘취미’가 어떤 목적이나 의도 없이 그저 그 대상이 좋아서 거기에 빠져드는 것인 것처럼, 나를 잊고서, 가장 사심 없이(disinterested), 그 대상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면서(impartiality), 그때마다 결정을 내릴 수 있는 능력이 되어야 한다. 또한 우리는 좋아할 때(사랑할 때) 가장 자연스럽게, 그리고 용이하게 그 존재를 위해서 우리 자신을 던질 수 있는 것처럼, 그렇게 우리는 ‘사랑’ 안에서 知와 行이 하나 됨을 보고, 판단력은 그런 의미에서 知이기도 하고 行이기도 하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12)

유사한 맥락에서 양명도 ‘성인’(聖人)이란 “아름다운 색을 좋아하듯이 선을 좋아하고, 역한 냄새를 싫어하듯이 악을 싫어한다”(好善如好好色, 惡惡如惡惡臭)고 하였고,(13) “편파적인 것은 고착되어 있는 것”(偏倚是有所染着, To be partial is to be attached)이라고(14) 지적하면서 우리들의 칠정이 어떤 대상에 고착됨이 없는 것이 ‘中’이고, 그 고착에서 해방된 것이 ‘化’라고 설명하였다. 우리는 양명이 줄기차게 양지란 우리 마음에서 ‘사사로움’(私)과 ‘욕망’(欲)이 제거된 상태의 본체이고, 참된 공부란 바로 그 사적 욕망을 줄여나가서 다시 우리 마음의 본체를 회복하는 일이고, ‘양지를 확충하는 일’(致良知)란 우리 마음의 편벽됨과 욕망을 버리고 본래적인 사랑과 인간다움(仁)을 되찾는 것이라고 한 것을 안다.

양지란 우리 마음의 ‘밝은 덕’(明德)이고, 그래서 양명은 양지를 ‘역’(易, the changes)자체와 동일시하기도 한다.(15) 이렇게 해서 아렌트와 양명 모두에게서 ‘판단력’과 ‘양지’란 바로 인간 인식의 가장 기초적인 출발점이 되며, 그것이 知가 되기도 하고, 의지(意, 쾌/불쾌 love)가 되기도 하면서 거기서 행위(사랑하므로 너는 지금 여기 존재하라는 명령)가 나올 수 있는 ‘최고선’(至善)이 되는 것을 보았다. 이제 앞으로의 문제는 어떻게 그것이 확장된(enlarged) 것이 되고, 확충(致知)이 되는가 하는 것이다.

이은선 명예교수(한국 信연구소, 세종대)  leeus@sejong.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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