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여백
HOME 문화 칼럼
추방된 자전거명상 자전거 1
전성표 목사(이웃사랑교회) | 승인 2019.08.03 18:20

세상에는 많은 종류의 자전거가 있다. 분류방법이 여러 가지 인데 자전거 타는 자세의 기준으로 보면 세상의 모든 자전거는 업라이트 자전거(upright bicycle, 입식 자전거)와 리컴번트 자전거(Recumbent bicycle, 와식 자전거)가 있다.(모든 그림은 클릭하면 큰 크기의 그림을 볼 수 있습니다. - 편집자 주)

▲ (죄측) 업라이트 자전거는 우리가 흔히 보는 자전거이다. (우측) 리컴번트는 누워서 타는 자전거이다. ⓒ전성표

리컴번트 자전거 이야기의 한쪽에는 개발자의 지칠 줄 모르는 열정이 있고, 다른 한쪽으로는 기득권자들의 음모가 있다. 이 자전거를 이야기하기 위해서는 개척자 찰스 모셰(Charles Mochet), 찰스의 아들 조지 모셰(George Mochet) 그리고 사이클 선수 프란시스 포레(Francis Faure)를 기억해야 한다.
 
이 자전거는 20세기 초 프랑스 사람 찰스 모셰가 만들었다. 아버지 찰스 모셰는 아들 조지 모셰를 위해 안전한, 넘어지지 않는 자전거를 만들었는데 그것은 바퀴가 넷 달린 자전거였다.

이 자전거는 안전했다. 비스듬히 누워 타는 이 자전거는 빨랐다. 아들은 이 자전거를 좋아했다. 찰스 모셰는 자동차보다 인간의 힘으로 달리는 탈 것에 관심이 더 많았다. 그래서 자동차 개발을 포기하고 성인을 위한 ‘인간의 힘으로 작동하는 교통수단(human powered vehicle)’에 전념하기 시작한다.

그는 좌석이 둘이고, 바퀴가 셋(혹은 넷)이며, 페달로 움직이는 탈것을 만들고 이것을 벨로카(velocar)라고 불렀다.

▲ 운송수단은 2차 대전 중 휘발유를 구할 수 없는 상황일 때에 유용했다. ⓒ전성표

벨로(velo)가 자전거라는 뜻이므로 우리말로 하면 말 그대로 자전차(自轉車)가 되겠다. 찰스 모셰의 벨로카는, 1929년 10월 미국 New York의 주식 폭락으로 시작한 대공황기에 ‘진짜’ 자동차를 살 여력이 되지 않는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탈 것이었다. 인간이 힘으로 작동하는 이 운송수단은 꾸준히 팔리다가 1930년대, 저렴한 자동차가 생산되면서 인기를 잃었다.

ⓒ전성표

벨로카는 빨랐지만 빠르게 커브를 돌기에는 위험했다.

ⓒ전성표

거듭하여 마침내 이 발명가는 벨로카를 반으로 쪼개면서 리컴번트 스타일이 만들어지게 된다.

▲ 一刀兩斷 ⓒ전성표

찰스는 단지 빠른 자전거를 원한 것이 아니었다. 경기와 일상생활 모두에 유용한 자전거를 원했다. 리컴번트 자전거는 이 두 가지를 만족시켰다. 찰스는 경기장에서 이 자전거의 성능을 증명하고 싶었다. 그는 이 자전거를 경기에 출전시키기로 마음먹는다.

ⓒ전성표

출전을 위해서는 선수가 필요했다. 처음 접촉한 선수는 우승권의 A급 선수였다. 우승권의 A급 선수는 이 자전거가 편안하고 조종이 쉬운 것을 알고 놀랐다. 그러나 그는 망설였다. 다른 선수들이 놀릴까봐 두려웠다. 그래서 그는 리컴번트를 타지 않았다.

▲ 그는 남을 의식하는, 체면을 중시하는 사람이었나 보다. ⓒ전성표

A급 선수에게 거절당한 후, 그가 접촉한 사람은 B급 선수인 프란시스 포레(Benoit Faure)였다. 포레는 최초로 이 자전거에 대해 진지한 흥미를 가진 선수였다. 몇 번의 테스트 후 포레는 리컴번트를 타고 경기에 출전하기로 한다.

포레가 이 자전거를 타고 출전할 때 다른 선수들이 비웃었다.

ⓒ전성표

그러나 결과는 놀라웠다. 포레는 이 우스꽝스러운 자전거를 타고, 모든 정상급 선수들을 따돌리고, 이전까지 최고 기록이었던 시속 44.247km의 기록을 거의 20년 만에 시속 45.055km로 갈아 치웠다.

포레의 승리로 인해 그들의 비웃음은 침묵으로 바뀌었다. 이 괴상한 자전거를 도무지 따라갈 수가 없었던 것이다.

이 괴상한 자전거에 대한 논쟁이 붙었다. 이것은 자전거인가? 

‘업라이트’ 자전거 제조업제들은 포레의 기록이 공식기록이 되자 않게 해달라며 세계사이클연맹에 로비했다. 리컴번트가 금지된 것은 스포츠맨쉽의 문제가 아니라 돈에 대한 이해관계 때문이었다.

ⓒ전성표

논쟁을 해결하기 위해 국제사이클연맹은 총회를 열었다. 격론이 벌어졌다. 뜨거운 감자였다. 한 영국 대의원은 이것이 예언이며, 미래의 자전거라고 말했고, 어느 이태리 대의원은 이것은 결코 자전거가 아니라고 했다. 포레 같은 급이 떨어지는 선수가 근 20년간 깨지지 않던 엄청난 기록을 갱신했다는 것도 화제였다.

