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승과 제자가 순례 중에 어떤 집에 신세를 지게 되었습니다. 그 집에는 소 한 마리를 의지해 살아가는 가난한 가족이 있었습니다. 그 집을 떠나던 날 스승은 제자에게 돌아가서 그 소를 벼랑에서 밀어 떨어뜨리라고 명합니다. 제자는 도움을 받은 집인데, 유일한 생계수단을 어찌 그렇게 죽이라고 하시느냐 반문합니다. 그러나 스승은 다른 설명 없이 다시 한 번 엄히 명했고, 제자는 따를 수밖에 없었습니다.

세월이 흐른 어느 날 그 마을을 다시 지나가던 제자가 그 집을 찾아가 봤습니다. 그 집은 폐허가 되어 있었고 그 가족은 보이지 않았습니다. 이웃집에 물어보니, 그 가족은 소를 잃고 큰 어려움을 겪었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그 덕분에 새로운 일을 시작할 수밖에 없었고, 덕분에 큰 성공을 거둬 좋은 집으로 이사를 갔다고 했습니다. 이것 아니면 안 된다고 의지하던 소 한 마리, 그것이 오히려 자신들의 가능성과 도전을 막는 장애물이었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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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간절히 매달리고 있는 그 무엇, 그것 역시 어쩌면 벼랑에서 밀어버려야 할 소 한 마리일 수 있습니다. 그 소 한 마리는 생계수단 뿐만 아니라 신념체계, 가치관, 신앙체계를 의미할 수 있습니다. 새로운 가능성이, 더 넓고 깊은 사랑이 피어나지 못하게 막고 있는 것이라면, 벼랑에서 밀어 버려야할 바로 그 소가 아니겠습니까.

예수님의 고향사람들에게는 자신들의 경험과 판단이 그런 소였습니다. 예수님의 어머니도 알고, 그 형제와 누이도 알며, 직업도 압니다. 같은 마을에서 살며 어릴 때부터 자라는 것을 봤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잘 안다고 착각했습니다. 예수님은 놀라운 지혜와 능력을 가질 만한 그런 모습이 아니었나 봅니다. 그저 이웃집 평범한 아이였을 뿐입니다. 그래서 놀라웠고, 놀라웠을 뿐만 아니라 달갑지 않았습니다. 특별할 것 없어 보였던 이웃집 아이가 뭔가 대단해 보이니, 질투가 나고 샘이 났나 봅니다.

“저 사람 잘 알아.” 이런 생각이 없었다면 어땠을까? 주님을 어떤 규정의 틀에 가두지 않았을 것입니다. 규정은 곧 부정이니, 그들의 경험과 판단에 의한 규정은 주님의 신비를 부정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 규정을 벼랑에서 밀어버렸다면, 주님의 신비를 만날 수 있었을 것입니다. 주님께서 더 많은 기적과 놀라운 가르침을 전해주실 수 있었을 것입니다.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아니 살아남아야 하는 삶이 힘겨울수록 자신의 소를 더 꽉 붙잡게 됩니다. 그것마저 없다면 어찌 버티겠습니까. 그러나 어쩌면, 어쩌면, 그 소가 가장 큰 괴로움의 이유가 아닙니까? 그것을 붙잡느라, 그것에 묶이기 쉽습니다. 그것에 묶여 자유를 잃고 사랑을 잃을 수도 있습니다. 그 판단, 규정, 교리, 신념에 묶여 함께 계신 주님을 알아볼 수 없습니다. 보다 더 자유롭게 사랑할 수 있는 날개를 펼 수가 없습니다.

벼랑에서 밀어버리기는 어렵겠지만, 잠시라도 내려놔 보면 어떨까요. 주님 곁에서 잠시라도 내려놓고, 주님과 함께, 주님 시선으로 바라보면 어떨까요. 기도조차 그것을 더 꽉 붙잡고 매달리는 집착이 돼버리면, 주님 허락하실 신비와 사랑은 어디에서 싹 틀 수 있겠습니까. 자신이 경험한 신앙의 틀로 누군가를 규정해버리면, 어떻게 주님처럼 사랑할 수 있겠습니까. 자신이 매달리는 욕망의 틀로 그 현실을 규정해버리면, 어떻게 주님 하실 새 일이 가능하겠습니까.

하태혁 목사(단해감리교회)  devi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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