이 사건으로 인해 국제사이클연맹은 ‘자전거란 무엇인가?’에 대한 정의(definition)를 만들었다. 찬성 58표, 반대 46표로 결정된 자전거의 정의는 ‘페달 축’이 지상에서 한 뼘 정도(24~30cm)떨어져 있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전성표

리컴번트 자전거는 페달축이 땅에서 80cm 정도 떨어져 있다.

ⓒ전성표

그러므로 이 규정에 따르면 리컴번트는 바퀴가 둘이고, 체인을 사용하며, 핸들이 있고, 안장이 있고, 인간의 힘으로 움직이지만 자전거가 아니었다. 이 규정은 사실상 리컴번트 자전거를 배제하기 위한 규정이었다.

마녀재판 같은 결정으로 인해 리컴번트에게는 암흑기가 시작되었다. 리컴번트 자전거는 영구 출전 금지 자전거가 되었고, 금지 발표 두 달 후, 개발자 찰스 모세는 세상을 떠났다.

▲ 그의 나이 54세였다. ⓒ전성표

이후 리컴번트 자전거의 개량은 부인과 아들 조지 모세에 의해 이루어진다.

종교의 신앙고백문, 신조나 교리에 벗어나면 이단이 된다. 찰스 모세로 인하여 자전거에 대한 정의(定義)가 생겼고 이 정의를 벗어나는 것은 자전거 대회에 출전할 수 없는 이단이 되었다.

세계사이클연맹의 금지와 개발자 찰스 모셰의 사망에도 불구하고 결정에도 불구하고 포레는 이후 시속 50.537km의 기록을 세움으로써 시속 50Km를 돌파한 최초의 사이클리스트가 되었다. 모셰 사망 5년 후였다.

자전거로 시속 50km를 돌파하는 것은 100m달리기 선수가 10초 이내에 들어오는 것, 마라톤 선수가 42.195km를 2시간 내에 들어오는 것만큼이나 스포츠계의 꿈이었다. 리컴번트가 그것을 해낸 것이다.

국제사이클연맹은 이 자전거가 전통적 디자인이 아니라는 이유로 공식기록으로 인정하지 않았다. 포레의 기록은 이후 45년 동안 깨지지 않았다.

리컴번트를 타고 모셰가 세운 기록은 1984년이 되어서야 ‘전통적’ 디자인의 자전거에 의해 깨졌다.

▲ 이게 무슨 자랑이라고. ⓒ전성표

자전거의 사전적 정의는 ‘두 다리로 페달을 밟아 바퀴를 돌림으로써 움직이게 하는 탈것’, 혹은 ‘운전자의 힘으로 추진되는 경량의 2륜차’라고 되어 있다. 리컴번트는 다른 동력을 사용하지 않고 인간의 힘으로 페달을 밟아 바퀴를 돌림으로써 움직이는 경량의 2륜차이지만 국제사이클연맹의 ‘자전거’에는 해당되지 않는다.

세계사이클연맹이 자전거를 정의하고 이로 인해 포레의 리컴번트를 영구 출전 금지시킨 날은 우연이었을까? 1934년 4월 1일, 만우절이었다.

리컴번트 자전거의 장점은

① 빠르다. 유선형으로 공기저항을 최소화했다. 에너지 효율이 좋다. 대략 자전거 힘의 70%는 공기저항으로 빼앗긴다.

ⓒ전성표

② 안전하다. 리컴번트는 무게중심이 낮고 지면에 가깝기 때문에 넘어져도 부상이 크지 않다.

▲ E=MC2 ⓒ전성표

③ 편하다. 직립 자전거의 구조적인 문제로 필연적으로 따라오는 고질적인 손목 통증과 안장통에서 벗어날 수 있다.

▲ 엉덩이 통증이여 안녕. ⓒ전성표

④ 땅바닥을 보며 가는 것이 아니라 앞을 보며 간다.

ⓒ전성표

리컴번트 자전거를 찬양했지만, 물론 여러 단점이 있고 또 그에 대한 반론도 있다.

그러나 이 자전거가 종합적 의미로 ‘잘 달릴 수 있는’ 자전거라는 것은 사실이다. 그리고 이 자전거를 추방한 것이 주류 자전거 세력이었다는 것도 사실이다. 그들은 자전거의 발전 보다는 자신들의 기득권을 지키는 것에 골몰했다.

기득권을 ‘정통’이 자신을 위협하는 존재를 이단으로 만든 것이다. 마치 중세의 마녀사냥처럼.

주류 자전거 세력, 기득권 세력, 국제사이클연맹이 당시에 리컴번트를 인정했다면 오늘날 많은 자전거는 리컴번트 형태로 바뀌었을 것이며 지금보다 훨씬 대중화되었을 것이다. 자전거가 대중화 되었다면 그것은 우리 모두에게, 그리고 지구 전체에게 좋은 일이 되었을 것이다.

여러분의 수고가 헛되지 않습니다. 
Your toil is not in vain.
바울

전성표 목사(이웃사랑교회)  s1564@hanmail.net

<저작권자 © 에큐메니안,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icon인기기사
기사 댓글 0
전체보기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여백
신문사소개기사제보광고문의불편신고개인정보취급방침청소년보호정책이메일무단수집거부
서울시 종로구 김상옥로 30, 402호  |  제호 : 에큐메니안
대표전화 : 070-4252-0176  |  팩스 : 0303-3442-0176  |  등록번호 : 서울 자 00392  |  등록일 : 2012.10.22
발행인 및 편집인 : 이해학  |  청소년보호책임자 : 이해학  |  E-mail : webmaster@ecumenian.com
Copyright © 2019 에큐메니안. All rights reserved.
Back to Top